환도식서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수여,6·25전쟁 중 191개… 유엔군 117개
손원일 제독 등 12명은 2개씩 받아, 최치환 경무관 경찰관으로는 유일
이승만(오른쪽) 대통령이 1950년 9월 29일 환도 기념식에서 맥아더 장군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무공훈장은 태극무공훈장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전쟁영웅들은 거의 모두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태극무공훈장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과감히 목숨을 버렸거나,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할 만큼의 크나큰 전공(戰功) 없이는 받을 수 없는 훈장이다. 그래서 태극무공훈장만큼은 대통령이 직접 수여하도록 규정돼 있다.
2등급 이하의 무공훈장은 대통령이 수여하지 못할 경우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 장관도 어려울 경우에는 각군 총장이 수여하도록 했다.
태극무공훈장은 주로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대간첩작전을 수행하며 큰 전공을 세운 유공자들의 몫이었다. 태극무공훈장 수훈자(受勳者)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군인들이었다. 그중 병사들이나 위관 및 영관 장교들은 대부분 죽어서만 받을 수 있었다. 특히 병사들이 그랬다. 그래서 국가는 그들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하며 예우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신현준(오른쪽) 초대 해병대사령관이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은성태극무공훈장을 받고 있다. 왼쪽은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
그런데 대한민국 태극무공훈장 제1호는 국군이 아닌 미군이 받았다. 주인공은 바로 유엔군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 원수였다. 맥아더 장군은 태평양전쟁을 통해 일본을 항복시킴으로써 군신(軍神)의 반열에 오른 미국의 전쟁영웅이다. 미 국민은 그런 맥아더 장군을 자국의 위대한 군인으로 평가했다.
맥아더 원수는 6·25전쟁 때 초대 유엔군사령관에 임명돼 한국전선의 국군과 유엔군을 지휘했다. 맥아더 원수가 태극무공훈장을 받게 된 결정적인 전공은 바로 인천상륙작전 성공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가 미군 수뇌부의 반대를 물리치고 결행해 성공시킨 20세기 최대의 작전이었다. 전사가들은 흔히 인천상륙작전을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비교한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보다 더 어려운 작전이었다. 그것은 인천이 상륙작전을 해서는 안 될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곳이었기 때문이다. 상륙작전을 수행해야 할 해군 수뇌부조차 그 점을 들어 인천상륙작전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맥아더 장군은 “여러분이 인천은 상륙작전이 어렵다고 생각하듯이 적의 수뇌부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며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단행한 것이 바로 인천상륙작전이었다. 그것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맥아더는 마침내 서울을 탈환해 대한민국에 돌려주게 됐다. 이른바 서울 환도식(還都式)이었다. 그때가 1950년 9월 29일이었다. 중앙청에서 거행된 서울 환도식 행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원수에게 태극무공훈장(당시는 1등무공훈장) 제1호를 수여했다.
대한민국 정부기록보존소에 보관된 ‘태극무공훈장부’에 의하면, 6·25전쟁 중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한 태극무공훈장은 총 191개였다. 그중 국군이 73개, 경찰관이 1개, 유엔군이 117개를 받았다. 태극무공훈장을 국군보다 유엔군이 훨씬 더 많이 받은 셈이다. 유엔군이 태극무공훈장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6·25전쟁에서 유엔군의 역할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1974년 10월 재향군인회가 태극무공훈장 수상자를 초대해 환담을 나누고 있다.
태극무공훈장을 2개 받은 대한민국 군인도 12명이나 된다. 모두가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해병대사령관 그리고 육군의 사단장 이상을 지낸 장군들이다. 육군에서는 정일권·백선엽·이형근·유재흥·송요찬·장도영·강문봉·김용배·임부택 장군 등 9명이고, 해군에서는 총장을 지낸 손원일 제독, 공군에서도 총장을 지낸 김정렬 장군, 그리고 해병대에서는 사령관을 지낸 신현준 장군이 다. 그들은 전쟁 기간 내내 참모총장 및 주요 지휘관으로서 작전을 지휘하며 조국을 위기에서 구했다.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국군 중에는 부사관과 병사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전투에서 뛰어난 전공을 세우고 전사했다. 전선을 지키고 전우를 구하려다 장렬히 산화한 이 땅의 진정한 전쟁영웅들이다. 그들은 낙동강전선에서도 전사했고, 북진 및 고지쟁탈전에서도 목숨을 바쳤다. 자랑스러운 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17연대의 김용식·홍재근 이등병, 7사단 5연대의 김옥상 일등병, 6사단의 안낙규 일등중사(현재 중사), 수도사단의 백재덕 일등중사, 7사단의 최득수 일등중사, 3사단의 이명수 일등상사(현재 상사) 등 7명이다.
위관급에서는 1사단의 김만술 소위, 6사단의 심일 중위(추서 소령)와 김교수 대위, 7사단의 김한준 대위, 8사단의 허봉익 대위 등 5명이다.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중에는 연대장으로 전사한 분도 있다. 1연대장 함준호 대령, 31연대장 박노규 대령, 32연대장 권동찬 대령이다. 그들은 후에 육군준장으로 추서됐다.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수훈자 61명을 육·해·공군 및 해병대로 분류하면, 육군이 51명으로 가장 많다. 육군에서는 이등병에서부터 위관과 영관장교 그리고 참모총장 등 장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급과 직책에서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해군은 3명(손원일·박옥규·최용남), 공군은 4명(김정렬·최용덕·장덕창·이근석), 해병대는 3명(신현준·김성은·김석범)이 받았다. 특기할 만한 인물로 육군에서는 동락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7연대장 임부택 대령이, 해군에서는 대한해협을 승리로 이끈 백두산함 함장 최용남 중령이, 공군에서는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기 조종사로 임무 수행 중 전사한 이근석 대령이, 해병대에서는 통영상륙작전을 통해 귀신 잡는 해병 신화를 낳은 김성은 대령이 이 훈장을 받았다.
유엔군에서는 국군보다 훨씬 많은 117명이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미군이 대부분이다. 그럴 만도 하다. 6·25전쟁 때 미군은 약 180만 명이 참전해 3만4000명이 전사하고, 10만 명이 부상했다. 그렇다보니 전쟁을 실제로 진두지휘했던 미군의 육해공군 지휘관들이 많이 받았다. 여기에는 역대 미8군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이 포함됐다. 미8군사령관 중 워커(Walton H. Walker) 장군만 유일하게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워커 장군은 대한민국 두 번째 무공훈장인 ‘을지무공훈장 제1호’ 수훈자다. 6·25 때 경찰관으로는 최치환 경무관이 유일하게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6·25전쟁 때 태극무공훈장은 대통령이 직접 수여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당사자가 전사하면 유가족을 경무대(현 청와대)로 초청해 수여했다. 심일 소령도 그의 부친이 대신 받았다. 그것은 최고무공훈장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우이자 배려였다. 미국도 최고무공훈장인 명예훈장만큼은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직접 수여하고 있다. 이는 문명국가의 좋은 전통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들에 대한 예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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