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산악인 박영석대장의 끝없는 도전이라는 책자 중에서)
(감명 깊은 내용이 있어서.. 책자를 타이핑한 내용이다)
정상은 다만 반환점일 뿐이다
1999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칸첸중가(8,586m)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길은 가파랐다. 갑자기 몰아닥친 우레와 눈보라 때문에 온물이 얼어붙은 듯했다.
유난히 힘겹게 오른 정상이라 체력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육체와 정신은 한계에 달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졌다. 영원히 편안한 잠 속으로 빠져들고 싶은, 죽음의 유혹이었다.
차라리 이대로 추락해 버릴까. 한순간이다. 그렇게 한순간 떨어져 내리면 이토록 힘들게 산을 내려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니, 아니다. 고개를 흔들고 정신을 차렸다. 사력을 다해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부터는 정신력으로 버터야 했다. 얼마나 더 내려갔을까. 더는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었다.
랜턴까지 닳아 빛 한 줄기 없었다. 사방이 캄캄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두명의 세르파 역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겠다고 했다.
비박(텐트나 침낭 없이 밤을 지세는 것)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았다. 8천 미터 지대에서의 비박이란
손가락 몇 개는 자를 각오로 감행해야 할 일이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고 그 자리에 멈출 수도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비박 말고는 길이 없었다. 힘겹게 내려가다 죽느니 동상에 걸리는 편이 나았다.
설벽을 움푹하게 깍아 세 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엉덩이만 걸치는 식으로 몸을 붙였다.
벽에 꽂은 피켈에 로프를 묶어 몸을 확보한 다음, 동이 틀 때까지 밤을 새는 것이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꽉 끌어안았지만
온몸은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실인적 추위였다.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잊고 고통을 견디기 위해 온갖 기억들을 떠올랐다. 서울에 두고 온 가족도 생각나고 동국대 산악부 시절도 떠올랐다.
기억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불러오고, 추억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오래도록 되세겨 보았다.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 부끄러웠던 일, 화났던 일 등 기억을 모조리 끄집어내 되세겨 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멀리서 떠돌던 먹장구름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번개를 품고 있는 거대한 구름덩이었다. 추위로 뻣뻣하게 굳은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것은 점점 더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구름속에 휩싸였다가는 흔적도 남지 앟게 될 것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세르파들을 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구름은 우리의 발아래까지 와 있었다. 그것은 쉴새 없이 벼락을 만들어 냈다. 번쩍, 하는 한순간 주위는 대낮처럼 환해졌다.
번개는 하늘을 찢어 놓고선 양쪽 옆으로 물결치듯 퍼져나갔다. 장관이었다. 절체정명의 순간이었지만 그 때 느낀 공포와 황홀은 벼락처럼 강렬했다.
그렇게 한동안 아름답고도 치명적인 빛의 향연이 이어지다가 마침내 먹장구름이 몰려가고 서서히 날이 밝아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자 안도감과 함께 기운이 솟았다. 우리는 제4캠프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고, 나는 캠프에 들어서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산 길은 체력과 정신력이 소진된 뒤라 사고의 위험이 높다. 그래서 정상에 오르면 내려갈 걱정부터 하게 되는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도달해야 할 마지막 지점은 정상이 아니라 베이스캠프다. 마라톤에서처럼 그곳은 출발점이자 결승점이며,
정상은 다만 반환점에 불과한 것이다.
- 출처 : 산악인 박영석대장의 끝없는 도전(115-119페이지)
■ 산악인 박영석 대장
(산악인 박영석은 1963년생으로 동국대 체육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아시아 최초 에베레스트산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다)
(2001년 히말라야 8천미터 이상 고봉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이어 7대륙 최고봉 완등, 남극점 북극점 원정 성공 등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러나 산악 그랜드슬램 달성 후에도
끝임없이 불가능한 도전을 했다. 2006년 에베레스트 횡단 등반 성공, 2009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루트를 개척했다.
그러다...2011년 10월 18일 안나푸르나 코리안루트 개발 도중 남벽 5,800미터 부근에서 실종됐다.
시체도 찾지 못했다.
이 책을 출간한 시점에서 에베레스트 14좌를 완등한 사람은 11명인데, 한국인이 3명이라고 한다.
(2003년 본 책이 출간되었다)
■ 책을 읽은 소감
올해로 카프리 34권의 책을 읽었다. 대략 목표는 근접한 것 같다.
이 책은 한마디로 흥미진지했다. 박영석대장이 원고를 썼겠지만...어느 작가가 편집을 해주었을까?
20대부터 산에 빠져 평생을 노력하니..이런 업적을 쌓을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내년부터 카프리 나사모산우회 산행대장을 맡았다.
이 책을 읽으며..대장이란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박영석 대장도 8천미터 이상 고봉만 31회 도전해 그 중 열여덟 번밖에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고 한다.
산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박영석대장의 말이 심금을 울린다.
■ 어제 무등산 송년산행에서
어제 나사모 송년산행에서 무등산을 걷다 보니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니..나의 버켓리스트를 만들어야 되겠구나 생각했다.
이룩한 버켓리스트는 지리태극종주, 백두대간 완주 정도 이지 않을까?
사람은 생각보다..글로 써야 실천력이 높다는데..
그 중 히말라야트래킹은 버켓리스트에 들어갈거라 확신한다.
어제 부곡정에서 술을 많이 먹었다고 밤새 곤히 잠을 자지 못했다..
나무로 따지면 나는 가을 단풍 나이 같다.
나의 생각과 행동여부에 따라, 단풍처럼 아름다울 수도, 비에 젖은 단풍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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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레스트정상을 비켜 넘어 간다. 세계의 최고봉 바로 윗 쪽을 넘나들 수는 없는 일이고, 비행기는 정상에서 거리를 조금 둬 남동쪽을 나른다. 네팔의 카투만두에서 티벹의 라사로 비행하는 기내에서 에베레스트 정상과 그 주변의 고산군을 한 눈에 바라보는 뜻 밖의 꿈같은 환희를 만끽한다. 1/21/2007 >
첫댓글 나사모엔 산행대장 카프리님이 있어, 진정한 산악인으로 만들어져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참으로 성심성의껏 글을 올리시네요~~
과찬이십니다.. 요즘 나사모가 댓글도 침체되어 걱정인데..
사기를 올려주는 댓글을 이렇게 달아주니.. 힘이 절로 납니다..
대장님
에베레스트에서의
생생한 체험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간의 삶에 정도는 없는 것 같습니다..가날픈 인간이 거대한 히말라야에서의 사투가 심금을 울리고요..
카프리님 안녕하세요. 나사모산행은 한번도 안했습니다. 카페들어와서 산행공부 많이하고가는 산행 6.7년 윌 4회정도는 꼭 할려고 함니다. 카프리님 백두대간 후기도 많이봤습니다. 대단하신분이구나 했지요. 공부하시는 산행대장님 나사모 명성만큼이나 더 멋진 2017년되세요. 박수 많이보내고 산을 좋아해서 멋진 산악회 카페에들어와서 두서없이 몇자적고 감니다. 안전산행을 기원해드리며 두서없는 글 이해 해주세요. 죄송함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안녕하세요? 시간여행님! 닉네임이 멋집니다. 월 4회 정도 산행하신다니 산을 좋아하는 님이시군요. 이렇게 격려의 댓글을 보니 나사모 산행에는 안 와도..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구나 생각했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댓글을 읽으니, 저절로 힘이 납니다..시간여행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나중에 기회되면 산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