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조금 늦게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조용하고 풍경이 이국적인 바다의 땅, 통영으로 향했다. 2박 3일간 통영의 숨은 매력도 발견하고, 208의 숨겨진 기능도 찾아냈다.
놀러 나가기가 무서울 정도로 더운 여름이었다. 이 더위에 국내에서 휴가를 가 봐야 똑같이 더우리라는 생각에 여름의 끝자락에서야 휴가를 갔다. 여유 있는 2박 3일 일정이니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인 남해안을 다녀오기로 했다. 나름 국내 여행은 바지런히 다닌 터라, 남해안 쪽에서도 웬만한 곳은 다 가 봤다고 자부한다. 그중에서도 필자의 마음을 가장 끌어당기는 도시가 있으니 바로 통영이다.
통영에 가는 건 이번이 세 번째. 너무 조용하지도, 너무 소란스럽지도 않은 지역 분위기와 아기자기한 풍경이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여러 번 찾았으니 관광지를 구경하겠다며 열심히 돌아다닐 필요도 없다. 하루에 한두 곳만 둘러보고 남해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차분히 시간을 보내면 딱 좋겠다는 생각으로 짐을 쌌다.
천혜비경, 그 이름 통영
통영은 1604년에 지금의 해군 본부와 같은 삼도수군통제영이 존재했다. 지명도 여기서 따왔다. 예로부터 수군의 중심지로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하고 먹거리가 많기로 유명했다고 하니, 지금에 와서도 볼거리 먹거리가 많은 관광지로 떠오른 게 우연은 아닐 터. 기차역이 없는 까닭에 다른 지역 사람은 자가용과 버스로만 올 수 있다. 필자는 세 번의 통영 방문 모두 승용차를 이용했다. 도시 곳곳이 여러 겹으로 쌓아 올려진 듯 고저 차가 크다. 높은 언덕 위 도로에서는 아득히 먼 한려수도의 섬을 내려다볼 수 있고, 낮은 해변 도로에서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일렁이는 모습을 가까이 지켜볼 수 있는 곳이다.
어째선지 통영에 올 때면 매번 한 가지씩 아쉬움이 남는다. 첫날과 둘째 날에는 종일 비가 쏟아지고, 셋째 날은 쨍쨍했지만 바람이 크게 불었다. 강풍으로 인해 섬으로 가는 배가 뜨지 않아 ‘통영 여행의 꽃’인 섬 일주는 포기해야 했다. 아쉬움이 다음 여행의 원동력이 되니까 섭섭하기만 한 건 아니다.
그래도 통영이 멋진 드라이브 코스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해안일주도로만 따라 느긋하게 달려도 저절로 힐링이 된다. 조금 한적한 곳에서는 차를 세우고 사진 찍기도 좋다. 남쪽 해변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면 남부러울 것이 없다. 아직 여행지로는 많이 찾지 않고 강태공의 낚싯대만 왕왕 드리운 풍화리 해안일주도로를 따라 어촌의 향취를 느껴본다. 같은 고양잇과라 그런지 208에 관심을 보이는 길고양이와 마주치는 등 바쁘게 돌아가는 대도시에 비하면 통영에서의 시간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시내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중앙시장 앞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 다니면 알록달록한 동피랑, 서피랑이며 꿀빵, 충무김밥 등 군것질거리며 보고 즐길 게 많다. 특히 속도를 즐긴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 루지 코스다. 무동력 카트를 타고 통영 앞바다의 풍경을 즐기며 다운힐 코스를 내달리는 루지를 통해 게임 속 카트 레이서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저렴한 탑승료에 다섯 번이나 탔건만, 또 타고 싶을 정도다.
경쾌한 랠리 DNA와 뜻밖의 커넥티비티
휴가에서 가장 바빴던 건 208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친구 한 명과 짐을 가득 싣고 쉴 틈 없이 달렸다. 에어컨 풀가동에 고속도로와 일반도로를 80:20 비율로 주행했지만, 트립 상 평균연비는 20.8km/L로 제법 만족스러운 수준을 유지했다.
특히 경사와 고저 차가 심한 통영의 지형과 거제의 와인딩 로드를 엄청나게 돌아다닌 것을 감안하면 퍽 만족스럽다. 와인딩 로드에서의 차체 움직임도 뛰어나다. 랠리 코스가 연상되는 산길에서도 항상 부드러움과 탄탄함의 경계를 절묘히 오가며 즐거움을 선사한다. 비포장도로에서도 실망시키는 일이 없다.
마지막 날 오후에는 거제도 최남단 홍포 전망대에 다녀왔다. 이곳은 수 km의 비포장길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208의 서스펜션은 스트로크가 길어 큰 낙차는 부드럽게 받아내는 동시에 자갈에서 올라오는 잔진동은 매끄럽게 걸러내 준다. 덕분에 탑승자의 피곤함이 그리 크지 않았다. 오솔길을 달리며 글래스 루프를 통해 나무 사이로 비추는 햇빛을 만끽하니, 순간 어느 북유럽의 숲길을 달리는 듯했다.
이번 휴가에서는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바로 208에 커넥티비티 기능이 일부 탑재되어있단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차량 사용설명서에도 적혀 있지 않은 기능이 있을 줄이야! 실내의 USB 커넥터에 케이블을 꽂고, 스마트폰을 연결하면 커넥티비티 기능이 활성화됐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미러링크 기능을 지원한다며 표시했고, 아이폰은 카플레이 연결 설정 메시지가 떴다. 아쉽게도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은 많지 않다. 안드로이드 미러링크는 어플리케이션의 제약이 많아 음악 재생 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스마트폰용 내비게이션 미러링이 활성화되면 좋을텐데, 아무래도 차량 쪽 설정이 막혀있거나 해당 핸드폰에서 지원하지 않는 모양이다.
카플레이 기능은 조만간 제대로 활성화될 예정이다. 지금으로선 아이폰을 연결해도 아무 반응이 없어 푸조 서비스센터로 문의하니, 현재 기능을 개발 중이며 208은 제일 먼저 업데이트될 차량이라고. 업데이트 후에는 내비게이션 앱의 카플레이 서비스를 지원한다고 한다. 머지않아 208도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쓸 수 있겠다. 숨겨진 기능을 몰랐을 뿐인데, 차에 새로운 기능이 생긴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다.
8~9월에는 유독 운행이 많아 주행거리가 꽤 늘어났다. 차를 산지 정확히 8개월째 되는 날에는 적산거리가 2만km를 돌파했다. 한 편으로는 치솟는 주행거리에 차 값이 떨어지진 않을까 걱정된다. 그래도 오랫동안 부담 없이 장거리 주행을 하기 위해 구입한 차니 용도에 맞게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본격적으로 선선한 가을을 맞아 더 많이 여행을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