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말
정해영
벌어지지 않는
석류처럼
입을 다문 일이 있다
침묵 속에서
하루를 보내본 사람은
안다
열 시와 오후 세 시는
느낌은 비슷하지만
기울어져 있다
해 뜨는 쪽과 해 지는
쪽으로
기다려야 할 것과
서둘러야 할 것을 아는
석류는 아직
입을 벌리질 않는다
천 개의 말을 머금은
속이
붉게 익고 있다
때가 되면
흘러넘칠 말
시간의 표정 따라
소리 없이 색깔이
짙어지고 있다
석류는 키가 5m에서 7m 정도로 자라며, 주홍빛을 띠는 붉은 꽃이 핀다. 석류는 9-10월에 노란색, 또는 노란빛이 도는 붉은색으로 익는데, 열매의 크기는 오렌지만 하고, 부드러운 가죽질의 껍질로 덮여 있다. 열매는 날것으로 먹거나 즙을 만들어 마시며, 열매 껍질에는 수분이 많고 신맛이 있어 갈증을 없애준다. 한방에서는 열매껍질을 말려 구충과 지혈과 수렴 등에 쓰며, 민간에서는 백일해와 천식의 치료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석류에는 많은 씨가 들어 있어 다산의 상징이 되기도 하며, 따라서 혼례용 활용이나 원삼에는 포도와 함께 석류의 문양이 사용되기도 한다.(다음백과사전 참조)
‘사상의 신전을 짓고 모든 사람을 초대하라’는 나의 [사색인의 십계명] 제4계인데, 왜냐하면 사상은 우리 인간들의 최고급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소인배는 자나깨나 눈앞의 이익을 생각하지만, 어진 현자, 즉, 사상가는 인류 전체의 이익을 생각한다. 언제, 어느 때나 인류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기 때문에 용감할 수가 있고, 자기 자신의 단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사상의 신전’을 창출해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다 초대할 수가 있다. ‘나는 신성모독을 범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낙천주의자의 제일의 명제처럼, 사상이란 모든 지식인들의 궁극적인 목표이지만, 그러나 이 ‘사상의 신전’은 전체 인류의 것이지, 사적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공자와 맹자와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그들의 개인의 소유물이고, 오직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매번 그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면 우리들의 마음은 어떠할 것이며, 또한, 소크라테스와 데카르트와 칸트와 니체의 사상이 그들의 개인의 소유물이고, 오직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매번 그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면 우리들의 마음은 어떠할 것일까? 돈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언제, 어느 때나 적대적 관계로 만들고, 따라서 우리 인간들은 그 사용료를 지불할 때마다 이를 북북 갈며 원한 맺힌 저주감정을 퍼부어댈 것이다. 사상이란 사상가가 인류 전체에게 바친 최고급의 지혜인 동시에 천연재화이며, 어느 누가 사용하든지간에 그 고귀함과 위대한 정신을 생각하며, 전체 인류의 번영과 행복을 위해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사상은 말들의 신전이고, 정해영 시인의 [들리지 않는 말]은 ‘침묵의 말’이며, “천 개의 말을 머금은” 최고급의 석류와도 같다. “열시”는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고통의 지옥훈련과정에 참여한 청년과도 같고, “오후 세시”는 모든 것을 다 주고 떠나야 할 초로의 신사와도 같다. 정해영 시인은 붉디 붉은 석류이고, 사상가이며, “기다려야 할 것과/ 서둘러야 할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정해영 시인의 [들리지 않는 말]은 아직도 “천 개의 말을 머금”고 붉게 익고 있는 말이며, 때가 되면 흘러 넘칠 말이다. “시에는 사악한 생각이 하나도 없다”(공자), “도는 가까운 데 있는 그것을 먼 데서 찾는다”(맹자), “철학자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탈레스), “국가는 가족이나 개인보다 앞선다”(아리스토텔레스), “내 꿈은 세계 통일이요”(알렉산더대왕),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마르크스), “인간의 욕망은 성적 욕망이다”(프로이트)라는 최고급의 사상가들의 말처럼----.
만일, 그렇다면 정해영 시인의 [들리지 않는 말]의 침묵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된단 말인가? 정해영 시인의 [들리지 않는 말]은 열시와 오후 세시, 즉, 청년과 초로의 신사 사이에 있는 시이며, 폭풍전야, 즉, 만개전야의 침묵을 뜻한다. 기다려야 할 것과 서둘러야 할 것을 아는 석류,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지만, 때가 되면 천개의 말을 쏟아내고 말들의 꽃을 피워낼 석류----. 따라서 기다려야 할 것은 삶의 정점이고, 서둘러야 할 것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삶과 행복한 삶은 꽃을 피우는 것이고, 아름다운 죽음과 행복한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나가는 것이다.
시인과 사상가는 함부로 입을 열지 않으며, 그가 입을 열 때에는 만인들의 충고나 기존의 역사와 전통 따위와는 상관없이 자기 자신의 과업과 목적에 따라 너무나도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들의 꽃을 피운다. 공자의 꽃 역시도 유교사상의 꽃이었고, 그의 유교사상에는 충효와 인의예지, 이상국가와 학문의 즐거움 등, 모든 말들의 꽃이 다 피어 있고, 플라톤의 꽃 역시도 이상국가의 꽃이었고, 그 이상국가에는 그의 조국애와 민주주의, 철인정치와 천재생산의 교수법 등, 모든 말들의 꽃이 다 피어 있다. 노자의 ‘무위자연’도 말들의 꽃이고, 니체의 ‘디오니소스 철학’도 말들의 꽃이다.
정해영 시인의 [들리지 않는 말]은 폭풍전야, 즉, 만개전야의 말들의 꽃이며, “시간의 표정에 따라/ 소리 없이 색깔이/ 짙어지며” 그 꽃들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와 사상은 영양만점의 최고급의 열매이며, 이 시와 사상의 열매처럼 전인류에게 소중한 양식은 없다. 정해영 시인의 [들리지 않는 말]은 천 개의 말을 머금은 침묵이며, 수많은 벌과 나비들이 찾아올 ‘말들의 꽃’에 대한 찬가라고 할 수가 있다.
시는 침묵의 말이고, 이 침묵의 말을 미리부터 듣는 사람은 그 말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깨닫고, 새로운 말의 꽃밭을 창출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