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은 아침마다 사랑을 한다
2016년 7월 19일 주중리에서
호박꽃은 아침마다 사랑을 한다.
이른 아침 주중리에 갔다. 자전거로 10분만 달리면 농촌의 공기로 숨쉴 수 있는 곳이다. 주중리 사람들은 길가 자투리땅에 호박을 심는다. 어느 지점에서 급하게 브레이크brake를 잡았다. 막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되비치는 호박꽃이 보였기 때문이다. 호박꽃을 보면서 혼자 웃었다. 암꽃은 암컷처럼 골이 지고 수꽃은 수컷처럼 우뚝 섰다.
암꽃으로 피는 수량은 열에 하나 정도밖에 안 된다. 게다가 대개 호박잎 뒤에 숨어서 핀다. 널따란 호박잎을 제치며 찾아야 보인다. 암꽃은 밤새 있었던 일을 들키기나 한 것처럼 부끄럽다. 아니 호박꽃은 밤에 사랑하지 않는다. 일벌의 날개에 이슬이 마르는 아침이 되어야 사랑을 한다.
수꽃에서 꽃가루를 길어 올리는 일벌을 보면서 문득 꽃들의 비밀스런 사랑이 궁금했다. 일벌이 꽃가루를 길어 올릴 때 수꽃은 어떤 기분일까? 내가 백두대간 능선을 내달릴 때 느꼈던 상승과 분사 후의 나른함 같은 쾌감을 경험할까? 아무래도 아닐 것 같다. 여왕벌을 위하여 평생을 기다리다 단 한 번의 사랑으로 일생을 마감하는 수벌만도 못한 것이 수꽃이다. 오늘 아침 갑자기 수컷들이 측은하다. 나는 내가 수꽃이라도 된 양 시들해진다.
일벌이 수꽃에서 길어온 사랑을 전해줄 때 암꽃은 어떤 느낌일까? 아픔일까, 쾌감일까, 오르가슴orgasme일까? 쾌감을 몸으로 받을까, 마음으로 느낄까? 암꽃은 일벌이 다녀가면 꽃 아래 없는 듯 숨어 있던 어린 열매의 성장 속도가 빨라진다고 한다. 온몸에 동력을 넣은 듯 활력이 인다고 한다. 일벌이 수꽃의 사랑을 전하는 순간에 성장이 가장 활성화된다고 한다. 그렇구나. 암꽃은 오르가슴을 얻어내는 것이구나. 호박꽃이란 아름다운 별명을 가진 문우가 있다. 외롭게 살다가 늦은 나이에 새출발하여 사랑에 푹 빠졌다. 이른 아침 사랑을 하는 호박꽃을 보면서 호박꽃 친구의 사랑도 몸이든 마음이든 절정에 오르기를 빌어본다.
아침이 되면 호박꽃은 사랑을 한다. 호박꽃은 사랑을 하고 사랑을 알고 사랑을 열매로 맺으니 다만 호박꽃은 아니다. 호박꽃은 당당한 생명임을 깨닫는다. 사람이나 호박꽃이나 사랑이라는 섭리로 산다. 나는 오늘 아침 허공에 가득하게 내리는 보배로운 섭리의 비를 작은 내 그릇에 담아온다.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법성게)
첫댓글 당당한 생명을 깨닫는 호박꽃~~이 이렇게 아름답군요.
읽어내려가다 켁~~ 으하하하하하.
반선생님, 그렇게 놀라실 일은 아니지요. 사랑을 알고, 사랑을 하고, 열매를 맺는 호박꽃인데요. 행복하십시오.
회장님 안녕하세요?
호박꽃이 아름답게 보이면 나이가 든것 이라고 하던데
저도 요즈음 지는 장미보다 피어나는 호박꽃이 훨씬 예쁘게 보이더라구요.
무심히 보았는데 암꽃, 수꽃 구별을 이제 할 수 있게 되었네요.
이곳에 더 자주 들러서 좋은 수필 많이 읽고 많이 배우겠습니다.
그리고 반선생님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행복하세요~^^
그렇군요. 나이가 든 것이군요.
저는 아직 쳥년인 줄 일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군요.
어쩐지 자연이 자꾸 아름답게 보이고
작은 꽃들이 모두 예쁘게 보이고
지나가는 아가들이 모두 보물처럼 귀하게 보여서 왜 그런가 했어요.
그래서 옛 시인인 "노안이 유명이로다"라고 했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아침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난다는 호박꽃 표현이 멋집니다. 감동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오문재 선생님 안녕하세요? 꼼꼼하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 산책길에 가끔씩 호박꽃을 봅니다. 수꽃 암꽃을 이제 확실히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호박꽃의 사랑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자주 오세요. 행복해지실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