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남부 레바논은 사실 이스라엘 북부
역사적으로 볼 때, 레바논 남부는 사실 이스라엘 북부에 해당하며, 이 지역에 유대 민족의 뿌리는 깊게 박혀 있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2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점령·통제 중인 레바논 남부 완충지대를 방문, 헤즈볼라를 향한 군사 작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현장 시찰 후 "레바논에서의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며 "아직 해야 할 일이 더 남아 있다. 우리는 그 과업을 수행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이 보안 구역(완충지대)을 확보한 덕분에 레바논으로부터의 침공 위협을 저지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며 이 지역의 통제권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 테러리스트들을 소탕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가운데, 많은 이들이 잊고 있는 듯한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유대인 국가와 북쪽 이웃 국가들 사이에 국경이 존재하며 자라온 우리는, 이것이 항상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마땅한 일이라고 당연시한다.
하지만 사실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의 현재 국경은 100년도 채 되지 않았으며, 전적으로 인위적인 것이다. 이는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연기가 자욱한 방에서 브랜디 한 병을 곁들여 지도 위에 제멋대로 선을 긋던 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레바논 남부는 사실 이스라엘 북부에 해당하며, 이 지역에 유대 민족의 뿌리는 깊게 박혀 있다. 이것이 현재 정치적 현실로 구현될 수 있는지, 또 그래야 하는지는 훨씬 더 복잡한 문제이지만, 우리가 이 땅과 맺고 있는 유대 관계를 부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성경 시대에 레바논 남부는 분명히 이스라엘 땅의 일부였다. 창세기(10:19)에는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Sidon)에서 게라르를 거쳐 가자까지 뻗어 있었고, 거기서부터 소돔, 고모라, 아드마, 쯔보임까지 뻗어 라샤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레바논의 도시인 시돈(Sidon)은 현재 이스라엘 국경과 베이루트 사이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유대의 조상 야아콥은 임종 직전에 열두 아들에게 축복을 내렸는데, 제불룬(Zevulun)에게 내린 축복은 “제불룬은 바다가에 살며 배들의 피난처가 될 것이요, 그의 경계는 시돈(Sidon)까지 미칠 것이라”는 것이었다(창세기 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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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서(13:6)는 시돈(Sidon)이 유대 백성에게 약속된 땅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또한(19:28) 아셀 지파의 경계가 시돈(Sidon)까지 뻗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베레시트 라바(39:8)의 미드라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 땅을 약속하신 곳이 현재 이스라엘 국경에서 북쪽으로 12마일(19킬로미터) 떨어진 도시인 티레(Tyre)였다고 전하고 있다.
미드라쉬는 랍비 레비(Levi)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전한다. “아브라함이 아람 나하라이임(Aram Naharayim)과 아람 나호르(Aram Nahor)를 지나갈 때, 그곳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흥청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말했다. ‘오, 내 몫이 이 땅에 있지 않기를.’
그가 티레(Tyre) 곶에 이르렀을 때, 제초할 때면 제초하고, 괭이질할 때면 괭이질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말했다. ‘오, 내 몫이 이 땅에 있기를.’
거룩하신 분, 찬양받으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창세기 12:7).
이 지역과 유대인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는 레바논 남부에 있는 다양한 성지와 의인들의 무덤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시돈(Sidon)에 있는 즈불룬(Zevulun)의 무덤으로, 수세기 동안 이 지역은 물론 그 너머의 유대인들에게 순례지였다.
16세기, 이탈리아의 랍비 모쉐 바솔라(Moshe Basola)가 이 무덤을 방문하여 그에 대해 기록했으며, 18세기 중반에는 랍비 요세프 소퍼(Yosef Sofer)가 가족들이 무덤 근처에 모여 축제 같은 식사를 즐겼다고 전했다. 브레슬로프의 랍비 나탄( Natan)은 제불룬의 무덤에서 고양되는 영적 체험을 했다고 묘사했으며, 19세기 모쉐 몬테피오레(Moses Montefiore) 경이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도 이곳을 찾아갔다.
사막에서 베짤렐(Bezale)을 도와 성막을 건축했던 또 다른 성경 인물인 오홀리압 벤 아히사막(Oholiav ben Ahisamakh)의 무덤은 레바논 남부의 소주드 마을에 위치해 있다.
이스라엘 고고학자 즈비 일란(Zvi Ilan)에 따르면, 오홀리압의 매장지는 오스만 제국 시대에 중요한 유대인 순례지였다. 또한 현지 아랍인들도 이 장소를 숭배하며 이곳이 “유대인 예언자”의 무덤이라고 말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사페드(Safed)의 유대인들은 소년들의 첫 이발 의식인 ‘우프셰린(upsherin)’을 치르기 위해 이 무덤을 찾곤 했는데, 이는 오늘날 메론(Meron)에서 흔히 행해지는 관습이다.
레바논 남부에 위치한 또 다른 유대교 성지는 레바논 자발 사피(Jabal Safi) 마을에 있는 성경의 예언자 스바냐(Zephaniah)의 무덤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 마을의 이름이 그곳에 묻힌 예언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추측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당 중 하나가 시돈(Sidon)의 하랏 알 야후드(Harat-Al-Yahud, 유대인 지구)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약 1,200년 전인 833년에 지어진 이 회당은 제2성전 파괴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는 더 오래된 유대교 예배당의 터 위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레바논 남부는 어떻게 이스라엘과 단절되었을까?
그렇다면 레바논 남부는 도대체 어떻게 이스라엘 북부와 사실상 단절되었을까? 이러한 분단의 기원은 1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후, 영국과 프랑스는 1916년 ‘사이크스-피코 협정(Sykes-Picot Agreement)’이라는 비밀 협정을 체결했는데, 이 협정은 사실상 중동 대부분을 런던과 파리의 영향권으로 나누는 결과를 낳았다.
간단히 말해 지도 위에 선을 그은 것이었는데, 바로 그 낙서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국경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올해 초, 레바논 남부로의 유대인 정착을 장려하기 위해 '우리 차폰(Uri Tsafon, 깨어나라, 오 북쪽)'이라는 이스라엘 단체가 설립되었으며, 이 단체는 정부에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이 아이디어를 비현실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불과 1세기 전만 해도 주권적인 유대인 국가라는 개념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국, 오늘의 꿈은 내일의 현실을 예고한다. 특히 중동에서는 더욱 그렇다.
By MICHAEL FREUND - 벤야민 네타냐후 총리 재임 당시(2024) 부대변인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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