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길산 - 수종사
▲수종사에서 ▼
수종사를 향하는 가파른 내리막길엔 가드레일이 있어 안심이라.
해탈문이 비탈진 돌계단에 간당간당 서서 나를 훑다 문을 활짝 열었다.
속세의 떼 찌든 내가 어찌해야 되는가? 스틱만이라도 접자.
삼정헌토방에 등산화 세 컬레와 배낭 두 개가 놓였는데 나는 끼어들 엄두도 못냈다.
마당 한쪽 응진전 바위가 짜내는 약수 -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 한 종지로 환장을 하면서 삼정승의 다도의 열락을 상상해 봤다.
이 상선약수는 수종사의 시원이기도 하다.
세조가 금강산(金剛山)유람 후 귀경 길에 두물머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밤중에 비몽사몽 은은한 종소리가 들리자 아침에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찾아보라고 하명한다.
토굴 속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마치 종소리처럼 들렸었는데
그곳엔 18나한상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세조가 수종사를 창건하면서 18나한을 봉안하고 5층석탑을 세웠단다.
이후 왕실의 원찰이 됐다.
서거정은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하였고,
겸재 정선은 양수리의 경관을 독백탄(獨栢灘)이라는 그림에 담았다.
대웅보전 앞 누각에서 조망하는 두물머리 풍경은
겸재 선생이 아닌 범생의 안목으로도 감탄이 절로 난다.
그 두물머리의 북한강이 품어내는 물의정원을 탐닉하러 수종사은행나무와 작별한다.
물의정원은 물이 빚어내는 신비경이 ‘최고의 선경은 물에 있다’라는
또 하나의 상선경수(上善鏡水)를 이름이라.
시시각각 일구는 물그림자 - 데칼코마니의 신비경은 시간을 잊고
나를 잊는 몰아경(沒我境)에 침잠시킨다.
물의정원의 소요는 치유의 산책이다.
다산선생이, 한음선생이 말년을 이곳 두물머리에서 소요한 까닭을 헤아릴 만 했다.
텅 빈 마음으로, 맑은 정신으로 치유한 오늘의 열락을 설맞이로 다잡아야겠다. 2024. 02. 08
출처: https://pepuppy.tistory.com/1358 [깡 쌤의 내려놓고 가는 길: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