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고교학점제 시행 1학기 성적표: 64.2% 만족 vs 90.9% 부정적...엇갈린 결과
학생·교사 긍정평가 이면에 가려진 과목 선택권 제약,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 실효성 논란
[교육을 비추다 기자]
2025년 전면 시행된 고교학점제가 첫 학기를 마치고 상반된 평가 속에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교육부는 학생 64.2%, 교사 76.3%의 긍정 응답을 근거로 "안정적 안착"을 주장한 반면, 교원 3단체(교총·전교조·교사노조)는 자체 조사를 통해 교사 90.9%가 핵심 제도인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의 효과를 부정한다는 정반대의 결과를 발표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학업 성취율 40% 이상 도달 시 학점을 취득·누적해 3년간 192학점 이수로 졸업하는 제도다. 기존의 획일적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학생 주도성'을 핵심으로 하는 교육 패러다임 전환을 목표로 하지만, 첫 학기 운영 결과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깊은 골을 드러냈다.
교육부 vs 교원단체, '같은 현장' 정반대 진단의 배경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25년 8월 전국 일반고 160개교 학생 6,885명, 교사 4,6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희망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응답이 학생의 74.4%에 달했다. 특히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미이수 예방·보충 지도)에 대해서는 교사 70.0%, 학생 67.9%가 "도움이 되었다"고 답했으며, 지도 교사의 79.2%는 "학생들이 최종적으로 성취수준에 도달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교원 3단체가 교사 4,060명, 학생 1,6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체 조사에서는 교사의 90.9%가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가 학생 성장에 긍정적 효과가 없다"고 답했고, 학생의 53.1%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응답해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교원단체는 이러한 격차의 원인으로 조사 방법론의 결함을 지적했다. 교육부 조사가 교사에게 학교명을, 학생에게는 학교명·학년·반·번호·이름·휴대전화 번호까지 요구해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았고, 위계적 압박이 작용해 솔직한 응답이 어려웠다는 분석이다.특히 "나의 지도 계획과 운영은 학생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식의 문항 설계는 제도의 효과성이 아닌 교사 개인의 노력을 평가하도록 유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교사 입장에서 자신의 지도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하기는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 '행정적 알리바이' vs '책임교육'의 갈림길
고교학점제의 가장 큰 논란은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미이수 예방·보충)'다. 성취율 40% 미만 시 미이수(I학점) 처리되므로, 학교는 예상 학생을 조기 발견해 예방 지도하고 미이수 확정 학생에게 보충 지도를 제공해야 한다.
교육부 조사에서는 지도 효과에 대한 긍정 응답이 높았으나, 교원단체 조사에서는 교사 91.0%가 "고교 단계 학업 미달은 초·중학교 시기부터 3년 이상 누적된 결손"이라고 답했다. 결과적으로 방과 후 몇 시간의 보충 지도나 온라인 강의로는 구조적 학습 결손을 해소할 수 없다는 현장 인식이 지배적이다.
낙인효과와 심리적 부담
전교조 조사에 따르면 학생의 60.4%는 미이수 및 보충지도 대상이 되는 것을 "공부 못하는 학생" 또는 "문제 학생"으로 낙인찍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낙인효과(stigma effect)는 학습 동기를 오히려 저하시키고 자존감을 떨어뜨려 학교 부적응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전문가들은 교사 개인에게 미이수 학생 구제를 전가하는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며, 교육청 차원의 '학습종합클리닉센터' 운영이나 전문 기관 연계를 통한 장기적·맞춤형 지원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교사 소진과 업무 과부하—90% 이상 "불안·스트레스 증가"
고교학점제는 교사에게 수업 외 막대한 행정 업무를 요구한다. 다과목 지도에 따른 수업 준비 부담, 이동 수업으로 인한 생활지도 공백, 미이수자 관리를 위한 예방·보충 지도 계획 수립 및 실행, 복잡해진 시간표와 성적 처리 등이 중첩되고 있다.
교사노조 조사에서 교사의 90% 이상이 고교학점제로 인해 불안과 스트레스가 늘었다고 응답했다. 특히 담임교사의 경우, 학생들이 각기 다른 시간표로 흩어지면서 조·종례 시간 외에는 만날 기회가 줄어 생활지도와 관계 형성이 어려워졌다는 호소가 잇따른다.
지역·학교 규모별 격차 심화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사에 따르면 대도시 학교와 농산어촌 학교 간 선택과목 개설 수는 평균 10개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농어촌 소규모 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 다양한 과목 개설 시 '소인수 과목'이 양산되며, 전공 교사 확보가 어려워 순회 교사나 온라인 학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대면 수업 대비 교육의 질적 만족도가 낮아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교사와 학생 간 인식 차이도 두드러진다. 학교가 공동교육과정이나 온라인 학교를 통해 과목 선택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교사 응답은 86.9%인 반면, 개설된 과목에 대한 학생 만족도는 58.3%에 그쳤다. 약 28.6%p의 격차는 공급자 중심의 노력이 수요자의 실질적 만족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질을 흔드는 '진로 선택'—68.1%는 대입 유불리 기준
고교학점제의 핵심 철학은 '진로와 적성에 따른 선택'이지만, 현실에서 학생들의 과목 선택 기준은 대학입시 유불리가 지배한다. 종로학원 조사에 따르면 학생의 68.1%가 대입에 유리한 과목을 우선 선택한다고 답했으며, 진로·적성을 고려한다는 응답(27.7%)의 2배 이상이다.
2025년 고1부터 내신 5등급제가 도입되었으나 상대평가가 병기되는 과목이 여전히 존재해, 학생들은 수강 인원이 적어 좋은 등급을 받기 어려운 심화 과목보다 안정적인 등급 확보가 가능한 과목으로 쏠리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제도가 추구하는 교육과정의 다양성은 입시 경쟁 논리 앞에서 제약을 받고 있다.
학부모·교사를 위한 대책은
학부모의 경우:
진로 탐색 시기 앞당기기: 고1 때부터 희망 전공·직업군을 구체화해야 2~3학년 과목 선택 시 일관성 있는 학업 계획 수립 가능
학교 교육과정편성표 꼼꼼히 확인: 자녀가 희망하는 과목이 실제 개설되는지, 공동교육과정 참여 여건은 어떤지 사전 파악 필요
미이수 예방을 위한 선제적 학습 관리: 성취율 40% 미만 시 미이수 처리되므로, 학기 중 중간 점검을 통해 기초 학력 보완
교사의 경우:
과목 선택 상담 시 입시 편향 경계: 학생이 대입 유불리만 계산하지 않도록 진로 적합성·흥미를 균형 있게 안내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의 실효성 높이기: 형식적 보충 수업이 아니라, 학습 결손의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외부 전문 기관과 연계
동료 교사 간 협력 체계 구축: 다과목 지도와 행정 부담을 분산하기 위한 교과별·학년별 협의회 활성화
고교학점제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지만, 형식적 안착을 넘어 실질적 교육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현장의 비판적 목소리를 정책 피드백의 핵심 기제로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2025년의 첫 성적표가 던지는 질문에 교육 당국이 얼마나 진정성 있는 해법을 내놓느냐에 따라, 이 제도가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될지 또 다른 혼란의 진원지가 될지가 결정될 전망이다.
출처 : 교육을 비추다(https://www.kyobi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