붇다의 아들 라훌라는 장애물인가?
Buddha 는 붓다가 아닌 붇다가 바른 음역
붇다의 출가와 관련해서 반드시 등장하는 부분 중 하나가 태자의 아들인 라훌라와 관련된 내용이다. 라훌라는 ‘장애(障碍)’라는 의미이다.
이로 인하여 혹자는 태자가 출가하려고 결심이 선 이후에 아들이 태어나자 출가에 장애가 된다고 하여 ‘장애(물)’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공자는 『논어』 「양화편」에서 자신이 자주색을 미워하는 것이 붉은색과 혼동을 주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이런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붇다와 같은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가 상대인 아들을 고려하지 않고, 장애물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애물이라는 명칭을 받는 아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
이는 탄생부터 너는 불필요한 존재라는 의미가 된다.
이는 상대의 인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붓다가 아닌 보통의 인간들도 저질러서는 안 되는 일이다.
[추가 ; 학교에서 약자를 구박하는 깡패학생을 생각해보라.
자기 아들을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불필요한 존재라고 말을 했다는것은
부처는 자기 아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깡패에 해당한다.
붇다가 그런 분 이었을까?]
우리에게 남아선호 사상이 만연해 있을 때, 줄줄이 딸을 낳게 되면 ‘끝순’이나 ‘말년’이 등의 이름을 짓고는 했다.
딸을 그만 낳고 아들을 바라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당사자를 생각한다면 이는 너무나도 잔인한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타인도 아닌 부모가 자식에게 이러한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유교에 의해서 잘못 판단된 시대적 아픔이자, 비극의 결과라고 하겠다.
고대 인도에서는 일식(日蝕)과 월식(月蝕)이 일어나는 것이 거대한 아수라왕이 손으로 해와 달을 가리기 때문이라는 전승이 있다.
그런데 그 아수라왕의 이름이 라훌(라)이다.
이로 인하여 후일 라훌라라는 명칭에는 해와 달을 가린다는 의미의 장애(물)이라는 뜻이 첨가되게 된다.
전승에 의하면, 라훌라가 태어나는 날에 일식 혹은 월식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변은 고대에는 매우 특별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를 기념해서 라훌라가 이름으로 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말을 잘 만들어 내는 사람을 만나, 출가의 장애물로 곡해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보다 극적인 출가양상을 묘사하는 데는 긍정적이지만, 붓다의 인격 자체를 고려하지 않은 무모한 행태라 아니할 수 없다.
라훌라와 관련된 미스터리
라훌라와 관련해서는 불교판 ‘다빈치 코드’라고 할 수 있는 희대의 미스터리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라훌라의 탄생과 관련해서는 붇다의 출가 직전에 탄생했다는 설과
출가 후 6년 뒤에 탄생했다는 두 가지의 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중 후자와 같은 경우 이렇게 되면, 라훌라는 붓다의 아들이 아닌 것이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후자의 전승에는 라훌라가 6년간이나 잉태되어 있었다는 전승이 수반되고, 이의 본생담까지 만들어져 있다.
중국의 노자에게도 어머니 뱃속에서 80년을 지내고 태어나, 탄생하자마자 지혜로워 노자라고 했다는 내용이 전한다. 그러나 이는 노자의 지혜에 대한 상징적인 인식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이는 라훌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라훌라의 6년 입태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불교는 암묵적으로 회피한다.
즉, 문제를 다루는 자체를 금기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을 이해한다면, 이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다.
불교와 같은 경우는 나이로 위계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출가한 기간에 따라서 위치가 결정된다. 이러다 보니 후일 불교교단은 어려서 일찍 출가한 사람들이 주류를 점유하게 되는데, 이렇게 일찍 출가하는 경우는 결혼하지 않은 독신[童眞]이다.
이로 인하여 결혼 이후에 출가하거나 자식이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고는 한다.
이들의 관점에서 붇다가 결혼하여 자식까지 두고 있다가 출가했다는 것은 그리 달가운 측면이 아니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인하여 붇다와 야소다라는 결혼 이후에도 서로 깨끗한 생활을 했다는 전승까지 만들어지게 된다.
이러한 측면은 결혼 이후에 출가하는 마하가섭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단적인 확인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승단의 인식과 관련되는 또 다른 부분이 바로 라훌라와 붓다의 거리를 띄우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라훌라 역시 후일 출가하여 승단의 중요한 제자가 된다는 점에서, 라훌라를 붇다의 아들이 아니라고까지는 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고심의 결과가 6년 입태설과 같은 양상을 파생시키기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즉, 붇다의 수행자로서의 존엄성을 확보해 주려는 관점이, 과잉 충성을 통해서 6년 입태설로 만들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붇다께서 주장하시는 것은 재가에서 결혼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다.
출가 이후 얼마나 올바른 청정을 확보하여 수행하느냐가 그 중심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후대의 승단인식은 분명 붇다의 관점을 잘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신의 입장에서 주변을 판단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는 것 역시 이해 못할 부분은 아니라고 하겠다.
위대한 포기
인도어 ‘pravrajya―’를 우리는 출가로 한역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이를 ‘위대한 포기’로 번역한다. 출가는 숭고한 선택인 동시에 위대한 포기이다.
『장자』에 보면, 까마귀가 시체 위에 앉아 있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경계하며 매섭게 운다는 대목이 있다. 이는 까마귀가 혹여나 자신의 먹을 것을 빼앗길까 봐 취하는 방어행태이다.
이러한 까마귀는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다.
붓다는 우리보다 더 많이 가졌다. 그럼에도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행복을 초래하는 길이 아니라고 판단하자 초개와 같이 버렸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버리기는 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무게가 많이 나가는 생물일수록 높은 곳에서 떨어졌을 때 타격을 크게 입게 된다는 진리를 우리는 잊고는 한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붓다의 선택이야말로 명지(明智)의 선택이며, 완전히 얻으려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