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고통 가운데 패배감이 괴롭히고 고독감이 괴롭히고
죄의식이 괴롭히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만이 자신을 괴롭힙니다.
뭔가 불만족스러운 것 곧 자기의 부조리가 자기를 괴롭히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불만에 가득한 걸 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뭔가를 갖고 계시는데 내게 안주는 것 같다는 불만입니다.
하나님의 불공평에 대해 속이 상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이외로 많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분깃을 자기 것으로 만들 줄 몰라서 그렇습니다.
다 예수 믿는다고 말하고 다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말하자면 맞습니다.
사실 하나님께로부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선물을 다 받았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돈이 소중한 것은 그 돈이 갖는 구매력 때문입니다.
돈을 갖고 있으면 뭐든지 바꿀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가 뭐든지 살 수 있고
무엇이든 돈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돈이 모든 사람들에게 매력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불고기 집 앞에서 불고기가 먹고 싶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앞에서 내가 돈을 가지고 있어 이렇게 한다고
해서 불고기를 먹고 싶은 나의 갈망이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지금 위로받고 싶고 내 영혼이 힘을 얻고 내 마음이 어둡고 낙심이 되는데,
나는 예수를 믿는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말은 실제로 소용이 없습니다.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위로로 바꿀 수 있어야 됩니다. 나의 소망으로
바꾸고 나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영적 기능이 내안에 작동이 되어야 합니다.
불고기 식당 앞에서 나는 돈이 있기 때문에 그까짓 불고기쯤은 문제가
없다고 자위를 하더라도 불고기 먹고 싶은 마음은 떨어지지 않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신앙이 이와 같은 스타일입니다.
분명히 내게 갈증이 있고 피로가 있고 답답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 나는 걱정이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얼굴에 내 천(川) 자는 왜 그렇게 그리고 다니는 건가요?
꼬집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신앙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이 안되어서 그렇습니다.
“Listening Word and listening world "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줄 알고 세상을 들을 줄 알아라는 뜻입니다.
히어링(hearing)은 소리 나는 대로 듣는 걸 말합니다.
소리 나는 대로 그냥 듣는 겁니다. 귀가 있으니까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리스닝(listening)이란 내가 애써서 그 의미가 무엇인가,
그 뜻이 무엇인가를 들어 보려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도 어떤 사람은 hearing만 해요.
그냥 소리 나는 대로 들어보는 겁니다. 사람들이 집회를 마칠 때
목사님이 오늘 이런 말씀하시던데요. 오늘 목사님 말씀 굉장히 좋습니다.
이런 식으로 hearing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제대로 들으시려면 저분이 왜 저런 말을 하는가,
저 말 속에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가?
우리들에게 뭘 주고 싶어 하는가 이렇게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죤 스타트의 말처럼 listening Word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그리고 세상구경만 하러 다니지 말고 하나님께서 이 온 세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어 하는 그 음성을 들을 줄 알자(listening world)하는 겁니다.
세상이 변화되는 걸 보면서 그 세상을 통해서 하나님을 들을 줄 알라는 말입니다.
구경하러 다니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그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으라는 말이죠, 죤 스타트가 한국교회에 충고한 것이 바로 이 두 마디였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합니다.
요한복음이 왜 중요한가 하면 그 요한복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속성이
우리에게 적용되도록 하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요한복음을 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에게 적용되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구구절절 박히도록 설명한 책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잠언이란 말은 침 잠(箴) 말씀 언(言)으로 말씀이 우리에게 박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 속에, 생각 속에, 마음속에 잘 박히도록 구구절절이
논리적으로 기록한 책이 로마서입니다. 요한복음의 참고서 격입니다.
요한복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분이며, 우리에게 이런 구원을
주시고, 이런 복을 주시는 분이다고 말씀하시고, 그의 제자인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어떻게 만드신다고 설명한 것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그런 의미로 부디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꼭 그렇게 해 보세요.
저는 신학을 할 때부터 hearing 보다는 listening에 신경을 쓴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해 주신 것을 저는 복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교수들이 강의를 하면 그 강의 내용만 듣는 것이 아니라, 그 강의 가운데
흐르는 어떤 맥을 붙잡으려고 무척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저 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성경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는가?
저 사람은 어떤 학자의 영향을 받았을까? 어떤 책을 읽고 저런 말을 할까?
지표수를 보는 것이 아니고 그 지하수를 캐려고 무척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내노라고 하는 목사들의 테이프라던가,
그분들의 책을 다 듣기도 하고 읽기도 하고 또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분의 책이나 테이프를 많이 읽고 들어보고 연구해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제가 다른 분들의 설교나 강의 테이프를 3,000개 이상을 들어 봤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성경으로 저를 인도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다 참고서입니다.
열심히 듣다보니까 주님께서 저를 성경으로 인도하시더라고요.
또 성경을 열심히 들으니까 저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저를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시더라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여러분에게 도전하기를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이 제게 그럽니다.
강해 테이프를 좀 달라고 합니다. 어떻게 들으시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저 들어보겠다는 식으로 말하면 못 드리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hearing 해보겠다는 겁니다. listening 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조용한 시간을 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들어보겠다고
하면 하나님이 그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하나님 자신을 들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소리를 듣는 게 아니고 우리를 들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인격과 속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듣고 하나님은 우리를 들으셔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떠들지 마’ 했다면 떠들지 마라는 음성만 듣는 게 아닙니다.
떠들지 마라 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듣습니다. 그렇듯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드리고 이렇게
되어져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hearing만 하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강의 테이프(DVD)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listening 하려고 하는 생각이 들면 드립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주님을 들으니까요.
그런 사람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듣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복음 13장은 사는 자와 파는 자 이야기입니다.
예수님도 자기의 몸을 십자가에 팔아서 우리를 사셨습니다.
천국의 전부를 팔아서 우리를 사셨습니다. 마13장에 밭에 묻힌 보화를
발견하고 모든 것을 팔아서 그 보화를 샀다는 것은 예수님 측에서도
그렇게 하셨고 우리도 똑같이 전부를 팔아 사들여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가룟유다는 그토록 우리를 사들이시기를 원하는 예수님을
마땅히 그도 사들여야 함에도 그만 예수님을 팔아 먹어버렸습니다.
여기서 가룟유다와 베드로를 비교하면 가룟유다는 사단의 종입니다.
예수님을 철저하게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가룟인 유다는 예수님을 따라 올 때
이미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따라온 것이 아니고 저 예수님 같으면
능히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어떤 세속적인 야망을 품고
따라온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다고
하니까 별 볼일 없으니 그럴 바엔 은 삼십에 바꾸자 이렇게 해서 예수님을
팔아먹어버린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고 하는 구도자로 나서야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어떤 이익을 챙기고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무슨 색욕거리를 얻고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수시로 예수님을 팔아먹어버리고 맙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아먹고 사는지...
그래서 제가 미셔니스(missioness)라고 새로운 단어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mission과 business를 섞어서 사업을 위한 미션이라는 뜻입니다.
주를 위한 사역이 사업이라... 잘못하면 사역을 한답시고 예수님을 팔아먹습니다.
그래서 한창 기독교 장사가 잘 되다가 그만 유럽으로부터 교회가 비었고
이제 한국교회도 비어질 교회가 되고 있습니다. 이게 계시록의 현상이며
라오디게아 교회 같은 교회는 미혹이 뭔지 모르는 가운데 그들의 일에
충성을 할 것이지만 해 입은 여자의 교회와 두 증인은 그 날에 이르도록
주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의 성령을 빈부귀천을 돌아보지 않고 증거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