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행기 제 4탄입니다.
흔히 이집트를 ‘태양의 제국’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고대 이집트의 왕을 ‘파라오’라 합니다. 파라오는 태양을 숭배하는 사람, 또는 태양처럼 숭배를 받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왕들은 스스로를 파라오라 칭하고 그들이 숭배했던 태양신과 똑같이 숭배의 대상이 되기를 원했던 겁니다. 그들이 엄청난 규모의 신전과 무덤을 세웠던 것도, 죽은 왕을 미라로 만들어 영원히 살게 하려 했던 것도, 태양신과 파라오를 숭배하려 했던 일련의 종교적 행위였던 것입니다.
<람세스 2세의 존재를 확인해준 상형문자입니다. 신전은 물론 제례의식과 관계된 모든 것에는 다 새겨져 있습니다. 람세스 2세의 어릴 적 이름과 나일강을 다스리는 큰 통치자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 짤막한 이집트 역사 **
역사가들은 기원전 6,000년 전경부터 고대 이집트 나일강 유역에 인류가 살고 있었고, 기원전 3,300년경에는 종교적 제례문화가 출현했다고 봅니다. 고대 이집트 왕조는 기원전 2,700년경에 고왕조가 세워진 후 예수 탄생과 함께 종교대란이 일어나고 로마에 의해 고대이집트가 멸망할 때까지 중왕조와 신왕조가 있었습니다. 이 세 왕조 중 파라오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고대 이집트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왕조는 고왕조였고, 고왕조의 마지막 번성기였으며 고대 이집트의 최대 전성기를 일구었던 왕이 바로 람세스 2세였고, 그의 죽음으로 화려했던 고왕조는 문을 닫게 됩니다. 우리가 앞서 보았던 피라미드, 스핑크스, 오늘 보게 될 아브심벨 신전, 모두 고왕조 때의 유물들이랍니다.
<고대 이집트 역사에 그토록 유명한 이름을 남긴 람세스 2세의 얼굴입니다. 고왕조의 수도인 멤피스(지금은 그저 자그마한 마을이랍니다.)에 가면 프타흐(Path)신을 제사지내던 신전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고요. 그런데 이 람세스 2세 석상이 하필 그 자리에 누워 있는지, 오른쪽 다리는 왜 잘려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고 합니다. 이집트에 가면 람세스 2세는 지겹도록 볼 수 있는데, 카이로 국립박물관에 가서 미라까지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봤지요... 람세스 2세는 매부리코였습니다…>
아부심벨(아브는 조상이란 말이고, 심벨은 1800년대 이 신전을 처음 발굴한 프랑스인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심벨가의 조상이 이 신전을 발굴한 사실을 기념하려고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은 아스완의 남쪽 28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왕조의 람세스 2세가 고대 누비아 지방에 건립한 신전이 있는 곳입니다. 람세스 2세 이전부터 이곳은 하토르(Hathor)신의 신성한 영역이었고, 람세스 2세는 이 신전을 태양신 아몬-라와 라-호라크테, 프타신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이 신전을 통해 람세스 2세는 자신의 권력과 신성을 과시하려 하였지요.
<입구에는 높이 20m의 거대한 4개의 좌상이 있는데, 왼쪽에서 두 번째 석상의 머리는 고대 지진으로 인해 훼손되었다고 합니다. 생전의 람세스 2세는 떨어져나간 얼굴 때문에 보통 애석해한 게 아니라고 합니다.>
신전은 크게 람세스를 위한 대신전과 그의 왕비 네페르테리를 위한 소신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파라오라 하면 왕만을 칭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는 사실 왕비까지 포함한 호칭이라고 합니다. 그건 여성의 지위가 뒷받침되는 모계사회였다는 증거가 되어주고, 또 람세스 2세가 여러 부인 중 가장 사랑했던 왕비는 우아한 자태를 자랑했던 네페르테리였다는 사실도 뒷받침해줍니다. 람세스 2세는 너무도 우아한 네페르테리의 모습을 신전에 맘껏 새겨두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왕 못지 않게 여왕의 신전도 훌륭하죠? 사람들이 콩알만 하잖아요...>
나일강 위의 절벽에 사암을 깎아 만든 대신전은 태양신을 숭배하여 동쪽을 향해 지어졌으며 거대한 석주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중앙 입구를 통해 신전 내부로 들어가면 여러 개의 큰 홀을 접하게 됩니다.
<이집트의 고대 유적지 어디를 가도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플래시만 안 터지면 촬영이 가능한 곳이 아브심벨 신전이랍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 놓고 찍었는데, 글쎄 플래시가 터진 겁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백인 관광객들이 No, Flash!를 제게 외쳐댔고, 저는 Sorry! Sorry!를 외치면서 사태를 수습해야 했답니다. 사진을 찍은 저도 놀라고, 사진을 찍힌 조카도 놀라고, 사진은 비뚤어지고 … 하여튼, 덕분에 신전 내부의 벽화를 생생하게 볼 수 있게 됐지요... >
** 이쯤 해서 여행 정보가 나가야겠죠? **
바로 위의 사진을 찍을 때 제가 무척 애먹었다고 말씀드렸죠? 바로 그겁니다. 유럽의 다른 나라 문화유적지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있는 건 알고 계시죠? 이집트도 똑같습니다. 플래시가 터질 때 순간의 빛이 유물을 작게나마 훼손시킨다고 하는군요. 유네스코에서 엄격히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유적지 내부에 들어갈 때는 아예 입구에서 카메라를 다 압수하고 관광객들을 들여보내고 있답니다. 그런데 또 간혹 비디오카메라 촬영을 허용하는 곳도 있답니다. 그러니 이집트에 가실 때는 노플래시 기능이 있는 카메라와 비디오카메라를 함께 가져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나일강이 아닙니다. 호수입니다. 호수 이름은 나세르. 전 이집트를 관통해 흐르는 나일강에 홍수가 나면 강물이 범람해 일대가 진흙투성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아브심벨 신전이나 앞으로 보게 될 카르낙 신전 같이 엄청난 규모의 신전도 진흙더미에 묻혀 그저 구릉지처럼 보였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덕분에 도굴의 피해를 덜 입었다고도 하지요. 그렇게 나일강 범람의 피해를 줄여보고자 댐(아스완하이댐)을 세워 물줄기를 바꿔놓았고, 그 물이 호수가 되었고, 또 그 물을 이용해 농사나 공업용수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1960년대 아스완 하이댐이 건설되었을 때, 바뀐 물줄기로 인해 아브심벨 신전이 물에 잠길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유네스코가 기금을 조성해 이 신전이 60m에 이르는 나세르 호수에 수몰되지 않도록 1963년부터 66년까지 약 70m정도 위에 올려졌다고 합니다. 프랑스인들이 주축이 되어 대 공사는 이루어졌고, 신전을 조각내 하나하나 고대로 옮겨다 재건축을 했다고 합니다. 이 신전의 원래 설계는 1년에 2번 (2월 22일과 10월 22일) 태양광선이 내실 사당의 뒷면 벽 쪽으로 비춰서 거기에 앉아 있는 네 신상들을 비추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스완하이댐 공사로 인해 70m 높게 지어진 현재는 하루의 시차가 난다고 합니다. 이걸 문화재 훼손이라고 해야 할까요? 보호라고 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에 맡기겠습니다.) 저는 아브심벨 신전이 재건축되는 과정을 비디오로 봤는데, 그 때의 제 생각 내지는 느낌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신전을 처음 세운 사람들도 대단하지만, 그걸 옮겨 재건축한 사람들도 대단하구나! 인간이란 역시 못말리는 동물이라니까……….”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첫댓글 No, Flash! Sorry! Sorry! ㅎㅎ 생각만 해도 재미있어요..따끈 따끈한 여행기 점점 잼나요/사진 크기도 글자 크기도 최적~ 재건축한 프랑스 인들에 한표!
람세스 2세의 메부리코를 직접본 글로리아님 부러버요..사진이랑 역사적 사실은 여러번 자료에서 보았거든요..너무도 유명한 세계문화유적이라서요...여행 에피소드가 재미있군요..감사드려요
선진국일 수록 문화유산에 대한 중요성을 높게 인식하고 있군요.여행기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