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포그래픽: 조선시대 배경 영화와 드라마 타임라인
얼마 전 뒤늦게 영화 [관상]을 봤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살짝 허구를 덧붙여서 잘 만든 영화라 참 재미있었어요. 문제는 영화 속 역사 배경이 계속 헷갈리더라고요.
고등학교 때까지 배웠던 건 다 잊었고, 남아있는 기억은 비교적 최근에 본 드라마와 영화들인데 영화 [관상]이 영화 [왕의 남자], [광해, 왕이 된 남자], 또는 드라마 [이산] 등과 앞뒤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한 번에 안 떠오르더라고요. ‘태정태세문단세……’ 하면서 한참 생각해야 하는 건 너무 불편했고, 아내가 “아, 이거 영화랑 드라마랑 순서대로 타임라인처럼 쫙 붙이면 한눈에 들어올 텐데……”라고 하더라고요.
인포그래픽 만들기
그래서,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로 엮은 조선시대 타임라인 말이죠. 처음엔 금방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자료 수집에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자, 일단 결과물부터 나갑니다.
만든 과정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조선시대 왕의 재위 기간 조사
처음엔 ‘무슨 영화는 어느 왕이다’, 이렇게만 해보려고 했어요. 그래서 가장 먼저 한 건 왕의 재위 기간을 쭉 적었습니다.
2. 영화/드라마 목록 수집
그냥 생각나는 영화를 하나씩 넣어보다가 이왕 하는 건데 되도록 빠뜨리는 것 없이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개봉연도 기준으로 영화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드라마도 같이 했습니다. 무작정 모을 순 없으니까 2000년을 기준으로 잡고 개봉연도와 영화/드라마 제목을 모았습니다.
3. 시대 배경 조사
사실 목록 수집과 동시에 진행했는데요. 각 영화/드라마의 시대 배경을 적었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웠는데 제가 안 본 것들도 다 찾아봐야 했거든요. 영화나 드라마의 줄거리 소개에서 ’1448년 조선에서는!’ 이런 식으로 되어 있으면 쉽지만, 그 외에는 줄거리들을 보며 찾아봐야 하더라고요.
그래도 영화는 대부분 그 기간이 짧은 편이라 기준점(기준년)을 잡기가 쉬웠는데, 드라마는 다루는 기간이 훨씬 길어서 평균을 잡거나 가장 중요한 시점을 잡거나 하는 식으로 기준점을 잡았네요.
일단 실존 인물이나 실제 역사적 사실이 언급되는 경우는 대부분 넣었는데(아, [구가의 서] 깜빡했네요!), [해를 품은 달]이나 [후궁: 제왕의 첩]처럼 아예 허구의 세계로 빠진 경우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정리한 스프레드시트(링크)입니다. 혹시 잘못된 부분이나 빠진 부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4. 자료 시각화
스프레드시트로 정리한 뒤로는 그냥 키노트에서 계속 작업했어요. 이미지 한 장으로 만들어 블로그에 게시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으니, 블로그 가로 폭에 맞춘 긴 이미지로 만들었고요. 정보가 많은 편이라 어떻게 넣어야 할지 고민 많이 했는데 그만큼 보기 편했으면 좋겠네요.
X축은 해당 작품의 개봉연도, Y축은 작품에서 다루는 시대인데 왼쪽에는 서기로 표시한 해를 적었고 오른쪽에는 당시의 왕을 적었습니다. 개봉연도를 왜 따로 적었냐면, 자료 수집할 때부터 소재의 트렌드를 발견해보고 싶었거든요. 최근에 정조 시대 배경 영화나 드라마가 부쩍 늘어난 것처럼 말이죠.
Y축을 시간 오름차순으로 할지 내림차순으로 할지도 조금 고민했었는데, 보통 교과서에는 오름차순으로 과거일수록 위에 오게 적을 텐데요. 전 그게 좀 맘에 들지 않더라고요. 뭔가 처음부터 쭉 외워야 하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최근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소셜 미디어에서 보면 타임라인은 최신일수록 위에 오잖아요. 그래서 저도 최신을 위에 적는 걸로 결정! 그렇게 해서 완성했습니다. 다음부터는 다른 영화나 드라마 볼 때 저도 참고하려고요.
그런데 만들고 보니 역시 트렌드나 그룹이 눈에 띄어서, 역사도 많이 알지 못하고 방송/영화계도 잘 모르지만, 일단 그래프에서 보이는 만큼은 분석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5. 자료 업데이트
2014년 2월 15일 첫 번째 그래프를 올렸는데, 이후 ‘드라마들은 특정 시점이 아닌 오랜 기간을 다루는 게 많으니 이를 반영하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어서 드라마의 시작점과 끝점을 자료로 추가했습니다. 2014년 영화/드라마도 넣을 수 있게 했고, 더불어 조선 건국 전의 이십 여년도 함께 넣었습니다.
인포그래픽 업데이트: 그룹별 정리
이게 제가 분석한 건데요. 몇 가지 그룹으로 나눠봤습니다.
1. 조선 말
외세의 침략이 가시화되고, 흥선대원군-명성황후의 대립도 거세고 명성황후 시해라는 극적인 사건도 있는 시대인데요. 드문드문 있긴 하지만, 메이저한 소재는 아닌 듯해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제작 관점에서 짐작해본다면……
- 역사 고증에 가장 민감한 시대이며
- 결론은 비극이 될 것이고
- 제대로 하려면 일본/러시아 외국인 배우를 잘 써야 한다
이런 난점이 있을 듯해요. 그래도 4~5년마다 한 번씩은 꾸준히 쓰이는 소재인데 어떨는지 모르겠네요.
2. 조선 후기 의사물
순조부터 고종 초반까지는 거의 다뤄지는 경우가 없는데요. 몇 안 되는 조선 후기 드라마들은 모두 의사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닥터 진]은 좀 애매하겠지만요. 조선 중기는 너무 많으니까 가끔 택하는 소재인 듯한데, 정치적 상황을 다루자니 관객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라, 전문가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닌가 싶네요.
3. 정조 시대
최근 몇 년 가장 핫한(!) 시대였죠. 시작은 드라마 [이산]이 물꼬를 텄다고 보는데요.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강한 정치적 사건이 있었음에도, 국정은 안정적이었고 실학이나 서양 기술의 도입, 천주교 유입 등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역동적인 시대라 이야기를 풀기 좋은 듯해요. 더구나 최근 흐름인 ‘퓨전 사극’을 표방하기도 좋고 고증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시대고 의상 등 시각적인 부분에서도 제작의 자유가 가장 넓은 듯해요.
드라마 [이산] 이후 정조 후기 쪽으로, 또는 오히려 영조 쪽으로 시대를 넓혀가면서 여러 작품이 나왔는데요. 너무 많이 나와서인지 2013년에는 관련 작품이 없더라고요. 이제 좀 식상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4. 조선 중기의 성문화
스캔들-음란서생-방자전이 하나의 그룹으로 보이더라고요. 완전한 허구 세계로 꾸미긴 했지만 [후궁: 제왕의 첩]도 이 그룹에 넣을 수 있겠고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성인 영화라면 앞으로도 계속 조선 중기거나 허구 세계로 빠질 것 같아요.
5. 장희빈
드라마 [장희빈], [동이], [장옥정, 사랑에 살다]까지 여러 번 다뤄지긴 했는데, 특이하게 영화는 아직 없었고, 최근엔 비교적 얌전한 작품들이 나왔던 것 같아요. 미국 드라마 [롬](ROME)의 느낌으로 정치와 치정이 한데 뒤섞이는 형태로 장희빈을 다룬다거나 하는 식의 영화도 나올 수 있지 않나 싶네요.
6. 병자호란 이후
[추노], [최종병기 활]이 연이어 성공했는데요. 유례없는 패전에 국가는 무력해서 삶이 참 고된 때였죠.
서민 사회를 배경으로 한 다크 히어로가 활약하기 좋은 공간으로 보이고요. [추노]와 [최종병기 활]이 너무 성공한 느낌이 있기도 하지만, 최근 사회 정서가 원할만한 공간이라 질박한 액션 영화 한두 편 정도는 더 예상해보려고요. 어쩌면 다크 히어로물이 [다모], [장길산] 등이 있었던 숙종 때에서 나올지도 모르겠지만요.
7. 광해군
6번의 병자호란 이후와 함께 가장 떠오르고 있는 시대라고 봐요. 다만 [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훌륭한 영화가 나와버리는 바람에 어떤 얘기들을 더 할 수 있을지 쉽진 않겠죠. 결국, 광해군을 재조명하며 올바른 지도자상에 대해 묻는 이야기들이 가장 어울릴 시대일 거예요. [불의 여신 정이]가 시대로는 좀 다뤘지만, 임진왜란을 겪으며 선조와 반목하는 광해군 얘기도 괜찮을 듯하고, 반대로 인조반정을 다루면서 광해군의 추락을 무겁게 그리는 이야기도 보고 싶네요.
8.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패배의 역사라면, 임진왜란은 패배인 동시에 극적인 극복의 역사라고 볼 수도 있겠죠. 제작비 부담이 있겠지만, 조선 시대 배경의 전쟁 영화를 만들기 가장 좋은 시대겠죠. 2004년 [불멸의 이순신] 이후 한동안 비어있는 곳이었는데, 2013년 [구가의 서]에서 시대 배경으로 쓰기도 했죠.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이 다음 작품으로 임진왜란을 고른 것도 참 좋아 보여요.
올해 [명량, 회오리 바다]가 개봉해서 좋은 성과가 나오면, 이순신이 주인공이 아닌 ‘임진왜란 드라마’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9. 연산군의 최후
[왕의 남자]가 성공한 뒤로 드라마들이 좀 나왔는데요. 광해군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 연산군 시대는 연산군의 최후가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피비린내 나는 광기와 비극이 주가 될 수밖에 없어서 결국 드라마보다는 영화가 어울릴 듯한데, [왕의 남자]가 있기 때문에 아마 당분간은 쉬어가는 소재일 듯합니다.
10. 문종-단종-세조
드라마 [공주의 남자]가 잘 풀어냈고 그 기세를 영화 [관상]이 이어갔죠. 그렇다면 나름 핫한 시대 후보로 꼽을 수도 있겠지만, 잘 모르겠어요. 결국, 이 시대의 핵심 사건은 계유정난(癸酉靖難)일 텐데, 드라마와 영화가 이미 잘 해버렸죠. 여기도 당분간은 쉴 듯해요.
11. 세종
[대왕 세종], [신기전]이 기대만큼은 이루지 못했는데, [뿌리 깊은 나무]로 크게 인기를 끌었죠.
긴 재위 기간, 안정적인 국정, 문화 발전인 시대인데, 드라마로 인지도도 매우 높아졌다면 드라마 [이산] 이후 정조 시대 붐 같은 것을 재현해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문제는 [이산]이 방영됐던 2007년만 해도 사극이라면 고증을 틀리더라도 최소한 역사 안에서 변주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어서 정조 시대가 유행을 탈 수 있었을 텐데요, 2014년 현재는 [해를 품은 달]이나 [후궁: 제왕의 첩]처럼 ‘가상의 조선’을 내세워도 되는 시대란 말이죠. 기본적으로 세종 시대는 좀 밝고 건설적인 느낌이라 현시점에서 잘 쓰일 소재일지 잘 모르겠네요.
12. 조선 건국
건국 얘기는 고증도 민감하고 호흡도 길어야 해서 주로 드라마로 나왔네요. 단, 1996년 [용의 눈물]이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거의 20년 가깝게 이쪽 얘기의 드라마가 나오지 않았었고요. 최근엔 [대풍수]나 [정도전]으로 이때 얘기를 다루고 있네요.
영화로 만들 수 있는 극적인 순간이라면, 역시 정몽주-이방원이 얽히는 정몽주 암살 앞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젊은 감각으로 풀기에는 또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짧은 결론
앞에서 방송/영화 잘 모른다고 했으면서 너무 말을 많이 쓴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그래프 그리는 데에 시간 오래 썼으니, 뭔가 쓸만한 결론이라도 하나 내야할 것 같은데요. 그래서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 정조는 끝물
- 정치물 만든다면 광해군, 액션물 만든다면 병자호란 이후, 이 둘이 새로운 대세
- 트렌디한 가벼운 퓨전 사극이라면 세종 또는 아예 가상의 조선
- 임진왜란은 다크호스
첫댓글 와 재밌다^^ 여기나온 드라마 영화 중 70%는 본 거 같지만 이렇개 줄새워 볼 생각은 못했네요^^ 근데 왕의 여자, 공주의 남자는 뭔가요, 첨 들어보는데..
펀글이라 잘 모르죠~
왕의 여자는 예전에 시방새에서 방영했던, 광해군때 상궁이었던 김개시(김개똥)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드라마구요, 공주의 남자는 개병신에서 방영했던,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아들이 서로 사랑했다더라는,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나, 내용은 개뻥인 드라마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