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맞이
어제가 그제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우리네 평범한 일상에서도,
한 해를 보내고 맞는 이무렵이면
그래도 무언가 특별한 시간으로,
의미있는 시간을 갖어보려고 하기 마련인것 같다.
몇 해 전, 새 천년이 시작된다고,
그해의 해맞이는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모두들 동해로, 동해로 향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동쪽으로만 가면 어떻게 해?
우리 나라 한반도가 동쪽으로 기울어져 버리는게 아닌가 하고...
그래서 나는 그 때,
나라도 이 땅이 기울어, 모두들 동해바다에 빠지는 일을 막기위해서,
서해로 달려갔다...
변산반도로...
나 혼자로는 부족할거 같아...
사랑하는 이와 함께...
다행히...서해에도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어서...
땅은 기울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휴...!!!
그리고 나서는 특별한 해맞이는 잊혀졌고,
그냥 집에서 전혀 특별하지않게 해를 보내고 맞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올해는 그래도 의미있는 해맞이를 해보기로 하고,
올 한해 열심히 산을 찾은 일의 연장선 상에서
산에서 해맞이를 하기로 한 건 어쩜 당연한 결론이었다.
그런데 마침 여기 태화에서
지리산 노고단에로의 해맞이 산행이 준비되어 있어서
얼른 예약을 해 두었다.
2. 겨울 산행
겨울 산은 춥고,
지리산엔 눈도 많이 내려있을 것이고
해맞이를 보기위해 이른 새벽 산을 올라야 할 것이기에
이것 저것 챙겨둘 것이 많다.
기능성 속옷, 방한복에
동계용 양말, 아이젠, 스펫츠,
방한 마스크에 방한 장갑까지
평소 산행 준비 외에 더 추가되어야 할 것들이다.
이렇게 겨울산행을 준비하는 번거러운 일들도,
지리산을 찾은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 즐거운 일이 된다.
노고단에서의 일출,
반야봉을 향한 설원의 산길,
그리고 뱀사골의 눈덮힌 계곡길,
그 안에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일은, 벌써 내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러는 사이 호남지방과 충청지역 일부엔
엄청난 폭설이 내렸고,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산 사진에는
그야말로 눈세상의 산이었다.
지리산도 예외없이 많은 눈이 내린 모양이어서
산행을 하루 앞두고, 산행지가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바뀐 것이다.
노고단이든 천왕봉이든 다 같은 지리산이기에
그리고 천왕봉 일출이 해맞이로는 더욱 어울리는 일이었기에
여전히 가슴뛰는 설레임은 산행 전날 까지도 여전하였다.
3. 제야 그리고 2006년
12월 31일 오후 10시.
이제 두 시간만 지나면 새해가 된다.
꾸려둔 배낭을 다시한번 점검해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시청 후문 버스 정류장 근방엔 여러분의 산님들이 기다리고 계셨고
오늘은 약속된 25분 보다 이르게 태화의 버스가 도착해서 차에 오른다.
버스가 41승이라 좌석이 여유가 있어 좋다.
41명 보다 적은 분들만 신청하라고 바라면 대장님은 섭섭해 하실까?
그런데 오늘은 아마도 몇 자리가 빌듯 하단다.
이런날, 다른 이유들 때문에 해맞이 산행을 할 수 없는 산님들은
얼마나 아쉬워하고 계실까...
송내에서 많은 분들이 차에 오르고,
그동안 낯을 익힌 몇 분의 산님과는 수인사도 하고,
몇 달 전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시에 만났던
동향의 선배님 두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대장님의 간단한 인사 말씀이 있었고
버스는 이내 어둠 속의 고속도로를 달려나가고 있었다.
해가 바뀌는 세월의 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산행에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쯤엔, 집에서 TV 속의 가요대상 혹은 연기대상 같은 프로나
그리고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장면을 보고 있을 터인데,
소등된 버스 안에는 모두들 새벽 산행을 위해 잠을 자고 있고,
앞쪽 천정쪽에 붙은 디지탈 시계의 숫자만이 혼자 빛을 내고 있었다.
11 :59, 그리고 12 :00 그리고 1초의 윤초.
들리진 않았지만 보신각 종이 크게 한번 울었을 것이다.
버스는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부산기점 342 Km, 독립기념관 7Km(?)
표지판 밑을 지나치고 있었다.
서양에서는 이시간이 되면
옆에 있는 누구라도 붙잡고 키스를 나누어도 된다고 하던데...
내 옆에 마나님은 2년(?) 동안의 긴 잠을 계속 자고 있다.
이 긴 잠을 깨워줄 왕자의 키스를 해 줘? 말어?
휴대폰을 꺼내어 대학 기숙사에 있는 아들에게 신년 메세지를 보내고
나도 잠을 청해보지만
눈 앞에 아른거리는 지리산 품속과 천왕봉 산자락에 쉬이 잠이 들지 않는다.
버스는 경부를 벗어나 대전-통영으로 접어들고,
다시 88 남원방향으로 방향을 바꾸어 지리산 IC를 빠져나가더니
그 바로 앞의 쌍용 식당 앞에 멈춘다.
이른 아침을 미리 먹어두기로 하고 예약해 둔곳이다.
***아무래도 2편을 계속해야겠네요...
첫댓글 한반도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 크나큰 일을 하신 다정거사님께, 새해를 맞이하여 축복을 그리고 행운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장문의 글을 작성하시는 구상과 표현력은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글을일다보니저도같은마음으로동요되네요
너무나 아름다운 산행기에 매료되니 천왕봉에서 먹은 녹용주의 향기 만큼 감미롭습니다.하시는 일과 가정에 늘 만복이 깃드시길 빕니다.
계속이어질 어제의 산행 기대 하면서...........
산행기를 읽노라니 지리산으로 마음은 달려갑니다.잘 읽었습니다.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해도 즐거운 산행하세요.
마나님은 잠에서 깨어 나셨나요? 했을까? 안했을까? 잠 잼나게 글 읽었슴다.. 산행에서 뵙겟슴다..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