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푸른바다 입니다.
이번에 소개드릴 여행지는 2박3일 남도 기행으로
전남 구례에서 시작 해남 땅끝마을까지의 볼꺼리,먹꺼리,숙박지를 소개 합니다.
일정:
첫날
22:30 경남 하동 쌍계사 쌍계별장
23:30 쌍계천 달빛 산책
24:00 취침
쌍계별장의 진 면목은 아침에 깨어날때 신선한 느낌입니다.
물론 음주 안 되겠죠.
쌍계별장 예약 시 지켜야할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금주
둘째, 남녀혼숙 금지 [가족은 제외]
셋째, 고성방가 엄금
이틀째
06:00 기상
07:00 섬진강 재첩국 조식
08:00 전남 순천 조계산 송광사 도착
09:00 조계산 종주 산행
12:00 조계산 선암사 도착
12:30 낙안읍성,벌교
13:00 전남 벌교장터 꼬막 정식
-'벌교 꼬막'은 소설 태백산백의 묘사로 유명 합니다.
14:00 전남 보성다원
16:00 율포 해수욕장 [녹차 해수탕]
17:00 보성 뿡뿡이네집[목장 내 별장] 도착
18:00 토종백숙 저녁식사 & 내장탕 음주
24:00 취침
사흘째
08:00 기상, 컵라면 조식
09:00 전남 강진 백련사 동백 오솔길 산책 & 다산초당[정약용 유배지]
11:00 전남 해남 녹우당 [고산 윤선도 고택]
12:00 해남 명동정 [tel:061-536-3276] 게장백반 중식
- 전국에 널리 알려진 남도 음식의 표본
13:00 해남 두륜산 대둔사
14:00 해남 땅끝마을 [토말] 도착
16:00 전남 영암 월출사 도갑사 도착
18:00 나주~광주 도착
20:00 부산 도착
☆ 경남 하동 쌍계사 쌍계별장 전경
쌍계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쌍계별장이다.
쌍계사 경내에 위치한 이 별장은 누구에게나 고향집 같은 포근함을 느끼게 해준다.
쌍계사를 다녀왔으면서도 쌍계별장을 보지 못했다면 그는 보물 한 가지를 놓친 셈이다.
쌍계별장을 한번 찾은 사람은 이 집의 가족처럼 계속 찾아간다.
쌍계별장은 그만큼 아름답고 정갈하고 조용하며,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지리산 최고의 집이다.
쌍계사의 울울창창한 숲속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이 별장은
세 채의 고풍이 넘치는 기와집이 소담한 뜰을 감싸고 있고,
뜨락에는 화초들이 그득하다.
하지만 으리으리한 부잣집 별장이 결코 아니다.
그냥 시골에서 뿌리를 잘 내린 여늬 가정집과 같다.
다만 집안에 먼지 하나 앉을 곳이 없을 만큼 청결하고 조용한 분위기이다.
이 별장을 지키는 주인 내외의 정성이나 인품이 집 전체에 그득하게 배어 있는 것이다.
뜨락 한편에는 유리벽의 작고 이쁜 별당인 차실(茶室)이 먼저 반겨준다.
이 차실에는 화개 명산물인 녹차는 물론이요,
커피와 홍차 등 각종 차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또한 물을 끓이는 커피포트와 차구(茶具) 일체, 그리고 탁자와 의자 등이 비치돼 있다.
이 차실은 주인이 집안에 있든 없든 365일 개방해 놓는다.
쌍계별장에 묵는 손님은 물론,
지나가는 길손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 별당 차실에서 안주인으로부터 직접 차 대접을 받으면 최고의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그이는 녹차의 향기와 같은 말들만 나긋나긋하게 들려준다.
차분하고 조용하게 들려주는 얘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숲속의 동화세계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녹차 한 잔의 대화',
쌍계별장 안주인의 지고지선의 지성(知性)이
세파의 어지럽고 혼탁한 잡념을 떨치게하고 마음을 여미도록 해준다.
"쌍계별장을 찾아온 손님들이 지리산의 품에 안겨 지리산의 정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또 밤이 깊도록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도록 분위기를 심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의 모두이지요."
쌍계별장을 지키는 윤석천씨 내외의 꾸밈없는 얘기다.
이들 부부는 누구든지 '소리없이 왔다가 흔적없이 가는' 것을 바란다.
또한 쌍계별장이 널리 알려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한번 다녀가는 사람에게 아는 사람을 데리고 오지 말라고 부탁한다.
쌍계별장의 수용 능력에 한계가 따르는 때문이다.
쌍계별장의 전신은 유명한 고승인 해성스님이 지키던 도원암이었다.
이 암자를 사들여 별장으로 만든 것은 윤석천씨 어머니인 김씨 할머니이다.
가톨릭 신자인 할머니가 30여년 전 이 암자를 구입하고 별장으로 열게 된 데는 신화적인 사연이 있다.
당시 남편과 사별하고 부산에서 살던 그이는 길을 가다
가게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 추하게 보이는데 충격을 받고 이 때부터 인적이 드문 곳에 살 결심을 했다.
"때마침 집에 일하러 오는 아주머니가 있었어요.
남편이 병들어 생계가 막막하여 고향인 쌍계사를 떠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곧잘 쌍계사를 자랑하면서도 고향이 그리워 눈물을 흘리고는 하더군요."
그 얘기가 계기가 되어 쌍계사를 찾게 됐고, 때마침 암자를 내놓아 사들였다고 한다.
또 하동군수가 군청 손님에게 마땅한 숙소가 없다며
일방적으로 여관허가를 내어 떠맡기는 바람에 '쌍계별장'의 문을 열게 됐다는 것이다.
김씨 할머니가 부산의 집을 떠나 어떻게 적적한 산속에서 홀로 살기를 결심했을까?
김씨 할머니는 당시 자신의 심정을 다음 시조가 그대로 대변해준다고 했다.
"청산이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
창공이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미움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김씨 할머니는 쌍계별장을
'말 없이 티 없이, 미움도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고자 그렇게 가꾸어온 것이다.
현재의 윤석천씨 부부는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쌍계별장의 전통을 어김없이 이어가고 있다.
쌍계사를 찾아 안개 낀 새벽 산사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보고,
돌아오는 길에 쌍계별장의 별당 차실에 들러
이 집 안주인이 끓여주는 차 한잔을 들며 나긋나긋한 그이의 얘기를 듣는다면 심신이 정화될 것이다.
지리산의 아름다움은 숲과 계곡만이 아니라,
산자락의 집 한 채,
그 집을 지키는 이들에게도 넘쳐나고 있다.
☆ 전남 순천 조계산 전경
영화 취화선의 배경이된 조계산은 산세가 부드럽고 아늑하다.
산속의 깊은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며,
만수봉과 모후산이 송광사 일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전국 3대사찰의 하나인 송광사와 고찰인 선암사가 주능선을 중심으로 동서에 자리하고
선암사 계곡을 흐르는 동부계곡은 이사천으로
남부계곡은 보성강으로 흘러들게 된다.
선암사 둘레에는 월출봉, 장군봉, 깃대봉, 일월석 등이 줄지어 솟아있다.
조계산 산행은 송광사나 선암사 어느쪽에서 시작해도
비슷한 시간에에 다양한 코스를 즐길 수 있다.
산세가 험하지 않고 평탄한 길이 많아 연인끼리 또는 가족단위 소풍코스로도 알맞다.
☆ 전남 순천 선암사
선암사
-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解憂所) 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앞 등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 전남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
순천시 낙안면에 소재한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영화 '태백산맥','취화선',아름다운 시절', '춘향뎐'이 촬영된 곳으로
넓은 평야지에 축조된 성곽으로 성내에는
관아와 100여 채의 초가가 돌담과 싸리문에 가려
소담스레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옛 고을의 기능과 전통적인 주거공간에서 생활하는 서민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현재 108세대 300여명이 살고 있음)에도 보고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전통문화로서,
낙안읍성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 전남 보성 대한다원
초록에 물들어‘향기’가 되는 그대
활성산 줄기가 보성만을 향해 뻗어나가다 급작스레 고개를 꺾은 봇재.
깎아지른 비탈에 푸른 융단같은 차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국내 최대의 차(茶) 단지가 있는 전남 보성.
차나무 재배면적만 무려 1백27만평에 달한다.
전국 생산량의 30%. 차를 재배하고 쪄내는 차 생산업체만도 15곳이다.
대한다업은 보성에서도 가장 큰 다원을 갖고 있다.
승용차 1대가 겨우 드나들 만큼 좁은 삼나무 숲길로 1㎞쯤 들어간다.
햇살 한줌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삼나무 터널.
이 길을 빠져나오면 30여만평의 차밭이 펼쳐진다.
잘 다듬어진 정원같은 차밭 가운데로 삼나무 오솔길은 이어진다.
이제 새순을 내기 시작한 세 가닥의 연초록 이파리.
밭고랑 사이에는 들꽃이 가득 피어 있다.
햇차 향기에 취하고, 그림같은 풍광에 발목이 잡힌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햇차를 맛보기 위해 전국의 다인들이 몰려옵니다.
직접 차를 덖기 위해 찾는 스님들도 꽤 됩니다”
주용로 공장장(41)은 “올해 TV에 차밭이 나오면서 관광객들도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수녀가 비구니를 자전거에 태우고 가는 휴대폰 CF를 이곳에서 찍었다.
MBC 드라마 ‘온달왕자’, 영화 ‘선물’에도 보성차밭이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연인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
언제가 보성다원에서 만났던 여연 스님은 “차잎이 고운 데다, 차를 쉽게 만들 수 있고,
차맛이 좋아서 일본사람들이 세번이나 놀라는 게 보성차”라고 말했다.
보성은 서편제의 고장이기도 하다.
조선 말기 애꾸눈 명창 박유전이 담장 너머로 익힌 가락에
삭힐 대로 삭힌 한을 붙여 만든 창법이 서편제.
대원군으로부터 총애를 받은 박유전의 창법은 이날치와 정재근으로 이어졌다.
정재근의 조카인 보성 출신의 정응민은
서편제와 동편제를 모두 섭렵해 그만의 독특한 보성소리를 만들었다.
봇재 너머 회천면 영천리 도강마을에는 명창 정응민의 유적지가 있다.
조상현과 조통달도 이곳에서 소리를 배웠다.
그래서일까. 차잎을 따내며 흥얼대는 아낙네들의 노랫가락이 구성지다.
다원에 앉아 샘물로 달여낸 햇차 한잔을 마신다.
삼나무 숲과 어우러지는 그윽한 차향기.
잠시나마 복잡한 세상시름이 찻물에 녹아내린다.
☆ 전남 보성 뿡뿡이네 집 [tel:061-853-7221]
건평 50평의 목장네 별장으로
이곳에는 맘씨 좋은 주인 내외분과 두 딸이 살고 있다.
경치와 시설 모두 좋으며 말만 잘하면,
안 주인의 직접 장만 한 토종닭 백숙 과 내장탕을 드실 수 있는데
경치 좋고 공기 좋은 이곳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한잔하는 맛도
여행의 즐거움에서 빼 놓을수 없는 것이다.
☆ 전남 강진 백련사 눈 속 동백
강진 백련사를 둘러싸고 있는 6백∼8백년생 동백나무가
3월 초순이면 수줍은 새악시 마냥 빨갛게 꽃망울을 터뜨린다.
이곳 동백숲은 천연기념물 1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홍빛 꽃을 피운 동백이 대웅전 주위를 감싸고 있고,
뒤로는 만덕산이 조용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
수백 년을 지켜온 대웅전 기둥에 기대어 서서 강진만과 구강포를 바라본다.
쪽빛 바닷물결이 반짝이는 모습이며,
강진만 너머로 자리잡은 산들이 그렇게 평온하게 다가올 수가 없다.
빨갛다 못해 선연한 핏자욱 같은 동백꽃은
강렬하면서도 그렇게 처연해 보일 수가 없다.
고된 시집살이에도 말 한마디 못하며 살아야 했던
우리 나라 옛 여인의 '한'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짙푸른 잎에서 풍겨 나오는 강인함 또한 어떠한 어려움도 스스로 감내해 왔던
고전적인 우리 여인들의 모질고 질긴 모습이다.
☆ 전남 강진 다산초당
강진땅의 남도다운 아름다움은 다산 정약용의 자취로하여 그 빛을 더한다.
귤동마을 뒤의 만덕산 기슭에는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이고
다산학의 산실인 다산초당이 있다.
다산(茶山)은 차나무가 많았던 만덕산의 별명으로,
정약용의 호 다산은 여기서 유래한다.
정약용은 장장18년에 걸친 강진 귀양살이 가운데 10년을 다산초당에서 지내며,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자기 생애의 한 겨울 속에서 동백꽃처럼 붉게 학문과 사상을 피워 올렸다.
정약용이 사학(邪學, 천주교)에 물든 죄인이라는 죄명을 덮어쓰고
강진에 귀양 온 것은 순조 1년(1801) 11월이었다.
그해 봄에 조정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신유교옥에 연루되어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가을에 황사영 백서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서울로 불려 가 문초를 받았으나(황사영은 정약용의 조카사위였다)
별다른 혐의가 없었으므로 유배지를 옮겨 강진으로 보내졌던 것이다.
그가 처음 강진에 도착했을 때,
촌사람들은 서울에서 벼슬을 하다가 '대역죄'를 짓고 귀양 온 선비에게 겁을 먹고
앞다투어 달아날 뿐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았다.
강진읍 동문밖에 있던 주막집 노파의 인정으로 겨우 거처할 방 한 칸을 얻은 정약용은
그 오막살이 주막의 뒷방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지극히 선비다운 당호를 붙이고 만 4년을 지냈다.
사의재란 생각, 용모, 언어, 동작의 네가지를 의로써 규제하여
마땅하게 해야 할 방이라는 뜻이다.
'누구 하나 말 걸어 주는 사람도 없던' 그 시절,
그는 오히려 '나는 겨를을 얻었구나' 하고 스스로 위로하며
상례(喪禮)를 연구하며 침식을 잊었다고 하였다.
1805년 겨울부터는 강진읍 뒤의 보은산에 있는 고성암 보은산방에 머물며 주로 주역을 연구했고
그 다음해 가을부터는 강진 시절 그의 애제자가 된 이청의 집에서 기거했다.
마침내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 귀양살이 8년째 되던 1808년 봄이었다.
다산초당은 본래 귤동마을에 터잡고 살던 해남윤씨 집안의 귤림처사 윤단의 산정이었다.
정약용이 아홉 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난 그의 어머니는 조선시대 3재의 한 분으로 꼽히던 분이다.
귀양살이가 여러해 지나면서 삼엄했던 관의 눈길이 누그러지자
정약용의 주위에는 제자들이 모여들었는데
그 가운데 윤단의 아들인 윤문거 세 형제가 있어서 정약용을 다산초당으로 초빙했던 것이다.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오솔길가에는 대나무와 소나무가 빽빽해서 대낮에도 그늘이 진다.
제법 긴 비탈을 올라 길가에 윤단의 손자 윤종진의 무덤이 있고
그곳을 좀더 지나 동백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가면 다산초당이다.
지금 다산초당에는 터에 비해 너무 크다 싶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각지붕 기와집 '초당'이 있고
그 양옆으로 역시 기와를 이은 동암과 서암 그리고 좀 떨어진 동쪽 산마루에 천일각이 있다.
지금집들은 다시 복원한 것이다.
1957년에 다산 유적보존회가 '초당'을 복원했고
1974년에 동암과 서암이 복원되었으며 새로 천일각이 지어졌다.
초당에 걸린 '다산초당'현판과 동암에 걸린 '보정산방'현판은
김정희의 글씨를 새긴 것이다.
한편 동암에는 다산의 글씨를 집자한 '다산동암'이라는 현판도 걸려 있다.
오늘날 다산초당에서 정약용의 손이 닿았던 흔적으로는
초당 옆의 연못과 앞마당의 바위 그리고 집뒤의 샘과 그 뒤편 바위에 새겨진
'정석'두글자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또한 그는 네모진 연못을 파고 그 안에 자연석을 쌓아 둥근 섬을 만들었으며
홈통으로 물을 끌어와 작은 폭포를 만들기도 했다.
이제 정약용은 다산초당에서 실학과 애민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그 열매로 '목민심서''흠흠신서''경세유표'를 비롯한
500여권에 이르는 그의 저서와 사상을 민족의 유산으로 가지게 되었다.
다산초당은 사적 제 107호로 지정되어 있다.
초당 옆 언덕에 오르면 강진만이 한 눈에 들어온다.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위에 섬들이 떠 있고
건너편으로 호남정맥의 산줄기가 아련하게 들어온다.
안개가 살짝 끼면 환상적인 풍광이다.
☆ 전남 해남 녹우당
녹우당은 해남 윤씨 종가를 부르는 말인데
전라남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큰 양반집이라고 한다.
집 뒤 산자락의 우거진 비자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 하며 푸른비가 내리는 듯 하였다고 하여
녹우당(綠雨堂)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녹우당은 종택의 사랑채 외에도 유물전시관이 따로 있어서 해남 윤씨의 가보들을 볼 수가 있다.
해남 윤씨는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윤선도 외에
섬세한 필치의 자화상으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가
그의 증손이 되는 등 남도의 명가이다.
공재 윤두서는 당대의 최고 화가로서 겸재 정선, 현재 심사성과 함께 조선의 3재로 일컬어진다.
녹우당 바로 앞에 있는 유물 전시관에는
국보 240호인 윤두서 자화상을 비롯한 보물 482호로 지정된 산중신곡, 금쇄동기, 금쇄동집고 등
고산이 직접 쓴 작품들과 은사첩 등이 있고
보물 483호인 해남윤씨 노비문서도 있다.
또한 윤두서의 작품을 모은 `해남 윤씨 가전 고화첩` 은 보물 481호로 지정되었다.
특히 함께 보물 481호로 지정된 동국여지지도가 눈길을 끌었는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151년이나 앞선 조선 후기(1710년)의 윤두서가 직접 그린 한반도 지도이다.
그 밖에 녹우당과 유물기념관 사이에는
수령 500년된 은행나무가 한그루 서 있는데
윤선도가 수원에서 고향인 해남으로 내려오면서
사랑채 일부를 이축하면서 기념으로 심은 나무라고 한다.
뒷산의 비자나무 숲도 천연기념물 241호로 지정되었다
☆ 전남 해남 땅끝마을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위치하는 땅끝마을은
말 그대로 한반도의 땅 끝에 위치한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122m의 사자봉 아래 형성된 마을이며,
사자봉의 전망대에 올라가서 내려다 보면 다도해와,
날이 좋으면 제주도 한라산까지도 보인다.
☆ 전남 영암 월출산 도갑사
도갑사는 산세가 빼어나고 풍광이 아름다워
옛부터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형상이라는 산자락 아래 자리잡고 있다.
신라의 4대 고승 가운데 한 분이신 도선(道詵)국사께서 창건하신 대가람으로
그 뒤를 이은 수미왕사와 연담선사, 허주선사, 초의선사 등
역대 고승대덕들이 주석 하시면서 깨달음의 참다운 이치를 널리 펼치셨다.
해탈문(국보 제50호)과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 문수 보현보살 사자 코끼리상(보물 제1134호),
대형석조, 그리고 도선수미비 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