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피의 고백
내 이름은 해피이다. 회장님이 지어준 이름이다. 나는 슬하에 딸 셋. 아들 둘, 그러니까 오 남매를 두었다.
나는 지금 쇠창살에 갇혀서 어딘가로 팔려가고 있는 중이다. 트럭 위, 내 옆 칸에는 내 세 딸이 마찬가지로 갇혀 있다. 눈빛이 날카롭게 번득이는 저승사자 같은 사람이 내 아이들의 목을 휘감아들어 트럭에 내동댕이치고는 다시 내 목을 짓누르며 질질 끌어 같은 트럭에 싣더니 창살 속에 가두었다. 회장님은 남겨진 두 아들은 책임지고 잘 키워주겠노라며 눈물을 흘렸다. 아무래도 나는 내 길지도 않은 생애를 마감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단념을 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우리를 태운 차는 산 속으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차가 덜컹 덜컹 흔들거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창살 사이로 높은 나무들이 휙휙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나는 즐거웠던 지난날들을 회상해 본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끌려올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한다. 내 잘못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더욱이 회장님 잘못도 아니다. 불가항력이라고 해 두는 것이 좋으리라.
나는 나를 낳아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다.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입양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음식점하는 집에 입양되었는데 옥상의 창고 같은 곳에 팽개치고는 아침저녁으로 밥만 갖다 줄 뿐 평상시에는 코빼기도 안 붙이는 것이었다. 음식점 하는 집이라 나는 기름진 음식은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디 먹는 것만으로 살 수야 있는가?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살아야 하고 정을 나눌 이웃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밤마다 외로워서 울었다. 꺼이꺼이 소리 내서 울기도 하였다. 그러면 옥니박이 식당주인은 동네가 시끄럽다며 빗자루를 들고
와 나를 펑펑 패주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밤이면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저 녀석을 없애버려야 내가 편히 자지.”
그 사람은 뒤따라온 아내에게 투정을 부리고는 나를 발길로 냅다 걷어찼다. 얻어맞은 가슴이 얼마나 아픈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렇게 울고 맞고, 맞고 우는 생활을 한 달이나 했을까, 어느 날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가 올라오더니 나를 안고 일어섰다.
“쯧쯧, 불쌍한 것.”
하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나를 번쩍 들어 차에 태웠다.
내가 두 번째로 입양된 집은 빨간 지붕에 빨간 대문을 한 아담한 집이었다. 앞에 시멘트로 깐 조그만 마당이 있고 마당 앞으로는 자그만 정원을 끼고 감귤과수원이 까만 돌담으로 둘려져 있었다. 이집에 가끔 놀러오는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나중에 동네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어 안 일이지만 회장님은 서울에 살다가 노년에 한적한 시골에서 살고자 여기 제주도에 와 살면서 심심풀이로 감귤농사를 짓는다는 것이다. 오백 평쯤 된다고 한다.
여기서 내가 하는 식사는 그 흔한 돼지고기나 생선대가리 하나 없이, 늘 된장찌개나 김치찌개에 말은 밥이지만 밥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 집에 사는 것이 너무나 행복할 뿐이었다. 감귤나무 사이로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노는 재미는 진력나지도 않았다.
회장님이 산보를 나갈 때는 꼭 나를 뒤따르게 했다. 아침에는 수월이 못까지 다녀오곤 했다. 돌담길을 따라 가면 금귤(낑깡)하우스가 나오고 사래 긴 보리밭을 지나면 수월이 못에 이른다. 넓은 못 저쪽 물가에는 언제나 꺽다리 황새가 물 위에서 한가롭게 노닐었다. 회장님은 매일같이 연못가 팽나무 밑에 앉아서 황새 부부의 다정한 몸짓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몸을 일으키곤 했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반드시 핸드폰을 꺼내들고 서울의 부인한테 전화를 건다.
“잘 잤어? 응응······. 나 건강해. 물론이지.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고 있지. 아냐 나 외롭지 않아. 견딜 만 해.”
늘 이런 식의 내용 없는 대화였다. 그런대도 회장님 음성에는 고독이 묻어있었다.
언제부턴가 회장님은 산보코스를 바꿨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회장님은 팽나무 밑에 늘 하던 대로 앉아 있었는데 하루는 그 동네 이장이 인사를 하더니 수월이못의 내력을 얘기해 준 뒤였다.
옛날 수월이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대정현감의 아들과 사랑을 속삭였다고 한다. 사랑은 깊어만 가고······. 그런데 이를 알게 된 현감이 노발대발하며 아들을 한양으로 올려 보냈고 혼자 남은 수월이는 연일 임을 그리다가 이 못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그래서 수월이 못이란다.
회장님이 새로 개발한 단산은 야트막한 산이지만 산정에 오르면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여서 좋았다. 회장님은 연못의 황새를 바라보는 대신 한라산 자락으로 솟아오르는 태양을 맞이했다.
저녁에는 일주도로 곁으로 난 인도를 걷는데, 차도로 넘어가지 말라고 항상 나를 타일렀다. 내가 생각 없이 차도로 뛰어든 적이 있었는데 회장님이 외마디소리로 나를 불렀기 때문에 나는 놀라서 얼른 인도로 나왔었다.
회장님은 달밤에 이 길을 걷길 좋아했지만 그믐이나 흐린 날에도 어김없이 산보를 했다. 나는 이미 이 길에 익숙해 있어서 회장님을 앞서 달리기도 하고 샛길을 드나들기도 했다.
집 앞 추녀 밑에는 회장님만큼이나 외로운 낡은 나무걸상이 놓여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풍상을 다 맞으며 그 의자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회장님은 산보에서 돌아오면 그 의자에 앉아 있곤 했다. 하염없이 달에 취하기도 하고 총총한 별을 올려다보기도 하였다. 바람 이는 스산한 밤에도 거기에 앉아 고독을 씹고 있었다. 내가 벗해주는데도 말이다.
회장님은 여기 낡은 나무걸상에 앉아서는 여섯 살짜리 손녀와 긴 통화를 하곤 했다. 통화를 끝내면 외로움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더 못 견뎌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의자 옆 땅바닥에 앉아 올려다보는 나를 안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배를 만져 주기도 했다. 배를 살살 만져줄 때면 나는 발랑 누어 낑낑거리며 어리광소리를 냈다.
회장님 부인은 한 달에 한 번쯤 오는데 꽤 품위가 있어 보였다. 그녀는 대학교수라서 여기 내려와 회장님과 같이 살 처지가 못 된다고 한다. 부인이 올 때면 회장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하고, 나나 나무걸상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때는 단지 오랜만에 먹는 푸짐한 식사에만 만족해야 했다.
가끔은 이웃사람들이 찾아오는데 그들은 집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감귤나무 잎이나 가지를 만져 보면서 회장님에게 한참 강의를 하고 돌아들 갔다. 그들이 돌아간 뒤 회장님은 툴툴거리며 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뭐라고 하는 말인지 제주도 말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 제주도에 3년 넘게 살았는데도······ .”
이 집의 단골손님은 앞집에 사는 다섯 살배기 계집애 송은이다. 그 애가 찾아오면 회장님 얼굴에는 마치 시들은 가지가 햇빛을 만난 듯 환하게 생기가 돋는다.
“멍멍이 할아버지!”
그 애는 회장님을 그렇게 부른다. 또 나를 멍멍이라고 부른다. 내가 멍멍 짖는 개라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회장님의 손녀는 아니다. 회장님은 사람이고 나는 갠데 어떻게 할아버지와 손녀의 관계가 성립된단 말인가?
소위 멍멍이 할아버지는 송은이를 위해 나도 안 주는 과자를 집에 사 놓았다가 꺼내주었다. 한 두 개씩 던져주는데도 나는 괜히 송은이가 미웠다. 집에 찾아 와도 소 닭 보듯이 한다. 회장님이 서울에 있는 손녀에 대한 그리움의 보상심리로 송은이를 그렇게 끔찍하게 위해 주는 걸 내가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걔만 나타나면 내가 할아버지 안중에 없는 것이 서운했다. 한번은 걔가 회장님 무릎에 앉아서 내 턱을 만지기에 손을 물어 버렸다. 어린 것인데 내가 이를 꽉 악문 건 아니고 살짝 겁을 주었을 뿐인데 걔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걔네 엄마까지 와서 나를 야단치고 애를 안고 가 버렸다. 회장님은 버르장머리 없는 개새끼라며 나를 구두주걱으로 두어 번 세차게 때렸다. 나는 궁둥이를 들이대고 그 사정없는 매를 맞았다. 조금 화가 났지만 나는 곧 회장님이 부르기에 꼬리를 치면서 다가갔다.
“인간보다 나은 것. 인간은 부모가 때려도 고까운 마음을 갖거늘······.”
회장님은 나를 꼭 안아주며 혼잣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참 회장님 얘기만 하다가 보니 내가 나의 존재를 알게 된 어떤 계기에 대한 얘기를 빼 먹었구나. 개정신이 이렇다니까.
회장님을 따라 수월이 못 쪽으로 아침 산보를 할 때의 일이었다. 길가 금귤하우스 앞에는 내 키의 갑절이나 되는 큰 개가 매어져 있었는데 얼굴이 잘 생기고, 하얀 털은 아침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다. 주인도 안보이고 혼자서 농장을 지키고 있는 그 개는 외로워선지 내가 가까이 가면 컹컹 짖어대며 좋아했다. 나는 그 잘 생긴 개를 너무 좋아해서 회장님을 앞서 뛰어가 놀아주곤 했는데 그 개는 나만 보면 한쪽 다리를 들고 전봇대에 오줌을 갈기곤 하는 것이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서 누는데 말이다. 그때 나는 우리 둘의 큰 차이를 발견했다. 그 놈은 달린 놈, 나는 안 달린 놈이라는 것을.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내가 이 집에 온지도 6개월이 넘었다. 어느 날 아침 깨어보니 내 아랫도리, 말하자면 오줌 누는 곳이 근질근질하더니 끈끈한 액체가 조금씩 자꾸자꾸 흘러나왔다. 나는 어제 무언가 잘못 먹은 것이려니 하고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나절
회장님이 출타를 한 사이 낯익은 개 한 마리가 돌담을 넘어 들어오더니 내게 은근슬쩍 접근하고 있었다. 그 개는 누런 털과 흰 털이 볼 품 없이 섞여 있고 얼굴은 네모져서, 산보할 때 혹 마주쳐도 내가 일부러 외면을 하곤 하던 개였다. 그 놈은 내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내 뒤에 와 킁킁 냄새를 맡아 보더니 느닷없이 내 등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내가 평소 좋아하는 놈은 아니었지만 느낌이 짜릿해서 그놈 하는 대로 순순히 받아 주었다.
그 후 내 배는 불러오고 달포가 지나니까 산보하는 회장님을 따라 가기에도 숨이 찾다.
“너 곧 출산하겠구나.”
회장님은 헌 옷가지를 여러 겹 내 집에 깔아 주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가 내 집안까지 들이치는 여름밤, 나는 밤새 진통을 하고는 새벽에 예쁜 강아지 한 놈을 생산했다. 초산이라 그런지 나는 개답지 않게 딱 한 놈만 낳은 것이다. 회장님은 소고기를 넣어 끓인 미역국을 내 앞에 내놓고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늘그막에 개 산관까지 하는구먼. 무얼 낳았나, 어디 한 번 보자꾸나.”
회장님은 털도 안 난 핏덩어리 어린놈을 들어 배를 살피더니
“안 달린 놈이구나”
하며 껄껄 웃었다.
회장님은 내 첫딸에게 럭키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내 이름 해피는 행복이라는 뜻이고 럭키는 행운이라는 뜻이란다. 나의 어린 럭키는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너무나 귀여웠다. 할아버지를 포함해서 우리 세 식구는 너무 행복했다. 럭키를 안아주는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한동안 할아버지는 내 몫으로는 고기를 푹 고아, 밥을 말아 주었고 럭키한테는 데운 우유를 작은 접시에 담아 주었다.
한가로운 오후 럭키에게 젖을 물리면서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사람은 왜 개에게 충성과 희생을 마다 않는가? 소는 일을 도와주고 다시 고기를 주며 돼지는 고기를 주고 닭은 인간을 위해서 달걀을 주지만 이 보잘 것 없는 개는 주인을 위해 하는 일이 없지 않는가? 사람은 개를 위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집을 지어 주고 음식을 익혀주지 않는가? 또 부드러운 고가의 샴푸를 써서 목욕도 시켜주지 않는가? 엄격히 말해서 누가 상전인가? 개가 사람에 예속된 것인가, 아니면 사람이 개에 예속된 것일까? 그 고마운, 사람이라는 존재가 없으면 과연 개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개가 빈둥거리며 낮잠이나 자고 몽상 같은 꿈이나 꾸는데도 사람은 일체 간섭치 않고 그저 꼬리치며 안기면 좋다고 사족을 못 쓰는데 도대체 인간과 개는 어떤 조건, 어떤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인가? 어떻든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회장님이 고마웠다.
럭키는 무럭무럭 자라, 난 지 넉 달 만에 제 어미인 나만해졌고 여섯 달쯤에는 내 키의 거의 두 배쯤 되었다. 어려서는 귀엽던 것이 자라니까 제 애비를 닮았는지 네모난 얼굴로 변해서 밉상이 되고 말았다. 나는 하얀 바탕에 까만 점이 박힌 털을 하고 있어 귀엽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럭키는 희고 검고 누런색으로 범벅이 되어 있어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 진즉 알아차린 일이지만, 설상가상으로 이놈은 통 버릇이 없었다.
회장님이 음식을 각자의 그릇에 나눠주면 먼저 어미 밥그릇부터 입을 대고 고깃덩어리라도 있으면 얼른 빼먹고 제 그릇으로 가곤 했다. 내가 하도 화가 나서 뼈다귀 한쪽을 물고 안 놔주면 이 버릇없는 것이 으르렁댄다.
우리 개판가족의 무도함을 내려다보던 회장님이 점잖게 꾸짖었다.
“럭키야, 어미한테 그러는 게 아니다.”
더욱 얄미운 것은 회장님이 해피야 하며 나를 불렀는데도 제가 먼저 가서 알랑방귀를 뀌는 것이었다.
내 아랫도리가 또 끈적거렸다. 이번에는 잘 생긴 수놈들이 셋 다녀갔다. 그런데 그 중 한 놈은 어찌나 키가 크던지 내가 그의 꽁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때 회장님이 그 꼴을 보았다. 내가 제 분수도 못 차리는 헤픈 년인 것 같아 창피했다.
“저런, 저런·······”
회장님은 혀를 끌끌 차며 방으로 들어갔다.
먼저보다 더 배가 묵직하다 싶더니 나는 네 아이를 출산했다. 달린 놈 둘, 안 달린 놈 둘. 회장님은 전처럼 미역국을 끓여다 주었다. 이제 우리 개 식구만 여섯이 된 것이다. 회장님은 새 새끼들이 자라는 동안 입양할 집을 찾아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헛수고였다. 그래서 개 여섯을
키우느라 등이 굽을 지경이었다.
새 집 몇 개를 지어주기도 뭘 하니까 아예 감귤창고를 열어놓고 우리를 거기로 몰아넣었다. 또 사료를 몇 부대 사서 쌓아놓고 큰 대야에 가득 쏟아 붓고 공동식사를 하게 했다. 그 네 강아지들에게는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내가 제일 속상한 일은 우리를, 아니 나만이라도 산보에 데려가지 않는 것이었다. 럭키하고만 있었을 때는 우리 둘을 데리고 다녔고, 주인이야 아랑곳없이 우리끼리만 뛰고 장난해도 차도를 범하지 않는 한 괘념치 않고 회장님은 자기 길을 다녔었는데.
지금은 우리 개 가족들이 온통 북데기를 치는 바람에 회장님은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 이제는 예의 나무걸상에도 앉지를 않았다. 외출하고 돌아오거나 과수원 일을 끝내면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처박히는 것이었다. 내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렀다. 글쎄 내가 사위를 볼 모양이다. 수캐 한 놈이 월담하여 럭키 주위를 맴돈다. 그 놈이 우리 럭키 등에 올라타고 허리를 굼실거리는 꼴을 회장님이 보았다. 나는 회장님이 그토록 무섭게 화내는 것을 그때 처음 보았다. 회장님은 벼락같은 소리를 내더니 그 두 년놈을 대빗자루로 수없이 내려쳤다. 수캐는 혼비백산하여 달아났고 럭키는 돌담 밑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내 때와는 너무 다른 회장님의 태도에 나도 어리둥절하여 저만치 감귤나무 밑에 숨어 버렸다.
그때부터 회장님은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꼬리치며 다가서는 어린 것들마저도 발로 휘저어 쫓아 버리고 현관으로 들어서면서 바지를 툭툭 털기까지 하였다.
“어이구 내 팔자야. 허기야 자업자득이지. 이만큼 살고도 이런 결과를 예측 못 하다니.”
회장님은 고독 말고도 또 하나의 걱정거리를 달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어느 새 도둑연애를 했는지 럭키의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감귤이 노오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일당벌이로 감귤을 따는 댓 명의 할머니들이 열려진 대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에구머니나.”
할머니들은 반가워 달려드는 개들을 보고는 적이 놀란 모양이다. 새참시간에 할머니들은 회장님을 붙잡고 늘어졌다. 팔아버리라는 것이었다.
“저 덕수리 산속에 개를 키우는 사람이 있는데 아마 수십 마리는 되는 것 같습디다. 그 집도 수놈이라면 모르지만 암놈의 경우 계속 생산을 해대니 살려둘 수밖에요. 너무 애틋한 마음 갖지 말고, 암놈들만 그리로 보내시구려. 수놈 두 마리는 그냥 키우시구요.”
그들 중 가장 나많은 할머니가 제안을 했다. 그러나 회장님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렇다 해도 저것들이 내 피붙이 같고, 지나 내나 서로 정 붙이고 살아 왔는데·······.”
“아예 개 농장을 하시구려. 꾸역꾸역 삐져나올 때마다 다 산관하시고········.”
오늘 새벽 회장님, 아니 우리 할아버지는 장에 가서 돼지 족발을 한 소쿠리 사 왔다. 그리고는 생전 쓰지 않던 큰 냄비를 꺼내 몽땅 털어 넣고 약한 불을 지피더니 나만 데리고 단산엘 올라갔다. 바위에 앉아 할아버지는 떠오르는 태양에 눈을 부비며 묵묵히 앉아 있었다. 두 눈에는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등을 핥다가 할아버지 무릎에 앞발을 짚고 그 눈물을 핥고 있었다. 하도 심란하여 어슬렁어슬렁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며 올려다보니 할아버지의 어깨는 축 쳐져 있고 훨씬 늙어 보였다.
할아버지는 족발 한 소쿠리를 마당에 휙 뿌려놓고는 나무걸상에 앉아, 뜯고 있는 우리 개식구들을 착잡한 마음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다섯 마리의 내 새끼들은 걸신들린 듯이 덤벼들어 족발을 뜯고 있었다.
나는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면서도 그 맛있는 족발을 한적한 돌담 밑으로 물고 가 뜯었다. 그러나 내 두 눈은 저 낡은 나무걸상과 그 위에 돌부처같이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응시하고 있었다.
첫댓글 바쁜 와중에 얼른 들어와신디...좀 한가할때 시간내어 읽겠습니다..^^설피 읽었는데 잼 날거 같아요~ ^^
가슴 아프네여. 피붙이처럼 키운 놈들을 떼내기가 쉽지 않았던 저와 제 개들과의 관계도 생각나구요. 저도 실내에서 4마리까지도 키워본 경험이 있어서. 20여년 애견경력을 갖다보니 결국은 45일되면 과감히 분양하는 결정을...지금은 노년을 맞이한 두 녀석과 살고 있어서 팔려가는 녀석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내용에서처럼 그 녀석들도 다 아는데...
잘 읽었습니다. 약간 ㅋ믹하기도 하고
아침에 일어 나니 우리 통이가 없어 졌어요 권셈! 우리 통이는 바람이 나서 짐을 나갔을까요? 아님 어떤 손님?이 .한달이 지나 곧 죽음을 눈앞에 둔 유기견 푸들 한마리를 입양하며 "야 이놈아 너는 운수대통한 놈이야"대통이! 대통이! 하다 통이가 편해 진 놈! 누가 우리 통이 못 보셨남유? 말 좀 해 봐유~v~
네 선생님, 잘 읽었어요. 소설비평은 문외한 이라서 ~~.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말만 떠오릅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이런 따스한 감정과 관심이 나오지 않는걸까라는 생각 등 ... 아무튼 이런 글은 언제든지 올려주셔요. 읽기는 잘 읽을 수 있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