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창립한 전국검정고시총동문회(전검동, NPAA)는 초대 회장 박영립 변호사, 2대 회장 김형석 건축가, 3대 회장 이호림 도서출판 인간과자연사 대표, 4대 회장 이상희 의원에 이어 5대 회장인 강운태 전 농림부 장관이 이끌고 있다. ▼ 어떤 사연으로 검정고시를 보게 됐습니까. “전남 함평 학다리고등학교를 1학년 다니다 중퇴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데다 위로 형 둘이 대학생이어서 저까지 대학을 갈 여유가 없었어요. 그러다 독학으로 공부해 검정고시에 합격,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 검정고시동문회를 이끌게 된 계기는. “대학시절 이후 내내 고교동문이 없다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공무원이 되어서도 누가 고교동창회에 간다고 하면 소외감이 들었어요. 그런데 1996년 제가 농림수산부 장관이 되자 언론에 ‘검정고시 출신 장관’이라고 기사가 났어요. 그걸 보고 전검동에서 축하 화환을 보내온 겁니다. 당장 연락을 해서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꼭 잃어버린 고향을 찾은 느낌이었어요. 저도 조직에 뭔가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회장 제안을 받고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 학창시절의 공감대가 없어 회원들 간에 정이 두텁지 않을 것 같은데요. “검정고시 출신은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습니다. 우리끼리는 그런 아픔을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아도 공감하고 동질감을 갖게 돼요. 동문들을 만나면 가슴 한구석 빈 듯한 허전함이 채워져요. 그러다보면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살려는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죠.” ▼ 검정고시 출신의 장점이라면. “우리 사회에는 학연, 특히 고교 인맥이 큰 힘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검정고시 출신은 학연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요. 또한 청소년기에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의 목표를 성취한 사람들이라 목표의식이 뚜렷하고 인내와 끈기가 있어요. 우리는 어려움을 겪어봤기 때문에 나눔의 중요성을 압니다. 그래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장학사업도 하고 있어요.” ▼ 2007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는데. “검정고시총동문회의 모토가 ‘통합’ ‘창조’ ‘봉사’입니다. 제가 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는 것도 이런 검정고시 정신으로 나라를 이끌려는 생각에서입니다.”
2000년 당시 12세에 검정고시에 응시, 최연소로 합격했던 송지용(18)군은 이듬해 포항공대 생명과학부에 입학했다. 지난해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자인 최승호(22)씨도 중학교 2학년 때 자퇴해 중·고 과정을 검정고시로 통과하고 연세대 법대에 입학했다. 천재소년 송유근(10)군도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인하대에서 특별교육을 받고 있다.
하지만 검정고시 출신 중 상당수는 검정고시를 통한 조기 대학 입학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정근모 총장은 “학창시절의 추억이 없다는 아쉬움이 큰 것은 물론이고, 또래 친구들을 깊게 사귀지 못해 힘들 때도 많다. 또한 학문의 수준이 갑자기 높아지면서 자칫 자신감을 잃어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공부는 빨리 하는 것보다 완벽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중학교 입학이 늦어지자 검정고시를 선택해 또래들보다 1년6개월 빨리 고교 과정을 끝낸 이석연(53) 변호사도 “고교 과정을 생략하는 게 꼭 좋은 것은 아니다”고 했다.
“저는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려는 모험심 때문에 선택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시간을 단축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고교 시절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커요. 짧은 시간에 목표를 달성한 데서 오는 자만심에 빠지기도 쉽고요.”
‘전검동’의 힘
저마다 사연은 달라도 이들은 모두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동질감을 갖고 있다. 그런 동질감으로 뭉친 게 전국검정고시총동문회(전검동)다. 전검동은 1973년 만들어진 전국대학검정고시연합동문회(전검련)가 모태가 됐다. 그 1년 전인 1972년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류장수씨와 심창섭씨가 주축이 되어 서울대 검정고시동문회를 만들었다. 대학에 들어오긴 했지만 불러주는 고교동문회가 없어 외로움을 느끼던 두 사람은 ‘검정고시 출신들끼리 모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즉각 행동에 옮겼고 심창섭씨가 초대회장으로 추대됐다.
이듬해인 1973년에는 전국의 검정고시 출신 대학생들이 모여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에도 류장수씨가 앞장서서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을 돌아다니며 ‘검정고시 출신들 모이자’는 방을 붙였다. 의외로 많은 학생이 연락을 해왔다. 그렇게 해서 1973년 100명이 넘는 대학생이 모여 전검련이 만들어졌고, 류장수씨가 초대 회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