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관용에 대한 네 생각이 어떠한지를 말해 줄 수 있겠느냐?"
"....."
"사람이 어떻게 하면 관용을 베풀 수 있을까?"
"....."
"....."
묵묵부답, 한참 졸다가 깨어나 다시 물어보았지만 역시 아무 말 없다. 그렇다면 그만두지! 대화를 포기하고 예산 역이 가깝다는 방송에 일어날 채비를 하는데...
"나처럼 하면 되겠지."
".....?"
"나는 아무에게도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
"다만, 나를 통해 자네가 사물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할 따름이지. 하기는 그것도 내가 따로 "하는 일"은 아니다."
"그것이 너의 관용인가?"
"자네가 나를 통해서 사물을 받아들이는 만큼의 관용이겠지."
"그렇다면 그것은 네가 베푸는 관용은 아니잖는가?"
"맞는 말이다."
"나는 관용에 대한 너의 생각을 물었다."
"방금 대답하지 않았나?"
".....?"
"자네가 스스로 무엇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려고 노력을 하면, 그만큼 자네는 관용을 베풀 수 없다. 자네에게 무엇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나"가 있는 한, 바로 그 "나ego"가 문턱이 되어 관용의 폭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관용은 백에서 아흔아홉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열에서 열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아득한 창공을 보아라. 세상에 저보다 큰 관용이 어디 있겠는가? 창공은 공空이기 때문에, 무엇을 향해 관용을 베풀려는 내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더없이 큰 관용을 영원히 베풀고 있는 것이다. 안경이 하늘처럼 투명하지 않다면 그래서 본연의 맑고 깨끗함을 잃는다면, 그러면 그것은 더이상 안경이 아니고 따라서 관용하고 그만큼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관용이란 내가 베푸는 무엇이 아니라, "나"를 맑게 비우는 것이다! 이게 관용에 대한 나, 안경의 생각이다."
기차에서 내리기 직전, 나는 서둘러 안경알을 닦았다. 안경이 스스로 안경을 닦지 못한다는 사실이 따스한 위안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物과 나눈 이야기(이레출판사)중에서
폐교 마당 한쪽에 쇠사슬 그넷줄이 늘어져 있는데 줄 하나가 끊어져 외줄이다. 한참 바라보다가 말을 걸어본다.
"한쪽 줄이 끊어지니 다른 한 줄도 소용없게 되었구나?"
"....."
"부분의 단절은, 그것을 부분으로 하여 이루어진 전체의 단절이다. 어떠한가? 근사한 명제 아닌가?"
"네 생각일 뿐이다."
"아무튼 외줄 그네는 소용이 없잖은가?"
"역시 네 생각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디, 네 생각을 들어보자."
"한 쪽 줄이 끊어지니 다른 한 줄도 소용없게 되었다는 네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
"보아라. 지금도 이렇게 쓰이고 있지 않는가?"
"무슨 말인지? 너는 아까 내가 처음 보았을 때와 조금도 달라진 바 없이 그대로다. 누가 너를 지금 쓰고 있다는 말인가?"
"자네가 시방 나를 대화 상대로 삼고 있지 않는가?"
"아하!"
"인간의 대화 상대가 된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넷줄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네를 타는 데 쓰여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옳은 말이다. 한쪽 줄이 끊어지니 다른 한 줄도 소용없게 되었다는 말을 거두어들인다."
"좋으실 대로!"
"내 좁은 시야를 부끄럽게 여긴다."
"그렇다면 너는 좀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무슨 말인지?"
"너는 네 시야가 좁은 줄을 어떻게 알았는가?"
"내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어서 알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오히려 반가운 일 아닌가? 도대체 부끄러울 까닭이 무엇인가?"
"....."
"너는 스스로 꽤 넓은 시야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음이 드러나자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다. 아닌가?"
"그런 것 같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를 과대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당해도 그때문에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밑바닥에 있는 사람은 굴러 떨어질 곳이 없다."
"....."
"이왕 말이 나왔으니 하나만 더 말하겠다. 나는 부분의 단절이라는 네 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어째서?"
"나는 본디부터 두 줄로 이루어진 몸이었다.그러므로 끊어진 것은 나의 한 줄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부분의 단절과 전체의 단절을 구분한 것은 네생각일뿐이요 끊어졌다면 처음부터 전체가 끊어진 것이다. 사실은 이 말도 잘못되었다. 전체란 말 속에 이미 부분이라는 말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전체도 아니고 부분도 아니다. 다만 녹슬어 끊어진 모양을 하고 있는 그넷줄일 뿐이다. 아니다. 나는 그넷줄도 아니다. 쇳덩어리다.
아니다. 나는 쇳덩어리도 아니다. 나는 그 무엇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다. 끊어질 것도 없고 끊어질 수도 없는 것이 나다. 말을 더해야 할까?"
"그래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知者不言'고 했지."
".....?"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 아닌가?"
"말이다."
"그만두자. 더이상 말하기가 두렵구나."
"그렇다면 너는 좀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
"그러니 친구여!안심해라! 이 세상에는 네가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세계가 건재하니 너 또한 건재한 것이다. 그냥 있어라. 어떻게 쓰임을 받을 것인가에 대하여 안달하지 말아라. 보아라, 너는 지금도 이렇게 쓰여지고 있지 않은가? 너와 나를 통하여 시방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가 누군지,그것을 생각해 보아라."
여기까지 말했을 때, 요즘 보기 힘든 먹잠자리가 한 마리 날아오더니 늘어진 그넷줄에 가벼이 앉는 것이었다.
*物과 나눈 이야기(이레 출판사)중에서
원주의 구곡 성당에서 두 번째 강론하는 날이었다. 원주역에 내리는데, 이 건물 어딘가에서 오 아무개 군이 술에 취해 목덜미를 칼로 찔려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생각나 잠시 발검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그는 그의 소풍을 나름대로 잘 끝낸 것이다.]
작년 봄, 술도 끊고 예배당에도 잘 다닌다면서 밝은 모습으로 한산촌을 찾아왔던그가 기억에 새롭다. 도대체 어느 것이 그의 참모습이었던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었다. 우리의 참모습은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눈동자는 눈동자를 보지 못하는 법.
원주행 기차에서 김밥을 먹고 나무젓가락을 습관처럼 부러뜨리려 하는데 젓가락이 말하기를, "왜 나를 부러뜨리는 거요?"
그래서 멈칫, 동작을 멈추고 몇 마디 얘기가 오갔다.
"미안하다. 습관이 그렇게 되었다."
"당신이 나를 부러뜨리든 말든,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입니다만."
"어째서 그런가?"
"나는 부러지는 물건이 아니거든요."
"나무젓가락이 부러지지 않는다고?"
"나는 나무젓가락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나는 나무요. 당신이 '나무'를 부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건 불가능이지."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나는 나무도 아닙니다."
".....?"
"구태여 말한다면 나는 흙이요."
"네가 흙이라고?"
"당신은 저 숲의 모든 나무와 풀이 흙의 다른 모습임을 모릅니까?"
"....."
"그러니, 나는 또 하늘입니다."
"....."
"따라서 당신과 나는 본질상 하나인 것이요."
"동의한다. 이왕 입을 열었으니 도움이 될 만한 말 한마디 들려다오."
"당신은 누구를 만나든 그에게서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얻어야 직성이 풀리나요?"
"....."
"그리고, 왜 아까부터 반말입니까?"
"....."
"내가 당신을 만나서 잠시 젓가락 구실 즐겼듯이, 당신도 좋은 주인 만나서 잠시 사람 구실 즐기시오."
"고맙네. 잘 가시게."
"가긴 어디로 가란 말인가? 나는 늘 여기 있다네."
*物과 나눈 이야기(이레 출판사)중에서
간밤에 비바람이 거칠더니, 새벽 산책길에 떨어져 있는 것들이 꽤 많다. 그 가운데, 이파리를 날개처럼 거느리고 떨어져 내린 아기 도토리 한 알이 눈에 띈다.
열매란 다 익을 때까지 가지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중간에 떨어져 버렸으니 딱한 일이다. 슬프다. 인생 또한 이와 같은 것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며칠 전 자원봉사로 갔다가 물에 빠진 아이를 건져 올리고 자신은 급류에 휩쓸려 끝내 숨지고 만 대학생 김 아무개 군이 생각난다. 기적같이 건져 올린 시신을 모신 영안실에 갔을 때, 독일 병정처럼 씩씩해 보이는 모습의 사진이 가슴을 너무도 아프게 했지.
도토리야, 이제 막 생겨나 모양새를 제법 갖추었는데 갑자기 돌풍에 꺾여 버린 아기 도토리야. 너의 슬픈 운명에 대하여 무슨 할말이 있거든 해보려무나.
"슬픈 운명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나는 조금도 슬프지 않으니까요."
"갈 데까지 못 가고 중도에 꺾여 버린 네 신세가 슬프지 않단 말이냐?"
"갈 데까지라니요? 거기가 어딘데요?"
"네가 잘 익어서 저절로 땅에 떨어져 내년 봄에 싹으로 돋고....."
"그러고? 거기가 끝인가요?"
"....."
"끝은 본디 없는 겁니다. 따라서 '갈 데까지'라는 것도 없는 거지요."
"....."
할말을 잃고 (나는 어째서 늘 이렇게 말문이 막히는가?)멍하니 앉아 있는데, 아기 도토리가 햇볕처럼 밝은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인다.
"그래도 나는 '갈 데까지'갑니다. 그러니 슬플 이유가 없어요."
"어디가 너의 '갈 데까지'냐?"
"당신도 나와 함께 그리로 가고 있으니, 나한테 묻지 마셔요."
그렇다. 땅에 떨어진 아기 도토리는 그것으로 수명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 끝도 시작도 없는 세상에서 무엇이 그 시작과 끝을 지니겠는가? 그러니 미안한 느낌, 슬픈 마음으로 요절한 젊음을 바라볼 일만도 아닌 것이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은 영원히 낳고 낳는다.
모든 원인이 어머니요 결과는 아이들이다.
결과가 태어나면 그것은 다시 원인으로 되고,
그리하여 놀라운 결과들을 낳는다.'
이 원인들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흐르거니와,
그 사슬의 모든 연결고리를 보려면
아주 밝은 눈이 있어야 한다.
- 루미Rumi
*物과 나눈 이야기(이레출판사)중에서
가느다란 나뭇가지 끝에 앉아 쉬고 있는 잠자리를 만났다. 그가 먼저 말을 걸어 온다.
"내가 어디에 앉아 있다고 보느냐?"
"나뭇가지 끝에 앉아 있지 않느냐?"
"옳은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나뭇가지 끝에 앉아 있는 게 아니다."
"그럼 어디에 앉아 있는 거냐?"
"좀더 깊이 보아라."
"알겠다. 너는 지금 나무 위에 앉아 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
"나는 지구 위에 앉아 있다."
"....."
"외계인이 지구를 가리키면서 저기 아름다운 푸른 별이 있다고 할 때 그가 가리키는 푸른 별에는 너와 내가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 포함되어 있다. 네 손이 네 몸이듯 나는 지구라는 이름의 '푸른 별'이다. 그러니 지금 나는 내 위에 앉아 있는 것이다. 보는 눈과 보이는 사물이 하나라는 말은 과연 맞는 말이다."
"....."
"....."
"....."
"친구야, 그러기에 아무것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부디 대평안을 누리거라."
*物과 나눈 이야기(이레출판사)중에서
나는 하느님 손에 잡힌 몽당연필이라고 고백한 마더 테레사를 생각하다가 내 손에 들려 있는 연필에게 말을 건넨다.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하여,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존재한다는 것은 다만 자취를 남기면서 스스로 닳는 것이다. 그러나 자취는 과거 속에 있고, 과거는 이미 없는 것이기에 자취 또한 없는 것이다."
"그것은 네 생각인가?"
"스스로 속이지 말라. 연필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판단하겠는가? 나는 그런 것 모른다."
"그렇다면 방금 한 말은 무엇인가?"
"몰라서 묻는가? 그것은 자네 생각일 뿐이다."
"....."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자네는 생각의 임자를 가려서 그것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
"생각은 생각 자체로서 의미가 있고 또 그 자체로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할말이 없어 물끄러미 내려다보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또렷한 한마디!
"그러니 임자를 잘 만나시게나!"
*物과나눈 이야기(이레출판사)중에서
빨랫줄을 볼 적마다 '버틴다'는 단어가 떠오른다.
하루는, 너를 볼 때마다 '버틴다'는 말이 떠오른다고 말을 걸어보았다.
한동안 잠자코 있던 빨랫줄이 되물어 왔다.
"어째서 나를 볼 적마다 그 말이 생각났을까? 세상에 버티고 있는 것이 나만은 아닌데......"
"자네가 끊어지지 않고 버티고 있어서 빨래가 곱게 마르지 않는가?"
"그건 그래. 그러나 나에게 버티려는 의지가 있어서 끊어지지 않는 것은 아닐세.
아직 끊어지지 않아서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으로 보일 따름이지. 지금이라도 내 위에 수십 톤 무게를 얹어보시게. 그 순간 힘없이 끊어지고 말 것일세. 그러니 내가 이렇게 끊어지지 않고 자네 눈에 버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도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라네."
"....."
"그건 자네도 마찬가질세. 자네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은, 그것은 자네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네. 누구도 살겠다는 의지만으로는 살아 있을 수 없지."
"그래도 자네보다 쉽게 끊어지는 줄이 있지 않은가?"
"그럴 수 있지. 그러나 그 줄도 버틸 만큼 버텼어. 세상 모든 줄이 저마다 버틸 만큼 잘 버티고 있다네. 내가 버틸 만큼 버티듯이 다른 줄 또한 제가 버틸 만큼 버티고 있는 걸세. 어떤 줄이 나보다 먼저 끊어졌다고 해서 그 줄을 약한 줄이라고 말하지 말게. 그 줄도 끊어지기 직전까지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텼다네. 그러니 결코 '약한 줄'이 아니지."
"....."
"세상에는 약한 줄도 없고 따라서 강한 줄도 없어. 그런 것은 자네들 인간의 머릿속에만 있다네."
"....."
"....."
"....."
긴 침묵 끝에, 빨랫줄은 조금 엉뚱한 느낌이 드는 말을 남겼다.
"착하게 보면 착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나쁘게 보면 나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까닭을 짐작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