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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입니다.꽤나 일찍 써서 기분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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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었다.
일어났을 때는 이미 6시 5분 전.
로이…아마 6시쯤에 퇴근하던가.마중이라도 나갈까?
그 때 갑자기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로이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
나를 대한 당신의 모습이 혹시 가면을 쓴 모습이냐고.
내가 그렇게 밉냐고.
-철컥,덜그럭.
[여어,엔쨩-혹시 내뺀 건 아니겠지-?]
[엔쨩은 없고,엔비는 여기 있어.]
밝은 목소리다.기분 좋은 일이 있었나…나도 모르게 농담 같지도 않은 농담을 하고 만다.
[이그,이 녀석-]
[아얏,볼 잡아당기지 마-]
얼어버렸던 감정도 이 앞에서는 녹아 버리고 만다.
이렇게 내 마음을 열게 해 버려서,뜬금없이 나를 버린다거나 하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봐도,내게 이렇게 사근사근하게 대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대체 왜?
역시 가면이야?
[엔쨩,혹시 전에 살던 집 같은 거 있어?]
로이가 난데없이 묻는다.
[어어,있긴 한데 작아서…]
[오늘은,거기 가 보면 안 될까?]
[글쎄,집 자체가 로이 취향에는 안 맞을 텐데…]
어느새 또 걱정해 버린다.
이런 내가 밉다.
[괜찮아,그냥 한 번 놀러가는 건데 뭐.]
혹시 알고 있었던 건가,내가 집 같은 게 있었다는 걸…?
대체 누구와 이야기를 하는 걸까?
로이는,누구에게서 내 정보를 얻고 있는 걸까?
궁금해 하면서,나는 마지못해 하는 척 로이를 프라이드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작은 집으로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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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데,이거.]
[뭐,어쩔 수 없잖아.취향이 이런데.]
로이는 한숨을 내쉬더니 집에 있는 방으로서는 하나뿐인 침실에 들어가 본다.그리고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돌아본다.
이끼색 칙칙하고 얄팍한 이불 한 장과 싸구려 호텔에서 가져온 듯한 뭉쳐버린 솜 베개와 시트 한 장으로 이루어진 나무 더블 침대,다 썩어가는 색의 나무로 만들어진 침대 옆 스탠드를 놓는 작은 서랍,그리고 그 위에 때가 타서 누렇게 되어버린 스탠드와 그 덮개.깨끗한 집이지만,내가 봐도 삭막하다.
로이를 이 곳으로 데려온 걸 새삼 후회하고 있다.그가 날 어떻게 생각할까…이런 걸 생각할 이유도 없는데,괜히 로이에게 띄는 모습은 무조건 잘만 보이고 싶어진다…대체 왜 이러지.스탠드 앞의 촌스러운 금빛으로 도금되어 있던 껍질이 거의 다 벗겨진 탁상시계가 눈에 뜨인다.저걸 확,침대 밑으로 숨겨 버리고 싶다.
창피하다.
시간은 6시 반이었다.한 시간 반쯤 기다리면 로이가 저녁을 먹던 시간인데.로이를 만나기 전에는 아홉 시 반쯤 먹었었나.그가 만들어준 식사는 나름대로 먹을 만은 하지만,그리 맛있지는 않다.그래도…맛있게 먹어주면 생글 웃어줬지…그러고 보니 이젠 러스트가 아니라 로이가 내 일상이 되어버렸다.그래도 웬지 기분은 나쁘지 않아.
그런데,지금 내가 로이에게 묻고 싶은 것은,그 하나의 질문 때문에 이 며칠 동안의 환상을 와장창 깨 버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는,그런 위험한 질문이다.내가 용기를 내서,그런 말을 과감히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정말로 진지하고 어쩌면 슬픈 생각을 하고 있는데,로이가 나를 끌어당긴다.
[어이,이게 인간이 살 집이 아니잖아.자아,빨리 나가자,가게 문 닫기 전에!]
[…응?]
가게?웬 가게?무슨 가게를 말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는 틈에,로이는 이미 나를 끌고 뛰고 있었다.
[아,로이,저기,잠깐…무슨…가,가게…]
[당연히 장식품이라도 사러 가야지,이게 인간이 살 집이냐?]
당신 집도 만만치 않을 정도로 심플하잖아!…
[이거 어때?]
로이가 커다란 갈색 곰인형을 들어보인다.
[아니,살 필요 없다고…이런 거 사 봤자 다 낭비야.그러니까 안 사도 돼.]
[어라,이건 선물이라고.자아,아가씨-이거 계산해 주세요.]
[네에-!]
다짜고짜 사더니 내게 푹 안겨버린다.
[아,그리고,시계.]
시계를 파는 매장으로 또 끌고 들어가더니,귀엽게 생긴 라벤더 색의 동그란 알람 시계를 샀다.
나하고 전혀 분위기가 매치되질 않잖아…생각 좀 하고 살라고.
[…옷하고…]
옷?나는 그냥,다른 사람으로 변하기만 하면 되는데,뭐 하러 옷이 필요하단 말인가.그런 질문에도 아랑곳않고 로이는 내가 마네킹이라도 되는 듯 이런저런 옷을 골라보더니 결국 새카만 긴 팔 셔츠에 연한 올리브 그린 빛을 띤 바지를 고른다.
[자,입어.]
[아니,난 됐…]
[네 녀석이 그런 옷을 입고 있으면 같이 있는 내가 창피하니까,당장에 입어.]
쳇,결국 제 체면 용도잖아.
못 이기는 척 옷을 입었다.로이가 생긋 웃는다.
[역시 예상대로야.우리 엔쨩은 무슨 옷도 잘 어울린다니까.]
…그런데 이 옷을 입고 나니까 어째 내가 여자 같아 보이는 건 그냥 나만의 착각이겠지?
그 후로 로이는 계속 나를 위해 돈을 써 댔다.새 스탠드 전구,새하얀 빛의 식탁보,라이트 블루의 체크무늬 커튼,파스텔 톤의 핑크빛이 도는 내가 봐도 예쁜 스탠드 커버,흰 빛의 레이스가 달린 연노랑 쿠션 세트,기타 등등.
[마지막으로,침대 이불 세트!]
[아니,거기까진 필요 없어,이건…]
[저거 어때,저거.노란색,예쁘지 않아?]
[아니,그건…됐다니까.]
그리고 그 때 이불 매장에 있던 여점원이 생긋 웃으면서 정말 충격적인 한 마디를 했다.
[신혼부부세요?뭘 찾으시는데요?]
신혼부부?!뭐야,그거?신혼부부라니?!
[누가 신ㅎ…]
로이는 싱긋 웃으며 나를 안아주는 척,입을 틀어막으며 물었다.
[그냥 어디 놔도 무난한 파스텔 톤의 이불 세트 없어요?]
아아,미치겠네.
그녀는 날 똑바로 바라보더니 웃음을 잃지 않고 말했다.
[…저거 어떠세요?요즘 새로 나온 디자인인데,저게 이름 있는 데서 만드는 건데요,여기서 아주 싸게 팔고 있어요.4천 센즈 정도에…]
고개를 돌리자 점원이 가리키는 곳에는 연한 분홍빛이 감도는,웬지 포근해 보이는 침대보가 전시되어 있었다.
나라도 갖고 싶을 정도로 예뻤지만,이렇게 로이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이제 그만…
[저걸로 하죠.4천 센즈요?…음,3천 5백 센즈에 하는 거 어때요?]
로이,당신…정체가 뭐야?이런 식으로 값을 깎아달라는 소리가 이렇게 쉽게 나와?
그러나 이런 식의 흥정도,점원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저희가 이거 팔면 남는 게 없어요,남는 게.공장에서 바로 들여와도 하나 팔면 반은 수익이 남아야 되는데 반도 안 남는다니까요.그래도 인심 써서 3천 8백까지는 해 드릴게요.]
[다른 데 가서 사도 된다니까요,그러니까 3천 5백.]
[여기 말고 침대 이불 파는 데 안 가보셔서 그래요.여기가 제일 싸요,여기가.]
[3천 5백이요.이 이상 올릴 생각은 없습니다.]
로이는 뇌살적인 미소를 흘리며 말했고,결국 그 미소에 넘어간 점원은 로이가 원하는 가격으로 물건을 팔 수밖에 없었다.웬지 조금,질투심 같은 게 든다.
[자아,이제 웬만큼 다 샀으니까 늦었지만 밥 먹고 들어가자.]
[아니,민폐…]
[됐어.자아,뭐 먹고 싶어,말해.]
[…아니,이렇게 해 놓고 뭘 사달라는 소리가 나올 리가 없잖아,당연하지만…]
[파스타 같은 거 먹을래?]
…도무지 지금, 감자 치즈 그라탕이 먹고 싶다는 소리는 못 하겠다.
[아니면 내가 아는 집에서,그라탕 잘 하는 집이 있는데 거기 갈래?]
…저 아저씨,내 생각을 읽고 있는 거야,뭐야?
[말 안 해?그럼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거기로 간다.]
[…아니,됐다니까.]
[집에 가서 먹어도 밥값은 마찬가지로 나오잖아.자,가자.]
짐을 들고,나를 끌고,로이는 식당 문을 연다.
[어서 오세요-]
경쾌한 인사가 울려 퍼진다.로이를 따라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어둑어둑해지는 거리에 가로등이 켜지고 있었다.
[주문하시겠어요?]
[엔비,뭐 먹을래?]
난감하다.딱 잘라 뭐가 먹고 싶다고도 할 수 없고.
[신경쓰지 말고 골라.]
[음-그러면,나는…감자 치즈 그라탕.]
[좀 더 비싼 걸로 고르지.]
[아니,됐어.]
[그럼 이쪽은 해물 양념 파스타에 치킨 샐러드.]
[음료는요?]
또 날 바라본다.아니,난 됐다니까.
[아이스 커피 하나에 콜라 하나요.]
[네에,감자 치즈 그라탕 하나에,해물 양념 파스타 하나에,치킨 샐러드 하나,아이스 커피 하나에 콜라 하나,맞습니까?]
[네.]
점원이 가 버렸다.마주앉아 있던 로이가 내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좋지?]
[…뭐가.]
어쩔 수 없이 목소리는 퉁명스러워진다.미안한 마음을 숨기려는 것이다.
[밤에,순간이지만,데이트 하니까 좋지?]
[이렇게 쓸데없이 돈만 펑펑 쓰는 게 데이트냐.]
흥,코방귀를 뀐다.로이는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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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신 음식,나왔습니다.]
음식을 내려놓고 나서,점원은 의미심장한 말 한 마디를 남기고 뒤로 돌아섰다.
[좋은 시간 되세요-.]
…로이가 빤히 바라보는 앞에서,허겁지겁 먹기도 좀 그렇고,그렇다고 안 먹을 수도 없고,뜨거운 걸 시끄럽게 후후 불어가면서 먹기도 그렇고,그렇다고 식을 때 까지 기다리는 건 더 싫고,아무리 실수로 그런다 해도 바닥에 떨어뜨릴 수도 없고,입에 묻힐 수도 없고,배는 고프고.
[안 먹어?]
[아니,먹어야지.]
포크를 든다.
실수하면 안 된다.실수하면 안 된다.완벽한 모습.완벽한 모습.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야 해.
…내가 왜 이러지.평소엔 긴장 같은 거 안 했잖아.
[왜 이렇게 굳어 있어.엔쨩.먹을 때 긴장하면 체한다,알아?]
풋,웃음이 나온다.
[왜,내가 먹여줄까?]
[아니,됐어.]
싸늘하게 대답한다.로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포크로 그라탕을 살짝 떴다.
[아-해,아-.빨리.괜히 고집 부리지 말고.]
입을 벌리자,포크에 담긴 열이 가득한 치즈와 약간의 감자 조각을 후우,불더니 입에 넣어준다.
내가 애냐,라고 묻고 싶지만,이 기분,놓치기 싫다.웬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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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이다.로이와 나는 걷고 있었다.데이트라기 보단 그냥 일방적인 금전 소비에 가까웠지만,그래도 즐거웠다.
잊을 수 없을 거야.
이것도 하나의 추억.
내가 물어봐야만 하는 아픈 것들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다.
이래도 좋을까.
벤치에 앉았다.
[로이.]
침을 꿀꺽 삼킨다.여기서,용기를 내서 말해야 한다.꼭 알고 싶으니까,이것만은 꼭 알고 싶으니까.
[…그 가면,언제 벗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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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길어진데다 후기라는 이름까지 붙은 시벨양의 후기]
엔비 입장에서,엔비랑 완벽하게 싱크로되어서,엔비가 되어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그러다 보니 로이 이 아저씨가 제일 말썽이에요.에드,엔비,라스는 세세한 성격이나 잠버릇 같은 것까지 설정을 잡아 놓아서[자칭 치비월드라고 부르고 있는]괜찮은데,로이는 어른이라서 치비월드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설정을 제대로 안 잡아놨더니 완전히 수수께끼의 남자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참,난감해요.대략 로이가 어디로 튈지는 저도 모르는 형편입니다.제 감에 맡기는 수밖에.
그러고 보니 이 소설은 언제나 대화창으로 끝내버립니다.'미안해,에드'라던지...그치만 제가 생각하기에 '이 밤'에서 최고의 명대사(랄까)는 [가지마,엄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라스랑 에드 소식이 없습니다.죄송해요.다음에는 꼭 넣을게요.
개인적으로 로이X엔비를 참 좋아합니다.어쩐지 두 사람이 함께 있어도 그 사이에 뭔가가 가로막혀 있는 것 같아서,그 분위기가 좋습니다.그래서 언젠가 둘 중 하나가 마음을 열어야겠죠.그런데...특이하게도 엔비가 마음을 열어버리면,그것도 재미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그리고 그렇게 며칠,아니 몇 달 동안 구상을 하다가 첫 스타트를 끊어버린 게 이거죠.요즘 이 소설에 완전히 푹 빠져 있습니다.시험기간인데도 하루라도 [이 밤]을 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글쎄,지금 보니까 참 어색한 점도 몇 가지 보이더군요.안타까워요.
그리고 확실한 건,메인 커플링은 물론 로이X엔비이지만,에드X라스도 절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비중이 콘티에는 들어 있는 겁니다.(그렇다고 집단혼음소설을 쓸 계획은 없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드리자면, '두 커플의 19금 씬'은 '많이 넣을' 계획은 확실히 없습니다.어이없는 반전드라마식 반전도 없을 겁니다.실망하시더라도 함께 해 주세요.
그럼 대략 이 소설과 이렇게 기나긴 후기를 읽어주셔서 짝없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