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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윗분의 글대로 외견상 친일을 한 것 처럼 보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후 맥락을 전혀 고려치 않고 또, 사실여부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겉으로 드러난 몇가지 사례만을 가지고 친일파라고 단정 짓는 것은 매우 경솔하고도 우매한 짓입니다 이런 일은 친일파나 매국노들이나 할 수 있는 추악한 비열행위입니다
인촌 김성수는 겉으로 드러내놓고 독립운동을 한분은 아닙니다. 또 당시에 그렇게 할 수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내놓고 할 수 있을만한 위치도 아니었습니다 일제의 폭압이 미치지 않았던 만주에서야 무장투쟁이 가능했겠지만, 학교선생들마저도 칼을 허리춤에 차게 할 정도로 극단의 압제상황에서 ,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또 당대 제일의 민족사학재단 운영자가 어떻게 내놓고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단지 뒤에서 조용히 도우며, 후학들을 가르키고, 민족의 실력을 양성함으로써 민족적 자주성을 쟁취하고자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는 부자였지만 결코 자유로운 몸이 아니었습니다 일제시대 내내 사찰대상이 되었던 인물이고, 일제가 작성했던 인사기록카드에도 주의를 요하는 유학생 등과 친하게 지내며 연락함. 불온사상을 가질 우려가 있음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런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나, 민족문화추진회에 들어가서 쉽게 검색이 가능합니다)
일본놈들 조차도 경계했던 인물을 친일파라니요? 말이 됩니까? 친일파 같으면 뭐하러 경계하고 사찰합니까? 김성수가 중앙학교를 인수하고자 문교부를 찿아 갔을 때 당시 담당과장이 김성수를 앞에 두고 하는 말이 “니가 김성수냐”했다고 합니다(일본말로 했는데 아이들에게 쓰는 말로 했다고함) 왜 학교를 인수하려 하느냐는 물음에는 우리민족의 교육을 위해서라고 당당히 밝히자 그 과장은 조선민족의 교육은 우리가 하고 있지 않느냐며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만약 이때 김성수가 좌절하고 중앙학교를 인수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오늘의 우리가 가능 했겠습니까? 김성수는 3.1일운동에도 깊숙히 관여했던 인물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국사편찬위원회나, 민족문화추진회에 들어가서 검색창에 대고 “金性洙‘라고 쳐 보싶시오 상당히 방대한 자료가 나옵니다.
부디 자세히 읽어 보시고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덧부쳐 김성수의 부인 이애주는 3.1일 운동으로 옥고를 치룬 분입니다. 이런 분과 결혼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일제때도 우리말을 정식교과로 가르치도록 했습니다.1940년대 그토록 군국주의가 판을 치고 , 태극기가 끝내 내려지고, 우리말을 못 가르치도록 아애 민족 말살정책을 취할때에도 비공식적으로 나마 우리말의, 아니 우리의 명맥을 끝까지 지켜가게 했던 인물입니다
윗글을 쓴 분은 매일신보에 학병을 권유한 글을 썼다는 등, 국민총력 조선동맹인가 하는 친일단체의 이사를 맏았으므로 친일파라는 등 ...하는데,,,,,, 자, 잘 한번 따져 봅시다
어느 시대이든 저명인사에게 직함은 따라가기 마련이고, 그것이 일제가 그 단체의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저명인사의 참여를 유도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직함을 유지했다는 자체가 아니라 얼마만큼 실제로 친일행위를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조선어학회사건을 모르지는 않으시겠지요?
바로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눈물겨운 항일운동입니다. 그런 조선어학회의 앞 간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님께서 친일파라 지목했던 국민총력 조선동맹입니다. 이것은 실질을 보아야 하지 형식만 가지고 민족운동의 실체를 파악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이제까지 김성수가 친일을 했다는 근거는 명확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껏해야 총력동맹 이사직함 가졌다든가, 아니면 매일신보에 “문약의 기질을 버리고 상무의 정신을 찬양하라”라는 논설을 쓴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 논설도 매일신보 기자가 대필했다는 증언이 나오는 등 그 신빙성에도 의문이 많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친일 할 사람 같으면 좀 더 앞장서서 나설 것이지,-만약 그랬다면 당시 김성수란 인물의 비중을 놓고 볼 때, 일제는 왠 종일 이것 가지고 선전 했을 겁니다- 왜 있는지 없는지 그 근거 조차도 빈약한 논설 한 두 점을 가지고 일제에 충성을 맹세했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가 김성수를 민족지도자로 보앗지,친일파로 본사람은 없었습니다.
김구선생이,여운형선생이, 이승만박사가, 아니 북한의 김일성이 김성수를 친일파라 했습니까?
이들이 당대 누구나 보았던 매일신보를 안 보아서 그랬을까요? 좌파들도 김성수를 지주로는 보았어도 친일파로서 보지는 않았습니다. 이들은 김성수의 사람됨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고 김성수가 한 일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당대 사람들은 , 가까이서 지켜 보았던 사람들은 모두 민족지도자로 보았는데, 이제와서 친일파라니요?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입니까?
이제까지의 기존 관념을 무너뜨리려면 그 근거가 확고해야 하는데, 최근 김성수의 친일 행적이라고 하여 마치 무슨 대단한 것 발견한 것 인양 발표한 것을 보면 친일의 근거로 삼기에는 너무 빈약하기 이르데 없습니다.
이들은 억지로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발광하는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오히려 한 두편의 친일논설이 있었다는 외양보다는, 당대에서나 이제까지도 일제에 굴하지 않았던, 의연한 민족지도자로서 이미지가 보다 더 진실에 근접한 판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