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용단(龍團) 봉단(鳳團)이 만들어진 것은 정위(丁謂)가 처음 시작했 으나 채군모(蔡君謨)에 의해서 완성되었고, 향약(香藥)을 넣어 병차(餠茶)를 만 들고 병차(餠茶) 위에 용과 봉황의 무늬를 장식하여 임금께 바칠 것은 금색으로 꾸몄다. 소동파(蘇東坡)의 시(詩)에 "수많은 붉은 금색 병차(餠茶)는 수만금을 허비하였다"고 하였다.
만보전서(萬寶全書)》에 "차는 그 자체에 참된 향과 맛과 빛깔을 지니고 있 는데, 한 번 다른 물질에 물들고 나면 곧 참됨을 잃게 된다"고 하였다.
제 8 송 手栽全嘉
道人雅欲全其嘉하야 曾向蒙頂手栽那라
養得五斤獻君王하니 吉祥 與聖楊花로다
도인이 평소에 차맛을 온전코자
몽산 정상 오르시어 손수 차를 심으셨네
다섯 근을 길러 얻어 군왕에게 올렸나니
길상예와 성양화 그것이었네
註
傅大士 自住蒙頂結庵하고 植茶凡三年에 得絶嘉者를 號聖楊花, 吉祥 라 하고 五斤을 持歸供獻하니라.
부대사(傅大士)는 몽산정(蒙山頂)에 암자를 짓고 살면서 茶를 가꾸어 3년이나 결려 가장 좋은 차를 만들어 성양화(聖楊花), 길상예(吉祥 )라 이름지어 5근을 가지고 들아와 임금께 바쳤다.
제 9 송 雲澗月
雪花雲 爭芳烈하고 雙井日注喧江浙이라
建陽丹山碧水鄕에 品製特尊雲澗月이로다
설화차 운유차 짙은 향기 다투고
쌍정차 일주차는 강절에서 이름 높다
건양 단산 물푸른 고을에서
만들어진 운간차 월감차 질도 좋아라
소동파(蘇東坡)의 시에, "설화(雪花)를 양각(兩脚:註解)으로 어찌 말할 수 있 을까?"라는 싯구가 있고, 황산곡(黃山谷:黃庭堅)의 시에서도 "강남 우리 집에서 는 운유차(雲 茶) 잎을 딴다"라고 하는 싯구가 있다.
소동파가 어느 한 사원(寺院)을 찾으니, 범영(梵英:宋僧) 스님이 사원을 잘 단 장하여 말끔히 하고 향기 어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에 "이 차는 햇차입니까" 하고 묻자 범영이 "차의 성질은 햇차와 묵은차를 섞으면 차의 향기와 맛이 되살 아난다"고 하였다.
초다(草茶)는 양절(兩浙:浙東과 浙西) 지방에서 만들어졌는데, 양절 지방의 차 중에서는 일주차(日注茶)가 으뜸이었다. 그러나 경우(景祐:宋仁宗 연호, 1034∼ 1037)년간 이후로 홍주산(洪州産) 쌍정차(雙井茶), 백아차(白芽茶)가 점차 좋아 졌는데 근세에는 더욱 더 정제(精製)되어 그 품질이 일주차(日注茶)보다 훨씬 뛰 어나 마침내 초다(草茶) 가운데 제일이 되었다.
《돈재한람(遯齋閑覽)》에 "건안차(建安茶)는 천하 제일이다. 손초(孫樵)가 초단부(焦丹部)에게 茶를 보내면서 말하기를 '만감후(晩甘候) 15인을 재각(齋閣) 에 보내노라. 이 무리들은 번개를 타고서 잎을 채취하였고 정성껏 물에 절하고 서 법제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건양(建陽), 단산(丹山) 벽수(碧水)의 월 간차(月澗茶), 운감차(雲龕茶) 품질이 천하게 쓰여서는 안됨을 말한 것이다. 만 감후(晩甘候)는 茶 이름이다.
다산 선생(茶山 先生)의 《걸명소(乞茗疏)》에 "아침 햇살에 일어나니 맑은 하 늘에 구름이 둥실거리고, 낮잠에서 깨어나니 푸른 시냇물에 밝은 달이 어른거리 네"라고 하였다.
제 10 송 味藥兼兩
東國所産元相同하니 色香氣味論一功이라
陸安之味蒙山藥을 古人高判兼兩宗이로다
우리 차는 중국차와 원래 같으니
색깔 향 느낌 맛 한가지라 말해오네
육안차는 맛이요, 몽산차는 약효라하지만
우리 차는 둘 다 겸했다 옛사람 칭송했네
《동다기(東茶記:丁若鏞 著述》에 이르기를 "어떤 이는 우리 나라 茶의 효능이 중국 월주(越州)에서 생산된 茶에 미치지 못한다고 의심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색(色), 향(香), 기(氣), 미(味)에서 모두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다서(茶書)에 육안차(陸安茶)는 맛으로 뛰어나고 몽산차(蒙山茶)는 약효가 높다 하였으나, 우 리 나라 茶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겸하고 있다. 만일 이찬황(李贊皇)이나 육우 (陸羽)가 살아 있다면 반드시 나의 말을 그들도 수긍하리라 믿는다"라고 하였다.
제 11 송 八牲還童
還童振枯神驗速하야
八牲顔如夭桃紅이라
我有乳泉하야 把成秀碧百壽湯하니
何以持歸大覓山前獻海翁가
마른 가지 되살아나듯 동안되는 영험 있어
여든 노인 양빰이 도화처럼 붉어지네
내 사는 곳 유천(乳泉:石間水) 솟아
수벽탕 백수탕 그 물로 끓이었네
목멱산 앞 해옹에게 어이 갖다 드릴거나
이백(李白)이 말하기를, "옥천진공(玉泉眞公)은 나이 여든에 얼굴빛이 복사꽃 오얏꽃처럼 불그스레하였다. 이 차의 맑은 향기가 다른 지방에 비해 특이한 까 닭에 동안(童顔)으로 다시 돌아오고 시든 나뭇잎이 되살아나듯 장수를 누리도록 만든 것이다."고 하였다.
당(唐) 소이(蘇 )의 저서 《16탕품(十六湯品》 제3은 백수탕(百壽湯)이니, 사 람은 백 번의 인내를 겪고 물은 열번 넘게 끓여야 한다. 혹 말더듬이나 반신불 수된 사람까지도 이 차를 마시면 본성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감히 묻거니와 흰 머리가 성성하고 얼굴빛이 창백한 노인이 다시 젊어져서, 활을 들어 화살을 쏘면 적중하고, 젊은이처럼 활보하여 먼길을 갈 수 있는 것일까? 제8은 수벽탕(秀碧 湯)이니, 돌은 천지(天地)의 수기(秀氣)가 엉겨 모여 형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을 쪼아서 그릇을 만들어도 천지의 수기(秀氣)가 담겨 있으니, 그 탕(湯)이 불량함이 있을 수 없다. 얼마 전에 유당어른(酉堂大爺)께서 남쪽으로 두륜산을 지나는 길에 자우산방(紫芋山房:一枝庵)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유천(乳泉) 물을 마시고 "물맛이 소락( 酪)보다도 훨씬 좋구나"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