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와 달라지는 가족제도
황은숙 박사(한국한부모가정연구소)
2008년 1월 1일부터 호주제가 폐지되고 새로운 가족제도가 등장하였다. 이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비견될 정도로 역사에 남을 큰 사건이요, 변화라 하겠다.
그동안 여성은 기존의 부계혈통, 가부장제 등으로 남성에 비해 사회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었다. 어머니는 여아를 출산하면 죄인이 되었고, 여아는 오빠와 남동생에게 부모님의 기대와 관심을 빼앗기었으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문을 계승할 자격도 얻을 수 없었다. 현대사회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더 선호 받고 대접받는 일면에는 부성주의 원칙의 호주제의 영향이 컸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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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는 여성뿐 아니라 한부모가정의 입장에서도 악법과 같은 것이었다. 한부모들은 이혼 후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기에 앞서 부모님의 호적에 빨간 줄을 그었다는 부담으로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자녀와 해외여행 또는 자녀를 유학 보내려면 주소도 모르는 아버지의 호적을 첨부하느라 불편을 겪어야만 했고, 호적에 본인은 자의 생모(生母), 남편의 새 배우자는 자의 모(母)로 기재되는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호주제는 자녀의 정체성에도 혼란을 주었다. 한부모가정의 자녀들 중에는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본적이 없거나 아버지의 자식인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자녀들도 있다. 또한 자녀양육비를 한 푼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전적으로 어머니와 외가에 의해 양육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부 또는 친가와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해온 자녀에게 부의 성과 본을 따르게 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왔다.
한부모가 재혼을 하게 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새 아빠와 자녀들의 성이 달라 재혼 사실이 드러나고, 의료 혜택 등 실질적인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한 지붕 세 가족이었던 셈이다.
이제 호주제의 폐지로 한부모가정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되었다. 달라지는 “가족관계등록제도”에 따라 호적에 빨간 줄을 그어 부모님에게 불효하는 일이 없게 되었고, 한부모가정의 자녀는 어머니의 성과 본을 갖게 되어 자신의 정체감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재혼을 하면 “친양자 입양제도”를 통해 합법적인 부자지간이 될 수 있게 되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달라지는 가족제도에도 문제점은 있다.
첫째, 한부모가정의 경우 자녀가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때 자녀의 의견을 반영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혼가정의 한부모 중에는 전 배우자에 대한 분노와 불신으로 자녀의 성을 자신의 성으로 변경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한부모가 이런 생각을 현실로 옮긴다면 자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녀의 성과 본은 바뀌게 된다. 이 경우 자녀는 더 혹독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15세 이상의 자녀가 성과 본을 변경할 경우는 자녀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물어 그 뜻을 존중해 줄 필요성이 있다 하겠다.
두 번째는 재혼가정에 대한 문제이다. 그동안 재혼가정이 호주제 폐지에 찬성했던 이유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재혼해도 부와 자녀의 성이 달라서 겪었던 문제들이 사라지고 합법적인 부모-자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바램 때문이었다. 그러나 달라진 가족제도는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새로운 가족관계등록제도는 재혼가정의 부와 자녀들을 “친양자 입양제도”를 통해 친생자관계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제도는 친양자제도를 거치지 않으면 재혼가정의 부와 자는 합법적인 부자관계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는 재혼가정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처사라 하겠다.
재혼은 초혼과는 달리 어린 자녀를 둔 경우가 많다. 초혼은 두 성인 남녀의 관계가 중요시 된다면 재혼은 두 성인 남녀는 물론 자녀들까지 포함한 폭넓은 가족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즉, 재혼을 했다는 것은 이미 자신들은 물론 어린 자녀들까지도 서로 한 가족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친양자제도를 통해 친생자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재혼과 더불어 자동적으로 부모-자녀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제도의 보완이 없으면 재혼시 어린 자녀들을 남겨두고 재혼을 하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는 바람직한 재혼가정의 가족관계를 해치는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호주제 폐지로 새로운 가족제도를 시행하다보면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계속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런 시행착오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다. 새로운 제도의 정착을 이유로 돌출된 문제들을 무시하고 인정하려들지 않는다면 가족제도의 발전을 이뤄낼 수 없을 것이다. 한부모가정과 재혼가정의 구성원들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가족제도가 확립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