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논문]
택견의 구성원리
李容福
차례
1. 서론. 1
2. 택견의 개요. 4
1. 택견의 정의. 4
2. 택견의 연원. 4
3. 택견의 어원. 5
4. 결련택견. 6
3. 택견 구성의 요체. 7
1. 택견경기의 규준. 7
2. 품밟기의 합목적성. 8
3. 대접의 규준성. 11
4. 는질거리기의 호혜성.13
4. 결론. 16
택견의 구성원리
1. 서론
택견은 정조년간(1777~1800)에 간행된 재물보(才物譜)에 ‘탁견’으로 나와 있고, 1920년 조선총독부 간행 조선어 사전에는 ‘택견’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출판된 사전류에는 택견이 누락되었거나, 혹은 아무런 해석 없이 ‘태권을 찾아보라’는 지시표시만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태권’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전에 실리기 시작한 신조어(新造語)로써 ‘당수(唐手)’로 풀이되던 낱말이다. 사전은 그 시대의 사회상이나 물화현상을 반영한다. 따라서 택견이라는 전래문화가 몰락하면서 외래문화와 혼동되고, 실체가 왜곡되는 과정을 사전이 단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택견은 1983년 6월 1일 중요 무형문화재 제 76호로 지정되었다. 정부의 이 조치는 택견이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적 소산이며, 역사상‧예술 상의 가치가 크다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서 택견 부활의 전기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택견은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원인이 되어 새로운 문제를 안게 되었다. 택견은 대한 제국시대로 부터 현대를 잇는 연결고리가 송덕기(宋德基, 1893~1987) 한 사람에 의해 유지되어 왔으며, 문화재 지정을 전제로 한 체계화 작업 역시 1970년대에 송덕기로 부터 택견을 전수 받은 신한승(辛漢承, 1928~87)의 개인적 노력에 의해 이루어 졌다. 이 과정에서 택견은 당시의 주변적 환경의 악영향과 개인의 자의적 해석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불가피하게 변형을 자져왔던 것이다.
상황과 목적1)의 변화는 기술태(技術態)를 변모시키고, 시간의 경과와 함께 질적 변화로 이행되게 마련이다. 이와 같은 변화가 주체와 객체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문화 발전 현상이 아니라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인위적 변화이며, 더구나 이것이 문화재라는 지위를 획득함으로써 평가와 검증을 거부하는 속성을 드러내고 있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전세대가 남긴 성과를 맹목적‧고식적으로 계승하려는 전도된 인식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심리가 결합되고, 당국과 관계 전문가의 암묵적 방관2)이 조성한 권위주의의 소산인 것이다.
1). 상황이란 용어는 ‘개인이건 집합체건, 문화적 총체건 이것들에 대한 행위자가 반응하는 객체의 전체적 모습’을 말한다. 상황은 대개 사회체계로써 개념화 되는데, 사회체계의 구성은 사회적 환경에서 기인한다. 여기서는 상황을 외적 환경요인으로 보고, 목적을 내적 환경요인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2). 택견에 관한 질의서(1992. 7.11. 이용복)에 대한 문화재관리국의 회신(1992. 8. 31)에는 “……나. 1982년 관계 전문가의 조사당시 (고)송덕기옹은 자신의 모든 것을 신한승에게 가르쳐 안심한다고 말하였고, 조사내용을 재차 송옹에게 확인하였으므로 보고서 내용은 타당하며……”라고 하였다. 질의서에는 송덕기의 택견과 신한승의 택견이 다르다는 점을 증거를 제시하여 조목조목 따졌으나 당국은 이에 대한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
이 글은 이렇게 편향되고 왜곡된 택견 계승의 경향에 대하여 제동을 걸고, 택견이 전향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택견의 구조를 파악하고 그 구성원리를 규명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구상되었다. 여기서는 지난 10여년(1971~82)에 걸쳐서 재구성된 택견의 형태를 동시대의 상황성이 내재하는 한 유형으로 인식하는 한편으로, 그 이전 형태의 복원과 보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올해로 택견은 무형문화재 지정 10주년을 맞는다. 이 10년의 기간 동안에 택견에 관한 연구는 많은 진전을 보았고, 그 성과도 상당히 축적되었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택견은 무술적‧경기적 제요소의 교호작용(交互作用)에 의해 중층적 구조로 발전되어 왔으며, 경기적 기법이 위주였던 송덕기의 택견이 신한승에 의해 무술적으로 체계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3)
3).신한승에 의해 정리된 택견의 체계, 즉 수련방식이 태권도와 거의 같은 순열로 되어 있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신한승의 생존시에는 그래도 택견의 운동원리만큼은 온존할 수 있었으나 그의 사후에 젊은 후계자들은 근원적 원리에서 일탈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1991년 5월 12일 서울 놀이마당에서의 시연 발표회에서 그러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김용옥도 “원래의 자연발생적 상황속에서 분위기로 익힌 것이 아니라 그 상황성이 사라진 후대에 개인으로부터 개별적으로 전수받은 것이기 때문에 해석의 왜곡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 또 태권도 품세의 영향 즉 태껸의 태권도화라는 악영향을 배제키 힘들다”라고 지적하였다.(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 1990, 통나무, p82 참조)
4). 1985년 6월 30일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개최. 서울, 부산, 충주에 있는 전 택견인이 참가하였다. 5명 1개팀 단체대항 리그 방식을 채택, 전 게임을 신한승의 주심으로 진행하였다. 룰은 신한승의 견해를 필자가 유사 종목의 룰을 준용하여 작성한 것을 적용했다. 80년 만의 택견경기 부활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대회였으나 발굴한 경기규칙과 기술이 구한말까지 전래된 택견과는 상이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을 뿐 경기 복원은 실패로 끝났다. 부산 1위, 충주 2위, 서울 3위의 성적을 내었다. 경기 직후 평가회에서 송덕기는 “품밟기가 이루어지지 않아 옛날 택견과는 생판 다르다”고 지적하였다. 신한승은 두 팔을 크게 휘두르는 활개짓을 반드시 하도록 하는 강제규정을 정하여 활개짓을 해야만 택견다운 모양이 나올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원칙적으로 기술이나 동작은 필요에 따라 경기자 임의로 선택되어져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송덕기는 손을 머리위로 휘두르는 활개짓은 자신이 해본일도, 구경한 일도 없다고 단언하였다. 당시 94세인 고령의 송덕기는 경기 재현의 실패원인을 적시하지 못했고, 참석한 택견 전승자들도 송덕기의 설명을 유도해 낼 수 있는 연구업적을 갖지 못하였다.
5). 이 책은 1985년 미국 유펜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저자 스튜아트 쿨린은 펜실바니아 대학 고고학 및 고생물학 박물관 관장이었고, 전 세계 놀이의 저명한 수집가였다. 이 책에 수록된 내용중 조선에 관한 것은 당시 조선 정부의 워싱턴 주재 대리대사로 있던 박영규가 구두로 제공한 것이다. 조선 단어의 철자와 음역은 1880년 요코하마에서 발행된 한불사전을 따랐다. 이 책의 다른 놀이에 대한 기사의 정확도로 미루어 볼 때 택견에 관한 기록 역시 신빙도가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동양에는 한번도 와 본 일이 없다고 한다.
6). 1991년 11월 24일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개최. 전국 8개 시도의 27개팀(여자 3개팀 포함)이 참가, 새로 작성된 룰을 적용하여 원형 복원에 접근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처음으로 결련 택견의 재현을 시도,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1위 부산전문대, 2위 부산대학교, 3위 인제대학교, 4위 서울시 대표.
택견의 무술화 지향성(志向性)은 무술이 경기화하는 작금의 추세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로 보이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문화재 지정 이후 10여년은 검증의 기간으로서는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문화재 원형으로 보고되어 있는 택견은 송덕기의 택견과는 궤도(軌道)를 달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표면에 나타난 것은 1985년 제1회 전국택견경기회4)에서 였다. 이 경기회는 1910년대까지 서울 일원에서 유행하였던 택견 경기를 복원할 목적으로 열렸으니 신한승이 체계화한 택견 기법이 경기와는 괴리(乖離)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택견원형 연구의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연구 방법은 신한승의 해석이 가해지기 이전의 자료와 송덕기의 실기와 증언을 재해석하고, 여기서 얻은 결과를 「코리언 게임스」5)등과 같은 최근에 발굴된 자료와 비교 검토하였다. 그리고 매년 수차례씩 20여회의 공식‧비공식 경기회를 열어 주로 송덕기로부터 채집한 기본기와 낱기술의 분석을 통하여 얻은 가설을 경기규칙(rule)에 적용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 일련의 지속된 작업 끝에 제 1회 전국 경기회 당시의 경기규정에서 중대한 오류를 적출해낼 수 있었다. 이를 수정 보완하여 새로 작성한 경기규정은 1991년 제 2회 전국결련택견대회6)를 통하여 평가되어졌다.
여기서 얻은 결론은 택견의 구조와 기법의 원리가 경기 규정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화된 무술의 개념으로는 이해되지 않던 송덕기의 기법과 증언 등이 택견 경기의 규준적 틀에 연결되어 있었고, 검증을 거친 대부분의 문헌적 자료가 이를 입증해 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무술 혹은 무도(武道)와는 차별되는 무희(武戱)7)에 대한 개념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작 무희에 대한 가치개념이 인식되고 있었더라면 무술을 지향하는 택견의 지류(支流)가 형성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7). ‘희(戱)’란 실없음, 즐김, 놀이 등을 뜻하여 자칫 도덕성과 진지성의 결여, 비생산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놀이, 또는 놀이를 즐기는 것은 우연적이고 무목적적인 것이 아니다. 놀이는 일의 반대개념이 아니고 오히려 일을 근원적으로 가능케 하는 기능이 있고, 진지성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놀이 자체의 자발성에서 규칙 준수의 합리성을 가지고 가장된 가치를 추가하는 합목적성이 있는 것이다. 무희(武戱)란 힘을 겨루는 놀이 또는 전투적 놀이, 놀이적 투기라는 의미이다. 즉 무예를 행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고, 가장된 가치를 추구하는 훈련의 축적을 통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추사의 ‘유천희해(遊天戱海)’라는 말과 같이 무한히 넓고 깊게 즐거움을 쫒는 것은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수행자의 도락(道樂)인 것이다. 현대 스포츠의 개념과 접근될 수도 있는 무희라는 용어는 한국적 무예개념을 적절히 표현하는 단어로 생각된다. 고려사, 왕조실록등의 사서에도 수박희(手搏戱), 각저희(角抵戱)등의 맨손무예를 지칭하는 기록이 보이고, 사전에도 각희(脚戱)를 택견 혹은 씨름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무술의 개념은 거의 일제시대에 유포된 일본식 무도개념이다. 무도는 일본의 지배계층(武士)에 의해 구조화된 봉건사회의 제도적 산물이다. 이에 비하여 택견은 일반 대중 속에서 자생하여 온 민중무술로서 곧 무희라는 술어적 개념을 가진다. 양자 사이에는 대립된 가치개념이 존재한다. 가치기준에 따라 선호도는 각기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택견은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기초로 하고 있는 민족무예이므로 단순한 비교논리로써 평가할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민족이라는 연대의식 아래 공동체험한 공리(公理)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택견의 원형 연구를 통하여 민족적 무술 이데올로기를 추출(抽出)할 수 있다면 대단히 큰 수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한국적 무술 이데올로기를 함장하고 있는 택견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의미도 있지만, 무술의 경기화로 인한 가치개념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대안(代案)으로서 기대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택견의 쇠퇴는 적자생존의 원칙에 의해 도태된 것이 아니라 타율에 의한 강제된 결과이다. 이것을 되살려 국민체육으로 육성시키고 나아가 국제 스포츠로 발전시키는 일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당연한 권리이자 책무이기도 하다. 이 글은 이러한 택견 중흥의 대열에 참여하여 받침돌 하나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을 지니고 있다.
2. 택견의 개요
1. 택견의 정의
택견은 오랜 세월동안 우리 기층문화의 한 갈래로 전래되어 온 맨손의 겨루기 기술로써 무사의 상예(常藝)로, 혹은 민속놀이로 성행하여 왔던 것으로 보인다.
각희(脚戱), 비각술(飛脚術)이라 불리기도 하였던 택견은 근접하여 마주서서 상대를 차거나 걸어서 넘어뜨려 승부를 내는데, 공격적인 구조이면서도 경기자 서로의 안전성을 최대한 고려한 기법을 사용한다. 따라서 전문적으로 훈련을 쌓은 선수로부터 초보자에 이르기까지 정도에 알맞은 겨루기를 할 수 있다. 택견을 개방적이고 공개적이며 대중성을 가진 무희로써 비전성, 폐쇄성을 가진 무술과는 개념을 달리한다.
택견은 전문기관이나 특정집단에 의해 이루어진 제도적인 전수가 아닌 까닭에 정형화된 이념이나 사상이 체계적으로 전승되어 있지 아니하다. 그러나 택견에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정체된 선인들의 지식과 체험이 용해되어 있고,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철학과 사상이 함장되어 있다. 그러므로 택견은 역사성과 규범성을 가진 훌륭한 전통문화이며 민족무예, 기층문화인 것이다.
2. 택견의 연원
인류는 생존본능으로 공격이라는 적극적 행위를 선택함으로써 진화에 성공하였다.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두 다리로 걷게 되었다는 학설8)을 근거로 할 때, 최초의 인류는 이미 맹수류에 비해 열세인 신체조건을 보완하기 위해 도구의 발명과 사용방법 개발에 치중하였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맨손으로 싸우는 방법의 발달은 인류가 상당히 진보하여 사회의식이 싹튼 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 맨손으로는 아무래도 사냥이나 전투에서 불리하다. 그러므로 맨손의 투기는 전투적인 목적보다는 집단의 구성원끼리 우열을 가르는 경쟁수단으로써, 또는 주체와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행하여지는 유희적 인간행동의 하나로써 자연적으로 발생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9)
택견은 이러한 원초문화의 한 유형으로 출발하여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이 전승 계발하여 온 것이라 하겠다. 문헌상으로 택견의 족적을 살펴보면 삼국시대 이전의 기록은 발견되지 않으며, 고려사 ‘충혜왕조’에 수박희 등의 맨손무예를 지칭하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 또한 고구려 고분벽화, 신라시대의 인왕상 등의 예술품에서 맨손무예의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10)
조선시대의 기록에도 수박(手搏) 등이 보이는데, 정조(正祖, 1777~1800)때 이성지(李成之)가 지은 재물보(才物譜)에 ‘卞, 手搏爲卞 角力爲武 若今之 탁견’이라는 한글 표기가 나타난다. 이로 보아 ‘탁견’이라는 말이 조선시대에 이미 있었으며, 한문의 手搏, 卞, 角力, 武 등이 우리말로는 탁견이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짧은 기록만으로도 택견은 우리 민족 역사와 학께 영고성쇠를 겪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3. 택견의 어원
1921년 조선어 사전에 ‘택견’이 나오고, 1933년 이후의 사전에는 주로 ‘태껸’으로 되어 있다. 송덕기는 ‘탁견’이라 하고 ‘탁견’하는 사람을 ‘택견꾼’이라 부르며, 이웃마을끼리 약조를 하거나 아는 사람들 끼리 모여서 편을 갈라 시합을 하는 것을 ‘결련 택견’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택견에 대한 표기는 여러 가지 있다.
착견 : 오가젼집 박타령(리선유, 1935)
뎍견 : 조선상고사(신채호, 1946)
탁견 : 才物譜(李成之, 정조)
托肩 : 해동죽지(최영년, 1925)
택견 : 조선무사영웅전(안 확, 1919)
HTAIK-KYEN-HA-KI : 「코리언 게임스」(스튜아트 쿨린, 1895)
결련태껸 : 우리말 사전(문세영, 1938)
결련(結連)태 : 동아국어사전(1971)
1962년 나년성의 논문11)에서는 “오늘날의 제기를 중국에서는 ‘티겐(척건)’이라 하고 우리 말로 음독하면 ‘척건’이 되는데……”라고 하였다.
순수한 구리말에 거센소리(激音)와 된소리(硬音)로 짜여진 말이 없다는 점과, 또한 한자가 우리말화된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하여 중국어 사전을 참조하여 택견과 연관이 있어 보이는 말을 찾아 보았다.
척(踢) : [t'i]①뛰다 ②차다
천(踐) : [chien] ①밟다 ②짓밟다
踢健(척건)을 ‘티췐(t'jchien4)’이라 읽고, 이것을 ‘제기차기’라 풀이한다. ‘척천(踢踐)’역시 발음이 ‘티췐(t'jchien4)’으로 동일하다.나연성이 밝힌대로 ‘척건(踢毬)’의 중국 발음을 ‘티겐’이라 하기도 하고 「코리언 게임스」에는 ‘tik’(틱, 티크)를 ‘차다(kicking)’의 뜻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차고 밟는다는 뜻인 ‘척천(踢踐)’을 t'chien(티췐) → 티겐 → 틱겐 → 탁견 → 택견 등으로 연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택견의 기술 구성으로 볼 때 차고 밟는다는 뜻은 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코리언 게임스」에도 ‘택견하기’라고 표기하고, 영으로 ‘Kiking’, 불어로 ‘Savate(발질 위주의 프랑스 격투기)’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 책에는 ‘물택견하기(MOUL-HTAIK-KYEN-HA-KI = WATER KICKING)’도 나와 있는데, 발로 물을 차서 멀리 보내는 어린이들의 게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해동죽지의 ‘탁견(托肩)’은 발로 어깨를 차서 밀쳐낸다는 뜻이 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택견이라는 말은 곧 차기 = 발질이라는 뜻이 된다. 현재로는 택견의 어원이 ‘척천’등의 중국말에서 나온 것으로 해 두지만 앞으로 언어학적인 연구과제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우리민족은 꽤 오래 전부터 발질 위주의 투기를 발달시켜 왔으며, 그것을 택견이라고 불러왔던 것은 사실이다.
4.결련(結連)택견
문화재 지정 당시의 택견보고서12)에는 ‘결연택견’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것을 ‘쌈수’라고 하였다.
신한승은 택견에서 가끔 파괴적이고 살상적인 위험한 기술을 사용하기도 하였다는 노인들의 말을 ‘태도가 굳세고 결정적’이라는 뜻의 ‘결연(決然)’으로 해석하였던 것이다. 그는 ‘서기택견’이라는 말을 만들어 썼는데, “신한승의 주장에 따르면 마을끼리 솜씨를 겨루는 택견을 벌일 때 공격하는 편 택견꾼이 먼저 ‘서거라’ 하고 외면, 방어하는 편 택견꾼이 ‘섰다’하고 외고 나서 겨루기 때문에 ‘서기택견’이라 이른다고 말한다. 국어사전에는 결연택견을 여러 사람이 편을 갈라 승부를 결하는 택견이라고 하여 약간 뜻이 다른 점을 볼 수 있다.”13)고 하였다.
사전의 해석은 ‘결련(結連)태 : 여러 사람이 편을 짜 가지고 하는 택견’ (동아국어사전, 1971), ‘결련(結連)태껸 : 갑동(甲洞)과 을동(乙洞)이 각각 편을 먹고 승부를 결하는 태껸’(조선어사전, 1938)등으로 되어 있다.
사전에서는 편씨름처럼 다른 마을끼리 서로 어울려서 하는 민속경기를 결련택견 혹은 결련태라 한다는 것인데, 신한승이 지어 낸 서기택견과 동일한 의미다. 손덕기는 결련택견이라는 말의 뜻은 설명할 수 없으나 동네끼리 자주 편을 갈라 택견을 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결련택견을 바르게 규정한다면, 그냥 택견이라고 할 때는 싸움질 할 때 쓰는 격렬한 택견과 민속놀이로 하는 결련택견을 통틀어 지칭하는 것이고, 따로 결련택견이라고 할 때는 마을끼리 편을 짜서 하는 마을 대항의 친선경기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잘못해석된 ‘결연’이나 편의상 만든 ‘서기택견’과 같은 조어(造語)는 사용을 중지하고, 앞으로는 정확한 명칭을 되살려 사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3. 택견 구성의 요체
1. 택견 경기의 규준(規準)
Gillet는 스포츠의 구성요소로서 ①유희 ②투쟁 ③신체활동의 격렬성을 들고 있다. 오늘날에는 경쟁적인 운동유희가 운동경기로 해석되고 이를 스포츠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스포츠는 특정한 형태의 게임을 연상케 하는데, 게임이란 신체적 기능, 전략, 기회의 어느 한가지, 또는 그것들의 복합에 의해 결과가 결정되는 모든 형태의 놀이적 경쟁, 곧 경기라 할 수 있다.14)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택견은 아주 오래 전부터 스포츠의 구성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경기는 공평한 조건을 인위적으로 설정하여 경쟁케 하도록 하기 위해 형식적이든 비형식적이든 합의된 규칙을 갖게 된다. 이 규칙, 즉 룰(rule)은 경기자의 행위를 제한하고 나아가 경기기술을 지배함으로써 독특한 경기형태를 창출한다.
택견에는 명문화된 규칙이 따로 없고, 비규정적인 관습에 의해 경기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을 정리하여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두 사람이 마주 서서 차서 넘어뜨려 승부를 낸다.(발기술의 제반형태를 종합적으로 사용한다)
②한쪽에서 먼저 상대편 다리를 가볍게 차 주는 것으로 경기가 시작된다.
③상대가 찬 발을 잡을 수 있다.(이렇게 해서 넘어뜨릴 수 있다)
④목 이상의 부위를 찰 수 있다.(강타에 의해 몸의 균형이 현저하게 무너질 경우 승부가 나기도 한다)
⑤손으로 걸어 당기거나 밀어서 넘어뜨릴 수 있다.
⑥두 발을 공중에 띄워서 발질할 수 있다.(뛰어 차기)
⑦상대가 공격하기 용이한 거리에 한발을 내놓는다.(대접)
⑧품(品)자 모양의 세 지점에 한하여 발을 옮겨 놓아야 한다.(품밟기)
⑨상대의 급소를 공격하거나 타격 목적의 수를 사용하지 못한다.
⑩신체부위 중에서 비교적 부드러운 부분(장심, 발바닥, 발등 등)으로 공격하되 공격목표는 상대방의 곁, 어깨, 복장, 허벅지, 다리 등과 같이 비교적 안전도가 높은 부위를 선택하여야 한다.
11동곳(상투에 꽂은 비녀)를 차서 떨어뜨리는 것으로써 승부를 내기도 한다.15)
위에 열거한 경기 방법 중 ① ~ ⑩까지는 조선시대의 택견꾼으로서 유일한 생존자인 송덕기로부터 채집된 것이며, ①②③④⑦은 「코리언 게임스」에 나와 있고, ①④⑥⑩11은 해동죽지(海東竹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①과 ⑩항의 내용을 추출할 수 있다.
제 1회 전국경기회(1985,부산) 당시의 경기규칙에는 ⑦⑧11항의 규칙이 누락되어 있다. 그중 11항은 버려야 할 수 밖에 없지만, ⑦⑧항의 규칙 누락이 경기재현을 방해한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이다.
2. 품밟기의 합목적성
품밟기는 品자 모양의 삼각지점에 발을 옮겨 놓는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택견에 관한 최초의 산문기사(「한국일보」, 1964.5.16)에서 송덕기는 “택견에서 몸을 능청대며 는지르는 것도 덮어놓고 하는 것이 아니고, 발을 品자로 놓는다는 약속이 있으며, 누구든지 땅에 먼저 손을 짚으면 패하게 되어 있다”고 하였다
「코리언 게임스」의 기사에는 “두 사람은 발을 벌리고 서로 정면으로 마주보고 선다. 그리고 서로 상대방의 다리를 걷어 올려 차려고 시도한다. 경기자는 각각의 발을 한발짝 뒤로 물러서 제 3의 지점에 놓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발은 언제나 3개의 지점중 하나에 놓여진다. 한사람이 상대의 다리중 하나를 한번 차는 것으로써 경기를 시작한다. 상대는 그 다리(공격당한 다리:필자)를 뒤로 움직이며(뒤로 물러 디디는 것:필자) 교대로 차기를 한다”16)고 되어 있다.
여기서 두 기사를 비교해 보면 약간의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전자의 발을 品자로 놓는다는 것은 정삼각형(∴)의 형태로 볼 수 있고, 후자의 내용은 나란히 발을 벌리고 선 자세에서 뒤로 한발짝 물러나 제 3의 지점에 놓인다는 것으로써 역품자형(∵)의 형태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품밟기가 정삼각형(∴)인가 혹은 역삼각형(∵)인가 하는 문제는 택견경기에 있어서 경기자간의 거리관계를 규명하는 중요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품(品)자가 정삼각형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서 품밟기는 당연히 정삼각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겨루기의 준비상태에서 최초 발의 이동지점이 한발짝 앞으로 내딛는 정삼각형의 품밟기를 할 경우 차서 넘어뜨리거나 걸어 당기는 따위의 근접거리에서 사용가능한 기술의 구사가 불가능해 진다. 그것은 안정된 지지면적(支持面積;중심을 유지하기 위하여 발을 벌렸을 때의 면적)을 확보하고 있는, 즉 두 발을 벌리고 서있는 자세가 한 걸음 위에 위치함으로써 두 경기자 사이에 견제거리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경기자의 심리상태나 속성으로 볼 때 지지면과 견제공간이 확보된 안전성이 높은 자세를 선호하고 되므로 품밟기가 이행될 소지가 적어진다. 이것은 유도경기를 할 때 양선수가 발을 나란히 벌리고 서는 자세를 주로 취하는 경우와 같다. 정품자형의 형태로 상대방 앞으로 발을 내어 디딜 경우 상대를 향해 두 발의 위치가 L형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을 지지면적이 좁아서 넘어뜨리기 위한 공격에 대해 매우 불안정한 자세가 되고 만다.
그러나 역품자형으로 섰을 경우에는 안정 지지면적을 갖는 나란히 벌리고 선 두 발의 지점이 상대와 너무 근접해 있으므로 경기자의 심리적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두발이 모두 상대로부터 공격당할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때 견제거리를 구하기 위해 제 3의 지점, 즉 뒤로 한발짝 후퇴한 지점에 두 발을 함께 모아 설 수 있겠으나 지지면적의 부족으로 공격과 방어능력이 현저히 감퇴된다17) 그러므로 최초의 나란히 벌려 선 자세에서 한 발을 뒤로 물러 디딜 수 밖에 없다. 이때 앞에 위치한 발은 상대의 공격이 가능한 지점에 두게 되므로 경기가능 거리18)를 유지하게 된다. 이 자세에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격기회를 줄이기 위해 미리 발을 바꾸어 놓거나 혹은 앞에 있는 다리를 목표한 상대의 공격에 대하여 발을 들어 피한 후 발을 바꾸어 놓는 동작이 반복될 때 품밟기가 자동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한편 역품자형으로 발을 옮겨 디딜 경우 상대방과 엇서게19) 되므로 공방의 기술발휘에 필요한 최소한의 거리가 확보될 수 있다. 그렇지만 역삼각형은 品자가 아니지 않느냐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은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즉 자기자신의 발의 이동형태를 기준으로 하지 말고 상대방의 발 이동지점을 바라다 보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상대방의 품밟기 착지점은 정품자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1971년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제작한 필름(1976년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제작한 <국기 태권도>에 삽입되어 있음)에는 송덕기의 79세 때 동작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분석해 보면 송덕기가 총 12회의 품밟기를 하고 있는데, 정품자(∴) 형태가 2회, 나머지 10회는 역품자(∵)형태였다. 10회의 역품자 형태 가운데 8회는 딴죽, 는질러차기 등의 기술 사용을 위한 예비동작이며, 나머지 2회가 순수한 역품자형의 품밟기였다. 그리고 역품자형이라 하더라도 대체로 등변사다리꼴의 꺼꾸로 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상대 역할을 한 사람은 보폭이 큰 역품자 형태의 품밟기를 일관성 있게 하고 있다. 문화재 지정이후 전수활동을 할 때도 송덕기는 앞다리의 무릎을 가슴까지 바짝 들어올리거나 제기차기처럼 발뒷축을 반대편 허리까지 들어 올리거나, 발 뒷축으로 뒤 허벅다리를 툭툭 차는 형태, 또는 깡총깡총 뛰면서 발의 위치를 재빨리 바꾸는 등의 여러가지 품밟기 연습방법을 가르쳤다.20)
이런 형태의 연습은 모두 앞다리에 대한 공격을 피하는 것과, 또한 발을 들어 역공격을 하는데 효과적인 훈련방법인 것이다. 송덕기의 품밟기가 역품자형으로 나타나는 기록은 전통무술 택견(박종관 정리, 1984), 한국무예:택견(이용복,1990)등이 있다.
송덕기의 다양한 품밟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상대방과의 거리가 한걸음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을 옛날 택견판(경기장)이 가마니를 두어 닢 터서 깔거나 큰 명석 한 장을 깐 좁은 공간이었다는 사실과 관련지어 알 수 있다. 발기술 중심의 택견에서 중심이동이 공간적으로 제한된다는 것은 얼른 생각할 때 신체기능의 발달에 장애가 되거나 기술이 한정적으로 될 것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을 이러한 공간적 제한은 오히려 차기뿐만 아니라 밟기와 걸기 등의 가능한 모든 형태의 기술을 개발시키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품밟기가 공간이동의 제한성을 가지고 있고, 굼실거리고 능청대며, 우쭐우쭐, 으쓱으쓱하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은 택견 경기의 원리를 구성하는 대접(待接)의 규준성과 는질거리는 기법의 호혜성에 의해 합목적적 수단화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3. 대접(待接)의 규준성(規準性)
상대가 공격하기 쉬운 지점에 한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는 ‘대접’의 규준은 택견경기를 가능케 하는 원리로써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이 규준에 의해서 택견기술의 형태가 결정지어진다.
1973년 최초로 조사된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21)에는 순수한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택견기술이 송덕기 조사자료에 수록되어 있다. 이 내용은 1964년 「한국일보」에 게제된 기사와 동일하다.
[송덕기 조사자료:택견의 열한가지 기본수]
①깍음대리 : 발장심으로 상대방의 무릎을 찬다.
②안짱걸이 : 반등으로 상대방의 발 뒷굽을 안에서 잡아 끌며 벌렁 나가자빠지게 한다.
③안우걸이 : 발바닥으로 안복사뼈를 쳐서 옆으로 들뜨며 넘어지게 한다.
④낚시걸이 : 발등으로 상대방의 발뒷굽을 밖에서 잡아끌면 뒤로 훌렁 넘어진다.
⑤명치기 : 발장심으로 명치를 찬다.
⑥곁치기 : 발장심으로 옆구리를 찬다.
⑦발따귀 : 발바닥으로 따귀를 때린다.
⑧발등걸이 : 상대방이 차려고 들면 발바닥으로 발등을 막는다.
⑨무릎팍치기 : 상대방이 차서 들어오면 손으로 그 발뒷굽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옷을 맞붙잡아 뒤로 넘어지면서 발(무릎:필자)로 늦은배(下腹部)를 괴고는 받아 넘긴다.
⑩내복장갈기기 : 발장심으로 가슴을 친다.
11.칼재비 : 엄지와 검지를 벌려 상대방의 목을 쳐서 넘긴다.
이상의 기술 모두가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기술인데 ①②③④는 상대방의 앞에 나와 있는 다리에 대한 공격기술이며, ⑤⑥⑦⑧⑨⑩11은 모두 한걸음 이내에 상대방이 접근해 있을때 유용한 기술이다. ⑦을 제외한 ⑤⑥⑩은 밀어 차거나 옆으로 밀쳐내는 발질이고, 11은 손으로 미는 동작이다. 나머지 ⑧은 상대가 공격하기 위해 앞으로 내미는 발에 대한 방어겸 공격기술이며, ⑨는 역시 상대를 붙잡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가능한 역공격 기술이다.
이외에도 시나브로 생각날 때마다 가르쳐 준 복합되고 변화된 기술들도 거의 상대의 앞다리를 중점적으로 공격하고 있으며, 선제공격을 할 때에도 자신의 앞에 내딛은 다리를 이용하는 기법이 발달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다.22)
이처럼 송덕기의 택견기술은 공격가능거리에서 상대방의 발이 착지해 있지 않으면 무용한 기술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대접의 규준은 택견경기 구성상 필연적 당위성을 가지게 되는 것으로서 택견 경기에 있어서 제 1의 규칙이 된다. 상대방 앞으로 한쪽발을 내주는 대접은 품밟기의 부분동작에 불과하지만 오히려 품밟기 전체를 지배하는 강제성을 가진다. 과거 택견판의 설비였던 가마니나 멍석위에 발의 착지점을 표시해 둔 예가 없고, 또 풀밭 또는 모래밭같은 곳에는 더욱 표시를 할 수 없다. 특히 격렬한 동작이 이어질 경우 고정된 품밟기의 틀을 예사로 이탈하게 되고, 공격에 의해 밀려나서 거리가 멀어지는 사례가 허다하게 발생한다. 옛 택견판에서는 이런 상황이 생기면 심판자나 구경꾼들이 “붙어, 바짝 붙어”라고 외쳤다는 것으로 미루어 봐도 품밟기만으로는 경기진행이 순조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대접을 하는 규칙인 것이다.
대접이란 손님에게 음식을 제공한다는 뜻과 예를 갖추어 대우한다는 의미가 함께 있다. 택견의 대접 역시 이 두가지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상대방 앞에 다리를 내주는 것이 손님 앞에 음식을 차려 대접하는 것과 흡사하며, 또 경기를 시작할 때 인사로 상대방의 다리를 가볍게 차주는 동작이나, 상대방 엾시 인사하는 동작에 대하여 반격을 시도하지않고 슬쩍 피하면서 그 다리를 뒤로 물려 딛는 것이 영락없이 예를 갖추어 상대방을 대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접은 구기종목의 서브(Serve)와 같은 성격이다. 택견의 경기는 한쪽편에서 대접을 하는 것으로서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코리언 게임스」에 “두 경기자중 한사람이 먼저 상대방의 다리를 차는 것으로 게임은 시작되는데……”라는 것은 한쪽에서 먼저 상대방의 다리를 건드리듯이 툭 차주고는 찬 발을 한걸음 뒤의 제 3의 지점에 가져다 놓으면 앞에 있는 다리는 곧 상대방이 공격하기 쉬운 지점에 놓이게 되고 대접한 쪽이 뒤로 발을 물리는 순간 공격의 기회를 상대방에게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송덕기로부터 전수된 방법과 정확하게 일치된다. 그는 대접하는 것으로부터 경기가 시작되고, 상대의 무릎을 발장심으로 밀어내는듯이 슬쩍 차주면 그것이 대접이라고 말해 왔지만, 그로부터 직접 전수를 받는 동안에는 그것이 경기를 시작하는 신호의 의미를 가진 인사(禮)정도로만 생각하였을 뿐, 그 동작이 갖는 규칙성을 파악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다른 격투기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이고, 한국적인 대접(Serve)의 규칙은 안전공간을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고도의 기술을 다양하게 구사하도록 유도하여 경기자의 기능을 극대화 하는 효과를 얻고, 또한 긴박감 넘치고 다이나믹한 게임을 가능케 하여 관중의 흥미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4. 는질거리기의 호혜성(互惠性)
택견의 동작을 표현할 때 굼실굼실, 능청능청, 우쭐우쭐, 으쓱으쓱 등으로 말한다. 이러한 토속정인 동사를 적용하여 품밟기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굼실굼실 : 발을 내딛거나 끌어 당겨올 때 몸의 중심을 유지하고 있는 다리의 무릎의 가벼운 굴신운동.
능청능청 : 헛밟기를 할 때 발을 앞으로 내디디면서 양 무릎을 펴고 아랫배를 내밀면서 허리를 활처럼 탄력적으로 휘는 모양.
우쭐우쭐 : 발을 바꾸어 밟거나 내딛을 때 몸 전체의 율동운동.
으쓱으쓱 : 품을 밟으며 어깨를 치들며 멋을 부려 뽐내는 모양.
위의 네가지 동사는 택견의 운동원리를 함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러한 제동작이 연쇄되고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는질거리는’ 기법이다. 택견의 발기술 중에 ‘는질러치기’가 있는데, 발을 들어 상대방의 복장이나 배를 발장심으로 밀어내듯이 는지르는23) 것이다. 차는 요령은 무릎을 당겨 가슴께로 들어올릴 때와 당긴 무릎을 펴서 발을 내지를 때 곧바로 차지 않고 무릎과 발목의 스냅(snap)을 이용하여 멈칫거리듯이 동작한다. 이것은 완충효과를 얻고 밀쳐내는 힘을 증가시키는 동작으로서 상대방에게 타격을 가하지 않으면서 넘어뜨리는 것이다. 손기술 중에도 이마재기의 경우 손장심으로 상대방의 이마를 밀어내는데 역시 는지르기로 상대방의 중심을 잃게 하는 기술이다.
송덕기는 택견의 겨루기 기술은 모두 는질러야 하며, 시합에서는 곧은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있다고 하였다. 는질러차기르는 명칭은 편의상 나중에 신한승이 붙인 이름이며, 택견의 모든 발기술이 는질러차기라고 할 수 있다.
‘는질거린다’는 말은 물크러질 듯이 아주 물러졌다는 뜻이다. 무르다는 것은 연하고 튼튼하지 못하다는 것으로 곧 약(弱)하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강함을 추구하는 것을 가치로 삼는 무술에 대한 상식으로는 택견의 는질거리는 기법은 이해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실전(實戰)성을 강조하는 허구적 무술개념으로 택견을 판단하려 할 때 생기는 문제이며, 택견을 무희, 즉 겨루기의 개념으로 파악한다면 는질거리는 기법의 기발(奇拔)성에 감탄하게 된다.
원시적 격투기가 근대적 경기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전투적인 기술을 경기적인 것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각양각색의 다양한 제한이 가해지고 있는 점이다. 권투는 솜을 두툼하게 넣은 장갑을 낀 주먹만을 사용하여 허리이상의 신체부위에 대한 때리기만으로 경기를 하고 있으며 씨름, 유도, 레슬링 등은 때리기, 차기를 금하고 잡아넘기기만으로 승부를 낸다. 일본의 가라데는 인체에 직접 공격을 가하지 못하게 하며, 태권도는 머리, 몸통, 샅을 보호하는 몸가리개를 착용하고 차고 때리기에 의한 점수에 의해 판정을 하고 있다. 우슈는 체조경기와 흡사한 경기규칙을 가지고 있고, 산슈 역시 태권도나 타이복싱과 유사한 시합방식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격투기 경기가 종합적이지 못하고 특정한 기술만의 겨루기로 한정되어 격투기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고 하여, 최근에는 여러가지 신종 격투기 경기가 출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잔인성만 가중되었을 뿐 역시 규칙에 의한 제한성은 배제하지 못하고있다. 이것은 경기자의 안전을 위한 당연한 조치이며, 사회적 정서에 부응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맨손으로 싸우는 기술이란 원래 전투기술보다는 경기기술이 본질이므로 제한적 기술사용은 맨손 격투기의 원초적 원리인 것이다.
택견은 다른 종목에 비하여 기술의 제한이 덜하며 몸 전체에 대하여 공격이 허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무런 보호장비도 착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공격기술을 연하고 무르게 전환하고, 급소를 피하고 비교적 신체부위 중에서 안전한 곳을 공격목표로 선택한다. 또한 공격시 사용하는 신체부위는 주먹머리나 손모서리, 발뒤꿈치, 발모서리와 같은 강한부위대신 손장심, 발등, 발바닥 등의 비교적 부드러운 부분을 사용하는 것이다.(도표 참조)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타격(打擊)을 주는 기술을 금하고 밀쳐내고 걸어당기는 도괴력(倒壞力)을 발휘하는 기술을 위주로 하고 있어서 안전성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택견은 “차서 쓰러뜨려 승부를 낸다”는 사전의 해석처럼, 발차기를 주무기로 하고 있지만 넘어뜨리기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점이 태권도의 타격적 발차기와 운동원리를 달리하는 것이다. 택견의 손기술로는 옛법이라 부르는 주먹쓰기도 있고, 도끼질 하듯이 손모서리로 내려 찍은 기술도 있지만 경기에서는 사용을 금하고 있으며, 주로 손바닥이나 아귀를 이용하여 복장, 어깨, 이마를 밀쳐내는 기술이 발달해 있다. 택견은 발기술, 손기술을 막론하고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는질거린다는 것은 연하고 무르다는 뜻으로 강(强)의 반대개념이기는 하지만, 연하다는 것은 부드럽다는 것이요, 무르다는 것은 굳은 물건이 푹 익어서 녹실녹실하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부드러움은 외부의 자극이나 상황변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순발력의 절대조건이며, 무른 것은 경직된 심신의 이완상태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는질거린다는 것은 상대방과의 기간(氣間)의 변화에 순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심리적·신체적·기술적 완숙을 의미하는 것이다. 택견이 춤추는 듯 부드러운 몸짓과 율동적 동작, 우아한 곡선의 동선과 같은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도 는질거리는 기법의 효과 수익인 것이다.
경기자 상호간의 안전을 고려한 는질거리는 택견의 기법은 택견이 상호가해적(相互加害的)이 아니라 호혜적(互惠的) 원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택견은 방어기술이 거의 없고 대부분이 공격기술로 짜여 있다.24) 이처럼 진취적이고 공격적인 형태는 시베리아와 만주대륙을 횡횡하던 북방 기마민족적 기질에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마족 문화가 부락공동체 의식이 강한 농경문화와 결합되면서 협동과 선린을 존중하는 성격으로 순화(馴化)한 것으로 추정된다.
택견은 경기가 성행하던 동시대의 사회정서가 반영되고 소박한 민중의 시대적 심리현상에 따라 다소의 변모를 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무희라는 술어의 의미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택견은 힘을 겨루는 경쟁을 즐기고, 그 속에서 가장된 가치를 추구하는 훈련의 축척을 통하여 선린과 우호를 두터이하여 공동체의 결속을 다졌다. 여기서는 박투(搏鬪)의 경쟁이 오히려 화합과 단결로 승화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