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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강 순수시와 참여시의 차이
(전시 학습확인)
'전 시간에 여러분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 시조(3행시)를 지어 보았다. 어때? 자신의 이름에 대한 본질을 알고 난 후와 전의 차이는? 분명 천양지 차(天壤之差)가 날게다. 이유는? 시계는 정확한 시간만 알려주면 되고, 호미는 김매기에 쓰이는 연장 역할이 모두다. 이처럼 철수는 권투로써! 순이는 효녀 효부로서의 자기 소임을 다 하겠다고 했잖아? 맞지?'
조선조 세종께서 한글을 만드시어
'우와 박수 박수 짝짝짜......''그만 조용히! 제재(題材)? 그리고 주제(主題)? 뭐냐?' '선생님! 제재는 둘입니더. 하나는 <조행종으로 선생님 이름>이고요, 또 하나는 <세종의 한글 창제>입니더.' '잘했다. 그러나 이름을 첫 자로 넣어 지어라 했으니 이름도 제재이긴 하나 무엇을 주된 글 감(제재)으로 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세종의 한글 창제다.' '그렇다면 주제(글의 중심 사상)는 무얼까?' '선생님 주제는 주로 시조 종장에 있다고 하셨으니 <임의 뜻을 안 잊겠다>가 되겠습니다.' '맞다. 그러나 좀 뜻이 분명하도록 다듬어야지? 누구? 그래 해봐' ' 머리를 긁으면서 봉수가 답한다. "국어교사로서의 소임에 최선"이라고 봅니다.' '잘 했다. 그러고 보면 오늘부터 더 열심이어야겠는데. 이미 밑천 나온 김에 하나 더 해보자.'
조종(祖宗)되신 聚遠堂이 길지(吉地)잡은 천세(千世) 터전 (취원당 유적지에서)
제재(題材): 오방리에 있는 강동구와 오봉서원
註:1) 조종: 취원당(聚遠堂)* 曺光益(1537-1578) 호는 취원당(聚遠堂) 公이 당시 1564년 문과에 급제한 이후 兵曹左郞에서 正郞으로 승진되어 있을(지금 국방부 군인사 담당 참모 부장 소장급에 해당) 당시 公의 아우인 芝山 曺好益(1545-1609)은 선조 때 경상도사 崔滉에 반항했다 하여 그의 모함을 받고 평안도 江東 땅으로 유배되었다. 취원당은 그의 아우를 못 잊어 내직을 사양하고 외직인 아우가 유배되어 있는 평안도사를 자원하여 갔다가 병을 얻어 객관에서 별세. 著書:취원당 선생 문집(시 39편 외 題書, 記, 科題, 遺事, 祭文, 行狀, 碣銘, 등이 수록)
2)강동구(江東邱):초동면 오방리 동구밖 고개 한길 가에 있는 취원당(聚遠堂) 曺光益(1537-1578)의 효행과 우애, 선정(善政)의 표상으로 비곽과 둔덕이 있다. 公의 아우인 芝山 曺好益이 평안도 강동에 귀양가 있기 때문에 공이 평안도 도사를 자원하여 재직중 도민을 위한 열정에 그만 병을 얻어 객관에서 별세하자 강동 사람들이 공이 형제간의 우의와 도민에 끼친치적에 감복하여강동 고을 사람들이 강동 흙을 싸들고 평안도에서 경상도 밀양까지 천리길을 걸어 장지에 弔問하러 왔으나 이미 장례식이 끝났으므로 그들이 싸들고 온 흙을 공의묘 근처에다 둔덕을 쌓아 놓고 대나무를 심고 갔다. 이것을 江東邱 즉 평안도 江東에서 가져온 흙 두덩이라고 하여 강동구라 부른다. 강동 흙은 곧 공이 강동민에 베푼 선정의 표상이다.
'위의 시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즐겨 쓰지 않은 단어가 많기 때문이며, 거기다 내 고향에 대해서(조상과 유적) 전혀 여러분이 모르기 때문이란다. 다음에 시간 내어 고향 구경을 시켜주마! 이처럼 자기 이름을 가지고 다양한 제재(題材)를 짓다보면 좋은 사상이 담긴 글이 된다. 우리 속담에 "첫술에 배부르지 않다."는 게 있지? 김삿갓도 처음부터 잘 짓는 시인이 아니고 취미가 있고 노력하다 보니 <부석사 안양루에 올라 '시은 단상' 참고> 즉흥적인 시가 줄줄 나오는 것이지.'
(본시 학습문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