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각선미에 여자다운 맵시를 드러내는 스커트보다 다소 실루엣을 은은하게 감싸며 딱 붙은 바지를 더 즐겨 입는 편인 나는 신발조차 바지와 어울리는 단화나 운동화보다 굽 높은 구두를 더 애용하는 편 이었다. 구두와 달리 운동화가 편함은 두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런데 이상하게도 운동화를 신을 기회가 그리 녹녹하지 않는 것이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운동화, 밑창 높고 폭이 넓으면서 앞이 몽땅한 신발을 젊은 신세대라면 다 신고 다녀야 되는 시대의 유행병처럼, 거리 어느 곳을 가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실이다 개성 탓인지 내게는 그 운동화가 그리 좋게 보이지 않던데 ....... Y세대뿐 아니라 일반신세대도 그 운동화를 즐겨 신는 것 보면, 부정하 고 싶지만 역시 내가 어쩔 수 없는 기성세대임을 인정하게끔 만든다.
필요에 의해 나에게도 편하고 현대감각이 숨쉬고 있는 운동화 몇 켤레는 신발장에서 긴 동면을 취하고 있다 거의 무슨 체육 행사 때, 문화답사 때 이외는 이용을 안한 탓으로 모두가 초롱초롱 아가의 눈망울처럼 말짱해서, 이 다음 세대인 후손에게 물러줘도 괜찮을 성싶었다. 언제나 새로 구입한 구두가 사랑을 받기에 그 동안 급변하는 현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한 신발을 정리할라치면, 그때에야 비로소 운동화가 한번씩 눈에 띄곤 했다
며칠 전 신발정리를 하다가 잠시 눈에 띄는 운동화 한 켤레를 조심 스럽게 꺼 집어내었다 거무스름 쾌쾌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구입할 때의 그 기분을 왜 접고 있느냐고 마치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 같았다 곱게 내려있던 먼지를 털고 살금살금 형태를 바로 잡아 선택할 때 그 시점 설레임을 잠시 회상 해보았다. 이것 살 때는 이모저모 거울 앞에서 모델처럼 폼도 잡으면서 귀여워 할 줄 알았는데.........후후후
그런데 모처럼 편하고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외출을 할라치면, 굽 높은 구두를 신을 때와는 또 다른 행동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심지어 타인과의 말투에서도 긴장과는 거리 먼 색다른 맛을 가지게 하므로 신발, 언어, 행동... 모두 삼위일체가 되어 세상구경 처음 하는 저 낙도의 어린이처럼 마냥 신기하고 편한 걸음걸이로 거리를 활보하게 만든다 걸음조차 가뿐하기에 마치 회춘(回春)한 기분에 내가 마치 청소년이 된 것 같아 착용하는 소품의 중요성을 다시 자각해 본다.
옷차림이란 참여하는 목적과 만남의 분위기에 따라 조금씩 변화가 있지만 어느 날은 내 취향은 아니지만 다소 점잖은 의상을 걸치고 나들이하면, 나도 모르게 행동거지가 조심스럽고, 구사하는 언어조차 함부로 내 뱉지 않기에 다소 의상과 행동은 서로 비례한다고 믿는다.
나의 경우 정장을 한 초면의 사람과는 다소 어려움을 느끼는 편이다. 대체로 정장한 사람들의 언행이 깍듯한 예의와 공손한 태도로 인해 다소 사무적인 느낌이 들고, 때에 따라 깔끔함이 오히려 딱딱한 이미지로 떠오르기에 일단 쉽게 접하기 보단 어려움으로 먼저 다가온다 아마 이런 선입견의 작용으로 적잖게 오해를 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잘못 된 고정관념인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편한 티 차림과 청바지 입은 사람에겐 어려움 없이 농담도 하게 되고, 이런저런 말도 던지게 되지만 다소 점잖은 옷을 입은 사람에게 약간의 거리감이 일어나, 두 마디 할 것을 한마디로 그치는 경향이 있었던 만큼, 정장차림의 구두와 청바지 차림의 운동화는 참으로 미묘한 함수 관계가 있는 모양이다.
어제 저녁 딱 붙는 청바지에 하얀 운동화를 신고 남편과의 오붓한, 때늦은 데이트를 했다(무슨 꿍수가 있는지) 그런데 운동화를 신을 때는 뒷부분을 팍 꺾어 신으면 더 편한지, 아니면 그렇게 하면 나이 한 살 적게 보일 거라 착각하는 건지, 하여튼 꺾어 신고는 남편의 데이트 신청에 신나게 응했다. 청바지에 운동화는 마치 바늘과 실처럼 아주 친밀한 관계처럼 눈에 비치므로 나 역시 모처럼 운동화를 신고 외출을 해 보았다
멋내기 구두가 아닌 편한 운동화 탓인지 하여간 거리를 누비면서 무공해 웃음을 거리낌없이 연신 깔깔대었고, 간혹 간간이 나오는 하품도 손 가리지 않고 자연스레 드러내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누가 쳐다본들 무슨 상관 있으랴(허긴 남에게 피해주는 행동이 아니니) 이런 마음에 CF의 카피처럼 '나는 자유인이다' 이런 외침이 저절로 나올 것 같은 편안함을 만끽했다.
이런 자유분방한 내 행동에(평소에도 그러하지만) 적잖게 놀란 남편은 오늘 내 기분이 특별한 그 무엇으로 매우 좋은 줄 아는 모양이었다 아마 내일 떠나는 나의 패러글라이딩 여행으로 남편의 기분은 그렇게 산뜻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난 여행과는 별개로 운동화 차림새의 편함에 아무 계산 없이 유쾌했을 뿐이었다
이렇듯 운동화의 착용이 가끔은 격식과 예의를 조용히 접어 두어도, 행동과 말투가 나이에 안 맞게 조금 유치하고 시끄러워도.... 나 혼자만의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그 착용에 관대함을 가지는 것 같다. 해서 이용하는 계층의 개성을 어느 정도 인정함으로 인해 운동화가 젊은 세대에게 여전히 인기가 있지 않을까? 모처럼 거침없이 룰루 랄라~~흥얼거리게 만들며 새로운 젊음을 만끽하게 만들어 준 운동화의 매력을 다시 되새겨 본 하루였다.
지금껏 즐겨 찾아 신던 여러 개의 구두는 열심히 주인을 위해 뽐내었으니, 이제 잠시지만 편히 휴식을 취하도록 해주어야겠다 당분간은 그 동안 도외시 해왔던 운동화를 깨끗이 손질하여 대대로 물려 줘야겠다는 기특한 생각 버리고, 그네들의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나랑 호흡 맞추며 살 사귀어야겠다 또 하나의 새로운 멋쟁이로 거듭나게 만들어 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