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들의 합창
김익두
CNE란 제주사범8회(Cheju Normal, Eighth)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썩 좋은 이름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들 사이에선 제법 편리하게 쓰이고 있고 정이 들기도 했다.
1967년 가을, 'CNE리포트'라는 옵셋판을 낼 때부터 이 이름이 쓰이기 시작했다.
1961년에 졸업을 하고 6년 후인 1967년 봄에 시내 아주반점(중앙로가 개통되기 전 옛터)에서 처음으로 동창회가 열렸는데 남녀 17명이 모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후엔 동창회다운 동창회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CNE리포트'가 그 모임을 대신해 왔다.
월남에서 돌아 온 김병장(원민)이 광양교에 자리를 잡자 가까운 KBS 제주방송국에 근무하던 내가 짝이 맞아 떨어진 것 같다.
학교 2학년 때인가 '과대망상'이라는 지하신문(책상 밑으로 전달되어 낄낄거리며 읽던 10*15cm 정도의 쪽지)에 "코브스단 사건" "남창테러 사건" 등(KOBS는 책상을 앞뒤한 친구 4사람의 이름 첫글자로 구성된 장난꾸러지들이며 남창이란 상배의 별명임) 장난을 치다가 호되게 당하기도 하던 아마추어 신문인(?)의 경력이 되살아 났는지 모른다.
내가 대구 방송국 경산송신소로 전근을 하게 되자 그의 만화 '미쓰 씨애니'가 부두까지 전송나와 눈물을 흘려주었고 나는 부두가에 신발 한 짝을 떨어뜨리고 떠난 것으로 되어있었다.
그곳에서 받은 그 'CNE리포트' 한 장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남양 MBC로 직장을 옮겨 석 달 반만에 다시 돌아와 '미쓰 씨애니'를 만났지만 어딘가 어두운 그림자가 서려 있었다. 호주머니 돈을 털며, 반은 장난 같이 취미삼아 해냈지만 아깝게도 제 9호를 끝으로 기약없는 중단을 하고 말았다.
(그 후 원민은 어떤 생각에서인지 교사 봉급의 반밖에 안되는 보수로 제남신문에서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신문인이 되었고 그 후 남양 MBC 방송기자가 되어 명성을 떨치고 있다) 후에 친구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니 제법 보람있는 일을 했었던 것 같은데 중단이 되자 동창회의 존재도 흐려져 버리고 가까운 동창들끼리 가끔 만나는 부분적인 친목회 형식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제주시에도 이런 과정을 거쳐 고전을 하다가 가장 진전된 친목회 형식에 의해 이제는 남자만으로도 25명이 넘는 대가족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름이 없다. 기상천외의 이름을 지으려고 심사숙고하는 것인지, CNE란 이름이 탐이나서 넘보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이제 'CNE소식'을 부활시켜 흩어진 동창들과 단절되었던 소식을 교환하며 범동창의 모임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 우리의 첫째 소망이다.
'CNE소식'이 다시 햇빛을 보게 된 것은 황언택선생님의 격려가 크게 힘이 되었다. CNE리포트 지난 호들을 빠짐없이 간직해두셨다가 꺼내 보이시며 "동창생이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하나 둘 줄어들게 마련, 그래서 최후에는 백발이 된 두 사람만이 마주 앉아 편집을 하며 폐간사를 써야 할 운명"이라 하시고 동서고금에 보기드문 이런 회지를 왜 계속하지 않느냐 하시는 것이었다.
과연 이 'CNE소식'에 누가 폐간사를 쓰게 될 것인지?
졸업한지 15년-, 다시 시작하고 보니 주소마저도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 동안에 타계한 동창도 넷이나 되어 놀라게 한다.
~바람이 싸늘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하고 슬픔에 잠겨 보기도 한다. 언젠가는 우리의 인생도 황혼이 찾아 오겠지. 이제 25년만 있으면 환갑이 될 것이고 그 때 'CNE소식'에는 어떤 사연들이 전해질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지금은 초여름, 푸르른 숲처럼 우리들의 합창은 아직 싱그럽다.
1958년 이른 봄에 사라봉 기슭에서 만난 낯선 친구들이 오선지에도 없는 제멋대로의 목청을 돋구어 부르기 시작한 제1악장- 괴짜들의 합창.
여기 'CNE소식'에는 되돌이표가 수없이 찍히며 이제 제2악장 12소절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추억 못지않게 고운 추억들이 앞으로도 쌓이겠지.
영원한 쉼표가 끝을 알릴 때까지 함께 노래하듯 우리의 인생을 즐겨보자.
CNE 일을 하다보니 이렇게 많은 친구를 갖고 있다는 것이 무척 행복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학교 다닐 때 출석번호가 맨 꼴찌였던 나에게 전해오는 편지, 걸려오는 전화, 길에서 만나는 친구가 '수고했어'하는 한마디 인사말이 나를 더욱 어린애처럼 좋아하게 만든다.
지금은 남보다 조금 시간 여유가 있어서 수고하는 영광(?)을 독차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누가 수고를 하게 되어도 분명 보람을 느낄 것이다.
끝으로 모두 참여하여 이 'CNE소식'을 끝까지 이어가자고 포르팃시모로 외치고 싶다. 이 외침이 여러분의 마음과도 협화음이 되어주길 바란다.
( 1976년 6월 30일 발간 CNE소식 제 12 호 머릿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