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스웰은 1831년 스코트랜드에서 태어났다. 맥스웰은 어릴 때부터 학자로서의 자질을 보였다. 그가 14살이었을 때 타원을 일반화시키는 일을 완성했고, 그것을 에딘버러의 왕실학회에 발표했을 뿐더러 "타원곡선"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다. 1847년 맥스웰은 에딘버러대학교에 입학했고, 물리학교수의 지도하에 방과후에 기재를 사용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그는 저녁시간에 많은 실험과 공부를 하였다. 심지어는 그의 방학기간도 모두 실험에 이용되었다. 그는 세탁소위에 임시변통의 실험실을 만들었다. 실험대는 두개의 양동이와 의자위에 얹어놓은 낡은 문짝이었다. 그가 18살이 되던 1849년 까지 그는 두편의 논문을 더 작성하였다. 나는 '구르는 물체가 만드는 곡선' 이었고 다른 하나는 '탄성체의 평형' 이었다.
맥스웰은 전기장과 자기장의 수학적인 기술에 크게 기여하였다. 1855년에 맥스웰이 편리한 수학적 모형을 개발할 때까지는 전,자기현상을 기술하기 위해 패러데이에 의해 제안된 력선(전기력선, 자기력선)은 다분히 정성적인데 머물렀었다. 맥스웰은 그의 논문 '패러데이의 력선에 대하여(On Faraday's lines of force)'에서 장을 나타내는 선들과 비압축성 유체의 흐름사이의 수학적인 관련을 발전시켰다. 장의 세기, 말하자면 전기장 E 는 유체의 속도 v 에 대응된다. 이 대응은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아직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용어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즉, 우리는 마치 유체의 흐름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전기장의 다발 ΦE를 이야기한다. 맥스웰의 유체와의 대응은 1861년에 발표된 그의 유명한 4편의 논문 '물리적인 력선에 대하여(On Physical Lines of Force)' 에서 계속된다. 여기서는 그의 유체모형은 소용돌이를 포함하게 된다. 자기력선은 소용돌이의 축으로 나타내지고, 자기력은 소용돌이의 압력과 관련되어 있다. 이 모형은 인접한 소용돌이들이 같은 방향으로 돌아야만 하기 때문에 다소 복잡하다. 맥스웰은 소용돌이 사이에 구르는 접촉입자들을 도입하였다. 그는 전류와 자기장 사이의 수학적인 관계를 이 모형유체에서 접촉입자들의 운동을 생각함으로써 구하였다. 이 모형은 또, 맥스웰로 하여금 빛을 전자기현상으로 간주하게끔 하였다. "빛은 전기와 자기현상을 일으키는 매질의 횡적 요동으로 되어있다."
맥스웰방정식이라고 불리우는 전기장과 자기장 사이의 수학적인 관계는 모든 전,자기현상에 대한 온전한 이론적인 기반을 제공한다. 이들 식은 그 간단성과 우아함에서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볼쯔만으로 하여금 괴테의 구절을 인용해 '이 식을 신이 썼는가?' 라고 묻게 하였다.
1871년에 맥스웰은 케임브릿지대학의 으뜸 실험물리학교수로 추대되었으며, 당시 건설중이던 카벤디쉬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그곳에서 1879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카벤디쉬연구소가 물리학 기초연구에 유수한 중심적인 연구기관이 되도록 초기의 기반을 다졌다. 맥스웰의 전기와 자기에 대한 연구는 크게 구별되어 보이는 두 분야를 모든 전자기현상을 포괄하는 통합이론으로 합쳤다. 맥스웰은 또, 열역학과 통계역학에서도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그의 이러한 업적으로 우리는 그를 갈릴레오, 뉴턴, 그리고 아인슈타인과 같은 반열 - '그들의 어깨에 서서 우리는 더 먼 자연의 지평을 볼 수 있게 되었다.' - 위에 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