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 라렌 개발이 처음 시작된 것은 지난 1997년 초. 당시 LG생활건강은 미백치약인 클라이덴의 매출이 떨어져 고심하고 있었다. 첫해에만 2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던 클라이덴의 판매량이 급격히 줄고 있었던 것.
고객들을 대상으로 매출부진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치아가 하얗게 되는 효과를 얻으려면 미백 성분이 입안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양치 시간은 40초에 불과하기 때문에 치약 형태로 만든 미백제는 한계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때 한 연구소 직원이 당시 유행하던 ‘코팩’을 보고 아이디어를 냈다. 피부에 오랫동안 붙여도 문제가 없는 팩 형태라면 치아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아이디어는 간단했지만 개발은 쉽지 않았다.
미백작용을 하는 과산화수소의 안정화부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정화 작업에만 꼬박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제품 개발이 완료된 뒤에도 클라렌은 쉽게 빛을 보지 못했다.
시장에 없던 새로운 제품이다 보니 식품의약품안전청에 관련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2년 만에 과산화수소의 함유량이 3% 이하일 경우엔 의약부외품으로 인정한다는 새로운 규정이 만들어지고 나서 클라렌은 올 2월 초에야 시장에 나올 수 있었다.
6년에 걸친 노력과 투자는 헛되지 않았다. 클라렌은 출시 두달여 만에 50억원이라는 매출기록을 세웠다. 1만원대 안팎의 저가 상품이 많은 생활용품 시장에서는 연간 매출액이 100억원을 넘으면 초히트 상품으로 인정받는다.
클라렌의 올해 매출 목표는 300억원이다. 근근이 명맥만 유지해오던 클라이덴이 클라렌과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최근 들어 매출이 30% 가량 오른 것을 보면 어느 정도의 인기인지 실감할 수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클라렌을 사기 위한 중고등학생들의 계모임까지 생겼을 정도이다.
‘코팩’에서 아이디어 얻어 6년간 연구
클라렌이 내세우는 대박의 첫번째 비결은 ‘치과 시술을 받지 않고도 간단하게 치아미백을 할 수 있어 편리하다’는 것이다. 현재 치아미백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치과의 미백시술은 미백성분(과산화수소)을 젤(gel) 형태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는 P사의 치아부착형 화이트닝제 역시 젤 형태이다.
그러나 젤 상태의 미백성분은 안정성이 떨어져 장기간 보관이 어렵고 부착력이 부족한 것으로 지적돼 왔다. 이에 반해 클라렌은 세계 최초의 건조 슬립형 제품이다. 기존의 제품과 달리 부착시 손에 묻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착중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치아에 부착한 상태로 대화를 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는 것이 LG생활건강 측의 설명이다.
미백성분을 건조 상태에서 유지시킬 수 있도록 한 클라렌의 기술은 세계 29개국에서 특허를 받을 정도로 앞선 기술이다. 6개월 단위로 사용하는 클라렌은 2주일분 1통의 가격이 7만원. 2주일분 1상자에는 윗니용, 아랫니용 각각 28개의 낱개 제품과 사용중 치아색상 변화 정도를 체크할 수 있는 색상 점검표가 들어 있다.
하루 2회, 30분씩 치아에 부착해 사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지만 LG생활건강측은 “평균 40만~200만원 정도 하는 치아미백시술보다는 훨씬 저렴한 셈”이라고 말한다.
상품 개발에 참여한 신상품TFT팀 남병욱 부장은 “치아미백시술과 동일한 성분·원리를 이용했다”면서 “서울대, 강릉대 치과대학 임상시험 결과 98%의 효과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2주일분 한통을 다 쓰고 나면 치아색을 구분하는 비타셰이드 가이드(Vita Shade Guide·치과의사용 치아색 측정단계)의 16단계 중 평균 3.5단계 정도의 미백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정도 변화면 육안으로 확연하게 구분될 정도라고 한다.
민감한 사람에게서는 간혹 잇몸 출혈, 변색, 속쓰림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표백 성분인 과산화수소 함량이 3%대(치아미백시술의 경우 8%)로 매우 낮은 편이라 인체에는 전혀 무해하다는 게 LG생활건강측의 설명이다.
품질이 뛰어나도 시장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특히 이제까지 시장에 없었던 신제품들일수록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인식되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LG생활건강측이 지난해 제품출시를 앞두고 사전조사를 한 결과 치아미백시장의 잠재규모는 700억원 선으로 분석됐다.
오랜 회의 끝에 LG생활건강측은 제품의 출시를 결정했다. 갈수록 외모 및 치아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사회적 분위기로 미루어 시장규모는 갈수록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 것.
신상품에다 홍보력을 집중했다 실패하면 회사에는 치명적이다. 하지만 마케팅 담당 조원익 상무는 제품 발매식 후 홍보비를 당초 책정했던 것보다 두배로 늘릴 것을 지시했다. 그만큼 제품에 대해 확신이 있었던 것. 조상무는 “제품 발매식에 모인 사람들의 열렬한 호응을 보고 대박이라는 감이 왔다”고 단언하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LG생활건강측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광고 공세보다는 세분화된 타깃을 집중공략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홈쇼핑을 통해 제품을 알리기 시작했고 백화점과 할인점에서 시판에 들어갔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회사로 제품 문의가 빗발쳤고 물건을 공급해 달라는 약국들의 제의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름은 TV광고로, 효능은 길거리 시연회로
LG생활건강측은 인터넷쇼핑몰까지 판매망을 다각화하고 본격적인 광고전에 나섰다. 빅모델로 떠오른 김정화씨를 기용한 TV와 신문 광고는 클라렌의 이름을 알리는 데 큰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동시에 여성잡지와 극장 등 주타깃인 여성에 집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매체에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전개했다. 주류업계나 백화점 등과 꾸준한 공동 마케팅도 실시했다. 하지만 클라렌 마케팅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벤트 전략이었다.
대학로, 신촌, 홍대앞, 강남역 등 젊은층이 많은 지역을 대상으로 내레이터 모델과 마케팅 담당자들이 직접 시연행사를 꾸준히 열었다.
처음 출시 기간에만 계획됐던 일련의 마케팅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좋게 나오자 LG생활건강측은 당분간 이를 지속할 방침이다. 남병욱 부장은 “소비자들의 제품 구매동기를 조사한 결과 이벤트가 광고 다음으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측은 앞으로도 소비자 인식을 높이는 마케팅을 집중 전개할 방침이다. 올 하반기에는 가격 부담도 줄이고 효과를 중간 확인한 후 다시 구입, 사용할 수 있도록 1주일 단위로 포장된 제품(3만5,000원)도 내놓을 계획이다.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클라렌 제조기술에 대해 29개국에서 특허를 출원하자 대만, 중국, 미국,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제품을 보고 싶다는 연락이 빗발쳤다. 홍보실 오강국 과장은 “대만, 중국과는 이미 수출 협상이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밝혔다. 올해 안에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 50억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2001년에만 약 11억 달러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미국에도 곧 진출할 예정이다. 클라렌에 비해 효능과 편리성에서 떨어지는 P사의 제품이 발매 2년 만에 3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보아 미국 시장에서 히트 상품이 되는 것도 시간 문제라고 LG생활건강 측은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