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달라진 저승<br>
[페이지] F01<br>
사진으로 보는 연극 연우무대총서1<br>
달라진저승<br>
저승에서 '태평천국의 흥망'을 공연하는 도중 생긴 일<br>
김광림 작.연출<br>
열화당<br>
[페이지] F02<br>
달라진 저승<br>
[페이지] F03<br>
사진으로 보는 연극-연우무대총서1<br>
달라진저승<br>
저승에서 '태평천국의 흥망'을 공연하는 도중 생긴 일<br>
김광림 작.연출<br>
김문호 사진<br>
열화당<br>
[페이지] 005<br>
연우무대총서를 간행하면서<br>
극단 연우무대는 척박한 연극 현실에서도 지난 십여 년 동안 창작극만을 공연해 왔다. 우리는 이십여 <br>
편의 창작극을 통해, 칠팔십년대 이 땅의 삶의 여러 형태를 무대에 올림으로써 이 시대의 갈등구조를 <br>
파악하려는 노력을 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제시대 이래 우리나라에 <br>
이식.정착되어 온 기성연극의 양식적 폐쇄성을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무대 실험과 더불어 연극행위에 <br>
대한 비민주적인 가혹한 장치외의 무대 밖에서의 싸움도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창작극 <br>
운동 십 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무대를 확장하고자 한다. 그것은 막이 내려짐과 함께 극중의 <br>
시공간이 정지되고 차단되어 버리는 연극을 책의 형태로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br>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연우무대가 열린 공간임을 재확인하고, 우리의 고답적 문화현실을 <br>
인접문화와의 결연을 통하여 극복하고자 한다. 다행히 열화당이 우리와 뜻을 함께 하여 이 작업에 적극 <br>
동참하게 되었다. 이제 독자들은 책 속의 연우무대를 만나게 된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br>
이들의 뜻있는 무대가 되기를 바란다.<br>
吳鍾佑(오종우)<br>
연우무대 대표<br>
[페이지] <br>
달라진저승<br>
저승에서 '태평천국의 흥망'을 공연하는 도중 생긴 일<br>
'달라진 저승'은 연우무대 스무번재 작품으로, 1987년 10월 15일부터 11월 29일까지 혜화동 <br>
연우소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그후 다시 12월 18일부터 1988년 1월 17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br>
재공연되었다. 이 책은 희곡 '달라진 저승'을 재공연 사진 중심으로 엮은 것이다.<br>
[페이지] 008<br>
나오는 사람들<br>
누구나 다 싫어하는----------------저승사자<br>
'태평천국의 흥망'의 주인공--------홍수전<br>
저승에 살기엔 아까운--------------여인<br>
남자가 그리운---------------------소녀<br>
가까이 하기엔 너무 위험한---------청년<br>
항상 배가 고픈--------------------사내<br>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연극의 작가--작가.연출가<br>
각 배역은 공연이 진행되는 도중 대본에 없는 내용일지라도 위에서 설정된 성격에 부합하는 행동을 <br>
극의 진행과 관계없이 보여줄 수 있다.<br>
[페이지] 009<br>
이 연극을 관람하러 온 관객들은 이제 막 죽어 저승으로 온 사람으로 취급된다. 극장문을 통과할 때 <br>
관객들은 저승문을 통과하는 느낌을 받게 되며, 매표나 안내 등을 맡은 스탭들도 의상과 분장을 통해 <br>
저승의 사람처럼 보여진다. 원형무대가 중앙에 놓여 있고, 회전판이 원형무대를 가로지르고 있다. <br>
뒤편에는 열고 닫을 수 있는 붉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커튼 뒤쪽에는 홍수전의 단이 있다. 무대 <br>
위와 홍수전의 단 위에는 직육면체의 상자들이 놓여 있으며, 무대 측면에 저승에 새로 온 사람들을 <br>
위해 환영공연을 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중음신들의 세계를 암시하는 새소리 물소리 <br>
들려오면서 무대 점차 어두워진다.<br>
[페이지] 010<br>
[페이지] 011<br>
[막] 1막<br>
1. 프롤로그<br>
팻말 '중국 청나라 시대의 이야기' 무대에 걸려 있다.<br>
[홍수전] 천하가 요마들의 손에 휘어잡혀진 지 수백년,<br>
[소녀] 땀흘려 일하는 농민들,<br>
[청년] 굶어 죽지 안을 만큼의 식량마저도 요마들의 욕망을 채워 주기 위해 빼앗긴다.<br>
[일동] 난리가 나지, 난리가 나.<br>
[여인] 광부들은 땅 속에서 석탄과 철을 캐낸다.<br>
[사내] 자신들의 목을 벨 칼과, 가슴을 찌를 창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시체를 태워 줄 연료를 <br>
구하기 위해.<br>
[일동] 난리가 나지, 난리가 나.<br>
[여인] 공인들은 채찍을 만든다.<br>
[청년] 자신들을 매질하기 위해.<br>
[홍수전] 백성들은 자꾸 자식을 낳는다.<br>
[소녀] 요마들의 일꾼이 될 자식들을.<br>
[사내] 그들은 전쟁터에서 피흘려 싸운다.<br>
[여인] 요마들의 부귀영화를 지켜 주기 위해.<br>
[일동] 난리가 나지, 난리가 나.<br>
[여인] 이 세상에 아이를 낳아 무엇을 만들건가?<br>
[일동] 요마들의 손발로 키울건가? 요마들의 군대로 키울건가? 요마들의 제물로 키울건가?<br>
[사자] 잠깐! (사자, 커튼을 젖히고 나온다) 여러분 기쁜 소식을 알리겠읍니다.<br>
[페이지] 012<br>
배우들, 어리둥절해 한다. 두 명의 배우는 사자가 정면으로 걸어나올 수 있도록 무대 회전판을 <br>
일직선으로 고쳐 둔다.<br>
[사자] 오늘 이 공연이 있기까지 음으로 양으로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우리 저승의 대왕님께서 <br>
오늘 이 자리를 빛내기 위해 특별히 참석하시겠다는 전갈을 방금 받았읍니다. 여러분 모두 기쁜 <br>
마음으로 대왕님을 맞을 준비를 해 주시고, 특히 배우들, 긴장 풀지 말고 실수없이 해 주시기 <br>
바랍니다. 막간을 이용해서 앞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동고동락할 저승사자로서 한 말씀 드리겠읍니다. <br>
여러분들이 얼마간 머물게 될 이 저승이라는 곳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br>
이곳은 누구나가 한번은 지나야 할 일종의 대기소라고 하겠읍니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br>
있을지 모르겠읍니다마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저승은 상당히 달라졌읍니다. 이곳은 여러분들이 알고 <br>
있는 무시무시한 저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자유가 있고 희망도 있고 삶의 보람도 있을 수 <br>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승에서는 여러분들이 복리후생은 물론 문화 활동을 위해서도 여러가지 <br>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읍니다. 오늘의 이 공연도 바로 그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br>
있겠지요. 자, 그러면 이 작품의 작가이자 연출가이신 김광림 선생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박수로 <br>
맞아 주시기 바랍니다. 대왕님이 오실 때까지 작품에 관한 간단한 소개의 말씀이 있겠읍니다.<br>
[연출가] 오늘 여러분들이 보시게 될 '태평천국의 흥망'이라는 연극은 옛날 중국이라는 나라에 <br>
살았던 홍수전이라는 인물과 그가 세운 태평천국이라는 나라의 이야기로서 인간 홍수전의 야망과 혁명, <br>
타락과 멸망의 과정을 통해 인간의 참모습을 들여다보자는 데 그 의의가<br>
[페이지] 013<br>
있읍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저승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전 이 작품의 집필과정에서 여러가지 제약을 <br>
받았읍니다. 뿐만 아니라---<br>
위 연출가의 대사가 진행되는 중에, 무대감독이 나와 사자를 불러 대왕역을 맡은 배우가 무대 밖에서 <br>
채찍을 놓자 객석등 켜진다.<br>
[사자역의 배우] 여러분 죄송합니다. 대왕님역을 맡으신 이상우 씨가 사정상 출연하지 못하게 <br>
되었읍니다. (분장실 쪽을 가리키며) 하지만 저 안에 계신 진짜 연출가 김광림 씨께서 대왕님 나오는 <br>
장면을 버저소리로 처리할 수 있다고 하시는데요. 그렇게 해서라도 이 연극을 계속 보시겠다는 분도 <br>
계실테고, 아니면 무슨 연극을 이렇게 무성의하게 하느냐고 기분이 언짢으신 분도 계시겠고, 어쩌면 이 <br>
부분도 연극일지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죠. 어쨌든 연극은 계속될테니까 지켜 봐 주시기 <br>
바랍니다. 이봐요! 00씨(연출가역의 배우 이름) 계속하세요.<br>
[연출가역의 배우] (멋적어 하다가) 그럼, 다시 하겠읍니다.<br>
조명,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연출가는 아까 끊어졌던 부분에서 다시 시작한다.<br>
[연출가] 솔직히 말씀드려 저승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이 작품의 집필과정에서 전 여러가지 <br>
제약을 받았읍니다. 뿐만 아니라---<br>
[사자] 이봐! 공개석상에서 할 말이 따로 있다는 것도 모르나?<br>
[연출가] (머뭇거리다가) 한 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이제 저승에서도 혁명에 관한 연극을 할 수 있게 <br>
되었다는 점입니다. 아시다시피 혁명이란 급격한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혁명은 필연적으로 폭력을<br>
[페이지] 014<br>
수반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여러분들에게 보여 드리는 것은 단지 연극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자! <br>
곧 연극이 시작되겠읍니다.<br>
연출가, 배우들을 모으나 사자, 아까 그 장면은 안 되니까 다음 장면부터 하라고 지시한다.<br>
[청년] 아니, 왜 아까 그 장면은 안 된다는 겁니까?<br>
[사자] (연출가를 보며) 아까 그 장면은 문제가 많다고 그랬잖아!<br>
[연출가] (배우들에게 공연히 관한 이런 저런 지시를 내린 후 객석을 향해 자! 그럼 두번째 장면 <br>
'홍수전의 고향집'부터 시작하겠읍니다.<br>
2. 홍수전의 고향집-1843년<br>
팻말 '홍수전의 고향집'드러나고, 회전판 가로로 고정시켜 두자 홍수전의 모친역을 맡은 여인과 <br>
형역을 맡은 청년 무대 중앙으로 나온다. 나머지 배우들 자기 자리에 앉는다.<br>
[여인] 수전이가 돌아올 날이 지났는데 어찌 된 일이냐? 이번 시험이 열번째냐, 열한번째냐?<br>
[청년] 저기 마을 입구의 웅덩이엔 비만 오면 온갖 오물들이 모여들어 냄새가 지독하지.<br>
[여인] (혀를 차며) 이번에 또 낙제하면 주위 사람들의 실망은 둘째치고라도 본인이 또 얼마나 <br>
낙심을 하겠느냐?<br>
[청년] 파리, 모기, 온갖 못된 벌레들이 거기에 보금자리를 꾸미고서 나쁜 병들을 옮긴다던데---<br>
[여인] 원 생원 되기가 그렇게 어려워서야 어디--- 우리 수전이만큼 똑똑한 아이가 이 광동성 바닥에 <br>
어디 또 있었느냐? 일곱살에 학문을 시작해서 여다섯 되는 해에 예비고사에 합격했지, 그때 홍씨 <br>
가문에 수재났다고 온 동네에 난리가 나지 않았느냐? 너도 생각나지?<br>
[청년] 그런데 바로 그 옆에 서 있는 학교엔 이 근처 마을의 젊은이들이 모두 모여 글공부를 <br>
한다는데.<br>
[여인] 그 아이 나이가 벌써 스물아홉이니 이번에도 또 낙제하면 장가도 들이고 집에서 농사나 <br>
짓도록 해야겠다. 농사꾼 집아에서 관리가 난다는 꿈은 아예 꾸지도 말았어야 하는 건데---<br>
[청년] 글만 열심히 배우면 누구든지 천하에서 제일가는 권력자가 될 수 있다고. 흥!<br>
[여인] 우리 수전이가 언제나 돌아오려나--- (두 배우, 동시에 가면을 벗고 자기 자리에 앉는다)<br>
[페이지] 015<br>
[페이지] 016<br>
3. 하느님의 모습<br>
팻말 '하느님의 모습' 드러나고 홍수전, 홍수전의 단에 비스듬히 누워있다.<br>
[홍수전] 내 나이 서른에 아직 입신을 못하고 이렇게 몸마저 병져 누었구나. 이제 이 나이에 다시 <br>
과거에 응시하여 관리가 된다 해도 재상자리까지 오르기는 틀린 일. (머리맡에 놓인 성경책을 <br>
집어들며) 칠년전 어느 선교사에게서 얻은 이 책. 마음이 괴로울 때, 몸이 아플 때, 어려운 일이 닥칠 <br>
때마다 늘 내 머리속을 지나가는 것은 바로 이 책에 쓰인 말들이었다. (뭔가 결심한 듯) 내 이 책을 <br>
열심히 공부하여 재상이 된 것보다 더 큰 힘으로써 이 난세를 구하여 보리라. 하느님, 하느님---<br>
홍수전, 환상의 상태로 빠져들어 하느님을 본다. 꿈속을 상징하는 조명, 온몸에 온갖 물건들을 <br>
치렁치렁 걸고 있어 전혀 하느님 같아 보이지 않는 사내가 하느님의 역할을 한다.<br>
[사내] (상자 위에 올라서서) 천하의 인간이 모두 나의 자식이거늘, 어찌 아직도 나를 모른단 <br>
말인가? 땅 위에서 아름답고 살라고 내가 인간을 만들었거늘, 날이 갈수록 점저 흉한 모습으로 변해 <br>
가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홍수전에게 다가가 M16 대검을 대주며) 그대는 지상으로 내려가 인간들로 <br>
하여금 나를 알게 하라. 이 검으로 악마를 토벌하라.<br>
홍수전, 검을 받고 일어나려 할 때 여인,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무대 앞으로 나선다.<br>
[여인] 아니, 결국 저 옷을 입히고야 말았군요. 그렇게 안 된다고 했는데.<br>
조명, 저승의 현실로 바뀐다.<br>
[연출가] (사내와 홍수전에게) 신경쓰지 말고 계속하시오.<br>
[여인] 하지 마세요.<br>
[연출가] 왜 당신이 나서서 이래?<br>
[여인] 당신이 하느님을 모독했잖아요. 하느님이 왜 저런 쓰레기들을 걸쳐야 하죠. 여기가 <br>
저승이라고 이렇게 하느님을 무시해도 되는 거예요.<br>
[연출가] 다 이유가 있으니까 조용히 하세요. (홍수전에게) 계속하세요.<br>
[여인] 하지 마세요.<br>
[연출가] 계속해요.<br>
[페이지] 017<br>
[여인] 하지 말아요.<br>
[사자] (자기 자리에서 나와) 그까짓 의상 가지고 왜들 이래? (관객을 향해) 죄송합니다.<br>
[여인] 무슨 하느님의 모습이 저렇죠. 이건 좀 너무하잖아요.<br>
[사자] 저게 하느님의 옷이야? 음, 하긴 저 옷은 하느님의 옷으로는 문제가 있는 것 같군!<br>
[사내] 저도 이런 누더기는 입고 싶지 않습니다요.<br>
[사자] (사내에게) 넌 좀 가만있어. (연출가에게) 연출가 선생, 우리 이 옷 벗기고 계속합시다.<br>
[연출가] 안 됩니다.<br>
[사자] 안 되다니.<br>
[연출가] 저 의상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읍니다.<br>
[사자] 무슨 의미?<br>
[연출가] 저런 하느님의 모습을 보고 아무 느낌도 들지 안습니까?<br>
[여인] 신성모독입니다.<br>
[연출가] 이건 하느님에 관한 연극이 아니라 인간에 관한 연극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통해 인간을 <br>
비추어 보자는 겁니다. 왜 하느님을 저렇게 그렸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br>
[사자] (연출가의 의견에 공감한다는 듯) 음, 알겠어! 좋-아, 어서 계속들 하시오.<br>
여인, 계속 반발하려 하자 사자, 협박의 눈길을 보내고 여인, 할 수 없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다시 <br>
극이 진행된다.<br>
[사내] 이 검으로 악마를 토벌하라.<br>
[홍수전] (검을 받아들고)<br>
나는 하느님의 친아들이며 예수의 동생이다<br>
오늘 세상이 망한 것은 이기주의에 있다<br>
원래 천하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한 집안<br>
온 천하의 형제자매여, 하느님의 진정한 도에 따르고<br>
하늘의 위엄, 하늘의 훈계를 두려워하고<br>
우리의 몸과 세상을 맑게 하며, 나와 남을 바로잡아<br>
강물 한복판에 의연히 서서 만세를 만회해 보자<br>
[페이지] 018<br>
[페이지] 019<br>
[페이지] 020<br>
4. 광서성-1850년<br>
팻말 '광서성-1850' 드러난다. 홍수전, 사색하듯 앉아 있고, 나머지 네 명의 배우들, 백성 역할을 <br>
한다.<br>
[배우1]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겹친 흉년과 폭정, 터무니 없는 세금으로 광서성은 거지와 도둑이 <br>
휩쓰는 아수라장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br>
[배우2] 농토는 피폐하고 도덕은 타락하였다. 도둑의 떼와 더러운 거지들로 가득 찬 거리. 농민들은 <br>
땅을 버리고 상인들은 보따리를 메고 떠난다. 조상의 땅을 버리고 낯선 땅으로.<br>
[배우3] 재작년에 죽은 막내놈 앞으로 세금이 나왔소.<br>
[배우4] 세금을 못 내 마누라를 뺐겼읍니다요.<br>
[배우1] 지난 달에 백오십냥어치 팔렸는데, 세금이 이백냥이라오.<br>
[배우2] 풀뿌리로 연명하다가 딸년이 병들어 죽었소.<br>
[배우3] 세금을 깍자고 사정하다가 관가에 끌려가 얻어맞고 다리 병신이 되었소.<br>
[배우4] 기껏 고생에서 좋은 일 시킬거면 일은 해서 무얼하나? 그냥 굶고 말지.<br>
[배우1] 다른 지방으로 가 보면 어떨까?<br>
[배우2] 가긴 어딜 가나? 죽으나 사나 제 땅에서 살아야지.<br>
[일동] 그럼 우린 어떡하나?<br>
[배우3] 남지도 떠나지도 못하고,<br>
[배우4]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br>
[배우1] 먹을 것 입을 것 없어,<br>
[배우2]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br>
[일동] 맞아 죽고 홧병에 죽고<br>
그나마 살아 남으면<br>
거지 되고 도둑 되고<br>
그것도 안 되면 우린 무엇이 되나?<br>
홍수전, 자기 자리에 앉아 있고 나머지 배우들, 사방을 흩어져 관객석에 들어가 다음 대사를 <br>
시작한다. 처음에는 속삭이듯 그러다가 점점 큰소리가 되어 관객석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혼란을 <br>
야기시킨다.<br>
[배우1] 강 건너 청대문집 창고엔 쌀이 썩어서 수십 가마를 태워 버렸다더라.<br>
[배우2] 오지주집 흰 개는 기름만 먹고 살이 쪄 잘 걷지도 못한다더라.<br>
[배우3] 어느 놈은 첩이 열둘에 자식새끼가 오십인데, 이번에 나이 칠십에 새로 첩을 얻어 또 애를 <br>
낳았다더라.<br>
[배우4] 처변 귀에 반짝이는 돌덩이를 달았는데, 치렁치렁 너무 무거워 귓밥이 찢겨져 나갔다더라.<br>
일동, 무대 위로 올라와 마주보며<br>
[배우1.2] 어느 놈은 소리를 잘해 부잣집 뒷뜰에 재롱꾼으로 뽑혀갔고,<br>
[페이지] 022<br>
[배우3.4] 어느 년은 몸이 잘나 권문집 건너채에 씨받이로 들어갔는데---<br>
[일동] 우린 누가 돌보아 줄건가?<br>
우리는 주린다<br>
우리는 춥다<br>
우리는 외롭다<br>
우리는 가난하다<br>
우리는 불쌍하다<br>
누가 우리를 돌보아 줄건가?<br>
위 대사를 반복하던 중 배우들 흥분이 더욱 심화되면서 함성과 소요커지고 혼란이 극도로 치달았을 <br>
때, 버저(저승대왕) 울리고 배우들 정지 상태가 된다. 이때 저승사자, 무대 한가운데로 나온다.<br>
[사자] 저승은 질서의 사회다. 혼란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br>
사자의 손신호에 의해 배우들 풀어지고, 사자의 명령에 의해 배우들,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br>
[사자] (거칠게 연출가에게 다가가) 도대체 당신이 여기 앉아 있는 이유가 뭐지? (연출가의 대본을 <br>
낚아채 듯 빼앗으며) 각본에 그렇게 난장판을 치도록 되어 있소? (대본을 뒤적거리다가) 이것 봐! <br>
난장판이 되기 전에 홍수전이 일어나 설교하도록 되어 있지 않느냔 말이야? 그런데 저렇게 버티고 앉아 <br>
있는 이유가 뭐야?<br>
[연출가] 공연이 꼭 대본대로 되는 건 아닙니다. 홍수전은 지금 일어서고 싶지가 않은 겁니다.<br>
[페이지] 023<br>
[사자] 일어서고 싶지가 않아? 연극이 각본과 달리 배우들의 기분에 다라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br>
진행된다면 이건 사전에 각본을 놓고 이를 검토한 우리의 노력을 무시하는 행동 아닌가? 각본 그대로 <br>
공연하도록 배우들에게 지시하시오.<br>
[연출가] 연극은 군대의 작전과는 다릅니다. 이래라 저래라 지시로써 되는게 아닙니다. 배우가 <br>
느껴야죠. 느낄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br>
[사자] 그럼, 느낄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주면 될 것 아니야. 도대체 홍수전에 저렇게 버티고 앉아 <br>
있는 구체적 이유가 뭐낸 말이야? 반항하는 건가?<br>
[연출가] (관객석을 향해 무언가 바라보듯) 저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지요.<br>
[사자] 사랑이라니? 난데없이 사랑은 무슨 사랑이야? 당신의 그 문학적인 비유는 도저히 알아먹을 <br>
수가 없어?<br>
[연출가] 일어서야 할 때가 아직 안 됐다는 겁니다. 더 기다려야 한다는 거죠. 살 속의 종기가 곪아 <br>
그 살이 썩어 터지도록, 피고름이 썩는 냄새가 방안에 꽉 배이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고통과 <br>
거기에 따르는 희생이 수반된 행동만이 참된 결실을 맺습니다. 참된 결심만이 진실한 사랑의 <br>
표현입니다.<br>
[사자] 난 문학도 모르고 철학도 몰라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쉽게 설명하시오.<br>
[연출가] 알겠읍니다.<br>
[페이지] 024<br>
5. 사랑의 형식<br>
연출가, 홍수전을 부르고 청년과 여인에게 눈짓으로 다음 장면 하라고 지시한 후 팻말을 '사랑의 <br>
형식'으로 바꾼다. 홍수전, 여인, 청년 서로 신호를 주고 받은 후 다음 장면 시작한다. 여인이 <br>
홍수전의 옷을 벗기고 몸에 감긴 붕대를 풀자, 여기 저기 썩은 피고름이 보인다.<br>
[청년] (홍수전에게 다가가며) 썩을 것은 썩고 터질 것은 터져야 한다. 자를 곳은 잘라내고 없앨 <br>
것은 없애야 한다.<br>
[여인] (마리아가 예수를 대하는 듯한 느낌으로) 우리들의 고통이 곧 이분의 고통입니다. 이분은 <br>
하늘입니다. 이분은 우리들입니다.<br>
[연출가] 이것이 우리가 표현하고자 했던 사랑의 형식입니다.<br>
조명, 배우들, 저승의 현실로 돌아온다.<br>
[페이지] 025<br>
6. 연극의 즉흥성에 관한 문제<br>
[사자] 설명을 하면 할수록 더욱 복잡해지는군. (대본을 뒤지며) 그런데 지금 그 장면이 어디에 나와 <br>
있지?<br>
[연출가] 대본에는 없읍니다.<br>
[사자] 아니, 뭐라구? 각본에도 없는 장면을 또 공연했다는 건가? (연출가에게 다가가 대본으로 <br>
얼굴을 때린 후 대본을 집어던진다)<br>
[연출가] 저더러 알아들을 수 없으니 쉽게 설명을 해보라고 하지 않았읍니까? 연극으로 보는 게 더 <br>
쉽기 때문에 연극으로 설명을 한 것뿐입니다.<br>
[사자] 그래, 설명을 하라니까 점점 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지껄여 놓고--- 그건 좋다고 <br>
칩시다. 각본에도 업슨 장면을 어떻게 저렇게 금방 만들어 낼 수 있는가 말이야? 이건 아무리 봐도 <br>
계획적이고 고의적이었어.<br>
[페이지] 026<br>
[연출가] 혼란스런 장면은 무조건 못하게 하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읍니다. 연극이 <br>
즉흥적이지 못하면 의미가 없읍니다.<br>
[사자] (무대 중앙에 서서 차렷 자세를 취하며) 경고한다.<br>
배우들, 정면을 향해 차렷 자세를 한다. 그러나 이때 소녀는 잠들어 있으며, 사내는 무대 위에 없다.<br>
[사자] 이 시간 이후 각본에 없는 장면을 공연하는 데 동조하거나 방관하는 자는 처벌하겠다. (잠든 <br>
소녀를 발견하고) 아니! 이것이, 어서 일어나지 못해? 누가 공연 도중에 잠을 자라고 했나? <br>
(연출가에게) 그리고 그 걸레조각 같은 걸 잔뜩 걸친 녀석은 어딜 간 거야?<br>
배우들, 객석을 둘러보며 사내를 찾는다. 연출가, 객석의 뒤쪽에 웅크리고 있는 사내를 발견한다.<br>
[연출가] 이봐,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br>
[사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br>
[사자] 너 거기서 뭐 했어?<br>
[사내] 아무것도---<br>
[사자] 뭐 했어?<br>
[사내] (겁먹은 소리로) 배가 고파서 빵 좀 먹었는데요---<br>
[사자] 정신이 나갓어! 누가 공연 도중 빵을 먹으라고 그랬어! 어서 제자리로 돌아와. (사내 <br>
제자리로 돌아오자 사내의 머리를 두드리며) 다음부터 그러지마! (배우들에게) 아까 그 장면부터 다시 <br>
해.<br>
[페이지] 027<br>
배우들, 홍수전이 일어나는 부분부터 다시 시작한다.<br>
[사내.청년] 어느 놈은 소리를 잘해 부잣집 뒷뜰에 재롱꾼으로 뽑혀갔고.<br>
[여인.소녀] 어느 년은 몸이 잘나 권문집 건너채에 씨받이로 들어갔는데,<br>
[일동] 우린 누가 돌보아 줄건가.<br>
홍수전, 자기 자리에 앉아 있고, 나머지 배우들 움직이며 소리친다.<br>
[배우1]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한 주먹의 밥,<br>
[일동] 긴 겨울밤을 편히 재워 줄.<br>
[배우2] 우리가 갖고픈 것은 한 뼘의 땅,<br>
[일동] 하루어치만큼만 일할 수 있는.<br>
[배우3] 우리가 듣고픈 것은 커다란 소리,<br>
[일동] 일어나라, 일어나라.<br>
일동, 움직임의 선을 바꾸면서, 회전판을 세로로 돌려 놓으면서 회전판 안쪽으로 들어간다.<br>
[일동] 우리는 주린다<br>
우리는 춥다<br>
우리는 외롭다<br>
우리는 가난하다<br>
우리는 불쌍하다<br>
누가 우리를 돌보아 줄건가?<br>
홍수전, 홍수전, 홍수전---<br>
[페이지] 028<br>
7. 홍수전 일어서다<br>
연출가, 팻말을 '홍수전 일어서다'로 바꾼다.<br>
[홍수전] (일어나며) 너희의 몸과 마음을 맑게 하라. 우상을 타파하라.<br>
[일동] 우상을 타파하라.<br>
[홍수전] 세계는 모두 하느님의 것이다.<br>
[일동] 하느님의 것이다.<br>
[홍수전] 세계는 모두 형제자매다.<br>
[일동] 형제자매다.<br>
[홍수전] 하느님의 물건을 형제자매는 나누어 쓰라.<br>
[일동] 나누어 쓰자, 나누어 쓰자!<br>
[홍수전] 나의 친아버지 하느님의 계시가 내리셨다.<br>
[일동] (무릎을 꿇고 엎드리며) 계시가 내리셨다.<br>
[홍수전]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며 예수의 친동생이다. 오늘 우리는 나의 친아버지 하느님 아래 <br>
형제자매로 뭉치어 하나의 세계를 시작하였다. 우리는 주변의 모든 우상을 타파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br>
수많은 우상이 너희들 가운데 남아 있음을 나는 안다. (일동의 시선이 홍수전을 따른다) 그 우상은 <br>
너희 눈 속에 살아있는 우상이니 일찌기 나의 친아버지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가 두 눈으로 본 <br>
것을 명심하여 잊지 않도록 하되 스스로 삼가하여 조심하라 하셨으니, 이는 두 눈으로 본 것을 향하여 <br>
엎드려 예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br>
[페이지] 029<br>
지 말라는 말씀이시다. 너희는 눈의 포로가 되지 말며, 눈의 그물속에 사로잡히지 말며, 눈이 만든 <br>
우상의 노예가 되지 말라. 또한 오늘 너희가 세계는 모두 하느님의 것임을 외치었다. 너희는 너희의 <br>
모든것을 하느님 앞에 바쳤다. 하지만 아직 너희가 너희의 것으로 지키고 있는 것이 있느니 그것은 <br>
너희의 마음이다. 세상의 재물만이 하느님의 것이 아니라 모든 정신도 하느님의 것이다. 너희의 마음을 <br>
깨끗이 비우라. 마음을 가난하게 하라. 또한 너희가 오늘 서로 형제자매임을 언약하였으나 너희는 <br>
아직도 너희의 피붙이와 하느님이 맺어 주신 형제자매를 가르고 있음을 내가 안다. 너희의 피붙이도 <br>
하느님이 맺어 주신 것이고, 새로 얻어 형제자매도 하느님이 맺어 주신 것이니 이를 가르지 말라. <br>
하느님 앞에 너희는 모두 똑같은 자식이다. 하느님 앞에서 너희는 앞도 뒤도 위도 아래도 없는 것이니 <br>
하느님 앞에 감사하라. 이 땅 위에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질 때가지 형제자매간에 동침을 금한다.<br>
이때, 여인 반발하듯 일어나 관객을 향해 앞으로 나간다.<br>
[홍수전] 결혼한 부부도 형제자매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정절은 하느님의 계율이다. 이제 나의 <br>
친아버지 하느님께서 내리신 계시는 이것이다.<br>
위 홍수전의 대사 마지막 부분쯤 가서 여인, 대사 시작한다.<br>
[여인] (관객들을 향해) 사랑을 통해 즐거움을 나누어 많은 자식이 번창<br>
[페이지] 030<br>
하도록 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인데, 어째서 부부간의 동침을 금한단 말인가요?<br>
이때 극중극 깨지고, 조명은 저승의 형실로 바뀐다.<br>
[연출가] 이건 하느님에 관한 연극이 아니라니까요.<br>
[여인] 그럼, 왜 자꾸 하느님 얘기가 나오는 거죠. 게다가 하느님을 이상하게 만들어 놓잖아요.<br>
[연출가] 이건 홍수전의 환상 속에 나타났던 하느님 얘깁니다.<br>
[여인] 홍수전의 환상이요? 어떤 하느님도 부부간의 동침을 금한 적은 없읍니다.<br>
[연출가] 역사책에 그렇게 써 있다니까!<br>
[여인]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역사책?<br>
[사자] 역사책에 그렇게 써 있대잖아! (협박의 눈길로) 들어가!<br>
[연출가] 어서 자리로 돌아가요.<br>
여인, 사자의 협박에 할 수 없이 자리로 돌아가고, 연극은 먼저 장면에서 다시 시작된다.<br>
8. 음란죄<br>
[홍수전] 형제자매간의 동침을 금한다. 결혼한 부부도 형제자매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제 나의 <br>
친아버지 하느님께서 내리신 계시는 이것이다. 정절은 하느님의 계율이다.<br>
소녀는 수전의 옷을 벗긴 후 마른수건으로 수전의 몸을 닦아 준다. 곪은 상처는 없어지고 깨끗한 <br>
살이 드러난다. 소녀, 경이에 찬 눈으로 수전의 몸을 바라본다.<br>
[홍수전] 그분은 나의 몸을 통해 말씀하셨다. 맑은 세상을 세우라는 뜻을---<br>
소녀, 수전의 몸을 끌어안으며 드러난 살 위에 입맞춘다.<br>
[홍수전] 신음하는 백성이 없고, 춥고 외로운 자가 없는 세상을 세우라는 뜻을--- 하느님의 나라를 <br>
'태평천국'이라 하라고 이르셨다.<br>
위 홍수전의 대사가 계속되는 동안 소녀는 수전을 계속 끌어안고 있다. 사자, 화난 얼굴로 무대에 <br>
나온다.<br>
[사자] 무슨 짓이야? 어서 끌어내려!<br>
사내가 소녀를 끌어내리자 소녀, 이번에는 사내를 껴안는다. 조명, 저승<br>
[페이지] 031<br>
의 현실로 바뀐다. 나머지 배우들, 이를 각기 지켜 보고 있고, 사내와 소녀는 서로 껴안으며 좋아하고 <br>
있다.<br>
[사자] 음란행위는 처벌의 대상이란 걸 모르나?<br>
사내, 겁에 질린 얼굴로 소녀를 떼어 놓는다.<br>
[소녀] 왜 이러세요? 내가 뭘 잘못했나요? (사자를 보고 뭔가 결심한 듯) 어떡하라는 거예요? 여기선 <br>
더이상 못 살겠어요 연극이구 뭐구 다 귀찮아. 지옥이든 천당이든 아무데고 빨리 보내줘요. 도대체 <br>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리란 거예요?<br>
[사자] 널 음란죄로 처벌하겠다.<br>
[연출가] 처벌은 곤란합니다.<br>
[사자] 왜?<br>
[연출가] 공연을 진행시킬 수가 없잖습니까?<br>
[사자] (관객을 가리키며) 저 사람들 중에 하나 골라 쓰면 될 것 아니요?<br>
[연출가] 골라 쓰다니요? 배우는 아무나 하는 건 줄 아십니까?<br>
[사자] 그러니까 골라서 쓰라고 하지 않았소? 왜? 뭐가 잘못됐소? 지금 말 가지고 시비거는 건가?<br>
[여인] 저도 이 아이의 생각에 동감입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기다리고 있어야 하죠. <br>
우리에게 무슨 희망이 있나요? 저승의 생활이 재미가 있나요, 아니면 생활환경이 좋은가요, 빛이 <br>
있나요,<br>
[페이지] 032<br>
맑은 공기가 있나요? 이런 데서 무작정 기약없이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요?<br>
[사자] 그럼 가라! 가! 가! 가면 될 거 아니냐? 하하하---<br>
여인, 기가 막혀 할 말이 없다는 듯 서 있다.<br>
[사내] 갈 데가 있어야 갈 것 아닙니까? 그리구 전 늘 배가 고픕니다. 아니 뭐 그걸 음식이라구 <br>
주시는 겁니까? 맛도 없고 양도 부족하고 그걸 먹고 어떻게 살아가라구--- 아니 뭐---<br>
[사자] 그건 정신자세 문제야.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은데 혼자 불평을 한다는 건 당시한테 문제가 <br>
있다는 증거야.<br>
[청년] (발딱 일어서며) 아니 배고파 죽겠다는데 정신자세는 무슨 정신 자세야! 이런 마당에 연극은 <br>
해서 뭘 해! 우리가 먼저 살구 봐야지. 아 연극이 밥 먹여 주나? 우리가 죽을 지경인데.<br>
[홍수전] 아, 아무리 죽을 지경이라도 그렇지, 판 벌여 놓고 이런 식으로 깨버리면 우리들 자신은 <br>
둘째치고 보는 사람은 뭐가 되며 또 이렇게 연극을 할 수 있도록 선처해 주신 대왕님, 그리고 사자 <br>
저분의 얼굴은 뭐가 되는가 말이야.<br>
위 홍수전의 대사 진행디는 도중 배우들, 다음의 대사를 하면서 떠들게 되자 무대는 아수라장이 <br>
돼간다.<br>
[청년] 당신은 도대체 누구 편이야?<br>
[사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뭐, 밥이라도 제대로 먹이고 우리 기분도 좀 맞춰 줘 가면서 연극을 <br>
하라고 그래야지 무조건 나가서 하라고 하면 할 맛이 납니까?<br>
[소녀] 맞아요, 이런 식으로는 연극 할 수 없어요.<br>
소요가 커지자, 버저소리 울리고 일제히 정지상태가 된다. 사자의 손신호로 긴장 풀어지고 배우들, <br>
다시 불평을 토로하려 할 때 사자의 명령이 떨어진다.<br>
9. 저승의 규칙<br>
[사자] 집-합! 동작 봐라. 원위치! 위치로! 원위치! 위치로! 원위치! 위치로!-<br>
사자의 구령에 의해 배우들 바삐 움직이다가 회전판 위에 일렬로 선다.<br>
[사자] 너희들은 조금만 풀어 주면 늘 이 모양이야. 좋은 말로 타일러서는 말을 들어먹질 않아. <br>
편하면 편할수록. 배가 부르면 부를수록.<br>
[페이지] 033<br>
너희같은 것들에게 자유는 아편이나 마찬가지야. 주면 줄수록 점점 더 많은 걸 요구할 뿐 스스로 <br>
억제할 줄을 모르고 조금만 불편하면 불평 불만만 쏟아져 나오고, 여기는 저승야! 그런 게 이 <br>
저승사회에서 통할 줄 아는가? 응? 너희들 좋은 데 가도록 불철주야 노력해온 이 마당에 웬 불만이야. <br>
옛날 생각을 해봐. 옛날엔 죽은 사람 밥 줄 필요없다고 밥도 못 얻어 먹었어. 그리구 지금 입고 있는 <br>
옷만 해도 그래. 옛날엔 모두 발가벗겨 놓았어. 우리 저승사회가 옛날에 비해 엄청나게 살기 잎호아진 <br>
이 시점에서 도대체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말을 들어먹지 않는 이유가 뭐냔 말이야? 대답해 봐. <br>
(사내에게 다가가) 너!<br>
[페이지] 034<br>
[페이지] 035<br>
[사내] (목에 걸린 번호판의 숫자를 크게 복창한다) 삼천칠백구십이!<br>
[사자] 이유가 뭐야?<br>
[사내] (부동자세로) 네, 이유 없읍니다.<br>
[사자] 이유 없어?<br>
[사내] 네, 없읍니다.<br>
[사자] 그런데 왜 말을 안 들어?<br>
[사내] (작은 목소리로) 시정하겠읍니다.<br>
[사자] (사내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시정하겠읍니다---<br>
[사내] (큰소리로) 시정하겠읍니다!<br>
[사자] 잘할 수 있어?<br>
[사내] 네! 있읍니다.<br>
[사자] 정말이야?<br>
[사내] 네! 정말입니다.<br>
[사자] 약속하는 거지?<br>
[사내] 네! 약속합니다.<br>
[사자] 좋다. 위치로!<br>
[사내] ('위치로' 복창하고 자기 자리에 가 앉는다)<br>
[사자] (소녀에게) 그 다음 너! 생기긴 예쁘장하게 생겨 가지구 왜 그렇게 속을 썩여?<br>
소녀, 아무 대답이 없다.<br>
[사자] 내 말이 안 들리나?<br>
[소녀] (귀찮다는 듯) 들려요.<br>
[사자] 그럼 대답을 해봐.<br>
[소녀] 뭘요.<br>
[사자] 뭘요? 뭘요, 뭘요라니?<br>
소녀를 후려치자 소녀, 쓰러져 우나.<br>
[소녀] (쓰러진 체로) 내가 뭘 잘못했단 말예요? 난 너무 외로워요, 외로워요, 외롭단 말이예요.<br>
[사자] 어서 일어나지 못해?<br>
[소녀] 나 멋진 남자 하나만 소개시켜 주세요, 네?<br>
[사자] (잠시 생각하다) 좋다.<br>
[소녀] 정말이지요?<br>
[사자] 단, 내 말을 잘 듣겠다구 약속해라.<br>
[소녀] 약속합니다.<br>
[사자] 좋다. 위치로!<br>
[페이지] 036<br>
(좋아하며 자기 자리에 가 앉는다)<br>
한편 사자와 소녀의 대화 도중 사자의 눈치를 살펴오던 연출가, 사자에게 다가선다.<br>
[연출가] 배우들에게 너무 심하게 하지 마십시오.<br>
[사자] 뭐야? 당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나? 당신 때문에 일이 다 이렇게 되었다는 걸 모르고 <br>
있느냔 말이야.<br>
[연출가] 나 때문이라니요?<br>
[사자] 당신이 각본에도 없는 장면들을 자꾸 집어 넣으니까 문제가 생겼고, 또 배우들이 당신 작품에 <br>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 보니까 이렇게 엉망이 된 거란 말이야.<br>
[연출가] 문제는 저승의 규율입니다. 애당초 내가 하고 싶은 공연을 하게 놔뒀으면 대본에 없는 <br>
장면이 생기지도 않았고, 배우들에게서 이런 저런 소리도 안 나왔을 것 아닙니까?<br>
[사자] 지금 책임회피 하는건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지, 당신 작품 하나 때문에 <br>
저승의 규율을 바꾸란 말인가? 무능한 주제에 규율 탓을 하다니.<br>
[연출가] 좋습니다. 그렇다면 무능한 사람은 물러나겠읍니다. (퇴장하려 한다)<br>
[사자] (연출가를 가로막으며) 당신의 바로 그러한 점이 잘못되었다는 거야.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br>
이기적이며 비협조적이고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태도, 나약하고 패배주의적이며 진취적인 구석이라곤 <br>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정신자세, 그것이 문제란 말이야. 생각을 해야지 물러나다니? 어디로 <br>
물러나겠다는 거요? 도대체가 그러한 정신자세로 어떻게 이 저승사회를 살아가겠단 말인가? (사이) <br>
아무말 말고 적극잎거으로 이 사태를 수습하는 데 힘쓰시오 (연출가의 반응을 무시한 채 홍수전에게 <br>
다가간다)<br>
[홍수전] (사자가 다가오자) 팔육 팔팔!<br>
[사자] 됐어, 가 봐.<br>
[홍수전] 고맙습니다.<br>
연출가와 사자의 대화 오갈 때 청년, 객석으로 숨어 버리고 여인, 사자를 외면한 채 서 있다. <br>
홍수전과 사자 대화 도중 연출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사자, 여인에게 다가간다.<br>
[여인] 협박과 회유로써 나를 설득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여자를 때리고 윽박지르고 야만스러워요.<br>
[페이지] 037<br>
[사자] 저승의 규율 앞에선 남녀평등이야. 저승의 규율은 엄하다. 저승의 규율을 무시할 땐 누구도 <br>
그냥둘 수 없다.<br>
[여인] 그게 틀렸다는 거예요. 수용인들을 사랑하고 이해해 주고 따뜻하게 감싸 주어야지 무작정 <br>
규율만 앞세워 억압하려는 건 정말 잘못된 겁니다.<br>
[사자] 무작정 억압만 하다니? 언제, 누가! 무작정 억압만 한다면 어떻게 이런 연극 공연을 할 수 <br>
있겠는가?<br>
[여인] 이번 연극만 해도 그래요. 공연을 했다는 것만 내세우기 위한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읍니다. <br>
우리에겐 우리들 모두의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있는 절실한 연극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br>
있는 환경에 대해서 말하잔 말이예요. 보세요. 꽉 막힌 공간 속에 밑도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막막한 <br>
시간---<br>
[사자] 그만해 두지.<br>
[여인] (사자의 말에 아랑곳없이) 여기에 갇혀져 있는 우리. 그런 우리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이 무엇<br>
인가? 공기가 통하지 않는 이 답답한 공간 속에 갇혀 어느날 우리는 질식해 버릴 겁니다.<br>
[사자] 그만두지 못 해?<br>
[여인] 언제 우리는 해방됩니까? 빛,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이 통하는 창문이 필요합니다. 왜 창문<br>
을 안 내주는 겁니까?<br>
[사자] 그만하란 말이야!<br>
사자, 여인을 때리자 여인, 쓰러진다. 이때 객석에 숨어 있던 청년, 자리에서 일어난다.<br>
[페이지] 038<br>
10. 인질극<br>
[청년] 그 여자에게 손대지 마라!<br>
[사자] 아니, 넌 또 왜 거기 들어가 있지?<br>
[청년] 당신 노는 꼴 좀 보려고 그랬다.<br>
[사자] 뭐야? 너 혼나고 싶어서 환장했구나?<br>
[청년] 그 여자가 옳은 말을 했다. 당신은 옳은 말을 하는 여자에게 매질을 했다. 그것이 옳은 일인<br>
가?<br>
[사자] 너 새파란 놈이 감히 어디다 대구? 어서 이리 나오지 못하겠나?<br>
[청년] 못하겠다.<br>
[사자] 미쳤군. 좋다. 이리 못 오겠다면 내가 그리로 가지. (청년에게 다가간다)<br>
[청년] (사자가 다가오자 옆에 있는 관객을 붙들어 그의 목에 아까 홍수전에 하느님에게서 받았던 <br>
M16 대검을 들이댄다) 마지막 경고다.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그땐 모조리 다 죽여 버릴테다.<br>
배우들, 모두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청년, 의아한 표정으로 자세를 바꾼다.<br>
[청년] 아니, 죽어서 저승에 온 사람들이 또 죽을 수 있는 겁니까?<br>
객석등이 모두 켜지고, 배우들은 "공연하다 말고 왜 이러냐"고 청년을 나무라며 돌연한 사태에 대해 <br>
당황해 하고 있다.<br>
[페이지] 039<br>
[청년역의 배우] 연습할 때마다 걸리드라구요.<br>
[연출가역의 배우] 그러면 연습할 때 해결해야죠. 공연중에 왜 이래요.<br>
배우들,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는데 사내역의 배우, 흥분해서 소리친다.<br>
[사내역의 배우] (신경질적으로) 저승에 가 본 사람이 이 중에 누가 있냐! 대본에 나와 있는 대로 하<br>
면 될 것 아냐!<br>
배우들, 이구동성으로 대본에 나와 있는 대로 하자며 극진행을 서두른다. 청년역의 배우, 대본대로 <br>
하겠다고 하자 객석등 꺼지며 조명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br>
[청년] 다 죽여 버릴테다.<br>
[여인] (사자, 코웃음치며 그에게 다가가려 할 때) 잠깐! (청년에게 다가가며) 이 사람들이 무슨 죄<br>
가 있죠? 이 사람들도 우리처럼 저승에 수용된 사람일 뿐입니다.<br>
[청년] 목적달성을 위해 작은 희생을 어쩔 수가 없소.<br>
[여인] 작은 희생이라구요? 사람의 목숨이 작은 희생인가요? 당신이 무슨 권리로 이 사람들의 목숨을 <br>
뺐읍니까? 자, 그 칼 이리 주세요. 어떠한 때라도 폭력은 쓰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건 사랑이예요.<br>
[청년] 천만에요! 사랑으로 될 일이라면 내가 미쳤읍니끼? 이런 일을 저지르게.<br>
[페이지] 040<br>
[여인] 먼저 노력을 해봐야죠. 해보지도 않고 왜 이러세요! 우선, 원하는게 먼지 이야기를 해야 되지 <br>
않겠어요?<br>
[사내] (청년에게 다가가) 그래! 요구사항이 있으면 얘기를 하자구? 칼을 들고 그러면 어떡하나?<br>
[소녀] 그래요. 얘기를 해요.<br>
[청년] 왜들 이래. 얘기해야 되지도 않아!<br>
[사자] 좋다! 원하는 게 뭐지.<br>
배우들, 청년에게 얘기를 하라고 한다.<br>
[청년] (결심한 듯) 저승의 규율을 철폐하라.<br>
[사자] 저승의 규율은 여러분을 위해서 있는 거야.<br>
[청년] 그렇다면 규율을 핑계 삼아 그동안 우리에게 사용하였던 폭력행위에 대해 설명해 봐라.<br>
[사자] 아! 그건--- 고의가 아니였다.<br>
[청년] 잘못했다는 얘긴가?<br>
[사자]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일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는 수도 있다.<br>
[청년] 당신같은 사람하고는 얘기 못하겠다.<br>
[여인] 채임있고 성의있는 답변을 요구합니다.<br>
[사내] 우리를 무시하고 있는 거야.<br>
[사자] 넌 가만있지 못해!<br>
[사내] 내가 왜 가만있어야 되나?<br>
[청년] 아까는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해놓고서 왜 얘기를 막는가?<br>
[소녀] 그래요, 얘기가 앞뒤가 안 맞아요. 믿을 수가 없어요.<br>
[사내] 무조건 우리를 억누르려고만 하는 거야.<br>
[청년]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럴 때 우리가 가만있어선 안 됩니다. 모두 일어섭시다. (외친다) 저승<br>
의 규율을 철폐하라!<br>
[일동] (따라 외친다) 저승의 규율을 철폐하라!<br>
[청년] 사자는 물러가라!<br>
[일동] 사자는 물러가라!<br>
이때 홍수전, 사자의 눈치를 보다가 동료들과 합세한다.<br>
[청년] 폭력과 억압을 중단하라!<br>
[일동] 폭력과 억압을 중단하라!<br>
연출가, 환영의 박수를 친다.<br>
[페이지] 041<br>
11. 타협<br>
[사자] (당황하며) 여러분, 잠깐만! 잠깐만 조용히 좀 해 주십시요. 여러분과 나 사이에서, 또 우리<br>
들 서로간에 부족한 것이 한 가지 있었읍니다. 그건 상호간의 믿음, 서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과 <br>
같은 이런 일이 생겨났다고 봅니다. 이것이 모두 나의 불찰이었다고 합시다. 아니, 나의 불찰임을 인정<br>
합니다. 이제 저승에서는 진짜로 여러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합리적으로 풀<br>
어 나가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순리대로 움직여 나갈 뿐 무리한 힘은 가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br>
의 요망사항은 가능한 모두 수렴하겠읍니다.<br>
[청년] 당신의 말은 믿을 수가 없다.<br>
[사자] 아니, 이 저승에서 저승사자를 못 믿으면 누굴 믿겠다는 건가? 자, 요구할 일 있으면 이 기회<br>
에 어서들 하시오.<br>
[여인] 창문을 내 주세요. 맑은 공기와 빛이 필요합니다.<br>
[사자]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번 공연 끝나는 대로 당장 작업을 시작하겠소.<br>
[사내] 난 밥 좀 많이 먹게 해 줘요.<br>
[사자] 좋소. 그것도 해결책을 마련하겠소.<br>
[청년] 너무 쉽게 대답하는 품이 수상합니다. 여러분 분명히 무슨 흉계가 숨어 있읍니다. 조심들 하<br>
십시요.<br>
[사자] 아하, 그 사람,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의심이 많은가? 툭 터놓고 대화를 나눠 보자는 데 흉<br>
계라니!<br>
[청년] 그러면 당신이 약속한 것을 이행하겠다는 증거를 제시하라.<br>
[사자] 증거! 증거라니. 아니, 이거 너무하지 않은가? 내가, 이 저승의 사자가 발벗고 나서서 책임지<br>
고 해결하겠다는 데 증거는 무슨 증건가? 안 그래요, 여러분!<br>
[홍수전] 아하, 거 무작정 의심만 할 일이 아닌 것 같으니 우리 대화로 해결합시다.<br>
[사자] 자, 두 가지 얘기가 나왔읍니다. 첫째, 창문을 내달라. 둘재, 밥을 많이 먹게 해달라. 둘 다 <br>
해결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또다른 요망사항 없읍니까?<br>
[소녀] 또 있어요.<br>
[사자] 뭔가?<br>
[소녀] 남녀간에 자유로운 사랑을 허락해 줘요.<br>
[사자] 같이 자겠다는 거야?<br>
[소녀] 네, 그거죠.<br>
[페이지] 042<br>
[사자] 음, 그건 좀---<br>
[소녀] 조금 전에 멋있는 남자를 찾아봐 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br>
[사자] (일동, 다시 소요의 움직임이 보이자 이를 수습하려는 듯) 좋다. 남녀간의 동침은 저승의 뀨<br>
율에 금지되어 있지만, 이번 기회에 대왕님께 잘 말씀드려 고쳐 보도록 하겠다.<br>
[청년] 여러분들의 지금 저 사자에게 속고 있는 겁니다.<br>
[여인] 일단 믿읍시다. 무엇이든 의심하기 싶가하면 끝이 없어요.<br>
[청년] (사자에게) 그러면 한 가지만 묻겠다. 앞으로 또 폭력을 사용할텐가?<br>
[사자] (당황한 듯 망설이다가)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br>
[청년] 약속하라!<br>
[사자] 약속한다.<br>
배우들, 청년에게 무대로 돌아갈 것을 권유. 일동, 무대로 돌아간다.<br>
[사자] 여러분들의 요망사항은 모두 실현될 수 있도록 내가 최선을 다해겠소. 여러분들은 나에게 여<br>
러가지 요구를 하였는데 나는, 저승의 사자로서 딱 한 가지만 여러분께 요구하겠소. 다 아시다시피 새<br>
로운 식구들을 환영하는 연극공연이 이렇게 오래 중단되엇다는 것은 정말 창피스러운 일이요. 앞으로 <br>
남은 공연, 절대 중단없이 잘 진행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나?<br>
[홍수전] 네! 약속합니다.<br>
[사자] (나머지 배우들을 보고) 약속들 하지?<br>
[연출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연극을 중단시킨 건 사자 당신이지 우리가 아닙니다.<br>
[사자] 당신까지도 사태를 오해하고 있군. (잠시 생각하다) 좋소. (관객에게) 여러분 죄송합니다. 배<br>
우들 감정잡을 시간도 필요하고 정리할 일도 있으니 잠시 휴식시간을 갖겠읍니다. 다음 순서에서는 절<br>
대 공연이 중단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리며, 감사합니다.<br>
사자, 퇴장하며 긴장되어 있는 배우들에게 들어오라고 지시한다.<br>
막간극-누가 나의 애인이 되어 줄래요<br>
소녀 퇴장하다 말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다가 뒤로 빠져 무대에 남는다. 객석등 켜진다. 관객들<br>
을 천천히 둘러보다 무대 중앙에 앉는다.<br>
[소녀] 누가 나의 애인이 되어 줄래요. 이리 나오세요. 키가 크지 않아도 좋구요. 얼굴이 잘나지 않<br>
아도 좋아요. 나만을 사랑해 줄 남자라면 누구든지 좋아요.<br>
[페이지] 043<br>
[노래시작]<br>
노래<br>
누구든지 좋아요 이리로 오세요<br>
남자라면 좋아요<br>
같이만 있어 줘요<br>
시간은 흐르고 다시 못 올 바로 지금<br>
남자라면 오세요 같이만 있어 줘요<br>
같이만 있어 줘요.<br>
대사<br>
누가 나의 애인이 되어 줄래요. 어서 이리로 오세요. 저승의 생활을 아시잖아요. 이런 기회는 다시는 <br>
오지 않을 거예요. 날 데리고 이 어두운 저승을 빠져나갈 용기있는 남자분 아무도 없나요?<br>
노래<br>
시간은 흐르고 다시 못 올 바로 지금<br>
남자라면 오세요. 같이만 있어 줘요.<br>
[노래끝]<br>
노래 도중 관객의 반응에 따라 이 장면은 즉흥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노래 끝날 즈음 사자, 무대<br>
로 나와 소녀를 부른다.<br>
[사자] 이봐,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어서 이리 들어와!<br>
[소녀] 알았어요. (퇴장하다 말고 관객을 향해) 그것 봐요. 빨리 나오라고 그랬죠? 바보들 같으니!<br>
[페이지] 044<br>
12. 태평천국의 융성<br>
[막] 2막<br>
팻말 '태평천국의 융성'으로 바뀌어 있다. 사자, 잔뜩 주눅이 든 배우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2부 <br>
시작을 알린다.<br>
[사자] (경쾌한 동작으로 등장) 잠시 휴식시간이 있어싸읍니다. 연출가 선생은 1부 공연에서의 <br>
혼란에 대해 여러분께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올릴 것을 제게 요구했읍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br>
사과드립니다. 또한 우리의 연출가 선생은 그의 천재적인 두뇌로서 짧은 휴식시간 도중 나머지 <br>
공연에서 앞서와 같은 혼란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몇 가지 장치를 마련하였으며, 작품의 구성을 <br>
일부 수정하였읍니다. 자! 그럼 다음 장면 시작되었읍니다.<br>
샅,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 배우들에게 시작하라는 신호를 한다. 백성역의 배우 네 명, 깃발을 들고 <br>
잠시 머뭇거리다가 무대를 돌려 가장된 활기로 다음 대사를 한다.<br>
[일동] 세상 모든 남녀를 형제자매<br>
형제자매간에는 정절을 지키라니<br>
어서 빨리 좋은 세상 오라<br>
그때, 우리도 비단옷 입고<br>
기름도 먹겠지<br>
사랑도 나누고 술에도 취하겠지.<br>
<br>
그래도 긴머리 오고부턴 좋아졌데<br>
맨발로 활보하는 시골 처녀들<br>
땀흘려 일하는 즐거운 형제들<br>
[페이지] 046<br>
창끝에 걸린 건 못된 자들의 머리<br>
착하게 사는 건 가난한 우리.<br>
<br>
그래서 사람마다 좋은 시절 보내겠네<br>
농토 나누고 토지문서 버리고<br>
문서를 태웠거든 창고문 여세<br>
가난한 사람들 배부르고<br>
같이 일하며 같이 노세.<br>
홍수전, 커튼을 젖히고 나와 중앙에 서고, 나머지 배우들 주위에 둘러선다.<br>
[홍수전] (깃발을 높이 들며) 하느님을 숭배하고 우리의 규율에 따르라. 이제 중국대륙은 모두 <br>
우리의 것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요마들을 섬멸하는 데 총력을 다하라. (깃발을 무대 위에 세우며) <br>
1850년 광서성에서 일어나 그 주변과 북부 산악지대를 석권하였다.<br>
배우들 행군을 시작한다.<br>
[홍수전] (깃발을 세우며) 운남으로!<br>
[일동] (깃발을 세우며) 운남으로!<br>
[홍수전] (깃발을 세우며) 귀주로!<br>
[일동] (깃발을 세우며) 귀주로!<br>
[페이지] 047<br>
[홍수전] 호남으로 진군하였으며 강서땅도 차지하였다. 1852년 한양까지 진출하였으며, (홍수전, <br>
자리로 돌아가며) 양자강을 따라 동쪽으로 강건너 천진까지 출정하였으며, (왕좌 옆에 깃발을 꽂는다) <br>
1853년 드디어 남경을 함락하기에 이르렀다.<br>
배우들은 홍수전의 대사 동안 계속 행군하는데, 처음엔 활기있게 그러다 점점 힘들고 지친 모습으로 <br>
변한다. 사자는 공연이 잘 진행되어 기분이 좋다는 듯 얼굴에 흐뭇한 웃음을 띈다. 팻말 '아, 정말 <br>
훌륭하구나' 로 바뀐다.<br>
13. 아, 정말 훌륭하구나!<br>
[배우1] 10년에 걸친 꾸준한 포교활동과 3년에 걸친 참혹한 전쟁.<br>
[배우2] 참으로 오랜 세월이었다.<br>
[배우3] 중국대륙의 반을 차지하고 중국의 오랜 수도 남경을 점려하였으나,<br>
[배우4] 오로지 요마들을 섬멸한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너무 많은 목숨이 죽어갔고,<br>
[배우1] 너무 많은 사랑이 시들어 갔으며,<br>
[배우2] 너무 많은 백성이 굶주리게 되었다.<br>
[배우3] 이제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신도를 구하는<br>
[페이지] 048<br>
일이 아니라 이미 얻은 신도들에게 하느님을 더 잘 믿도록 하는 일이었다.<br>
[배우4] 또한 전쟁을 통해 더 많은 땅을 차지하는 일보다는 이미 차지한 땅에서 평화로이 잘사는 <br>
일이 시급하게 되었다.<br>
[홍수전] 나 천왕은 이르노라. 남경을 태평천국의 수도로 하되 그 이름을 천경이라 부르라, 새로운 <br>
관료체제를 정립하고 과거제도를 도입하여 인재를 등용하며 토지를 새로이 하라. 멀지 않아 우리 <br>
형제자매는 가족과 재회하고 육친은 결합될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요마들이 아직 섬멸되지 않았고, <br>
가족 재회의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더욱 규율에 충실하라. 형제자매간의 동침은 아직 그 시기가 <br>
아니다. 통일이 이루어진 다음 하느님 아버지께서 은덕을 베푸실 것이다. 부귀양명으로 우리들 형제는 <br>
서로 경축하고 부부의 화합을 누릴 날이 이제는 눈앞에 있다. 아빠 정말 훌륭하구나.<br>
일동, 힘없이 자조적으로 시작한 점점 감정과 소리 고조된다.<br>
[일동] 아! 정말 훌륭하구나<br>
하느님의 세상이 이제 우리 눈앞에 온다니<br>
그때 우리도 비단옷 입고 기름도 먹겠지<br>
[페이지] 049<br>
사랑도 나누고 술에도 취하겠지.<br>
<br>
아! 정말 훌륭하구나<br>
그러나 너무 긴 세월 기다리자니<br>
허리는 굽고 주름은 늘고 머리는 희니<br>
하느님의 세상이 와도 아이는 못 낳겠지.<br>
<br>
아! 정말 훌륭하구나<br>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채비를 한다니<br>
우리도 호미와 쟁기 버리고 공부나 하지<br>
과거에 급제하면 부귀영화 한 몸에 누릴테지.<br>
<br>
아! 정말 훌륭하구나<br>
한 마지기 땅에서 열 섬의 쌀 나올 줄 알았는데<br>
세상이 바뀌어도 땅은 그대로라네<br>
모두 부귀영화 누리면 논밭을 갈 사람은 누구?<br>
<br>
아! 정말 훌륭하구나.<br>
위 대사를 하면서 백성 역할의 배우들, 청년들에게 깃발을 건네 주고나서 사내는 양수청의 역할을 <br>
준비하고, 여인과 소녀는 홍수전의 후궁역을 준비한다.<br>
[페이지] 050<br>
14. 태평천국의 위기<br>
청년이 팻말을 '태평천국의 위기'로 바꾼다. 홍수전, 두 여인 사이에서 아편을 피우고 있다. <br>
양수청(사내), 무대 앞쪽에서 '홍수전'이라 외친다. 그러면 후궁 중 한 명 일어나 양수청에서 고갯짓을 <br>
하고 앉는다. 이러한 동작이 몇 차례 반복된 후, 양수청, '아!'하고 소리치며 쓰러진다. 잠시 <br>
신음하다가 일어나 엎드려 울부짖듯이 대사 시작한다. 이때 홍수전이 듣기 싫다는 듯한 손짓을 하면 <br>
후궁들, 커튼을 닫는다. 커튼 안에서 후궁들과 홍수전이 희희낙락하는 소리가 들린다<br>
[양수청] 아버지, 나의 친아버지 하느님! 오늘날 태평천국의 혼란은 장형 천왕의 잘못이 아니옵고 <br>
그를 잘못 보필한 저의 불찰입니다. 그를 벌하시기 전에 제가 먼저 벌을 받겠읍니다. 어버지시여! 우선 <br>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장형은 천왕으로서 군림할 뿐 실제 모든 제도를 만들고 이를 집행하는 것은 <br>
저의 책임입니다. 부디 저를 벌하소서.<br>
사내, 양수청 가면 위에 하느님 가면을 겹쳐 들고서 하느님 시늉을 한다.<br>
[양수청] 모두 무릎 꿇고 엎드려라.<br>
후궁들, 커튼을 젖히고 나와 앉으면 홍수전, 머뭇거리다가 엎드린다.<br>
[양수청] 오늘날 도덕이 타락하고 질서가 문란해진 것은 전적으로 천왕<br>
[페이지] 051<br>
홍수전의 잘못이 크다. 천왕은 향후 후궁들에게 발길질과 매질을 하지 말 것이며, 그대의 존속들의 <br>
방자함을 타일러 고치도록 할지어다. 또한 그 자리에서 성질에 못이겨 무고한 자들을 처형하는 일이 <br>
많았으니, 처형의 권한을 동왕 양수청에게 이양하라.<br>
양수청, 하느님의 가면을 옷 속에 감추고 홍수전 앞에 엎드린다.<br>
[양수청] 장형,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일어나 옥좌에 앉으시오.<br>
홍수전, 머뭇거리다가 일어나 자리에 앉자 후궁들 일어나 양편에 선다.<br>
[양수청] 장형, 제가 형제자매들 앞에서 천왕을 욕되게 한 죄 큽니다. 저를 매질한 후 처형하여 <br>
주십시오.<br>
[홍수전] 처형에 관한 권한은 그대에게로 갔소. 내 어찌 그대를 벌할 수 있겠소.<br>
[양수청] 아니오! 나를 벌하여 주시오.<br>
[홍수전] 그렇게 할 수 없소.<br>
[양수청] 장형은 천왕이오.<br>
[홍수전] 그대를 벌하는 일도 그대가 하시오.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알고 있겠오.<br>
홍수전, 후궁들을 품에 안고 웃는다. 뒤이어 양수청도 큰 웃음을 터뜨린다.<br>
[페이지] 052<br>
15. 변질된 사랑의 형식<br>
'변질된 사랑의 형식'이라는 팻말이 나타나면, 여인과 소녀와 홍수전은 직육면체 상자를 하나씩 들고 <br>
나와 회전판 위에 길게 누울 수 있게 만든다. 사내, 가서 눕는다.<br>
[여인] 이건 당신 역할이 아니잖아요.<br>
[사내] 아무나 하면 어때, 빨리 밀어. 밀어!<br>
[홍수전] 아니! 왜 이래 이건 내 역할인데.<br>
[사내] 좋은 건 뭐 다 당신 거야?<br>
약간의 혼란이 일어나자 사자, 자리에서 나오며<br>
[사자] 질서! 벌써들 잊었나?<br>
[청년] 연출가 선생은 어디 갔어요?<br>
[페이지] 053<br>
[페이지] 054<br>
[홍수전] 지금, 홍수전이 타락하는 장면인데요, 글쎄 자기가 하겠다구.<br>
[사자] 내려와!<br>
사내, 단에서 내려오고 홍수전, 단 위에 길게 누우면 후궁들은 양옆에 앉아 홍수전을 외면한 채 그의 <br>
몸을 쓰다듬 듯 애무한다. 청년과 사내, 회전판을 돌리며 대사한다.<br>
[사내] 남녀간의 동침이 금지되었다면 남자끼리의 사랑은 어떠할까?<br>
[청년] 태평천국의 제왕과 장군들은 수십수백의 처첩을 거느리고 호의호식하거늘, 어째서 우리 천한 <br>
것들은 돈 안 드는 사랑에마져도 굶주려야 하는가?<br>
[사내] 천한 자는 어딜 가도 천하고, 굶주린 자는 어딜 가도 굶주려야 하는가?<br>
[홍수전] (얼굴을 덮었던 헝겊을 허공에 던지며) 천왕을 즐겁게 하는 일이 천지간에 조화를 이루는 <br>
일이다.<br>
[청년] 금궁의 영화는 어디로 갔는가?<br>
[사내] 피투성이의 거리에는 개떼 새떼마저 쉴 곳이 없네.<br>
[홍수전] 천왕이 있는 곳이 천국이다. (벌떡 일어나 앉으며) 나라의 이름을 상제천국으로 바꾸도록 <br>
하라.<br>
[소녀]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품이나 팔까?<br>
[여인] 고향의 보리밭엔 잡초만 무성하겠지.<br>
[홍수전] (옷을 벗어던지고 일어서며) 하느님은 나의 몸을 통해 말씀하셨다, 꽃처럼 활짜가 핀 <br>
하느님의 천국이 이 땅 위에 세워졌음을, 아! 아름다운 꽃향기--- 이 냄새가 어떠하냐?<br>
일동, 얼굴을 찌푸리고 코를 막으며 외면한다.<br>
[여인] 금궁의 밤은 방탕함 속에 썩어가고,<br>
[사내] 백성의 밤은 궁핍함에 흐느끼는데,<br>
[홍수전] 술도 여인도 아편도 나를 잠재우지 못하는구나. 누가 나를 업어다오. 업히고 싶다.<br>
[일동] (잦아드는 목소리로 움직임 없이)<br>
우린 누가 돌보아 줄건가<br>
우리는 주린다<br>
우리는 춥다<br>
우리는 외롭다<br>
우리는 가난하다<br>
우리는 불쌍하다<br>
누가 우리를 돌보아 줄건가.<br>
[페이지] 055<br>
16. 혼란<br>
'혼란'이라는 팻말 드러나면 사자, 일어난다.<br>
[사자] 그 장면은 빼기로 했으니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지.<br>
[여인] 언제, 누구와 그런 결정을 했나요?<br>
[사자] 연출가 선생의 요청에 의해서 빠지게 되었소.<br>
[여인] 우린 그런 얘기 들은 적 없는데요.<br>
[사자] 글쎄, 그렇다면 그런 줄 아시오. 빨리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시오.<br>
[청년]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공연 도중 느닷없이 한 장면을 빼다니 우릴 뭘로 보고 하는 얘기야?<br>
[여인] 정말 연출가 선생이 이 장면의 삭제를 요구했나요?<br>
[사내] 그렇다면 연출가 선생은 장면 삭제에 대해 왜 우리에게 아무말도 없었읍니까?<br>
[사자] 장면의 변경이 있으니 그 점에 있어서는 나의 지시를 따르라고 아까 휴식시간에 이야기하지 <br>
않았소?<br>
[청년] 삭제와 변경이 같습니까? 이건 변경이 아니라 삭제란 말입니다. 아무튼 연출가 선생에게 직접 <br>
물어 봐야겠소. (무대 밖으로 나가려 한다)<br>
[사자] (청년을 가로막으며) 아니야. 너는 여기 있어.<br>
[청년] 당신은 또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음에 틀림없어.<br>
[사자] 음모? 음모라구? 이봐 내가 뭐가 아쉬워서 당신들 상대로 음모를 꾸미겠어?<br>
[여인] 하여튼 연출가 선생에게 직접 물어 봅시다. 과연 그가 당신에게 그 장면의 삭제를 <br>
요청했는지, 아니면---<br>
[사자] 아니면?<br>
[청년] 아니면 당신이 그 장면을 빼도록 연출가 선생을 협박했든지.<br>
[사자] 협박?<br>
[청년] 내가 가서 모셔올께요.<br>
[사자] 안 돼. 너는 가만있어, 내가 데리고 오겠어.<br>
[청년] (사자를 가로막으며) 당신은 안 돼.<br>
[사자] 아니!<br>
이때 연출가, 등장한다. 얼굴에 두들겨 맞은 흔적이 보인다.<br>
17. 연극의 힘에 관한 논쟁<br>
[연출가] 잠깐! 무엇이 문제입니까?<br>
[페이지] 056<br>
[사자] 여보시요. 연출가 선생. 아까 휴식시간에 당신과 합의 아래 빼기로 한 장면 말이오. 그걸 <br>
가지고 이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는데 뭐라고 애기 좀 해 주시오.<br>
[연출가]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할까요?<br>
[청년] 그것 봐. 이건 음모였어. 그 장면을 빼라고 우리 연출가 선생을 협박했던 거야.<br>
[연출가] 오늘의 공연이 이런 저런 이유로 어렵게 진행되어 가는 과정에서 난 스스로에게 이런 <br>
질문을 던져 봤읍니다. 도대체 왜 연극을 하는 건가? 연극을 해서 무얼 얻자는 것인가? 연극이란 <br>
무엇인가? 저는 다음과 같은 멍청한 생각에 빠져 있었읍니다. 연극이란 인간정신의 육체적 표현이다. <br>
우리의 내부에 숨어서 꼼지락거리고 꿈틀거리다 솟구쳐 오르기도 하고 조용히 가라앉기도 하며 성도 <br>
냈다 잠들기도 하는 아름답고 더러운 것들, 다정스럽고 잔인한 것들, 잔잔하고 요란한 것들, 향기와 <br>
악취와 함께 풍기는 모든것들을 연극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드러내 보이자.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br>
건강한 삶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읍니다.<br>
[사자] 연출가 선생, 지금 무슨 연설을 하는 거요?<br>
[연출가] 계속하게 해 주십시오.<br>
[사자] 좋아, 한번 들어 보기로 하지.<br>
[연출가] 하지만 그것은 바보 같은 공상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읍니다. 저승에서의 생활이 <br>
달라졌다고는 하나 그것은 껍데기일 뿐 알맹이는 계속 검게 썩으며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br>
내부를 드러<br>
[페이지] 057<br>
내 표현할 수 없는 환경이란 말입니다. 겉으로는 살아있는 듯이 보이나 피부 밑을 흐르는 피는 <br>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표현할 수 없는 이곳, 더럽고 잔인한 것을 표현할 수 없는 저승. 이러한 상황 <br>
속에서 연극의 힘을 믿습니까? 글의 힘, 말의 힘, 우리의 작은 몸놀림으로 설득하려는 힘이 저 사자가 <br>
들고 있는 지휘봉의 힘보다 강할까요?<br>
사자, 뭐라고 할 듯 일어나다 여인의 기세에 눌려 제자리에 앉는다.<br>
[여인] 강하지요. 물론 강합니다. 폭력은 일시적이지만 예술은 영원합니다. 폭력은 육체를 <br>
다스리지만 예술은 정신을 다스립니다. 폭력은 증오를 낳지만 예술은 사랑을 낳습니다. 그래서 예술의 <br>
힘은 위대하다는 겁니다. 이 힘은 어떠한 어둠 속에서도, 숨막힘 속에서도 우리 안에서 살아있읍니다. <br>
사자의 저 몽둥이는 언젠가는 부러지지만 우리 안에 살아 숨쉬는 사랑의 힘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br>
사랑의 힘이야말로 온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지요. 이러한 힘을 그냥 썩혀 둔다구요? 그런 어리석은 <br>
일이 어딨읍니까? 이 힘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힘입니다. 이 힘으로 우리는 사람들을 바꿔 놓을 <br>
수 있읍니다. 잘못된 세상을 바르게 만들 수 있읍니다. 이 힘으로 좋은 세상을 꾸며 갈 수 있읍니다. <br>
이것이 몽둥이로는 안 되는 예술의 힘입니다.<br>
[청년] 뭐요? 예술? 사랑? 우리에게 있어 예술은 아무런 힘이 될 수 없읍니다. 물리적인 힘만이 <br>
진정한 힘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연극 같은<br>
[페이지] 058<br>
것으로는 더이상 감동을 받지 않읍니다. 물리적인 힘, 그 힘만이 감동을 일으킬 수 있읍니다. 힘으로 <br>
대결해야 합니다. 투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승리할 수 있읍니다. 예술은 이제 박물관에나 보내야 할 <br>
물건입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비유법과 상징, 탐미주의적 환상에 빠져 헤맨단 말입니까?<br>
[여인] 당신의 마음은 꽉 막힌 방이예요. 그 방의 높은 곳에 작은 창을 하나 뚫어 놓고 그 창을 <br>
통해서만 바깥을 보고 있어요. 남이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가려 해도 그 창을 통해서만 들어가야 <br>
하구요. 당신의 마음은 저승이예요.<br>
[청년] 뭐요? 나의 마음이 저승이라구? 내가 꽉 막힌 들창고란 말이요? 지금 인신공격하는 겁니까?<br>
[연출가] 좋습니다. 두 분 다 일리가 있는 얘깁니다. 내가 꺼낸 얘기니까 내가 거두어 들여야지요. <br>
분명한 것은 우리들의 저승이 달라지기는 달라졌다는 겁니다. 옛날엔 저승에서 어떤 연극을 할 것이냐 <br>
하는 문제로 입씨름을 하기는 했어도 지금처럼 연극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예술의 불필요성에 <br>
관한 의견이 거론될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br>
[사자] (벌떡 일어서며) 정말 더이상 참고 앉아 있을 수가 없군. 당신들 지금 어떤 이야길 하고 있는 <br>
줄 아나?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위험한 이야긴 줄 알고 있는가 말이야, 뭐? 저승이 어떻게 <br>
달<br>
[페이지] 059<br>
라졌고 상황이 어떻다구? 아무렇게나 나오는 대로 뱉어대면 다 말이 되는 줄 알아?<br>
[청년] 저것 보란 말이야. 이래도 내 말이 틀리다구? 저렇게 몰아붙이는데 어디다 대구 예술이구 <br>
나발이구가 있어? 난 이 연극 못해. (무대 밖으로 퇴장하려다 조명실로 행한다) 아니야! 이따위 <br>
짓거리는 다 없애 버려야 해.<br>
19. 암전<br>
[사자] (관객에게) 저 친구는 우리 저승에서도 정말 골치거리이고 위험 인물입니다. 저렇게 해 <br>
가지고 어떻게 이 저승사회를 살아가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읍니다.<br>
이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 조명실 안에서 기계가 부숴지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암전된다. 밖에서 <br>
들리는 소리로 청년이 조명 설비를 부숴버렸음을 알 수 있다.<br>
[사자] 조명실! 조명실!<br>
[소리] 네.<br>
[사자] 어떻게 된 거야?<br>
[소리] 불이 나갔읍니다.<br>
[사자] 불이 나간 걸 누가 모르나? 왜 나갔냔 말이야?<br>
[소리] 저기--- 디머가 망가졌읍니다.<br>
[사자] 이 멍청한 놈들아. 그깐 놈 하나 못 붙들어 가지구. 빨리 고쳐!<br>
[소리] 네, 알겠읍니다.<br>
[사자] 그리고 촛불이라도 가져 오야 할 것 아냐?<br>
[소리] 네, 알겠읍니다.<br>
잠시 후 무대감독, 촛대를 들고와 상자 위에 놓는다.<br>
[사자] 정말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지만 오늘 공연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내고야 말 겁니다. 잠시 <br>
후면 다시 조명이 켜질테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십시오. (소녀에게) 막간을 이용해서 아무 노래나 <br>
하나 할 수 있겠나?<br>
[사자] (사내를 가리키며) 저 아저씨하고 같이 할래요.<br>
[소리] 좋아. 나머지는 모두 따라 들어와.<br>
사내와 소녀 남고, 모두 퇴장<br>
[페이지] 060<br>
20. 우리는 어울리는 한 쌍, 쇼<br>
[소녀.사내] 우리는 어울띵는 한 쌍, 쇼-오<br>
[노래시작]<br>
노래<br>
사람들은 정말 맹해<br>
좀 편하게 살면 안 되나<br>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면 되지<br>
이런 저런 생각에 짜증만 자꾸 내네<br>
외로워 보셨나요 배고파 보셨나요<br>
먹다 버린 찌꺼기면 어때<br>
퀴퀴한 이불속도 짜릿짜릿 하기만 한데<br>
남들은 우릴 보고 뭐! 바보?<br>
라라라 라라 라라 라라---<br>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면 되지<br>
그러니까 우리는 어울리는 한-쌍<br>
어울리는 한-쌍---<br>
[노래끝]<br>
노래 끝날 때 쯤 사자, 등장하여 사내와 소녀에게 무대를 정리하게한 후 다음 장면 이어진다.<br>
[페이지] 061<br>
21. 결박된 청년<br>
[사자] 여러분, 정말 대단히 죄송스럽게 되었읍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 단순히 <br>
한 사람의 몰지각하기 짝이 없는 행동에서 비롯되었다는 오늘의 현실을 돌이켜볼 때, 질서!<br>
사자가 '질서'를 부르짖을 때, 무대로 입장하던 배우들 중 한 명이 넘어진다. 배우들, "불을 켜라, <br>
어디 다쳤냐. 어디 보자"며 다친 배우를 둘러싸고 난리를 치는 도중 객석등 켜진다.<br>
[연출가역의 배우] 칠칠치 못하게 넘어지고 그러냐, 공연 도중에.<br>
[홍수전역의 배우] (연출가역의 배우를 노려보며) 그럼, 내일부터는 니가 넘어져! (사자역의 배우를 <br>
보며) 계속하죠.<br>
객석등 꺼지고, 극은 다시 진행된다.<br>
[사자] 질서! 질서를 부르짖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절감하셨으리라 봅니다. 이제 우리 저승에서는 <br>
개인의 잘못에 대해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본인의 인내심도 한계저에 <br>
도달했읍니다.<br>
이때 배우들, 사자의 신호에 의해 묶인 청년을 사자 앞으로 밀어낸다.<br>
[사자] 이제 이 연극은 끝까지 절대로 중단되지 않고 진행될 것을 본인은 확신합니다. 한 사람의 <br>
폭력행위로 인한 공연 중단 사태에 대해 평소 너그러우시던 저승의 대왕님께서도 진노하셨음은 물론, <br>
같이 공연을 하던 그의 동료들조차도 그에 대한 형벌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그의 행동이 용서할 수 <br>
없는 것이라는 결의를 이와같은 방법으로 표현하였읍니다. (청년을 무릎 꿇게 한 후, 조명실을 향해) <br>
아직 다 못 고쳤나?<br>
[소리] 다 돼 갑니다.<br>
[페이지] 062<br>
22. 파국<br>
조명기들이 껌벅거리다가 불이 환하게 들어온다.<br>
[사자] 자, 그럼 다음 장면 시작하겠읍니다. (대본을 뒤적거리다가) 다음 장면은 '홍수전의 죽음'이 <br>
되겠읍니다.<br>
[연출가] 잠깐! 이 연극은 최소한 다섯 명의 배우가 필요합니다. 네 명만으로는 지금 이 장면을 <br>
제대로 연출할 수가 없읍니다.<br>
[사자] 그래서?<br>
[연출가] 저 사람을 풀어 주십시요. (사자가 보내는 협박의 눈길을 확인한 후) 좋읍니다. 이 공연에 <br>
내걸은 작가와 연출가로서의 제 이름을 지금 이 순간 철회합니다.<br>
연출가, 대본을 사자에게 건네 주고 퇴장해 버리고 여인, 뭔가 결심한 듯 홍수전의 단 옆에 두었던 <br>
대검을 집는다.<br>
[여인] 이런 식으로는 더이상 연극을 진행할 수 없읍니다. 동료가 저렇게 묶여 있고 연출은 작품을 <br>
포기하고 나가 버린 마당에 어떻게 연극을 계속하란 말인가요? 거기다 들려오는 소문도 수상하고---<br>
[사자] 소문이라니!<br>
[여인] 이곳은 애당초 창문을 낼 수 없는 땅 속 깊은 곳이라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거짓 <br>
약속을 한 거지요.<br>
[페이지] 063<br>
[사자] 아니, 누가 그따위 소리를 해.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놈이 있으면 당장 요절을 <br>
내놓을테다.<br>
[사내] 그리고 밥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라고 그럽디다.<br>
[사자] 뭐야?<br>
[소녀] 남녀간의 자유로운 사랑도 힘들 거라고 그러데요?<br>
[사자] 아니 이것들이, 모두 동작 그만!<br>
아무도 부동자세를 취하지 않고 계속 항의한다.<br>
[사자] 말이 안 들리나? 동작 그만!<br>
[여인] 난 불쌍하게 묶여 있는 우리 동료를 풀어 주어야겠어요.<br>
여인, 가지고 있던 칼로 청년의 몸에 묶인 밧줄을 끊으려 하자 버저소리 울리고 모두들 부동자세가 <br>
된다.<br>
[페이지] 064<br>
[페이지] 065<br>
23. 연극의 끝<br>
[사자] 이제부터 나의 지시에 따라 공연을 계속한다. 불응하는 자는 가차없이 처단하겠다. <br>
(사내에게) 팻말!<br>
사내, 망설이며 쳐다보고 있는데 사자, 지휘봉으로 사내를 위협한다. 사내, 할 수 없이 '홍수전의 <br>
죽음'이라는 팻말로 바꾼다. 이후의 모든 장면은 사자의 프럼프트와 위협으로 진행된다.<br>
[사자] (여인을 위협하며) 덧없이 흐른 20년의 세월. (여인이 말을 듣지 않자 강압적인 소리로) <br>
덧없이 흐른 20년의 세월!<br>
[여인] (어쩔 수 없이) 덧없이 흐른 20년의 세월.<br>
[사자] (소녀를 위협적으로 쳐다본다)<br>
[소녀] 눈물과 피로 얼룩진 태평천국의 영광은 허물어져 가는 성벽 아래서 그 빛을 잃고 있었다.<br>
[사자] 늙고 병든 홍수전.<br>
[일동] 늙고 병든 홍수전.<br>
[홍수전] 이다지 즐거울까. 형제자매들 모두 모여 같이 사는 일!<br>
[사내] 하느님의 말씀으로는 요마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으니,<br>
[사자] (청년을 향해) 금릉이 무너지고 (청년 아무 반응이 없다. 청년을 바닥을 쓰러뜨린 후) 금릉이 <br>
무너지고,<br>
[여인] 소주땅도 빼앗기고,<br>
[사내] 상주도 함락되었으며,<br>
[소녀] 이젠 남경의 함락도 시간 문제였다.<br>
[홍수전] 아론의 머리에서 수염 타고 흐르는 옷깃으로 흘러내리는 향긋한 기름 같구나 태산의 줄기를 <br>
타고 굽이굽이 내리는 이슬 같구나 그곳은 하느님께서 복을 내린 곳 그 복은 영생이로다.<br>
[여인] 하루에도 수천의 병사들이 병영을 탈주하여 도둑과 강도로 변하니.<br>
[소녀] 인심은 흉흉하고 소문은 들끓는다.<br>
[사자] 태평천국은 망했다. 홍수전은 미쳤다.<br>
[일동] 태평천국은 망했다. 홍수전은 미쳤다. 홍수전은 미쳤다.태평천국은 망했다. 늘고 병든 <br>
홍수전.<br>
[홍수전] 나의 친아버지 하느님. 당신의 장막에서 살 자 누구입니까? 당신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자 <br>
그 누구입니까?<br>
[여인] 그대 홍수전,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인간,<br>
[페이지] 066<br>
[소녀] 꽃처럼 피어났다 쓰러지고,<br>
[사내] 그림자처럼 덧없이 지나간 그대의 삶.<br>
[사자] 여기 그대의 칼이 있다. (여인의 대검을 홍수전에게 준다)<br>
[소녀] 그대의 잔에 우리가 독주를 채우리니(홍수전에게 잔을 준다)<br>
[사내] 파멸의 손이 그대의 옆구리를 파먹어 들어가,<br>
[소녀] 그대 죽음의 대왕 앞에도 끌려가고,<br>
[여인] 그대의 장막에 유황을 뿌리리라.<br>
[사내] 그대의 뿌리는 마르고,<br>
[여인] 그대의 가지는 시드니---<br>
홍수전, 독주를 마시고 쓰러지고, 나머지 배우들도 모두 차례차례 회전판 밑으로 쓰러진다.<br>
[사자] 땅 위에 그대를 아는 자 하나 없다.<br>
조명, 암전되고 잠시 후 스포트라이트, 사자에게만 비춘다<br>
[사자] 여러분 끝까지 지켜 보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승생활 보람있게 하시길 빌면서 <br>
오늘 공연 여기서 마치겠읍니다. 감사합니다.<br>
[페이지] 067<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