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 - 갈왕이 피신했던 그 길을 따라가며

[호수]

    오늘도 따뜻한 시선으로, 따뜻한 가슴으로 사람을 대하게 되기를...

* 05:30

   - 알람소리에 잠이 깬다.

      잠을 조금 설쳤는지 찌뿌둥하다..

     "오늘 장거리 산행인데, 행여 컨디션이 나쁘면..."

      애써 씩씩하게 떨치고 일어나 어젯밤 챙겨놓은 배낭 다시 한번 점검하고.

*06:50

  - 집을 나선다. 아직도 캄캄하다.

    어제가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 였구나 떠올리며

    텅 빈 버스와 역시나 텅 빈 지하철을 거쳐, 광나루역 - 너무 일찍 왔다.

    언니와 약속한 시간이 아직도 15분이나 남아있다.

    신입 사원 교육 받을 때를 제외하고 이렇게 긴장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거의 6개월 산행을 하지 못했던 터라 조금 걱정이 된다.

    "그래도 설마 폭탄이야 되겠나" 애써 자위하며 언니를 만나 활짝 웃어보인다.

* 07:40

 - 거의 빈자리가 보이지 않는 버스.

    아는 사람 없는 모임에 조용히 묻어가야 하는지라

    시선 둘 곳 없이 낯설기만 하다. 곧 나아지겠지.

    잠깐의 살핌에 모두 인상이 좋아보인다.

    하긴, 내가 좋으면 다 좋은게지.

    부처의 눈엔 부처가 보인다고 무학대사께서 말씀하셨던가.

    조금 늦는 회원이 있는지 기다리게되고, 곁에서 지켜보는 내가 걱정스러울 때

    늦는 당사자는 얼마나 황망할까 싶어 마음 조이는데,

    다행히 다른 분들도 같은 생각이신지, 불평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래 이 정도의 여유는 갖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들어 안도의 숨을 쉰다.

    늦은 회원은 발그레한 얼굴에 미안한 마음으로 차에 오르고 버스는 출발한다.

    인상좋은 팀장님의 인사에 이어, 신참 인사 시간이란다.

    "전혀 예고 없었던  배신... 믿었던 언니가..."

    옆자리 언니에게 원망스러운 눈길보내며,

    그래, 언니가 무슨 잘 못이랴, 남들이 애써 차려놓은 밥상에 얹혀가는 길손이

    사전 지식은 기본에 기본이거늘, 참으로 미안한 마음에 반성문쓰며

    시간이 흐른 뒤, 괜찮은 사람으로 기억되도록 노력해야지 ^^*

*10:30

 - 가리왕산 정선 쪽이 아닌 평창 쪽 장구목이 등산로 입구 도착.

   45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줄이 산을 오른다.

   하얀 눈을 배경으로 형형색색의 등산복과 장비들의 조화가 잘 찍은 사진처럼

   멋지다는 느낌, 오늘도 변함없다.

   정상의 높이가 해발 1560.6m - 결코 만만히 볼 높이는 아니다.

   지극히 나약한 인간들이 감히 자연을 정복할 수 있으랴,

   등산(登山)이라 하지않고, 입산(入山)이라했던 선조들의 겸손을 떠올리며

   나의 체력을 믿고, 내 의지를 지지하며, 내 안의 나태를 극복하기위한 걸음을

   심호흡 한번 하고 성큼 내딛는다.

   나무에 앉은 눈이 녹아 설화는 없었으나, 고도가 높아 질수록, 쌓인 눈은

   많아지고, 계속되는 오르막에 하나 둘 지치는 사람이 생기고,

   내 다리도 점점 아우성을 치기 시작한다.

   단체 산행의 장점이라면, 쓰러지기 전까지는 대열에서 이탈 하기싫은 근성이

   나도 모르게 생겨서 잠재된 최대한의 능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지인들과의 산행이라면 몇 번이고 엄살 피우며 쉬어 갈 거리를,

   그저 흐름에 방해될까 혼신의 힘을 다 해 오르고 또 오르는 기특한(?) 내 모습.

* 12:00

  - 장구목이 임도 도착.

    다행히 내 다리가 파업할 지경은 아닐 즈음에 임도가 나타나서 점심을 먹게 된다.

   워낙 추위에 약한데다 음식을 많이 먹으면 오르막에 자신이 없어서

   간단한 먹거리 만을 준비했기에 커피 한 잔에 빵 한 쪽으로 허기 만을 면하자 싶은데

   먼저 도착하신 회원분들의 재빠른 손놀림으로 이미 여기저기 뜨끈한

   국물의 달짝지근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선선히 접이의자도 내어주시고, 포크도 빌려주시고, 뜨끈한 국물까지 한 공기

   얼떨결에 얻어먹고.. 커피 한 잔과는 비교가 되지않는 성찬이었다.

   주는 사람은 그저 기분좋게 주었을텐데, 받는 사람은 감동을 받으니,

   이래서 나눔의 미학이라 하는가.

   다음 번엔 받은 만큼, 아니 더 크게 나누리라, 그리하여 보답하리라 새기며,

   정상까지 남은 1.2Km 팻말에 다시 새로운 각오로 임도를 출발한다(12:45)

*13:55

 - 능선 삼거리 도착.

   과연 강원도 산자락, 첩첩산중 임을 새삼 느끼며,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이라는 주목들의 멋진 자태 - 감탄사 만 연발한다.

   가늘게 흩날리는 눈발, 아마도 평지에서는 이것이 비가 되어 내리겠지.

   쭉쭉 뻗은 침엽수와 거대한 주목의 위엄에 설화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상쇄된다.

   내리막 한번 없이 오르막이 계속되는 산길의 능선에 다다르니

   이제야 긴장이  풀리고 여유를 찾게 된다.

*14:00

 - 드디어 정상

   잠깐 5분 거리를 지나왔을 뿐인데, 능선과 정상의 느낌은 완연히 다르다.

   백두대간의 조망을 기대하고 왔건만 사방이 안개에 가려진데다 세찬 눈바람에

   정상비에 쓰인 1561m의 높이도 공허해 보이고

   돌탑은 황량해 보이고, 아득히 아래를  내려다보는 여유조차 가질 수가 없다.

   과연 내가 정상을 오르는 것이 목적 이었던가, 단지 게으른 또 다른 내게, 그래서는

   안된다고 따끔하게 충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한 건 잠시.

   갈 길이 바쁘다는 팀장님의 목소리 들리는 듯하여 발길을 돌린다.

*14:10

- 능선삼거리 출발

   오르막에서부터 지쳐보이던 회원 한분이 기어이 나무에 주저앉았다.

   얼굴이 창백하나 춥지는 않다하니 저체온증은 아닌듯 싶어 일단은 안심.

   어지럽고 손이 몹시 차고, 아마도 산멀미 혹은 고산증 아닌가 싶은데

   그건 돌팔이(?) 산꾼의 심증일 뿐, 어쨌든 손을 비벼 혈액순환이 좋게하고

   따뜻한 물을 먹게하고, 마음 편하게 해주는게 좋을 듯 싶었다.

   지켜보는 회원분들이 "초콜렛을 먹어야한다" "옷을 더 입어라"

   등등의 걱정스런 조언을 했으나 정작 당사자는 관심이 부담스러운듯하다.

   당사자는 괴롭고, 자칫 단체 행동에 민폐가 될 수도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이다.

   다행히 본인이 갈 수 있다 의지를 보인다.

* 15:25

  - 중봉 임도 도착(정상에서 1.7Km지점)

    능선을 얼마나 왔을까, 하얀 눈에 지쳐서 초록이 그리울 쯤 나타나는

    산죽의 푸르름이 왈칵 반갑다. 내년 봄 이 산에 철쭉이 흐드러질 쯤이면

    온 산에 초록이 얼마나 황홀할까.. 상상만해도 마음이 푸르다. 

    가도가도 내리막이 보이질 않는 능선길을 지치도록 걸었다.

    앞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깊은 산중에 혼자 있는 듯한 적막함,

    눈길에 선명한 발자욱 만이 위로가 되는 그런 길을 마음비우고 터벅터벅 걷는다.

    꽤 많이 걸었다 싶었는데 임도에서의 팻말에 잠시 기가 꺾인다

    ' 국도 3.5Km'  - 오 마이 갓!!  아직도 그렇게나 많이 걸어야한다고?

* 16:05

    - 오장동 임도 도착 

     아이젠을 벗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갈등 지점에 왔다.

     마치 스키 슬로프처럼 하얗게 펼쳐진 임도를 발이 아닌 

     눈으로 먼저 따라가니  마을로 이어진다.

     다행히 눈이 쌓여 시멘트 포장도로의 은근한 불쾌감을 피할 수 있다.

     푹신한 흙길과 동무하다가, 발걸음 내딛을 때마다 나를 거부하는듯한

     딱딱한 포장도로의 느낌은 정말 반갑지 않은 기억이기에..

* 16:45

 - 숙암리 마을 도착

    뒤 돌아 내가 걸어온 길 돌아보며 " 기특한 내 다리, 대견한 내 의지"

    넓지않은 보폭으로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쌓아서 저 곳을 다녀왔구나.

    즐거운 맘으로 수고하시는 여러분의 배려로 고소한 삼겹살에

    소주가  달콤해지는 마법같은 맛의 향연을 체험한다.

   신참회원이라 챙겨주신 여러분들 감사드리며,

   임원진분들께도 수고많으셨다고 전하고 싶다.

* 18:00

   - 숙암리  출발

      과연 서울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길은 또 얼마나 밀릴것인가.

      체념 반, 희망 반, 그러나 의외로 차는 잘 달린다.

      차창에 비치는 어스름 불빛, 보름이 되어가는 꽉 찬 둥근 달. 

      오늘 하루 무사히 잘 보내고,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겠거니,  이승에서 어깨만 스칠래도

      전생에서 500번은 만나야하는 것이 인연법이라는데,

      하물며 온전히 하루를 서로에게 좋은 마음으로

      함께 자연을 호흡한 인연이라면 당연히 소중하게 간직해야하리라.

      함께 한 모든 분들게 편안한 밤이 되기를,

      그리고 밝아오는 새날에는 행복한 일, 웃는일이 많게 되기를 빌며

  # 사족 :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지만 보답의 의미로 무엇이든 해야할 것 같아

              일기장에 적은 산행기를 가감없이 옮겨봅니다.

             긴 글 읽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신참의 노력이라 가상하게 보아주시면 고맙지요 ^^*

  2007, 12, 23

  호수/

[살랑이야/김승규]

님의 호수 같이 넓은 마음으로 모든 사물을 대하니 부족함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구여,,함께 산행을 하지는 못하여지만 님의 생각과 행동에 많은 를 보내고 다음에 같은 산행열차에 동승도 될려는지..

[Alex/노정근]

산행기 넘 잼있게 사실적으로 생동감 있게 자~알 봤습니다. 갔다 온거나 매한가지네요. 고맙습니다. ^.^

[핑크공주]

다시 가리왕산을 올라갔다 내려옵니다ㅎㅎㅎ 그날의 산행이 그림처럼지나가네요.. 산행후에 일기!!! 넘좋네요^^

[만석]

큰 방에서 글이 요기도 걸려있네여 기자답게 잘 정리하여 놓으셨네여 읽기가 참 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