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rolog
우선 나는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는 단지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이 순간의 즐거움을 위한 매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영화를 보는 1~2시간정도의 재미와 쾌락을 위해서, 아니면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간단한 얘깃거리 정도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물론, 영화인들에게 이런 소릴 하면 나는 분명 매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마다 다들 흥미 있는 것이 다르듯이 내가 관심 가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무지식과 무관심할 뿐인 것이다.
작품이라는 말을 쓰면서 감독의 의도 등을 따지자면 한없이 머리아파 진다. 단순히 봐서 재미없는 영화도 작품성이 높다고 사람들의 찬사가 끊이지 않는 것도 있다. 단순히 봐서 ‘저게 뭐하는 짓이고!’ 라고 나는 느낄 때 작품에서는 수많은 복선과 의미가 담겨있다고들 한다. 그런 것을 알면서 영화를 보면 재미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나는 단순히 재밌는 영화가 좋다. 그냥 부담 없이 웃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영화 말이다. - 물론 영화를 제작하는 예술가(?)들은 작품의 질적 저하를 가져온다고 비난할 일이지만.
김기덕 작품을 보자면 위에서 말한 듯이, 단순히 말해 내취향인 영화가 하나도 없다. 그전에 영화는 <섬>, <파란대문> 등을 봤지만 재밌다 는 것은 하나도 못 느꼈다. 어떻게 보면 즉,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제정신이 아닌, 미친 영화 같은 느낌이었다. 모 후배가 연극영화를 전공하기에 한번 물어 봤더니 ‘그 감독 영화는 원래 그래요.’라고 대답할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영화를 소개 해주는 TV의 프로그램의 해설을 한번 본적이 있는데, 영화 속에는 단순히 장면이 아닌 하나하나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영화 <섬>에서 ‘섬’이 의미하는 것은 주인공 두 남녀의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하나의 안식처 정도의 의미랄까? 그런 것들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어렵다.
중간고사가 끝난 5월 어느 중순에 나는 이 영화를 비디오로 빌려 보았다. 차라리 영화 줄거리나 해설 등의 간략한 내용을 못보고 영화를 감상했다면 좀더 재밌었을지도 모르나, 대충의 줄거리나, 내용을 보고 나니 영화는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을 뿐이었다. 다른 어떤 영화는 내용을 알고 보면 더 이해가 쉽고 재밌게 보았으나 이해가 되지 않는 아주 난해한 영화였다. 과제물 공지를 두세 번 읽어 보면서 머리가 아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에는 어떤 의미나 내용을 감독은 말하려고 한 것일까? 쉽게 결론 내려지지 않았다.
2. Main Discourse
우선 여자 주인공인 선화의 관점에서 보았다. 그러니까 오히려 더 쉬웠다. 우리나라의 영화의 대부분은 어떤 특정한 유명 연예인을 얼굴마담으로 내새워 홍보를 하여 마치 그 연예인을 영화의 전부인 것처럼 암시를 많이 하지만, 이 영화를 내가 봤을 때, 조재현(한기 역)은 단순히 선화를 타락시키는 일종의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차라리 선화를 유명 여자 연예인을 내새워 홍보 했더라면 이 영화는 좀더 흥행에 성공했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전체적인 내용의 선화가 창녀가 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범한 여대생인 선화가 왜 창녀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그런 경우(창녀가 되는 경우)는 TV나 언론 등을 통해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리 생소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선화의 경우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허영심이 많고 돈을 많이 써서, 카드 빛이 많다던가, 가정이 어려워 생계유지를 위해서 부득이 하게 그리해야 한다던가 등의 경우가 아닌 것이다. 아주 평범한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러한 여대생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한 가지는 단순히 ‘돈’인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좀더 나은 삶을 위한 욕망인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 ‘돈을 주우면 경찰서에 갖다 주어야 한다’고 배웠다. 도덕, 아니다 바른생활이었던가? 그 과목에서 분명 그렇게 배웠다. 그러나 만약 아무도 없는 길을 가다가 돈 만원을 주웠다고 가정하자. 과연 그렇게 실행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분명히 사회적으로는 그렇게 가르쳤는데 그렇게 실행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는 무엇일까? 혹은, 고등학생이 그런 일(아무도 없는 길에서 돈이 떨어져 있는)을 경험했을 때 돈을 가지고 자기가 쓰면서, 수능시험에 그런 일이 문제에 나왔더라면 100% 주인을 찾아주거나 경찰서에 갖다 준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는 무엇일까? 왜 그런 것일까?
위에서 언급한 것을 알 수 있다면 오히려 이 영화의 고뇌는 쉽게 풀릴 것이다. 단순히 문답식으로 대답하자면 사람의 욕망이 그것의 좋은 대답이 될 것 같다. 태초에(기독교의 창세기를 응용하자면 - 참고로 기독교 신자는 아님 ^^)신이 인간을 만들기에 욕망과 법규, 도덕 따위의 지켜야 할 것의 대립적인 존재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지 않았는가? 잠깐 엉뚱한 소리를 하자면 신은 참 웃긴 놈이다.(나는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건방지게 이렇게도 이야기 한다) 왜 사람이란 자신의 최고 창제 품을 만들면서 왜 그런 욕망-도덕의 대립적인 모순을 만들어 놓았을까? 차라리 에덴동산과 같은 극락의 세계에 있을 존재였다면 대립적인 모순을 만들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고생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욕망의 사전적 의미를 보자면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고자 누리고자 탐함(한글 2002 사전)’이라고 정의 되어 있다. 인간은 부(富)하거나 가난하던지,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항상 부족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무엇인가 가지려고 하고 - 예를 들어 돈, 재물, 음식 등등 - 누리고자 한다 ― 부와 명성, 명예 -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신이 만들어 놓은 인간 섭리일 뿐이다. 영화에서 보자면 나쁜 남자가 바로 신처럼 욕망과 도덕사이의 선화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선화가 단순히 욕망을 이겨 냈더라면, 도덕적으로 지켜졌더라면 아마 영화 전개가 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선화 역시도 단순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그랬던 것처럼 -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타락의 늪으로 빠져 든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신이 그런 대립적인 모순을 만들어 놓았다면, 인간은 도덕과 법규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억매여 가고 있다. 태초의 모세가 10계명을 사람들에게 지키라고 한 것부터 시작하여 사람들은 오늘날 까지 무수한 법규와 도덕적인 규칙들에 억매여서 살고 있다. 어차피 다 지키지도 못할꺼면서도 말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의 도덕과 법규가 존재하고 있다. 세상 어떤 사람이라도 이를 다 지키는 이는 없을 것이다. 막말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한번 보고 싶다. 얼마나 그 사람은 위선자 일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키지도 못할 것을 사람들을 위선자 - 다시 말해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 -처럼 보이기 위해 지키고 각자 노력하고 있다. 여기서는 엄청난 모순일지도 모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도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척 하는 것이다.
다시, 영화 얘기를 하자면 남자주인공 한기는 선화에게 창녀들이 옷을 벗는 것과 같은 위선을 벗기고자 창녀라는 늪에 빠뜨렸는지도 모른다. 영화 초기 장면에서 보듯 선화의 그 능멸적인, 다시 말해서 한기를 쓰레기 보듯 하는 그 도도한 눈빛이 가증스럽고 모욕적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창녀나 선화는 벗겨 놓으면 똑같은 여자이기는 매 한가지 인데 말이다.(걱정 됩니다. 이글을 다른 여학우가 읽으면 욕 쫌 먹겠군요. ㅡㅡ) 그러나 선화는 한기를 욕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한기가 선화를 억지로 그렇게 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을 이기지 못해 한기의 덫에 걸려든 것뿐이다. 그에 대한 타락의 결과는 선화 스스로를 탓해야지 남을 탓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더러운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어쩌면 포괄적으로 욕망과 도덕의 관계를 정의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욕망이라는 것은 어쩌면 참으로 이겨내기 힘든 유혹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도덕은 욕망을 억제하는 사회적인 시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엮어 보자면, 욕망은 인간의 쾌락을, 도덕을 사회적 시선의 쾌락을 줄 수 있는데, 이는 인간이 선택하는 것이다.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하든 상관없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서 다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선택하는 데에 따르는 결과와 책임은 그 인간이 지는 것이다. 따라서 후회는 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어쩌면 남자들의 창녀를 보는 시선에서도 나타난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추악한 직업이 뭘까? ‘창녀’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 일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창녀’ - 이를 더럽다고 욕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사람, 아니 남자는 과연 몇이나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몸을 파는 직업, 물론 ‘더럽고 역겹다’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을 한다. 그러면서도 성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남자들은 창녀촌을 들락거린다. 모 신문에서 21세기 가장 유망산업으로 몸 파는 사업이라고 꼽을 정도이니 말이다. 심지어 학교에서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는 교사도 얼마 전 성매매 명단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이라는 동물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역겨운 동물인지 알 수 있다. 여기서도 보듯 인간의 욕망과 도덕의 더러운 관계를 볼 수 있다. 남자들의 성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매개체를 창녀로 삼으면서도, 그 자신과의 관계를 맺는 여자, 다시 말해 창녀를 도덕적으로는 욕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모순 되는 것 이면서 더러운 행위인가 ?
3. Epilog
대학 들어와서 아마 제일 어려운 과제를 하지 않았는가 싶다. 글을 적다 보니 신에 대해서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듯싶기도 하다. 왜 이러한 모순을 만들어서 날 비롯한 사람들을 괴롭게 하냐고 묻고 싶다. 그러면서도 신은 ‘악마의 시험에 들지 말지어다’라고 위선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고뇌의 동물이라고 한 것일까? 글을 적다가 '다른 영화를 볼까?’ 라도 생각되었지만 어쩌면 이런 문제는 살면서 한번쯤은 생각해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모든 문제의 근원은 욕망-도덕의 대립이 아닐까도 싶다. 놀고 싶다는 욕망과 시험공부를 해야 된다는 도덕처럼 말이다. 욕망과 도덕사이의 행위 주체 즉, 선택권은 인간이 가지고 있지만 거기에 대한 결과와 책임도 인간에게 있다는 어쩌면 평범한 결론이면서도 어려운 문제인 듯싶다.
첫댓글뭐 신에 대한 정면도전이랄 것까지는 없구요. 다만, 제가 좀 초점을 맞추어보자고 한 쪽은 한기를 뺀, 그리고 신을 뺀 옳고 그름을 말해보자는 것이었지요. 신이 지선하다던가, 한기가 최악이라던가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그리고 선화는 자기 행위에 대한 정당성과 판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첫댓글 뭐 신에 대한 정면도전이랄 것까지는 없구요. 다만, 제가 좀 초점을 맞추어보자고 한 쪽은 한기를 뺀, 그리고 신을 뺀 옳고 그름을 말해보자는 것이었지요. 신이 지선하다던가, 한기가 최악이라던가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그리고 선화는 자기 행위에 대한 정당성과 판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