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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향(祭饗)날-채만식
■ 전체 줄거리
1937년 10월 초순 70세의 최씨는 내일로 다가온 남편의 제향(祭饗)을 준비한다. 집안은 온갖 풍상을 겪은 듯 치패(稚貝)하여 황량한데 최씨의 마음 또한 옛날을 좇듯 시름에 젖는다. 이때 외손자 영오가 외할아버지의 제향을 맞아 다니러 와서 최씨에게 재미난 얘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최씨는 그런 영오에게 풍랑과 같았던 집안의 역사를 이야기해준다. 영오의 외할아버지는 1894년 동학혁명 때 접주를 지낸 사람으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떳떳하게 죽어갔으며 영오의 외삼촌은 기미년 만세운동이 계기가 되어 독립운동을 하러 상해로 떠난 뒤 18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최씨의 이야기가 비감하게 잦아들 무렵 산소에 갔던 영오의 외사촌형 상인이 돌아와 영오를 반긴다. 상인은 영오에게 영겁토록 받을 고초를 감수하면서도 인간에게 최초로 불을 전해 준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신화를 이야기해 주고 최씨 또한 예로부터 집안 대대로 간직해왔던 불씨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상인은 볼일이 있다며 일어서고 대문을 나서는 상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최씨는 상인이 학교만 마치면 그간의 고생도 끝이 날 것이라며 흐뭇해한다. 그런 최씨에게 영오는 학교에서 들었다며 상인이 형이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사회주의를 한다고 하지만 사회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최씨는 그저 앞날에 대한 희망을 얘기할 뿐이다.
● 등장 인물
1. 前景 (1937년 병자)
* 할머니(최씨) - 70세
* 외손자(영오) - 12세
* 손자(상인) - 22세
2. 제1막 (갑오, 前景에서 43년 전)
* 최씨 - 27세
* 김성배 - 최씨의 남편, 동학당 접주, 30세
* 영수 - 아들, 2세
* 모친 - 60세
* 병정 3인
* 기타 읍 수령(邑守令) , 각방 이속(各房夷屬) 참령(參領) 이 거느린 병정 1지대, 동학당원 2명, 동네 남녀노소 약간
3. 제2막 (경신, 전경에서 18년 전. 제1막에서 25년 후)
* 최씨 - 52세
* 영수 - 아들, 27세
* 서씨 - 며느리, 25세
* 상인 - 손자, 4세
* 영수의 친구 4, 5인
* 동네 순자
4. 제3막 (희랍신화시대)
* 원시인 5, 6인
● 핵심정리
▶갈래 : 희곡
▶배경 : 구한말 ~일제 강점기
▶주제 : 3대에 걸친 부정적인 세력에 대한 투쟁과 올바른 역사의 영속성
▶특징 :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고 있음.
▶짜임 :
발단 : 최 씨가 남편의 제사를 준비하면서 외손자 영오에게 남편인 김성배에 대한 이야기를 해줌.
상승 : 최 씨의 남편이 동학 농민 운동에 가담했다가 총살형을 당함.
절정 : 최 씨의 아들인 영수가 3·1운동을 하다 상해로 도망가 독립운동을 함.
하강 : 최 씨의 손자인 상인이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를 함.
대단원 : 일본에 유학 중인 상인이 사회주의 운동을 하고 있음이 암시됨.
이들 작품은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다양한 경향과 문제의식 드러내는데, 그 소재와 내용에 있어, 농촌의 구조적인 문제, 노동자와 파업, 일상 서민의 빈궁한 삶, 지식인의 허위의식 등 당대 현실 문제를 다양한 각도로 날카롭게 제시. 이러한 문제를 형상화하는 틀로서의 극양식 또한 단막극, 촌극, 대화소설, 장막극 등 다양한 형식과 함께 전통적인 극양식의 개념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파격적인 요소를 드러내고 있어 주목됨. 그 특성은 서사성이라는 보다 넓은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제향날>은 이러한 서사적 특성이 잘 드러나는 대표작품이다.
● 등장인물
*최 씨 :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
*김성배 : 최 씨의 남편으로, 동학운동에 가담함.
*김영수 : 최 씨의 아들로 독립운동에 가담함.
*김상인 : 최 씨의 손자로 사회주의 운동을 하고 있음이 암시됨.
*프로메테우스 : 등장인물의 현실 극복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줌
● 이해와 감상
<제향날>의 서사성은 그 소재를 역사에서 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김성배와 영수, 상인으로 이어지는 한 가족사를, 동학혁명과 3·1운동, 사회주의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연결시켜 역사는 진보해갈 것이라는 작가의 뚜렷한 역사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서사적 내용과 극적 형식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가 바로 최 씨라는 서사적 화자의 설정. 최 씨는 각각의 장면에서 이 집안의 며느리이자 아내, 어머니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손자인 영오에게 과거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 구조를 취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제향날>은 이야기되는 대상으로서의 과거의 극적 재현장면과 이야기하는 행위로서의 현재의 서술의 교체로 이루어지는 서사적 구조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재현장면과 서술의 교체는 장과 장 사이 그리고 막과 막 사이를 관통하는 형식원리로 작용하면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고 결국 프로메테우스의 신화적 장면과 연결되면서 당대 지식인의 책임과 의무를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볼 때 이들은 전경이라는 극적 장치에 의해 시간적 선후의 연쇄적 관계를 가짐으로써 이러한 행위와 의미가 인류 이래 계속 추구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진보적인 역사의식을 드러낸다. 즉 자신들을 억압하는 적대적인 세계에 맞서 대항하는 이들과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통해, 이들 역사적 사건들이 동일하게 인간 역사발전의 추진력이 되어 왔으며, 그러한 진보는 인류시작 이래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미래에의 전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서사적 특성은 인간과 사회제도, 개인과 세계를 대립관계로 파악하는 채만식의 서사적 비젼, 즉 산문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은 더 이상 인간 상호간의 작용에 의해서 행위의 결단을 내리는 주체가 아니라 사회와 제도, 그리고 정치`경제적 상황에 의해 억압받고 규정되며 그러면서도 그에 맞서 대항하는 존재인 것이다.
작품의 형식구조를 통한 이러한 의미망은 화자의 태도에 의한 또 다른 의미망과 병치되면서 이 작품의 심층적 구조를 드러낸다. 그것은 이같은 표면적 주제에 대해 모순된 관점을 설정하여 그로 하여금 이들의 행위와 의미를 서술하게 함으로써 시대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하는 당대 지식인들의 과제와 일상인들의 가치 추구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고통과 좌절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당대적 상황 안에서 개인들의 운명이란 결국 비극적일 수 밖에 없는 것으로 파악하는 작가의식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해결이나 전망은 작품 내에서 제시되는 것이 아니기에 관객 스스로 사고`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국극예술학회 <한국현대대표희곡선집 1>
● 출제목록 : -08년 3월 3학년 전국연합 학력평가
▣ 해설 1
동학금을 지원한 증조부, 동학 접주였던 조부, 3.1 운동 주동자였던 부친, 주인공인 자신(상인) 등 4대에 걸친 가족사를 다룬 <제향날>은 식민지 현실을 역사인식 연속선상에서 추구하면서 민족 장래를 상징적으로 모색하는 점에서 눈에 띈다. <제향날>은 남편 제삿날에 상인의 할머니인 최씨가 외손자인 영오에게 가족사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야기 가운데 친손자인 상인도 가담하여 영오에게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현실 장면에서 과거사나 신화가 재현되는 회상 장면이 일곱 차례나 반복된다. 과거사나 신화를 같은 방식으로 재현시킨 것은 미숙한 수법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독백이나 설명을 곁들인 최씨 대사는 속도가 느리고, 회상 장면과 일부 중복되는 내용도 있어, 극적 행동으로는 부자연스럽고 갈등 구조를 취약하게 하는 요인도 없지 않다. 그러나 가족사적인 투쟁이 프로메테우스의 인간을 구원하려는 희생에 비유되고, 미래 독립 국가 건설을 위한 불씨로 상징돼 어린 손자에게 교훈으로 남겨지는 점은 극적 상상력이 극도로 발현된 사실주의극의 커다란 성과이다. 서사극에 관한 선구적 시도도 주목할 만하다.
서연호·이상우, <우리연극100년>(현암사 2000)
▣ 해설 2
채만식은 1929년 <가죽버선>을 시작으로, 1940년 <당랑의 전설>까지 10여 년 동안 26편의 희곡작품을 남겼다. 그는 농촌의 구조적 문제, 노동자의 파업, 일상 서민의 빈궁한 삶, 지식인의 허위의식 등 당대 현실 문제를 다양한 각도로 제시하였고, 단막극, 촌극, 대화소설, 장막극 등 다양한 형식 실험도 시도하였다.
<제향날>은 1937년 11월 조광 25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전경까지 포함하여 3막 7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최씨가 외손자 영오에게 자신의 남편과 아들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 작품을 이루는 큰 축인, 최씨의 남편 김성배와 아들 영수, 그리고 영수의 아들인 상인으로 이어지는, 삼대에 걸친 투쟁과 고난의 역사가 전면에 그려지고 있으며, 최씨의 시어머니와 최씨, 며느리 서씨로 이어지는 여인들의 역사가 후면에 자리하고 있다. 동학군이었던 최씨의 남편은 부모 때문에 자수를 하지만, 결국 사형 당한다. 반면 아들 영수는 3.1 참여 후 망명해 지금껏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리고 영수의 아들인 상인 역시 비록 외사촌 동생 영오의 입을 통해 제시될 뿐이지만 일본에서 유학을 하면서 사회주의운동에 몸담고 있다는 것이 암시된다. 상인의 앞날은, 그가 영오에게 해주는 프로메테우스 신화 이야기에서 암시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에 걸친 이들 삼대의 삶은 제향날이라는 극적 현재를 활용함으로써 병렬적으로 제시된다. 표면구조에서 이야기된 것은 저항을 하다가 결국 죽임을 당함으로써 좌절을 당한 최씨 남편에 관한 것이지만, 심층구조에서는 ‘저항-지속’을 보여주는 아들과 손자, 프로메테우스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채만식의 역사의식을 알 수 있게 하는 지점이다.
극중 사건은 인물의 행위와 대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극중 인물이자 서사적 화자인 최씨의 서술과 회상 속에서 전개된다. 현재 인간 상호간의 영역에서 극이 이루어지기보다는 과거와 신화의 세계 속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향날>은 드라마 형식과 서사적 형식이 갈등을 빚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향날에서 서사적 내용과 극적 형식간의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장치로 마련된 것이 서사적 화자의 설정이다. 최씨는 모든 사건들을 지켜보아온 서술자로 극 전체는 최씨가 손자 영오에게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에 이르는 사건들을 전해주는 서사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최씨에 의해 각각의 사건은 하나의 전체적인 것으로 통합되어 시간적 불연속성과 공간적 분열의 틈을 메운다. 이 서사적 화자의 설정으로 인해 종래 독립적이고 완결된 주체로서의 극적 세계는 이제 객체화되고 극중 세계는 이야기하는 행위인 주체와 이야기되는 대상으로서의 객체간의 관계로 분리된다. 이는 인간과 사회, 개인과 세계를 대립적인 관계로 파악하는 채만식의 서사적 비전과 상관성이 있다.
작가는 서사적 화자를 통해 극적 세계에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의 여지를 남겨놓으며, 관객 또한 극적 환상 대신 극중 세계의 주-객체간의 관계를 자신과 극적 세계와의 관계에 투영하여 개입과 관조로써 거리를 조정하게 되는 것이다. 제향날은 이상과 같이 내용면의 서사성으로 인해 드라마 형식과 갈등은 빚고 그를 해결하기 위한 형식적 장치로서 서사적 화자를 도입해 작가와 독자 간의 거리를 조정한다.
<제향날>의 기본구조는 이야기되는 대상으로서의 극적장면 재현과 이야기하는 행위로서의 서술의 교체로 이루어진다. 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은 극중 현재의 시점이 아니라 오히려 극적 재현의 장면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장면 재현과 서술의 교체는 장과 장 사이, 그리고 막과 막 사이를 관통하는 형식 원리로 작용하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동일한 의미를 갖는 세 개의 막을 불연속적으로 연결함으로써 당대 지식인의 책임과 의무를 반복적으로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볼 때 이들은 전경이라는 극적 장치에 의하여 시간적 선후의 연쇄적 관계를 가짐으로서 이러한 행위와 의미가 인류 이래 계속 추구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진보적인 역사의식을 드러낸다.
동학란, 3.1 운동, 일제 치하에서의 사회주의 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김성배, 영수, 상인으로 이어지는 가족사와 연결시켜 개인과 민족을 억압하는 정치, 경제적 상황들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억압하는 적대적인 세계에 맞서 대항하는 이들과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통해 이들 역사적 사건들이 동일하게 인간 역사 발전의 추진력이 되어왔으며 그러한 진보는 유사 이래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미래의 전망을 드러낸다.
▣ 작자연구
채만식(1902~1950) : 전북 옥구 출생의 극작가이며 소설가이다.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중퇴하였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개벽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였다. 1925년 단편소설 <세길로>로 ‘조선문단’의 추천을 받고 문단에 데뷔한 후 소설과 희곡, 평론을 병행했다. 그의 희곡엔 풍자적 요소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고 신랄하게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주요 희곡 작품엔 <낙일>(1930) <미가대폭락>(1931), <인텔리와 빈대떡>(1934), <제향날>(1937), <김봉사>(1947) 등이며, 그의 대표적인 소설은 <레디메이드 인생>(1934), <탁류>(1937~1938), <태평천하>(1938), <치숙>(1938) 등이다.
■ 작품 발췌 읽기
최씨:(한숨) 그래서 그 날 밤 그렇게 뒤울타리를 뛰어넘어 나가 버리더니 그런 지가 열여덟 해가 되었다! 열여덟 해!
영오:그래서 시방도 외삼촌은 상해라는 데 있수?
최씨 : 모르지. 처음 갔을 때는 가끔 편지도 하고 하더니. 편지뿐이드냐! 육장 논을 팔아서 그 뒤를 대고, (사이) 그런 전장(田莊)이야 다 제가 객지에서 요긴하게 쓰느라고 팔아 없앤 것이니까 원통할 것은 없지만, 글쎄 그러니까 그게 어느 해냐? 경오년이지. 경오년 이짝으로 팔 년째 나는 통히 소식조차 없구나! 그러니 답답할 게 아니냐? 죽었는지 살어 있기나 한지.
영오:편지해 보면 되지?
최씨:편지를 하면 도루 오고 도루 오고 하는 걸. (사이) 그렇게 논밭이 있든 것을 요모로 조모로 다 팔어 없애고 논이래야 겨우 박토 한 섬지기 남은 것에다가 세 식구가 목을 매어달고 울면불면 이날 이때까지 또 살어를 왔구나. (사이) 그래도 인제는 네 상인이 형이 그만큼이나 장성을 했고, 시방은 고학을 한다고 고생은 해도 인제 내년 후년이면 졸업을 한다니까 졸업을 하고 나오는 날이면 저 고생한 보람이 있이 또 제 에미가 초년의 생과부로 고생한 바람 있이 편안히 잘살게 되겠지. 내야 그 덕을 볼 날까지 살어 있을는지 모른다마는 혹시 모진 목숨이 죽지 않고 몇 해 더 살어 있느라면 제 덕으로 두 다리를 쭉- 뻗고 다만 몇 날이라도 편히 살다가 죽을 테지. 나는 시방 믿느니 그것뿐이다.
[중략 부분 줄거리] 할아버지 제향(제사)날을 맞아 산소에 다녀온 상인이 집으로 돌아온다. 영오는 외할머니께 외할아버지가 동학 혁명에 가담했다가 관군에게 잡혀 죽고, 외삼촌인 영수는 일제에 맞서서 독립 운동을 하다가 일경에 쫓긴 끝에 상해로 망명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상인에게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한다. 상인은 최씨와 영오에게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위해 불을 훔친 후 형벌을 받는 이야기를 해 준다.
배경은 멀리 연산의 산봉우리들. 무대에는 그들 연산 중에 제일 높은 봉을 보이는 바위 하나. 무대가 밝아지면 한쪽 눈이 상하고, 한편 귀가 떨어진 프로메테우스가 굵은 쇠사슬로 팔과 다리를 바위에 묶여 앉아 있다.
프로메테우스 : (눈을 치뜨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의(義)를 행한 보과(報果)품*! 의를 이룬 보과품은 영겁의 고초! 죽지 아니하고 영겁토록 받는 고초! 사나운 독수리가 살을 쪼아 먹고 까막까치는 눈을 파먹고 귀를 떼어먹고 그러고도 끊이지 아니하는 극형!
천둥소리 으르렁거리고 번개 친다. 폭우가 내린다. 폭우가 그치고 강풍이 분다. 강풍이 그치고 눈이 내린다.
프로메테우스 : 그래도 나는 의를 이루었노라. 뉘우치지 아니하노라.
▶삽입 장면 : 의를 행하고 고초를 받는 프로메테우스
무대 급히 암전. 다시 밝아지면 도로 전경.
이야기의 세계→현실 세계
최씨 : 아이! (혀를 끌끌 찬다.) 불쌍하다.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를 듣고 동정심을 보임
상인 : 하하하하. 불쌍해요?
최씨 : 그럼 불쌍하잖니! 언제까지고 그렇게 묶여 앉아 고생을 할 테니!
상인 : 그런데 얼마 전에 누가 가서 풀어 놓아 주었답니다. 할머니.
최씨 : 아이, 잘했다. 아무렴, 놓아 주어야지.
상인 : 하하하하. (일어서서 마당으로 내려선다.)
영오 : 형 어데 가우?
상인 : 나 누구 좀 만나고 오마.
영오 : 나도 같이 가?
상인 : 너는 못 오는 데다.
최씨 : 일찍 들어와서 저녁 먹어라.
상인 : 네. (채면*께로 걸어간다.)
최씨 :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저것이 뒤태는 여승* 제 애비야!
아버지 영수처럼 민족을 위한 일을 할 것임을 암시함
영오 : 외삼촌?
최씨 : 그래. 돌아서서 저렇게 걸어 나가는 걸 보면 그저 하릴없이 제 애빈걸! 뒷데숙이*가 볼록 나온 것이며 어깨통이 떡 벌어진 것이며 걸음걸이며. (한숨)
상인 : (한 번 돌려다 보고 채면 밖으로 퇴장)
최씨 : (방백) 어여 하루바삐 공부를 다 하고 와서 장가나 들고 자식이나 낳고 그래서 편안히 살아가거라. 믿느니 믿느니 그것뿐이다. (한숨)
영오 : 할머니, 할머니.
최씨 : 오-냐.
영오 : 그런데 말이유. 우리 선생님도 그러시고 또 우리 반 동무아이도 그러는데 형이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사회주의 한다고 그러겠지?
최씨 : 무엇? 사우주? 그건 무슨 말이라든?
영오 : 나도 모르겠어. 그냥, 이애 영오야! 느이 외갓집 상인이 형은 동경 가서 사회주의 한다지? 그래.
최씨 : 응. 그럼, 아마 돈 없이 고학한다는 말인가 부구나. 그렇다면야 어떻니? 그렇게 고학을 해서라도 공부만 착실히 잘해서 장하게 되어 가지고 잘 살면 그만이지.
▶현재 :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상인에 대한 암시
* 전장 : 소유하는 논밭.
* 보과품 : 어떤 일의 보답으로 돌아오는 결과물.
* 채면 : 객석에서 보이지 않도록 얇은 판막이나 휘장 등으로 가린 곳.
* 여승 : ‘영락없이’의 뜻.
* 뒷데숙이 : 뒤통수
* 사회주의 : 일제 강점기의 일부 지식인들에게 사회주의는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으로 수용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