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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디에메, 반다 란도프스카에 의해 하프시코드가, 그리고 아놀드 돌메치에 의해
클라비코드가 부활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옛 악기의 재현이 아니었다. 하프시코드가
오랫동안의 동면에서 깨어나 첫 숨을 내쉬기 시작한 이후로, 악기는 음악사 속에서
마치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것과 같았다. 그것들은 마치 오래 전에 귀족의 살롱에서
그 우아한 음률로 사람들의 마음을 매혹시키고, 찬탄을 불러 일으켰던 것처럼 현대의
청중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또한 역사적인 건반악기들이 세월 속에서 수많은 변화를
거쳐 온 것과 마찬가지로, 부활 이후 오늘날까지 운명적이고도 극적인 변화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의 원전연주 특집에서 이미 건반악기 원전연주의 역사와
중요한 레퍼토리들, 그리고 유명한 하프시코드 연주자들을 다룬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하프시코드 연주들을 중심으로 클라비코드 및 그 밖의 건반악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적인 악기를 사용한 음반을 살펴봄으로서 본격적인 부활 이후의 활동을
살펴보려고 한다. 각 음악 사조와 지역적인 특색을 반영하고 있는 악기와 그것으로
연주한 음반들을 소개하고 더 나아가 그 연주에 적용된 다양한 음고와 조율법의
예들을 보임으로서 정격음악 운동이라는 것이 열어놓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음반으로 직접 접해보고 여기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혹자는 연주 자체가 중요하지 악보의 에디션이라던가 악기의 종류, 음고,
조율법 따위를 세세하게 신경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평범한 요리사는 양념으로 맛을 내려고 하지만, 훌륭한 요리사는 좋은 재료를
고르는데 많은 시간을 쓴다 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고악기와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건반악기의 부활 역시 주위의 무시와 냉대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한 초기
개척자들의 땀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하프시코드의 개척사를 담아놓은
귀중한 유산들이 펄(Pearl)레이블을 통해 발매되고 있다. 반다 란도프스카의 유명한
바흐와 핸델 연주는 물론 젊은 랄프 커크패트릭과 고든 우드하우스 부인의 전설적인
녹음도 포함되어 있다. 또 이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역시 잊을 수 없는 연주자들,
루돌프 돌메치(아놀드 돌메치의 아들로 버지널의 명연주자), 엘라 페슬, 에타 하리히
슈나이더의 녹음을 담은 음반 역시 20세기의 연주사를 장식하고 있는 불멸의
기록물이다.
이처럼 20세기 초반이 혁명의 시작이었다면 2차 대전 이후 이른바
히스토리컬 모델에 대한 탐구는 혁신의 시작이었고, 고음악 연주의 새로운 프론티어를
개척한 것이었다. 히스토리컬 모델과 역사적인 문헌에 근거를 둔 연주법이 가져온 큰
변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른바 국가 양식이라는 것을 되살렸다는
것이다.그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지널리스트에서 바흐에 이르기까지 모든
레퍼토리를 아무 고민 없이 금속 프레임의 플레이엘 하프시코드나 16피트 레지스터를
가진 노이페르트의 바흐 모델로 연주했다. 하지만 마르틴 스코브로넥이나 프랭크
허바드 같은 제작자들이 역사적인 악기들을 복원하고, 완전히 이해하고, 복제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연주자들은 각 악기에 스며들어있는 그 시대와 지역의 음악적인
특성과 미학적인 측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현명한
연주자들은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각 음악의 울림에 적절한 매체를 찾아내는 것은
해석자의 중요한 임무가 되었다. 플랑드르(벨기에-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의 하프시코드들은 박물관을 벗어나 각각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실제
연주와 레코딩에 사용되기 시작되었다.
영국 버지널리스트의 음악과 17세기 레퍼토리르네상스 시대의 건반음악을 연주한 것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윌리엄 버드의 건반음악을 전부 연주한 대빗 모로니의
전집(하이페리언)이다. 클라비코드 및 플레미시 4각 버지널과 루커스 및 쿠세
하프시코드의 복제품, 위르겐 아렌트가 복제한 17세기 북독일식 오르간 등 여섯 가지
다른 악기로 버드의 명곡들을 일곱 장의 음반에 알차게 담은 기념비적인 연주라고 할
수 있다. 여러가지 악기를 사용하여 각 곡에 어울리는 다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음고과 조율법도 당대의 습관을 따라서 음고는 현대 음고보다 온음
낮은 A=392Hz를 썼으며 조율법은 르네상스와 초기 바로크 시대의 일반적인 1/4콤마
민톤을 사용했다.한편 버지널만으로 연주된 음반은, 버드를 중심으로 다울랜드와 불
등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한 장의 음반에 모아놓은 소피 에이츠의 영국 버지널
음악(챈도스)이 있다. 에이츠는 이탈리아 버지널을 참고하여 피터 배빙턴이 새로 만든
버지널을 사용하고 있는데 탱글탱글하고 귀여운 버지널의 음색이 꽤 인상적이며
에이츠는 이 악기에 적절한 선곡과 연주를 결합하여 연주 효과를 높이고 있다. 놀라울
정도로 리듬감이 풍부한 My Lady Careys Dompe"는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을
연주이다.영국적인 건반음악의 최후라고 할 수 있는 퍼셀의 건반 작품은 규모는 비록
작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영향을 함께 보여주면서 동시에 영국 버지널리스트의
전통선상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17세기가 끝나는 무렵에 가장 개성적인
음악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퍼셀의 모음곡은 얀 쿠세의 명기를 사용한 케네스
길버트의 새 연주(하르모니아 문디 프랑스)와 오리지널의 18세기 스피넷을 사용한
콜린 틸니의 연주(아르히프)등 좋은 연주가 많은데 올리비에 보몽은 벤튼 플레처
컬렉션이 소장하고 있는 두 가지 영국 악기로 퍼셀의 모음곡과 그라운드를 연주했다.
모음곡은 커크만의 18세기 하프시코드로, 그라운드와 에어는 17세기 버지널로
연주함으로서 두 가지 악기가 가지고 있는 음향적 차이가 작품의 장르적 특성에
투영되도록 의도하고 있다. 즉 이탈리아의 영향이 강한 화려한 작품에서는
하프시코드를, 리드미컬한 오스티나토 베이스를 가진 작품에는 버지널을 사용했다.
리듬감이 강조된 꽤 활기찬 연주로서 퍼셀의 작품을 연주하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참조가 될 것이다.17세기 레퍼토리를 연주한 최근의 음반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지크베르트 람페의 프로베르거 연주이다. 블랑딘 베를레나 루저 레미의 새로운
프로베르거 연주에 비해 람페 연주의 놀라운 점은 1595년 제작된 베네치아
하프시코드에서부터 동유럽과 스페인의 희귀한 각종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주에 사용된 명기들의 면면만으로도 듣는 사람을 상당히 즐겁게 만드는
음반이다. 여기에는 가장 훌륭한 명기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안드레아스 루커스의 2단
하프시코드도 포함되어 있다. 이 악기들은 모두 함부르크의 보이어만 협회가 소장한
악기로 매우 좋은 상태로 유지되어 있다. 또 모든 악기에 대해 동일한 음고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바로크 후기의 하프시코드에는 쓰이지 않았던 매우 낮은 349Hz에서부터
오르간의 코어톤 음고(486Hz)등 악기에 따라 다양한 음고를 적용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는 실험적인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람페는 이미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등의
연주를 통해 적절한 음고를 설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 음반은 다양한 음고를 적용한 좋은 예로서 중요하다고
하겠다.
각국의 하프시코드루커스 일가로 대표되는 플랑드르의 악기는 전 유럽에 수출되어
17세기 이후 유럽 하프시코드의 표준이 되다시피 했고 루커스와 쿠세의 뛰어난
악기들은 18세기에도 여전히 명기 취급을 받았다. 본래는 음역이 작았기 때문에
후대의 제작자들은 건반과 액션을 손봐서 음역을 넓히는 개조(라발르망)를 했는데
현명하게도 사운드보드는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본래의 플랑드르 악기가 가지고
있는 약간 거친 듯 하면서 리드미컬하고 힘이 넘치는 소리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개조를 거쳐 전 유럽에서 계속 사용되었으므로 좋은 플레미시 하프시코드는 어떤
종류의 음악을 연주하는데도 적합하다.1965년 구스타프 레온하르트가 스코브로넥이
복제한 둘켄 하프시코드를 연주하여 역사적인 골트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내놓은 이후
플레미시 하프시코드는 프랑스와 독일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안드레아스 루커스의 명기를 블랑세가 보수한 악기를 사용한 크리스토프 루세의
대 쿠프랭의 클라브생 작품집 제 4권, 그리고 얀 쿠세의 악기를 블랑세와 타스캥이
보수한 명기를 사용한 케네스 길버트의 바흐 인벤션과 신포니아, 현대의 악기로 빌렘
크뢰스베르겐이 복제한 루커스를 사용한 톤 코프만의 바흐 프랑스 모음곡을 플레미시
악기를 사용한 좋은 연주로 꼽을 수 있겠다.프랑스의 하프시코드 생산은 독일계
이주민들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곧바로 프랑스의 색채가 짙은 악기들이 만들어졌다.
화려함과 섬세함이 조화된 프랑스 악기는 다분히 프랑스 궁정과 귀족의 분위기,
그리고 거기서 연주되던 당글베르, 샹보니에르, 쿠프랭 가문, 라모의 걸작들을 반영한
것이다.블랑세(Blachet)가문, 구종(Goujon), 앙쉬 형제(H. & G. Hemsch)로 대표되는
프랑스 하프시코드제작자들은 부드러운 저음과 표현력이 풍부한 중음, 상쾌한 고음의
조화를 이끌어내 전음역에 걸친 스펙트럼과 같은 화려함과 충분한 음량을 지닌
악기들을 만들어냈다. 또한 18세기의 프랑스 하프시코드들은 플랑드르와 작센의
제작자들이 의도적으로 모방하고 있기 때문에 진짜 프랑스 악기는 아니지만 프랑스
풍의 악기(프랭크 허바드의 표현을 빌자면 프랑스 명기의 서투른 이미테이션)가 유럽
대륙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바흐의 많은 작품을 프랑스 하프시코드로도
연주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앙리 앙쉬의 오리지널 작품과 루커스-앙쉬의 악기를
앤소니 시디가 복제한 악기를 사용한 크리스토프 루세의 라모 클라브생 작품 전집은
프랑스의 악기를 프랑스의 작품에 프랑스인의 감정으로 연주한 걸작이다. 뿐만 아니라
악기의 선택과 조율법의 선택 측면에서도 이만큼 세밀하게 고려한 연주는 없었고
이후에도 이만한 연주를 찾기 힘들지 모르겠다.앙쉬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역시 뛰어난
악기인 구종의 복제품을 사용한 소피 에이츠의 프랑스 바로크 하프시코드 작품집은
초기 클라브생 악파인 당글베르에서부터 하프시코드 음악의 화려한 종장이라고 할 수
있는 장 밥티스트 포르큐레의 편곡 작품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클라브생 음악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을 한 장의 음반에 모아놓은 것으로 프랑스 건반음악을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선곡집이라고 하겠다.또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만발한 프랑스 음악의 꽃은 윌리엄 크리스티와 크리스토프 루세가 듀오로 연주한
쿠프랭의 륄리 찬가, 코렐리 찬가 이다. 이 두 대가의 만남만으로도 감동적이지만 그
연주의 조화로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쿠프랭의 륄리 찬가는 본래
바이올린의 트리오 소나타 형태로 만들어 진 것이지만 쿠프랭 자신이 두 대의
하프시코드를 위해 직접 편곡했으며 쿠프랭의 작품 가운데 하프시코드 듀오를 위한
곡도 몇 곡 찾아볼 수 있다.
독일의 하프시코드는 프랑스나 플랑드르의 악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 그 특질을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바흐 당대에 독일 악기의 경향은 크게 두 흐름으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함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제작자들이며 다른 한 부류는 질버만(G.
Silbermann)과 그레프너(Graebner)로 대표되는 작센 스타일이었다. 그 가운데 독일의
대표자는 역시 함부르크의 하스 (Haas)일족이며 함부르크의 또다른 유명한 제작자로는
플라이셔(J. Fleischer), 첼(C. Zell)을 들 수 있다. 외견상 함부르크 악기의 특징은
악기의 끝부분이 매우 날카로운 각도로 둥글게 처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각형으로 마무리된 플레미시나 프랑스 악기, 그리고 그것을 답습한 작센 악기와
구별된다.다니엘 코젬파는 바흐의 유명한 Das Wohltemperierte Clavier를 전곡
연주하면서 이전에 누구도 하지 못했던 시도를 했다. 각 작품의 성격에 가장 적절한
악기를 사용하기 위해 각종의 클라비코드와 하프시코드, 오르간과 심지어
포르테피아노까지 동원하고 피터 윌리엄스의 조언에 따라 등분평균율이 아닌 당대에
보다 더 일반적이었던 1/6콤마 민톤의 순환체계를 사용하여 학문적인 측면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기록물을 만들었다. 그는 여기서 주로 플라이셔 같은 함부르크의
오리지널 악기들을 사용해 연주하고 있는데 이후 핸슬러의 바흐 전집에 참여한 로버트
레빈 역시 코젬파처럼 다양한 악기를 동원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콜린 틸니는
하스의 하프시코드와 클라비코드를 사용해 전곡을 연주했는데 그 역시 피터
윌리엄스의 의견에 따라 등분 평균율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 작품들을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스와 함께 또 다른 함부르크의 명기 크리스티안 첼은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와 봅 판 아스페렌이 멋지게 연주한 음반을 남기고 있는데 봅 판
아스페렌은 이 악기로 WTC를 전곡 녹음했다.바흐가 실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미하엘
미트케, 일명 베를린의 미트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부분이 많은데 그는
작센도, 함부르크 일파도 아니고 프랑스의 악기를 흉내내고 있으면서 음향적으로는
구별되는 악기를 만들었던 것 같다. 미트케의 악기는 보존된 수가 적기 때문에 아주
근래에 이르러서야 연주되기 시작했는데 봅 판 아스페렌이 오리지널의 미트케로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전곡 녹음한 이후 피에르 앙타이가 미트케의 복제품으로 아주
힘이 넘치고 당당한 골트베르크를 만들어냈다.미트케와 함께 재발견 되고있는, 독일
하프시코드 최후의 명장 질버만 일족과 그 학파의 제작자들의 악기는 최근 활발하게
레코딩에 사용되고 있다. 솔레르의 판당고를 연주하기 위해 안드레아스 슈타이어가
사용한 질버만 스쿨의 악기 복제품은 그 음향의 다채로움과 화려함에 있어서 동시대의
다른 악기들을 압도해버린다.
하프시코드 역사의 최후는 영국의 제작자들이 장식하고
있다. 영국 역시 대륙, 특히 플랑드르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름있는 영국
제작자들이 대부분 대륙 출신이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영국 악기가운데
특별히 기억할만한 것은 슈디(B. Shudi)와 커크만(J. & A. Kirkman)형제의
악기이다.영국의 하프시코드는 단지 영국뿐만 아니라 대륙내 일부 국가에도 활발하게
수출되었는데 서유럽을 동경하고 있었던 러시아 귀족의 궁정과 살롱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던 영국 하프시코드의 소리를 재현한 음반이 올리비에 보몽의 생뜨
뻬쩨르부르크의 리사이틀 이다. 만프레디니나 파이지엘로 같은 당시 러시아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작곡가의 작품 이외에 보르트냔스키의 협주곡처럼 완전히 유럽화된
음악작품과 귀릴로프의 프렐류드나 민요 선율의 변주곡처럼 러시아 민족악파의
맹아라고 할 수 있는 작품까지 18세기 후반 하프시코드 역사의 화려한 마지막 장면이
펼쳐진다. 여기에 사용된 슈디의 대형 하프시코드는 피아노에 대항하기 위해 강약
조절을 위한 스웰 박스와 페달 시스템이 달려있어서 보르트냔스키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독주 협주곡에서 꽤 효과적인 강약 조절 능력을 들려준다.이탈리아 하프시코드는
이탈리아 작곡가들이 하프시코드 작품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탓인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눈에 띄는 발전을 보이지 못했다. 따라서 오늘날 이탈리아 하프시코드는
독주악기라기 보다는 바소 콘티누오에 적합한 악기로 강하게 인식되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와 이탈리아 하프시코드를 답습한 스페인의 하프시코드는
그 열띤 음향이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강렬한 소나타를 연주하는데 적절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콜린 틸니는 스페인의 하프시코드를 사용하여
약간 자극적일 정도로 화려한 스카를라티 음반을 남겨놓고 있고 이고르 키프니스는
허바드와 브뢰크만이 복제한 각국의 악기들을 사용하여 스카를라티의 가장 위대한
소나타들을 연주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이탈리아 하프시코드를 위해서도 몇 곡(유명한
고양이 푸가를 비롯해)을 할애하고 있다. 이 음반은 한 장의 음반으로 각국을
대표하는 악기의 충실한 복제품을 들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기획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역사적인 건반악기 클라비코드는 하프시코드와 함께 18세기의 대표적인
건반악기이며, 비록 프랑스 사람들은 쉬파리 상자라고 무시했지만 독일 사람들은
"고독 속에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친구"라고 찬사를
보냈던 가장 감정적인 악기였다. 하프시코드와 피아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그래서 19세기까지도 가정악기로 보급되었던 클라비코드는 발음 기구의 특성상
본질적으로 음량이 작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프시코드가 연주회장에 화려하게
데뷔할 때에도 여전히 침묵 속 남아있어야만 했다.아놀드 돌메치가 클라비코드를
제작하고 바흐를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지만 이것이 본격적으로
레코딩에 사용된 것은 아르히프 레이블에서 랄프 커크패트릭이 바흐의 주요 작품들을
클라비코드의 연주로 녹음하기 시작한 이후이며 최근에는 대 바흐를 비롯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의 작품들을 다시 클라비코드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대 바흐는 자주
칸타빌레한 연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18세기의 모든 건반악기 가운데 그
요구에 가장 적합한 것이 클라비코드이다. 바흐의 친구이자 이론가인 요한 마테존은
그의 음악비평에서"이 기분좋은 악기가 목쉰 클라비코드라 불리움은 아주 부끄러운
일이다...중략... 클라비코드의 우수함은 변화의 기술 즉 노래하는 기술에 있다."겨우
한 두 사람만이 클라비코드를 연주할 수 있었던 한 세대 전과 비교해 볼 때
오늘날에는 꽤 많은 연주자들이 클라비코드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구스타프 레온하르트만큼 짜릿한 감흥을 주었던 연주자는 없었다.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 2번에서 들려주는 노래하는 듯한 프레이징이나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의 단조
폴로네즈가 엮어내는 음울한 분위기들, 그리고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 소나타의
감정적이고 극적인 연주 등 곡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필적할 수 있는 연주자가 없는
것 같다.이외에 추천할 만한 클라비코드 음반이라면 레온하르트와 비슷한 시대를
연주하고 있는 헤르만 이제링하우젠의 음반(MDG),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의 폴로네즈
전곡을 스웨덴의 왕 이라 불리는 대형 클라비코드로 연주한 스티브 배럴의
음반(Globe), 미클로스 스파니가 연주한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의 작품 전집 가운데
클라비코드로 연주된 소나타 음반들(BIS)이 있다.클라비코드 역시 하프시코드처럼
현대 음악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하웰즈의 클라비코드 혹은 피아노를 위한
작품들이 대표적이며 재즈 연주자인 키스 재릿은 Book of Ways라는 즉흥적이고도
실험적인 작품집을 통해 클라비코드의 현대적인 가능성을 옅보고 있다. 흔히 재즈
아티스트라는 선입견이 그의 연주에 대한 평가에 작용하는 것 같지만 색안경을 끼지
않고 재릿의 하프시코드 연주나 클라비코드 연주를 들어보면 그가 진지한 자세로
악기의 특성과 음향이라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류트-하프시코드류트-하프시코드(라우텐베르크)는 하프시코드의 몸체를 가지고 있지만
보통 하프시코드의 금속현이 아닌 거트현을 사용하여 류트와 비슷한 음향을 낼 수
있게 만들어진 악기이다. 물론 현이 바뀌기 때문에 악기의 세부적인 부분들도 변화가
있다. 이 악기가 낼 수 있는 소리는 일반적인 하프시코드의 버프 스톱 혹은 하프
스톱이 낼 수 있는 음향과는 전혀 다르며 동시대인의 증언에 따르면 거의 류트 연주와
구별할 수 없다고 했다.이러한 종류의 악기는 17, 18세기에 흔한 것은 아니었지만
바흐가 이 악기를 소유하고 있었고 류트를 위한 작품들이 실제로는 이 악기로
연주되었을 것이라는 추정 때문에 최근 바흐 연주에서 중요한 악기가 되었다.
류트-하프시코드는 드물고, 또 바흐의 유산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아직까지 완전한
복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 나와있는 음반들은 모두 성공적이다.모던
하프시코드를 연주자 스스로 류트-하프시코드로 개조해 연주한 게르겔리 사르케지의
연주는 비록 불완전한 악기를 사용했지만 연주 자체는 감동적이며 느낌이 풍부하고
그의 류트 연주만큼이나 독특한 장식법을 쓰고있는 확실히 개성적인 연주이다. 좀 더
역사적인 모델에 가까운 악기를 사용한 것은 핸슬러의 바흐 전집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로버트 힐과 도리안 레이블에서 녹음된 킴 하인델의 연주이다. 킴 하인델은 류트
하프시코드 연구가인 윌러드 마틴이 새로 복원한 악기를 사용했으며 음고는 현대
음고보다 반음 낮고 베르크마이스터III 조율법을 사용했다. 이 연주는 군더더기가
없고 순수한 류트 하프시코드의 음향이 잘 살아있다는 점에서 좋은 참조가 될 수
있다.
탄젠트 피아노, 탄젠트 클라비어 혹은 탄젠트 플뤼겔이라고 불리는 이
악기는 18세기 중반, 피아노의 본격적인 등장 이후 일시적으로 유행했던 몇 가지 혼합
악기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시기에 제작자들은 하프시코드와 오르간(클라비오르가눔),
하프시코드와 피아노 등을 결합하는 등의 실험을 하고 있는데 심지어 현을 마찰시켜
소리를 내는 허디거디를 대형화하여 건반으로 연주하는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만들려는 시도(가이겐베르크)도 있었다.탄젠트 피아노는 말 그대로 피아노의 액션에
클라비코드의 금속 탄젠트를 발음기구로 사용한 것이다. 그 결과로 배음이 풍부하며
꽤 맑고 예쁜 소리가 나는 악기가 탄생했는데 이것은 분명히 음량이 작다는
클라비코드의 약점을 피아노의 액션으로 극복하려고 한 시도였던 것 같다. 이러한
악기들이 빈 식 포르테피아노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등장하고 있었던 시점에서도
여전히 제작될 정도로 당시에는 꽤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따라서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가 이 악기를 연주했으리라는 가정 하에서 미클로스
스파니는 그의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의 건반 협주곡 전집 가운데 제 7권을 연주하는
악기로 탄젠트 피아노를 선택했다. 여기서 탄젠트 피아노는 하프시코드와
포르테피아노의 중간쯤 되는 음색으로 독주와 바소 콘티누오 반주 모두에서 꽤 좋은
효과를 내고 있지만 음의 지속력이라는 측면에서 포르테피아노에 훨씬 열세한 듯
느껴지기 때문에 단지 이 이유만으로도 포르테피아노에 주역의 자리를 물려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마지막으로 역사적인 건반악기 가운데 최근 관심이 증대되고 있고
연주에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포르테피아노에 대해 언급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포르테피아노 만으로도 방대한 내용이기 때문이며 아쉽지만 여기에 대해 좀 더 서술할
수 있는 기회를 다음으로 미뤄야만 하겠다.
Copyright 최지영.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