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o Romano (로마 광장)
팔라티노 언덕과 캄피돌리오 언덕 사이에 위치한 로마 광장은 로마 공화정 기간 당시 정치, 사법, 경제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제정 시대 이후 황제들의 업적을 과시하는 장소로 사용되어 석상, 제단, 개선문 등의 기념물 등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신전이 들어서면서 광장의 기능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기독교 공인 이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신전에 있던 우상은 파괴되었고 지진과 약탈 등으로 부서지고 없어지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당시엔 교황과 귀족들의 건축재로 혹은 장식재으로 공급되었으며 신전 파괴의 기둥 등은 기념주초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오랫동안 방치된 이곳은 초목지로 변해 방목장이 되었고 (맨 마지막 사진에서 보듯 당시 볼 수 있었던 것은 포카 황제 기념 원주 뿐이었다.) 18세기에 와서야 발굴을 개시 1,2차 대전 당시 그 절정에 이르러 8미터 흙더미를 걷어내며 오늘의 모습을 드러냈다.

팔라티노 언덕에서 본 로마 광장

원로원(Curia)
쿠리아로 불리운 원로원은 BC. 510- BC.29년 공화정 시대 최고 정치 집행 기관이었고 BC.670년에 축조되었다. 그러나 이 원로원은 기원전 1세기 초에 발생된 화재로 소실되었고 기원전 80년 집정관 술라에 의해 재건되었으나 기원전 52년 발생된 소요로 완전히 사라졌다.
기원전 44년 시이저가 시작해 아우구투스 때 완성한 율리우스 원로원은 283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재의 원로원 건물은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가 보수한 것인데 1937년에 이 자리에 있던 중세 때 교회를 해체하고 벽돌 건물로 복원하였다.

에밀리아 바실리카 (BC.179년 축조) - 현재는 터 위에 잔해만 남아있다.
바실리카 (Basilica) - 시민 사회가 형성되면서 상업 활동도 늘어나고 분쟁 사건도 많이 발생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소를 필요로 했는데 이를 목적으로 세운 것이 바실리카이다.
바실리카 한쪽에는 재판소가 있었고 은행, 상점 등 다양한 기능의 용도 건물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실리카는 공회장이라기 보다 하나의 공공 건물이었다.
참고: 오늘날 대 교회를 바실리카라고 부르는데 이는 초기 교회들이 바실리카와 같은 구조의 양식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줄리아 바실리카 – 시이저 때 공사를 시작하여 아우구투스때 완성한 것으로 재판소 규모가
가장 컷던 100인 법정이 자리한 곳이었다. 이곳도 터남 만아 있다.

막센티우스 바실리카
바실리카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높이가 35미터이다. 전체 구조가 매우 명료하고 간결하며 놀라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는 9세기의 지진과 1394년 대지진으로 대부분 무너졌다.
외벽과 천정이 보존되었는데 베드로 대교회를 설계한 브라만데와 미켈란젤로등 르네상스의 거장 건축가들이 이 천정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르네상스의 거장 건축가들이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천정

팔라티노 언덕에서 본 막센티우스 바실리카

초대 황제 아우구투스의 외손자 루키우스 케사르에게 원로원이 바친 비문.
친 아들이 없었던 아우구투스는 그의 심복 아그리파를 이혼시키고 과부가 된 그의 외동딸 율리아와 결혼시켜 두 아들을 얻었는데 그 중 큰 아들이 루키우스 케사르이다. 그는 황제 계승자 1순위 였으나 어린 나이에 병사했다. 비문은 그가 죽기 전에 원로원이 바친것이다.

세베루스 개선문.
203년 동방에서 전승 기념으로 그의 아들 카라칼라 때에 원로원과 로마 시민이 세웠다.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현존하고 있으며 높이 21미터 폭 11미터 3중문으로 이루어졌는데 동방 원정을 묘사한 부조물이 압권이다.
흥미로운 것은 세베루스는 첫 북 아프리카 태생 출신의 황제이다. 그곳은바로 한니발의 고향으로 다 정복한 로마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한니발의 한이 그의 후손을 통해 이룬 듯한 역사의 뒤안길을 볼 수 있다.



포카 황제 기념 원주.
13.6미터의 코린트식 기둥으로 비잔틴 제국 포카 황제가 판테온을 교황 보니파키우스 4세에게 기증한 것에 대한 감사 표시로 세운것이다. 로마 광장에 마지막으로 들어선 가장 최후의 유적이다. 608년 완성.


타불라리움(Tabularium) –
기원전 78년 집정관 술라에 의해 축조된 국가 기록 문서 보관소이다. (맨하단 검은 부분) 이것은 중세 때 중축하였는데 (중간 아취형 문 부분) 근대에 와서 다시 건물을 올렸다. (맨 위 창문 있는 곳)
이것이 오늘날 세나토리오 궁이고 현재 로마 시청사로 쓰고 있다.

오른쪽부터 원로원, 가운데 세베루스 개선문, 맨뒤 타불라리움이 보인다.

디투스 개선문.
예루살렘 정복을 기념으로 그의 동생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81년에 완성했다. 높이 15.4미터 폭 13.5미터 두께 4.95미터 석회 콘크리트 구조물에 표면은 그리스산 대리석으로 장식했는데 아치 내벽의 부조물이 매우 흥미롭다.

전리품을 실은 마차들이 티투스 황제 뒤를 따라가는 장면.(위)
예루살렘 성전의 일곱촛대를 비롯 약탈한 물품을 옮겨가는 장면.(아래)



18세기 판화 – 발굴 작업 직전의 모습. 묻혀 있는 세베루스 개선문과 포카 황제 기념주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