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고속도로 섬진강 휴게소 바로 다음 I.C진월을 나오면
섬진강 줄기따라 만나는 40년 전통의 진선 재첩, 광양 사람들이 많이 와
점심 시간 자리가 없을 정도다. 과히 그 맛은 일품.
맛있는 점심을 먹고 여행지로 출발
지리산 쌍계사.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3년 의상의 제자 삼법이 창건 하였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 육조 혜능의 정상을 모셔 삼신산 ( 금강산, 한라산, 지리산을 일컬음)
눈 쌓인 계곡위 꽃 피는 곳에 봉안하라" 는 꿈을꾸고 귀국하여 현재 쌍계사 자리에
이르러 혜능의 머리를 묻고 절이름을 옥천사로 하였다.
이후 문성왕 2년 (840) 진감선사가 중창하여 대가람을 이루었으며
정강왕때 쌍계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임진왜란때 크게 소실되었으며
인조10년 벽암스님에 의해 중건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신산 쌍계사, 절 입구부터 고즈넉함을 느끼며 걷기에 좋은 길
이날 날씨는 한파가 지나고 마치 봄 날씨 처럼 따스해 여행하기 좋은 날이였다
가람의 배치가 일직선으로 일주문 사이로 이어지는 절 풍경들
맨 위에 팔영루가 있다. 산비탈을 이용한 낮은 층단이 계속 이어져 신비감으로
깊숙한 곳으로 숨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팔영루는 김감선사 해소가 중국에서 불교 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쌍계사 팔영루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에 어울리는 범패플 만들어 내었으며
오랫동안 범패의 명인들을 배출하는 교육의 장으로 역활을 해 왔다
팔영루 라는 이름도 섬진강에서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서 범패를
작곡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대웅전 앞에 이절의 창시자인 삼법화상 옥천사를 중창하여 대 가람을 이룬
진감선사 부도비가 대웅전 아래 있다. 최치원이 직접 짓고
해서체로 쓴 글씨로 글자가 매우 짜임새 있게 새겨져 있다.
부도비만 이곳에 옮겨 적어도 답사일지 한 장을 다 채우는 분량이라
부도탑만 올릴 때 그때 올리기로 하고 오늘은 쌍계사의 정경을 볼까요?
대웅전 올라 가기 전 만나는 약수물 마시는 곳 옆에
큰 고목나무가 있는데, 자세히 보니 바위위에 올라가 뿌리를 땅에 심어져 있다.
모양도 기이한것인 어찌 보니 연리지 같고 한 나무 뿌리를 두고 두 나무가 공존하는
그리고 옹이처럼 솟아난 모양은 여성의 젖가슴 처럼 생겼다
그동안 여러번 이곳에 오면서 발견하지 못한 것이였다.
강한 생존력, 바위위에 몸통을 실어서 오랜세월 견뎌온 그들의
영혼이 소리가 되어 들리는 듯 하다.
옆에서 보면 연리지 임에 틀림 없는데.. 이 나무에도 전설이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게 했다
위에서 만나는 부처님 세상
삼층 석탑은 보기에 고려탑으로 보이지만 기록이 없다.
조각 수법이나 낙수면이나 기법으로 보아 고려말로 향하는 삼층 석탑이라
추정해 본다. 그동안 보아오고 공부한 탑에관한 자료를 보아도.ㅎㅎ
마치 감실안에 모신 것처럼 윗 면을 파서 지붕처럼 만들고
불상은 육계와 더불어 머리가 큰 편이나 다소곳한 안정된 자세는
보는이로 하여금 편안한 맘을 갖게한다. 조각 수법이 조금 낙후된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여진다.아마도 아래 탑과 같은 연대가 아닌지..
이곳에서 제가 좋아하는 곳이기도하다.
마침 햇살이 사선으로 비추어 부처님 법의의 주름이 잘 드러난다
대웅전 왼 편에 석등은 화사석은 남아있지 않고 간주석은 제것이 아닌것이라
보인다. 석등의 가장 기본적인 면을 갖춘 말하자면 표준 석등인 샘이다.
대웅전 주변과 그 담장을 사이로 닫힌문과 가지런한 고무신
그리고 담장을 줄기로 올라간 나무들 그들은 무언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비추어졌다.
세상과 담을 경계로 또 다른 피안의 세계
침묵과 고독, 그리고 만나는 절대기쁨...
범종루 위로 햇살이 숨죽여 들어오고 가슴을 울리는 범종의 소리와 함께
부처님의 자비로 이 세상의 슬픔이 사라지는 그런 날이 오리라..
이곳은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담겨져 있는 곳
그 추억이 새록새록 올라왔지만,그리움은 아픔보다 더한 슬픔도 되었다.
조용한 침묵속에 쌍계사에 시나브로 어둠이 찾아오고 있어
서둘러 차의 선승인 초의선사가 중국의 육우가 집필한 다신전을
배껴쓴 곳 가야의 김 수로왕의 7아들이 모두 부처가 된 곳
한번 불을 지피면 3개월이 간다는 亞자 방이 있는 곳
칠불사를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