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소개>
* 1877년 - 독일 남부의 뷔르템베르크 주의 작은 도시 칼브에서개신교 선교사인 요하네스 헤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 1890년 - 괴핑겐의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여 뷔르템베르크 지방 시험에 대비. 시험 자격 취득을 위해 헤르만의 부모들은 스위스 시민권으로 경신하고, 1890년 11월에 뷔르템베르크 주정부로부터 시민권을 취득케했다.
* 1891년 - 뷔르템베르크 지방 시험에 합격. 그 해 9월에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
* 1892년 - 7개월만에 신학교를 자퇴. 작가가 되기 위해, 혹은 전혀 아무것도 되지 않기 위해 자유로운 생활을 시도, 자살을 하려했으나 미수에 그쳤다.슈테텐에서 신경질환 병원에 입원(6월부터 9월까지). 칸스타트 고등학교에 취학했다.
* 1899년 - 소설 쓰기를 시작하다. 습작소설 [고슴도치(Schweingel)]를썼으나 원고를 분실당했다. 시집 [낭만적인 노래(Romantishe Lieder)].한밤이 지난뒤의한 시간(Stunde hinter Mitter nacht)]를 출간햇다. 그해 가을에 바젤있는 서점으로 직장을 옮겼다.
* 1901년 - 처음으로 이탈리아를여행. 플로렌스, 제노아, 피사, 베니스 등지를 돌아봄. [하르만 라우져(Hermann Lauscher)]출간. 지방지<알게마이네슈바이처>신문에 기사와 평론을 기고하는 기작했다. 이 일로 그는 사회적 지위를 격상시켜 주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
* 1902년 - 시집 [시모음(Gedichte)]출간. 이 시집은 출간직전에 죽은 그의 어머니에게 헌정되었다.
* 1903년 - 서적 관계 일로 다시 이탈리아를 여행. 서점 점원생활을 청산하고 진집 필에만 몰두하였다. 그 후 베를린 피셔 출판사로부터 작품 집필을 의뢰받고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탈고했다.
* 1904년 - 소설[페터 카멘친트]를 피셔 서점에서 출판. 일약 신진 작가의 지위를 확보하였다.8월에 아홉 살이나 연상인 마리아 베르 누이와 결혼 9월에 콘스탄체 호반의 가이엔호펜 마을에 있는 빈농가로 이사하고 작가생활을 시작하였다. 소설[보카치오(Boccaccio)] . [아씨시의 성자(Franz von Assisi)] 출간되었다.
* 1905년 -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Unterm Rad)]를 피셔출판사에서 출간.빌헬름 2세의 권위에 노골적으로 도전하는 진보적인 주간지 <3월 Manz>창간에 참여하여 공동 편집자로 활동
* 1907년 - 중편소설[아 세상에서]출간하였다. * 1908년 - 단편집[이웃 사람들] 출간하였다. * 1910년 - 소설[게르투르트]출간되었다. * 1911년 - 시집 [길에서]출간. 3남 마르틴 출생하였고, 친구인 화가 한스 쉬틀제네거와 함께 인도 여행. 가정 생활의 파탄을 타개하기 위해 연말에 귀국하였다.
* 1912년 - 단편소설집[우회로]를 출간.
* 1914년 - 결혼 문제를 주제로한 소설 [로스할데]를 출간. 7월에 제1차대전이 일어나 베른의 <독일 포로 위문 사업국>을 위하여 일하였다. 전쟁중에 전쟁을 비판하는 글을 신문에 발표하여 독일 국민의 반감을 샀으며, 또한 독일 저널리즘에서도 배 척당하였다.
* 1915년 - 소설 [크눌프], 시집 [고독한 자의 음악], 단편집 {청춘은아름다와라]를 간행하였다.
* 1916년 - 3월 부친 요하네스 헤세 사망. 부인 마리아의 정신병이 악화되고 막내아들 마르틴이 병에 걸리자 자신도 심한 신경쇠약에 시달리게 되어 유명한 심리학자 C. G. 융의 제자인 랑 박사의 정신 요법 치료를 받았다.
* 1919년 - [데미안]을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여 호평을받았으며, 신인으로 오해되어 폰타이네 상이 수여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9판부터 저자의 이름을 헤세로 밝힘. 이 외에 [동화], [짜라트스트라의 재래], [작은 뜰]등을 간행. 4월에 베른을 떠나서 테신 주 르가노의 언덕 몬타뇰라로 이사.이곳카사카무치에서 오랜 동안 지내었다(1931년까지).
* 1920년 - 수채화의 시문집 [방랑], [화가의 시], 평론집 [혼돈을 보다],소설 [클링서의 마지막 여름]을 출간하였다.
* 1922년 - 장편소설 [싯달타]출간하였다.
* 1923년 - 산문집 [싱클ㄹ어의 비망록]간행. 9월에 4년 전부터 별거중이던 부인과 정식으로 이혼. 스위스 국적을 얻었다.
* 1924년 - 여류작가 리자 벵커의 딸인 루트 벵거와 결혼하였다.
* 1925년 - 소설 [별장 손님], [빅트르의 변신]을 출간.가을 남독일로강연 여행.뮌헨에서 토마스 만을 방문하였다.
* 1926년 - 독일 '프러시아 저술학회' 회원으로 피선, 감상과 기행문집[그림책]을 출간
* 1927년 - 소설 [황야의 이리], 산문집[뉘른베르그의 기행]출간. '후고 발 출판사' 의 의해 헤세의 50회 생일 기념으로 그의 자서전이 출간됨.결혼생활의실패로 두 번째 부인 루트 벵거의 요청으로 합의 이혼하였다.
* 1928년 - 산문집 [회상록], [일기초록], 시집 [위기]를 한정본으로 출간
* 1930년 - 소설 [나르치스와 골트문트(지와 사랑)]출간
* 1931년 - 프랑스 귀화인이며 역사학자인 니논 돌빈과 결혼하여, 처음으로 행복한 가정을 갖음. 산문집 [내면의 길]출간 하였다.
* 1932년 - 산문집 [동방순례]간행. 소설[유리알 유희]집필하였다.
* 1933년 - 소설9작은 세계]를 출간하였다.
* 1934년 - 시선집 [생명의 나무에서] 출간. 스위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고트프리트 켈러 문학상'을 수상, 동생 한스 자살. 독일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 계간지 <노이에 룬투샤우>에 소설 [유리알 유희]를 발표하기시작하였다. * 1935년 - [우회집] 간행하였다.
* 1936년 - 시집 [정원에서의 몇 시간] 출간. 1914년부터 쓰기 시작한 미완성 작품[꿈의 집]간행, [한스의 추억]을 썼다. * 1937년 - 산문집 [단상록], 시집[신시집]간행하였다.
* 1939년 -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나치스의 탄압으로 헤세의 작품들은 몰수되 고출판 금지가 되었다.
* 1942년 - 헤세의 시를 수록한[시선집]이 스위스에서 출간되었다. * 1943년 - 소설 [유리알 유희]가 출간되었다.
* 1946년 - 프랑크푸르트의 괴테상롸 노벨 문학상을 받음. 정치적 평론집[전쟁과 평화] . [괴테의 감사], 시집[만년의 시]가 간행되었다.
* 1947년 - 베른 대학으로부터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1952년 - 독일과 스위스에서 헤세 75년 탄생 기념행사를 열다. '즐캄프출판 사'에서 [헤세전집] 전 6권을 출간하였다.
* 1954년 - 산문집 [픽토르의 변신]출간. 서한문집 [헤르만 헤세와 로망롤랑의 편지] 간행. 서독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 1956년 - 바텐 뷔르템베르크 지방의 '독일 예술 발전협회'에 의해 '헤르만헤세상'이 창칩되었다.
* 1957년 - 탄생 80회 기념사업으로 이미 간행되었던 [헤세전집] 6권을 증보 하여 [헤세전집] 7권을 출간하였다 * 1962년 - 85세로 8월 9일 뇌출혈로 몬타뇰라에서 세상을 떠났다.
* 1966년 - 9월 니논 부인 71세로 사망하였다.
<줄거리>
이 작품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Hans Giebenrath)는 슈바벤 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 사는 평범한 상인의 아들이었으며 천부적인 재질을 타고난 뛰어난 소년이었다. 그는 우등생이자 고향의 자랑거리로 아버지와 동네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성장한 다소 내성적이나 총명한 모범소년이었다. 그는 장차 국가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는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가 되기위한 어려운 주 시험을 앞두게 되면서 나름대로 고민한다.따라서 그는 또래의 친구들과는 자연히 격리되어 매일같이 과도한 수업과 숙제에 묻혀 살다시피 한다. 그로 인해 그는 만성적인 두통을 앓게 되지만 목표를 향해 매진한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가족이라고는 중간 도매상(Zwischenhändler und Agent)을 하는 아버지가 유일한 보호자였다.
온 마을 사람들의, 특히 그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목사의 기대와 총애를 한몸에 받으며 주 시험에 응시한 한스는 그의 염려와는 달리, 2등이라는 뛰어난 성적으로 합격한다. 그러나 그는 그 어려운 시험후에도 8주간이라는 긴 방학을 다른 학생들 처럼 쉬는 것이 아니라, 신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계속 좋은 성적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교장과 목사, 그리고 수학교사에게 또다시 상당한 시간의 그리스어나 수학등의 수업을 받아야 했다.
방학이 끝나고 드디어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하여 헬라스방에 있게 된다. 아홉명의 모두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더구나 엄격한 규율과 꽉 짜인 수업시간 그리고 어울리기 힘든 다른 모든 친구들로부터 아무런 정감을 느끼지 못한채 그는 옛날과 별 다름없이 우등생이자 말없는 모범생으로서의 생활을 계속해 나간다. 그러한 그에게 동급생이자 룸메이트인 헤르만 하일너(Hermann Heilner)와의 만남은 그때까지의 그의 생활을 밑바닥까지 뒤흔들어 놓는,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 된다.
차츰 가까운 사이가 된 하일너는 시짓기와 숲속의 호수를 좋아하였다. 꿈꾸는 몽상가의 기질을 지닌 이 자유로운 기질의 동급생 하일너의 존재는 늘 외로웠던 한스에게는 부드러운 동시에 신선하고도 매혹적인 충격이었고 그 이후로 이들은 하일너가 학교를 떠날 때까지 밀착된 우정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신학교의 생활은 꿈꾸는 이 두 소년을 그냥 두고 볼만큼 너그럽지도, 이해심 많지도 않은 곳이었다. 마치 감옥과도 같은 신학교의 담장을 뛰쳐나와 자유로운 이틀간의 여행 끝에 잡혀온 하일너에게는 퇴학 처분이 내려졌고 한스와의 짧은 악수를 끝으로 하일너는 신학교를 떠나고 만다.
그동안 하일너와의 사귐 속에서 이미 딱딱 한 신학교의 공부에 흥미를 읾고 그동안 쌓여왔던 과도한 긴장과 신경쇠약으로 인해 결국 한스 역시 신학교를 그만두고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그의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쇠약해진 한스를 여전히 정겹게 맞아주는 것은 변함없는 자연일뿐, 옛날에 자기에게 기대에 찬 정겨운 시선을 보내어 주었던 사람들은 이제는 냉랭한 시선으로 그를 대해줄 뿐이었다. 크게 실망한 아버지는 그가 견습공으로 재춫발하길 바라지만 그즈음 한스에게 한이성의 존재가 나타난다. 엠마(Emma)라는 이름의 이 여인은 단지 가벼운 생각으로 한스에게 장난을 치고 그에게 키스를 한다. 한스보다 나이 많은 이 여인에게 농간당하고 실의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또다른 만남을 체험한 시점에서 자신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뇌, 즉 기계공이 될것인지, 시청의 견습서기가 될 것인지에 대한 아버지의 설득은 쇠진한 한스의 심리를 더욱더 몰아붙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기계공으로서의 첫날을 보낸 한스는 일요일에 다른 견습공들과 어울려 소풍을 가게된다. 기능공으로서의 한스는 그의 동료들이 입은 헤진 작업복을 부러워하면서 그러나 한편으로는 푸른 삼베작업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슬픈 감정과 함께 우스꽝스럽게 바라본다. 소풍이 끝날 무럽 동료들과 함께 술집에 들른 한스는 몇잔의 술을 들이킨 후 몽롱해진 상태로 비틀 거리며 언덕길을 올라간다. 밤늦게 까지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한스의 아버지는 대단히 화가 나서 아들이 돌아오면 등나무 지팡이로 때려주겠다고 잔뜩 벼르지만 이윽고 잠이 들어버린 그를 깨운 것은 익사한 아들의 사망소식이었다. 한스 기벤라트는 또다시 고향에서 유명 한 존재가 되어 모든 사람의 흥미를 끌었다. 총명하고 똑똑했던 한스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의 장례식에 모여들어 가장 영리하고 총명했던 이 아이에게 왜 이러한 불행이 닥쳤는지 의아해하며 다시금 그들의 세계로 각자 흩어져 간다.
(안건)
1. '수레바퀴아래서'란 제목이 왜 지어졌으며 그 의미는?
2. '하일너'가 주인공 한스에게 준 영향은?
3. 한스의 죽음긔 이유와 왜 그 방법이 익사였을까?
4. 선택적인 교육과 주입식 교육의 폐단에 대한 토론
(토론)
의견1)
*수레바퀴는 자신을 억누르는 억압이다.
*어른들의 간섭, 욕심
*한스의 반복적인 생활
*수레바퀴 아래서 죽음의 의미
의견2)
*하일너는 한스가 원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일탈을 하게됨
*한스의 내면에 결핍된(내재된)모습을 하일러를 통해 드러냄
*자신의 내면 투영
*한스의 상상에서 만들어낸 인물이다.
의견3)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
*모정의 결핍으로 자살에 이르렀다.
*어느편에도 소속될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