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아파요!] 나는 고1이지만 항상 마음은 고3 이었다. 그래서 공부를 하더라도 막상 시험을 보면 머리가 아프면서 공부한 내용도 까먹게 되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그러던 6월 어느 날이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프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은 나여서 그냥 참고 넘어갔다. 그 다음 날이었다. 7교시 독서를 하고 있는 도중 갑작스러운 현기증으로 스텐드에서 쓰러져 굴렀던 것이다. 다행이 학교 친구의 도움으로 큰 부상은 없었지만 이미 나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담임선생님께서 급히 병원에 데리고 가셔서 응급치료를 받아서 더 이상 피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몇 분 뒤 어머니와 동생이 병원으로 왔다. 선생님은 수업이 있어 먼저 가시고 어머니와 동생이 끝까지 내 옆에 있었다. 의사는 좀더 큰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아보라고 하면서 소견서 한 장을 써주셨다. 나는 그 즉시 조퇴를 하고 집으로 왔다.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안경이 부서지는 바람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안경점에 가서 안경을 하나 구입하고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갔다. 하지만 집에 가자 머리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잠을 자야 되는데 통증 때문에 잠도 오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나의 모습을 보시고 안수기도를 해주셨다. 몇 시간 뒤 나는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나는 학교를 가지 못했다. 결석을 하고 한의원으로 갔다. 한의사는 나에게 고3병 증세인 스트레스병이라 했다. 몇 개월 진료를 받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진료를 받고 나면 그날은 괜찮지만 다음날이면 또 아프고 계속 아팠다. 그런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신 아버지께서 한마디 하셨다. "너의 병은 마음의 병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약을 먹거나 모든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도 고칠 수 없는 병이다. 신앙으로 너의 병을 치료해야 한다. 그래서 겨울 방학 때 수도원에 1주일 정도 머물고 오너라. 너의 지친 몸을 기도로써 다시 회복해 보거라" 나는 반항 없이 "네" 하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수도원을 검색했다. 우연인가? 다른 수도원 사이트를 열면 오류가 나서 서버를 못 찾았다는 메시지가 나왔는데 오직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 홈페이지만 정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왜관으로 가기를 결정하고 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아무개라고 합니다 겨울 방학 때 수도원에서 피정을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신청이 가능 한가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향해서....] 질문에 답 글이 올라왔다. 답 글은 간단했다. 안셀모 신부님 전화번호 와 함께 이쪽으로 전화해보면 된다는 짧은 한 마디 그것이 전부였다. 즉시 나는 전화를 했다. 나: "(따르르릉 따르르릉 털거덕) 여보세요? 안셀모 신부님이세요?" 수: "누구세요?" 나: "저는 이번에 수도원 피정을 하려고 하는 학생인데요.. 제가 이 날짜에 가도 되겠습니까?" 수: "네 그럼 이름하고 세례명 전화 번호 좀 알려주겠니?" 나: "제 이름은 이아무개 이고 세례명은 시몬 입니다 전화번호는 000-0000입니다." 수: "네 그럼 그렇게 접수 해놓을 테니 출발하기 전에 연락 줘^^." 나: "네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
처음 듣는 목소리지만 편하게 느껴지는 기분이 왜 드는 걸까? 나는 당장 아버지께 수도원에 연락이 되었다 하고 출발 날짜를 말했다. 출발하기 1주일 전 아버지는 수도원 가는 기차표와 수도원 약도를 나에게 주셨다. d-day 오늘은 수도원으로 가는 날이다. 그전에 중학교 선생님들이 떠올라 잠시 중학교에 들렸다. 양호 선생님은 따뜻한 차 한잔을 국어 선생님은 초콜렛을 주셨다. 그리고 역까지 나를 데려다 주시고 기차가 오기 전까지 함께 있어 주셨다. 덕분에 기차 안에서 먹을 빵과 우유를 사주셔서 기차 안에서 배는 고프지 않았다. 1시 7분쯤 기차가 왔다. 선생님들의 배웅과 함께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는 여러 번 타 봤지만 혼자서 타는 건 처음이다. 신자답게 묵주기도로 출발기도를 바쳤다. 태어나서 그렇게 신중히 묵주기도를 바친건 처음인 듯(?) 하다. 2시간이 지났나? 기도후 잠이 들었다. 깜박 잤는데 왜 이렇게 개운할까? "왜관 이번에 도착할 역은 왜관입니다. 왜관에서 내리시는 손님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급히 짐을 챙기고 내릴 준비를 마쳤다. 왜관역에 내리는 순간 몸에 소름이 끼쳤다. 누군가 나를 반기러 왔는데 보이지 않는 누군가 반기러 온 것 같다. 누굴까?
[내 안있는 또 다른 나의 집] 1시간동안 헤맨 순간 기도로써 길을 찾아 수도원에 도착했다. '주님 제가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항상 옆에 있지만 저는 당신을 떠나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저의 길을 알려주십시오' 라는 기도 후 십자가 바로 수도원 성당 십자가가 보였다. 나는 십자가를 따라 걸었다. 아까 왔던 길 지나쳤던 길 모르는 길을 지나서 수도원에 도착했다. 몸이 가벼워 지면서 안도의 한숨과 얼굴에 미소가 넘치는 이유는 무었일까? 왜 이렇게 편한 느낌이 드는 걸까? 고향에 온 기분과 같았고 몇 년 동안 집을 떠났다가 돌아온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도 잠시 다시 나는 안내실을 찾는 다고 30분 정도 수도원에서 길을 해멨다. 다행이 어떤 수사님 덕분에 안내실로 왔다. "저.. 저는 이아무개 시몬 이라고 합니다. 안셀모 수사님께 연락을 하고 왔습니다." 하지만 안셀모 수사님께서 안계시는 바람에 나는 응접실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오시지 않자 한 수사님의 안내로 삼각열쇠를 받고 나의 숙소로 갔다. 숙소는 차가운 냉기가 가득했지만 마음은 따뜻해 져있었다. 집에 온 느낌인가 너무 편해서 짐을 풀지도 않고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똑똑똑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수사님께서 저녁기도 바칠 시간이라고 나를 성당으로 데리고 가셨다. 성당에 들어가는 순간 십자가와 감실을 보고 난 후 겉으로는 웃음이 속으로는 눈물이 나왔다.
[당신의 벗들과의 만남 안에서의 하느님] (첫번째 당신의 벗과의 만남) 여기 까지 오게 하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내가 한번이라고 왔어야 하는데 오기 싫어하자 내가 스스로 오도록 이끌어 주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그리고 나에게 소중한 만남을 주신 분도 하느님이시다. 소중한 만남은 첫 번째로 안셀모 수사님이다. 난 수사를 무섭게 생각했다. 동굴에서 생활하고 기도와 침묵으로 하루를 보내면서 식사를 거르면서 하느님을 만나고 찾는 사람인줄 알았다. 하지만 안셀모 수사님을 만나고 나는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안셀모 수사님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있었다. 항상 웃으시는 모습 바로 예수님께서 흐뭇하게 웃으시는 모습 같았다. 처음 만나도 불편하지 않고 따듯하게 대하는 마음을 얼굴의 미소로 표현해 주시는 수사님 안에 계시는 주님이 내가 만난 첫 번째 주님이시다. 사실 두려웠다. 무서웠다. 신학교를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나는 두려움에 살았다. 주님께 의지해도 나는 한편으로 두려워했다. 공포였던 것이다. 죄를 짓고 나면 무서워 성당에 가는 것도 회피한 적이 있었고 죄책감에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었다. 안셀모 수사님 아니 안셀모 수사님 안에 계시는 주님을 만나고 난 다음부터 나의 생각은 끝이 나버렸다. 공포 두려움이 아니라 행복 웃음이었다. 수사님과 함께 지내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주님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라는 말씀이 이제서야 나의 마음속에 받아들여진 것이다. 성당에서 기도를 하면 항상 응답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주님의 응답을 이제서야 알았다. 바로 내 주위에 있는 것들이 모두 주님의 응답이었다. 주위에서 길을 찾아야 되고 또 그 길을 내가 걸어야가 하는데 나는 그냥 앉아서 누가 업고 가주기만을 기다린 것이다. 나를 이끄시는 성령을 무시하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것을 나는 반대로 간 것이다. 주님.... 당신의 미소의 꽃 저도 그 미소의 꽃을 얼굴에 피울 수 있겠죠?
(두번째 당신의 벗과의 만남) 두 번째 만남은 서울에서 온 미카엘 형이다. 처음 형을 봤을 때는 성당에서였다. 수도원 성당이었다. 형은 종이 치고 난 후에 성당으로 들어왔다. 나는 '기도 시간인데 늦게 오다니..'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형을 만나고 난 다음부터는 달라졌다. 형안에 있는 주님은 바로 지식이었다. 나의 잘못된 천주교 교리지식과 성서지식이었다. 보면 나의 교리지식은 단순 암기다. 그 교리를 이해하기보다는 암기를 한 것이다. 공식이다. 나는 풀이를 알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형안에 있는 주님은 나에게 풀이를 형의 수도원 견학 모습으로 보여주셨다. 교리를 무작정 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서를 무작정 읽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형안에 있는 주님과 함께 지내면서 기도는 가톨릭 신자들이 알아야 할 필수 조건이라는 잘못된 인식과 그것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형이 기도하는 모습으로 알게 해주셨다. 나는 그날 이후 수도원에 지내면서 새롭게 기도를 배워나갔다. 기도는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뜻을 알고 이해하며 청하는 것이었다. 기도 안에 내가 청하는 것을 이해하며 주님께 내 정성과 마음을 다 바쳐 짧은 한 마디라고 기도 할 수 있는 영혼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었다. (세번째 당신의 벗과의 만남) 세 번째 만난 사람은 비안네 동생이다. 비안네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미카엘 형이 떠나는 날 이었다. 비안네는 2살 아래 동생이지만 비안네 안의 하느님의 모습은 나에게 최선이라는 단어를 심어 주었다. 최선 ... 지금 내가 가장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은 2가지이다. 바로 학생의 신분답게 해야 하는 공부와 기도이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입학 후 2가지다 소홀히 했다. 공부보다는 성당 어쩔 때는 성당보다는 공부였다. 이렇게 왔다 갔다 마음은 어지럽고 공부 기도 둘 다 외면하기도 하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는데.. 항상 내 일보다는 남 일을 중시하였다. 시험기간에도 내 시험은 뒷전 남의 시험에 관심을 가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비안네의 모습 안에 자신의 일에 충실히 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고 남은 수도원 생활 아주 보람되고 힘차고 알차게 보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1주일간 나의 수도 생활은 끝이 났지만 또한 이제 시작이다. 힘들고 지칠 때 나의 손을 잡아라. 실망치 말고 나를 보아라. 나는 너의 하느님이다. 전 아주 작은 씨앗입니다. 밀 알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썩어서 땅에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죽는 씨앗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저를 아시기에 또한 저는 당신을 알고 있었기에 제가 죽는 씨앗 파멸의 씨앗이 되기 전에 당신은 저에게 거름과 햇빛, 물을 주셨습니다. 하느님.. 당신께서 이 땅에 심어주신 씨앗의 싹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싹을 밟고 소멸시키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싹을 보호하기 위해 가꾸십니다. 그리고 소멸시키려고 하는 이들에게서 싹을 지켜주십니다. 제가 힘들고 지칠 때, 두렵고 방황할 때 오직 매달리는 분은 바로 하느님 당신입니다. 나의 모든 것 나의 생명 기쁨 희망이신 하느님 오늘도 당신께 매달려 청을 하오며 감사드립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감사합니다. 미천하고 죄 많은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the end 도착] 기차를 타고 마산으로 왔다. 눈이 왔던 모양이다. 성당에 도착했다. 들어가자마자 감실이 보였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 감실 앞에 무릎꿇고 조용히 말했다. "주님 제가 돌아 왔습니다. 당신의 잃었던 아들이 돌아와 이렇게 무릎을 꿇고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항상 저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제가 청하는 기도의 응답을 당신은 직접 저에게 찾아 나서라고 말해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당신만 따르겠습니다. 아멘."
첫영성체 때 무슨 기구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부모님이 시켜서 성당 왔다갔다 교리 배우고 첫영성체 후 단체사진 찍은 것 밖에는 기억이 안납니다. 아참, 첫영성체날 꼭 목욕하고 오라고 수녀님이 당부하셨엇는데, 안하고 왔다고 혼난 기억도 납니다. 페르세포네님은 기억이 나시나요?
첫댓글 도구로 써 주소서..첫 영성체를 모시면서 드리는 기도는 들어 주신다는데 그래서 제 동생은 당신의 도구로 쓰여졌습니다.. ㅠ.ㅠ
어떤 도구로 쓰이셨길래 슬퍼하시나여?
첫영성체 때 무슨 기구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부모님이 시켜서 성당 왔다갔다 교리 배우고 첫영성체 후 단체사진 찍은 것 밖에는 기억이 안납니다. 아참, 첫영성체날 꼭 목욕하고 오라고 수녀님이 당부하셨엇는데, 안하고 왔다고 혼난 기억도 납니다. 페르세포네님은 기억이 나시나요?
첫 영성체때 기억...나지요 엄마는 성당도 냉담하시면서 저희만 열심히 성당의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고 ,,제가 첫영성체할때는 지금처럼 예쁜 드레스가 없어서 하얀 원피스를 엄마가 외상으로 사다 준걸로 기억해요 ㅋ
나도 아프다~
열성이십니다. 냉담한 지 오래되었지만 방문 밖에 십자가, 책장 속엔 성모상, 벽 좌측에 묵주, 우측에 달마, 맨 위에 제일로 믿고 있는 어머니 사진.
마치 영창 같군요. (죄송...^^)
나도 아프당~
뿌리의 상실 때문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