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감에 들어가서...따로 글 쓸 여유가 없네요. 그냥 지난달 잡지에 실렸던 글 그대로 올립니다. 죄송~^^
Tea Time with Shlomo Mintz
그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10가지
정명훈, 슐로모 민츠, 다이신 가시모토, 유리 바슈메트, 미샤 마이스키, 조영창. 이들이 뭉쳤다. 지난 1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세븐 스타 갈라 콘서트'는 그야말로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이들은 서로를 잘 안다.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10여 년이 넘도록 우정을 나눠왔다. 그래서인지 이들 모임은 '거물급 연주자들의 회동'이기보다는 십년지기들의 동창회 같은 분위기였다.
7명의 연주자 중 바이올리니스트 슐로모 민츠는 유독 눈에 띄었다. 무려 2시간 30분 가량이나 계속된 리허설 내내 그는 가장 자주, 가장 끈질기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슐로모 민츠는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이다. 11세에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 데뷔한 이래 바렌보임, 아바도, 무티, 줄리니, 메타 등과의 협연을 통해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로 떠올랐다. BMG, 소니, 에라토에서 녹음한 그의 음반은 그랑프리 상, 디아파송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자신감 때문일까. 마이스키의 툴툴거림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의 주장대로 밀고 나가는 민츠의 모습은 천상 고집불통 독불장군이었다.
그러나 연주회 다음날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사뭇 리허설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머 있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는 차분하면서 온화했다. 바이올린을 내려놓은 일상의 민츠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무엇이 그를 여유 있게 만드는 것일까? 음악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1. 이스라엘
슐로모 민츠는 1957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2세 때부터는 이스라엘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현재 그는 미국과 이탈리아에 집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여러 나라와 인연을 맺은 그에게 조국이란 느낌을 주는 나라는 이스라엘뿐이다. 비록 30여 년의 세월을 이스라엘에서 떨어져 살았지만 가슴만은 언제나 이스라엘에 있다고 한다.
2. 비발디
1989년부터 1993년까지 민츠는 이스라엘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 활동했다. 당시 그는 이들과 함께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비발디는 모두 127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남겼고, 민츠는 이중 대부분을 녹음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민츠에게 '비발디를 가장 많이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타이틀을 안겨주었다. 비발디에 관한 한 그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살바토레 아카르도를 앞지른다.
왜 비발디인가? 민츠는 비발디의 작품은 그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비발디의 협주곡은 모두 비슷비슷하게 들린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아요. 그의 음악은 해석에 따라 너무나도 새로워집니다. 127편의 방대한 작품들이 각기 다른 정신, 각기 다른 분위기로 작곡되었어요. 그의 작품은 새롭게 발견해야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3. 케슈에트 에일롱
'키부츠의 활'이라는 뜻의 '케슈에트 에일롱'은 민츠가 해마다 여름에 참가하는 마스터 코스이다. 그는 11년째 '케슈에트 에일롱'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김남윤 선생과 제자들도 해마다 이 코스에 참가하고 있다). 그는 학생을 좋아한다. 그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가르침을 주고 싶다. 민츠는 교육자란 항상 학생을 위해 모든 것을 쏟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부모와 자식, 형제나 자매 같은 헌신과 노력,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츠에게는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 '케슈에트 에일롱'은 민츠가 짧은 기간이지만 교육자로서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4. 커뮤니케이션
음악가로서 민츠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교감이다. 많은 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그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민츠는 실내악에 열심이다. 여러 연주자들의 경험과 해석을 나누면서 독주자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휘 역시 그에게는 교류의 통로이다. 단원들에게 자신의 해석을 설득시키고,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은 꼭 필요하다. 현재 그는 베로나 오케스트라, 마스트리트(Maastricht)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독일, 영국, 미국, 이탈리아 등에서 객원 지휘자로 활약하고 있다.
"음악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연주와 지휘는 같은 맥락입니다. 창조는 작곡가와 청중과 연주자와의 교감을 통해 완성되죠. 단지 테크닉이 다를 뿐이에요. 지휘는 지휘봉으로, 바이올린은 활로 악기를 연주하죠. 내 손끝을 통해 음악이 나온다는 점은 같아요."
5. 축구
민츠가 13세 때 그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축구 선수로 키워야 하나,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가게 해야 하나. 그만큼 민츠는 축구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그의 강점은 빠른 스피드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당시 축구 선수를 선택했다면, 지난 6월 열렸던 월드컵에서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닌 축구 선수 슐로모 민츠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축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전하다. 월드컵 기간 내내 그는 틈나는 대로 축구 경기를 시청했다.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어느 팀이 이길 것이라든지, 어느 팀이 더 잘한다 등 열띤 토론도 벌인다.
6. 요리
"모든 예술가는 훌륭한 요리사가 될 수 있어요.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조적이니까요. 창의력은 요리의 핵심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예술가들은 색다른 아이디어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나도 뛰어난 요리사가 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해요. 내가 개발한 아주 간단한 요리법을 가르쳐드리죠. 안달루시아의 가스파초에 앤젤 헤어 파스타를 넣어서 먹으면 훌륭한 여름 요리가 됩니다."
가스파초는 토마토 퓨레, 피망, 양파, 오이 등으로 만든 차가운 수프로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발달했다. 앤젤 헤어 파스타는 얇고 구불거리는 라면 모양의 이탈리아 국수. 천사의 머리처럼 가느다랗고 곱슬거려서 앤젤 헤어라고 불린다.
민츠는 미식가이다.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먹는 것을 더 즐긴다. 30년 전, 한국음식을 처음 먹어본 후 한국음식의 팬이 되기도 했다. 특히 비빔밥을 가장 좋아한다고.
7. 두 아들
그에게는 18세와 16세의 두 아들이 있다.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민츠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이들은 많은 것을 함께 한다. 아들이 록 기타를 연주하면 민츠는 드럼을 연주하고, 팀을 짜서 농구도 한다. 후보선수는 항상 민츠의 몫이다.
8. Dog & Cats
러프 상젤리, 데이지, 미누슈키, 스크래치는 민츠가 기르는 강아지 한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의 이름이다. 애완 동물 이름 치곤 상당히 이색적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을 반기는 이들을 보면 금세 기운을 차리게 된다고 한다. 그는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민츠는 동물들과 좋은 느낌으로 영혼을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계속해서 교감을 나눌 수 있다고. 실로 동양적이지 않은가?
9. 스타워즈 에피소드 II
가장 최근에 본 영화다. 그는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 아무 생각 없이 여유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적인 영화를 감상할 때도 있지만 너무 많은 집중력을 요구해서 부담스럽다.
쉬는 시간만큼은 철저하게 즐기는 것이 연주 생활에서 오는 중압감을 해소하는 그의 비법이다. 무엇보다 액션 영화는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아한다.
10. 시가
민츠는 애연가다. 그는 항상 시가를 물고 다닌다. 굳이 피우지 않아도 가까이에 시가가 있어야 마음이 안정된다. 한때는 파이프도 즐겨 피웠지만 결국 시가에 푹 빠졌다.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시가를 필 때만큼은 와인도 곁들인다. 그에게 시가의 매력을 알려준 것은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이었다. 스턴과 민츠의 만남에는 항상 쿠바산 시가가 빠지지 않았다.
최근 스턴의 죽음은 그에게 큰 슬픔을 주었다. 아울러 그의 스승이었던 도로시 딜레이의 서거 소식 역시 그에게 커다란 비보였다. 두 거성의 죽음으로 민츠는 세대교체를 실감했다고 한다. 아울러 자신의 책임을 더 크게 느낀다고. 그래서 최근에는 음악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