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한다한다는 얘기 듣고도 그냥 넘겼는데, 이곳에서 의외로 본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재미있을까.."하는 생각으로 비디오방에서 봤습니다.
오~ 잘 만들었더군요.
"아더왕의 전설이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했다면, 실제로는 아더는 어떠한 인물이었을까?"라는 의문에 대해서 크게 두가지 가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첫 번째 가설을 정말 충실하게 재현해낸 것이 참 신선한 것 같습니다.
첫 번째 가설은 영화에서 처럼, 아더왕의 모델이 되는 인물은 로마 멸망 시대의 인물로 로마군 철수 이후에 남은 로마계열 군사지도자가 토착 켈트인들과의 유대를 이끌어내어 침공하는 앵글로-색슨인들에 대항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 가설은 그 보다 한 100~200년 정도 뒤의 6세기~7세기 정도에 토착 켈트인 출신의 왕이 로마 철수 후 생겨나기 시작한 왕국들의 연합체를 만들어 침공하는 앵글로-색슨인들에 대항했다는 내용입니다. 두 가설 모두 공통적인 것은 토착 켈트인들이 앵글-색슨족에 맞서 싸웠다는 것이고, 말하자면 훨씬 이후에 알프레드 대왕이 데인인들과 싸웠던 것과 비슷한 식으로 흘러갔다는 것이죠.
영화의 '아르토리우스'라는 존재는 영국 내에서 발견된 거석에 새겨져있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 분명합니다. 이 거석이 발견되었을 때 영국 내부에서 "아더왕의 물증이 발견되었다!"고 흥분했었는데, 사실은 후대의 위작인지 진짜인지 아직도 가려지지 않은 상태이구요. 다만 "아더" "아르투르" "아르토리우스"는 공통적으로 켈트어로 "곰"을 지칭하는 단어에서 나온 것인 만큼, 만약 실제로 그 사람의 이름이 "아더"였다면 분명히 핏줄은 브리튼인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영화에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원탁의 기사"의 기원이 로마가 사르마티아의 일부를 복속한 데에서 출발했다는 가정인데 참 머리 잘썼더군요. 확실히 로마가 멸망할 즈음이 되면, 로마군의 주적이 우수한 기병전력을 주력으로 삼던 게르만인들과 훈족들이었던 만큼 로마군도 중장보병 위주의 편제에서 중장기병 위주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아에티우스 등도 보조병으로 그런 기병들을 즐겨 사용한 것 처럼, 만약 사르마티아인들이 병역을 조건으로 복속되었다면 분명히 변방의 군무에 종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아더는 전형적인 로마군 지도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반해, "원탁의 기사"들은 마갑, 우수한 비늘형 갑옷, 작지만 강력한 만궁 등을 사용하는 모습에서 꽤 고증에 신경을 썼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에 반해 "워우드"라고 불리우는 토착 켈트인들은 직궁 형태의 장궁을 쓰고 있고, 앵글로-색슨 인들은 당시에는 생소한 무기였을 석궁을 쓰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확실히 대륙에서도 훈족들과 싸우던 앵글-색슨인들이었다면 훈족들로부터 석궁의 사용법을 배웠을 법 하죠. 또, 이들 앵글-색슨인들이 영국에 발판을 마련했을 때 다시 이들로부터 아마 픽트인들이 석궁을 배웠을 것입니다.
금발에 푸른 눈의 사르마티아인들은 좀 어색하지만, 여러 기사들 중에서도 "이 사람은 정말 혼혈같다.."는 느낌이 드는 '트리스탄'은 아마 당시의 사르마티아인들이라면 정말 그렇게 생겼을 법 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튀어나온 광대뼈와 갸름한 얼굴 형은 분명히 동양인이지만, 그래도 눈, 코, 머리카락을 보면 서양인 같죠? ^^;; 지속적인 전쟁과 교류를 통해 게르만 핏줄과 초원의 동양인 핏줄, 그리고 라틴인의 핏줄이 섞이게 된다면 아마 그 지역의 유목민들은 그런 모습을 했을 것 같습니다. 참 묘하게(?) 생겼더군요.
아더왕의 "원탁"의 개념은 분명히 평등함을 상징합니다. 왕과 신하라는 관계 이상으로, 군무에 있어서 똑같이 평등한 '기사'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 원탁의 유래를 펠라기우스에서 따온 것 또한 기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보면 게르마누스 주교가 원탁을 보자마자 사색이 되는 모습이 보이죠 - 정말로, 로마가 기독교화된 후에는 일부 상징들이 이교적인 것으로 배척받았습니다. 특히 인물들의 원형배치는 고대 종교의 만신전(판테온)의 배치이기 때문에, 로마에서 똑같이 동등하게 숭배받는 여러 신들이 둥글게 둘러서있는 것을 상징한다고 해서 꽤나 금기시되던 상징이었기 때문이죠. 특히 펠라기우스는 "정통"을 주장하는 로마카톨릭에서 그 대선배 격이 되는 아리우스와, 마니교도의 창시자 마니 만큼이나 악마로 취급되는 신학자입니다.
아리우스파는 아타나시우스파와 삼위일체 논쟁에서 패해서 이단으로 규정되었고, 마니는 조로아스터교와 기독교 양쪽에 큰 영향을 떨친 만큼 그 둘로부터 모두 박해를 받았죠. 실제로 로마가 멸망한 이후에 게르만/프랑크 인들이 기독교화되기는 하지만, 한결같이 아리우스나 펠라기우스 등의 교리를 따랐기 때문에 로마의 교황이 아주 골치아파했더랬죠.
그 외에도 영화에서 "워우드"인들이 모두 게일릭어를 사용하는 것도 볼만했고, 색슨인들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던 것도 좋았습니다.
여러모로 "암흑의 시대"의 유럽의 모습이 어떠했을까를 잘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네요. 로마의 잔재와 게르만계 문화가 통합되기 시작하는 시점의 혼란기였으니까요.
궁금해서 좀 더 조사를 해봤는데.. 음.. 아르토리우스 카스투스와 그의 사르마티아인 기병대는 실화이더군요 0_0. 다만, AD2세기 경의 인물이라고 합니다. 예전의 아더왕 전설 연구자들이 아더왕의 실존모델 중 하나로 뽑았었지만 요즘의 연구자들은 부정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첫댓글 전 보았습니다. 등자를 ..
궁금해서 좀 더 조사를 해봤는데.. 음.. 아르토리우스 카스투스와 그의 사르마티아인 기병대는 실화이더군요 0_0. 다만, AD2세기 경의 인물이라고 합니다. 예전의 아더왕 전설 연구자들이 아더왕의 실존모델 중 하나로 뽑았었지만 요즘의 연구자들은 부정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크베사님의 영화평이 더 멋지군요-_-;;; 저는 그냥 [신선하다, 그럴듯하다]정도로 생각한지라-ㅅ-;;
음..ㅡㅡ 무장공비님.......................혹시..간단청결? 을 지향하십니까?
[대강철저히]를 지향합니다.
영화평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