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프닝 화면의 카메라 파인더에 잡히는 독수리. 그리고 3년 뒤 다시 카메라 파인더에 잡히는 두 마리의 표범(?). 독수리의 비상과 표범의 결투는 「동물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피터는 네셔날 지오그라픽 작가이고 카메라는 NICON이다. 상표는 피사체보다 선명하고 피사체는 상표보다 아름답다. 가끔 카메라 파인더와 총기의 조종관을 착각한다. 나에게 카메라와 총기는 익숙치 않은 물건이다.
2. 누가 산을 오를까? 산을 정복하러 오르는 사람이 있고 산을 좋아하여 오르는 사람이 있다. 본은 성공한 기업가답게 산을 정복하러 오른다. 그에게 산의 정상은 극한을 이겨낸 자신의 자랑스런 존재를 확인하는 곳이 아니라 드라마틱하고 환상적인 광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세트쯤이다. 갖은 등반의 역경을 이겨내고 K2의 정상에 선 한 기업의 사장, 때맞춰 그의 머리 위를 축하 비행하는 그의 회사의 항공기, 얼마나 머제스틱(MAJESTIC)한가? 그러나 자연은 그의 기획이 얼마나 오만한 망상이었는지 죽음으로 그에게 가르쳐 준다. 더하여 그의 죽음은 위크의 아내와 탐을 죽인 이기심에 대한 윤리적 응징이기도 하다. 대저 부자는 겉으로는 점잖고 고상하지만 속으로는 음흉하고 탐욕스럽다. 오죽하면 예수가 부자의 천국 집입이 낙타의 바늘귀 통과와 동일하다고 말했겠는가?
3. 두 번 줄이 끊어진다. 줄은 등산가에게 생명줄이다. 줄이 끊어지면 끊긴 자리 다음에 매달린 사람은 죽는다. 로이스는 아들 피터와 딸 애니를 위하여 아들을 시켜 줄을 끊게 한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죽을 수 있다. 그래서 아버지이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아무래도 아들보다 딸이 깊다. 그것을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한다. 애니는 산을 좋아한 아버지를 산처럼 사랑한다. 그녀에게 산은 아버지다. 한편 위크는 친구의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스스로 줄을 끊는다. 그 줄 끝에는 자신과 자신의 아내를 죽게 한 본이 매달려 있다. 적과는 항상 동침하게 되어 있다. 그것을 운명이라 한다.
4. 두 번 노래를 한다. 노래를 하는 사람은 피터와 애니다. 한번은 영화 시작 무렵 암벽에서 피터가 노래를 한다. 한 번은 영화가 끝날 무렵 애니가 노래를 한다. 노래에 대한 서로의 대화가 대칭적이다. '얼마나 좋은 노래인데 승리의 노래이기도 하고' 그렇다. 모든 노래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노래가 승리의 노래는 아니다.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두 남매는 처음에는 서로 싸우면서 사랑했고 나중에는 서로 자랑스러워 사랑했다. 그래서 두 남매는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나는 늘 패배의 노래만을 부르고 있다.
5. 버티컬 리미트, 수직 한계점이다. 고도 2만3천피트, 숨을 쉬기가 곤란하다. 가만 있어도 죽는다. 그러나 그곳에서 존재를 확인하고 생존의 욕구를 느낀다. 나는 가끔 수평 한계점에 서 있다.
6. 영화가 끝나고 스텝과 캐스트의 이름이 스크롤된다. 스텝만 이백 명 가까이 된다. 캐스트도 스턴트맨 등을 포함하여 백 명이 넘는다. 엄청나다. 제작비는 아마 나에게 상상의 액수일 것이다. 큰 나라의 영화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