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템플 그랜딘, 양철북
우선 저자를 소개하겠습니다.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은 두 살 때 자폐아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이 아기가 평생을 보호시설에서 살 거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이에게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특히 고등학교 때 한 선생님이 그녀의 병적인 고착증을 창의적이고 가치 있는 일을 구상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주었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자신의 특별한 노력으로 자기 개발에 성공을 하고 사회에도 잘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랜딘은 일리노이 대학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가축시설을 설계하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현재 미국 가축 시설의 3분의 1이 그녀가 설계한 것이라 합니다. 현재 그녀는 자폐증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면서 콜로라도 주립대 동물학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이 책의 발문을 쓴 저명한 심리학자인 올리버 색스는, 이것은 존재할 수 없는 책이라고 말합니다. 왜냐면 자폐인에게는 내면 혹은 내적인 삶이 없으며, 설령 있다고 하더라고 그것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과연 이 책을 읽어나가면 저자의 목소리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지점, 실체가 인정되지 못했던 ‘그곳’으로부터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무엇이 들려올까요? 바로 자폐인의 ‘내면 서사’가 울러퍼지기 시작하는 거지요.
자폐인의 ‘내면 서사’ 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가끔 주변에서 자폐인을 만나는데, 그들은 괴성을 지르고 온몸을 흔들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되풀이 합니다. 혼란스럽게 이를 데 없는 것이 우리들이 보는 자폐인의 내면 서사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자폐인의 내면 서사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자폐인은,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한마디로, 이미지(그림)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언어로 생각하지요. 언어로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사물을 일반화시키는데 자폐인은 특정한 이미지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일반화가 어렵다고 합니다. 요컨대 탁상시계를 보이며 “이것이 시계다”라고 가르쳐주면 벽시계를 보고는 시계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거지요.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탁상시계와 벽시계가 동일한 시계임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거지요. 가령, 저자는 졸업이라는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합니다. 왜냐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추상적인 단어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기숙사 옥상에 올라갔다가 증축하는 건물 지붕에 문이 있는 것을 보고 ‘저 문을 나가는 것’이 바로 졸업이로구나 하고 깨달았네요. 이렇게 그녀는 모든 단어를 그림으로 받아들인 뒤, 그것이 무엇을 뜻한다고 (곧 의미있는 언어로) 인식했다고 합니다. 일반화를 한 것이지요.
모든 사물과 대상을 일반화하는 저자의 노력도 눈물 겹지만, 이 책 자체로도 경이롭기 그지 없습니다. 책에는 자폐인의 종류와 특성을 그녀의 경험을 통해 다루고 있으되 결코 ‘자폐적’이지 않습니다. 이미지를 통해 언어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는 저자는 놀랄 만큼 뛰어난 감각과 문장으로 자신의 경험을 피력해내고 있습니다. 보다 더 주목되는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이미지에 대한 능력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뇌 연구에 의해서 시각적 이미지는 좌뇌 뒤쪽에서 담당하고 있는 게 밝혀졌다고 하는데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이 책은 자폐인에 대한 책이라기보다, '좌뇌와의 대화'로 읽힙니다.
'좌뇌와의 대화', 곧 이미지화의 능력은 우리 인간이 언어로 사고하기 이전에 사용했던, 가장 활동적이었던 뇌의 능력인 것 같습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감각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많은 예술성과 창조성은 이곳에서 태어난다고 합니다. 인간의 감각이 언어에 밀려서 활동이 둔화된 이후에도 인간의 진보를 담당했던 곳입니다. 다른 곳에 비해 이곳만이 지나치게 발달한 자들이 자폐적 성향을 보이는데 아이슈타인을 비롯해 많은 비상한 천재들이 바로 그런 이들이라고 증거합니다.
캄캄한 혼돈 속에 잠겨있었던 자폐인의 내면서사를 기록한 이 미증유의 책을 통해, 우리 두뇌의 한 부분에 숨어있는 뛰어난 기질이 어떤 것인지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며칠전 서울시 예능 영재 뽑는데 한 자폐아가 피아노 부문에 뽑혔는데 정말 피나게 노력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제는 우리나라도 장애가 있다고 더 이상 골방으로 밀어넣지 않아도 되겠다싶어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자폐는 한가지 부문에 뛰어난다고 하는데 잘만 지도하면 오리려 정상인 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군요.
제작년인가, (첫번째 미림호를 합평하고 난 후) 요술펜님이 이 책을 읽어보라며 제게 빌려주었더랬지요. 그때 마침 제가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자폐증상에 대해 오류를 범한 글을 썼을지도 모르죠. 제가 유일하게 빌려서 본 책입니다. 글쓰는 사람은 이런 류의 책을 한 권씩 가지고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글쓰기' 분야로 자폐인이 되고 싶습니당^^ 왜 이렇게 산만한지...... 지난 십 년동안 읽은 책 중 최고라고 하셨지요? 꺼내놓았습니다.
궁금하네요. 자폐인의 내면이....
저 책은 자폐인의 글이 아니라 <그림>으로 생각하는 독특한 글이라 보면 됩니다. 만약 저 책이 자폐인의 글이라고만 여긴다면 멀쩡한 우리는 너무 맥이 빠지죠. 왜냐면요~ 저 책의 수준은 거의 노벨문학상을 받을 정도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