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에는 다시 이따이푸 댐을 보러 갔다. 엊저녁에는 야경을 구경했지만 낮에도 댐을 둘러보는 투어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전에 이따이푸 댐을 구경하고 곧바로 아르헨티나로 국경을 넘어갈 생각이었다. 이따이푸 댐으로 가서 관광을 하는데 어제 오후 이과수 폭포를 구경할 때 우연히 만났던 또다른 여행사를 운영하는 강이구씨를 만났다. 강이구씨는 우리한테 하루만 더 브라질쪽에 있다가 간다면 자신이 섭외해서 브라질의 삼바와 아르헨티나의 탱고,파라과이의 민속춤을 공연하는 곳을 취재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수영장이 있는 좋은 호텔을 값싸게(방두개에 하루 120헤알) 묵을 수 있도록 소개해 주었다.
우리는 계획을 바꿔 브라질에서 하루 더 묵기로 하고, 이따이푸 발전소측의 셔틀버스로 댐의 이곳저곳을 함께 다니며 구경을 했다. 어제밤에 본 이따이푸댐과 낮에 보는 댐의 광경은 자못 달랐다. 버스로 파라과이쪽까지 넘어갔다가는 다시 브라질쪽으로 넘어오며 엄청나게 큰 저수댐의 모습과 추가설치공사중인 거대한 발전기, 힘차게 물을 내리쏟는 배출구의 치솟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미약한 인간이 이뤄낸 힘을 느꼈다. 어제는 이과수 폭포를 보며 대자연의 장대한 모습을 느꼈다면, 오늘은 이따이푸댐을 보며 유한한 인간의 무한을 향한 능력과 대자연을 이용하는 지혜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아직(?)은 세계최대의 댐인 이따이푸 댐의 위용
저녁에는 민속공연장인 “떼아뜨로 쁠라자 포즈”(Teatro Plaza Foz)로 갔다. 이곳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파라과이의 3개 나라가 접한 국경지역이자 이과수 폭포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라는 이점을 안고 세워진 민속공연장인 듯했다. 불과 며칠 전에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화려하기로는 지상최대의 쇼인 리우축제를 보고 온 뒤였지만,이곳에서 공연하는 삼바공연과 아르헨티나의 탱고춤, 파라과이의 민속춤은 그런 대로 볼 만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박제된,정형화된 공연이긴 하지만, 다른 곳에선 한꺼번에 쉽게 볼 수 없는 3개국의 고유한 민속춤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사실과 탄탄한 공연내용이 이런 단점을 덮어버리고도 남았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인간의 위대함을 동시에
이렇게 브라질에서의 마지막밤을 보내고, 내일이면 아르헨티나로 건너간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왔다. 브라질에 온지 벌써 한달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남미최대의 나라이자,치안상황이 아주 좋지 않다고 하는 브라질에 도착해서 리오축제를 보기 위해 머물렀던 상파울로에서의 암담하고도 새로왔던 시간들, 그리고 대평원 습지대인 빤따나오에서 엄청난 모기떼들에게 뜯긴 일들, 지상최대의 대형 쇼이자 화려함의 극치를 뛰어넘어 사치와 방종의 대명사처럼 된 리오 카니발을 보며 느꼈던 복잡다단한 심경들, 인간의 무력함과 대자연의 위용이 그대로 대비돼 느낄 수 있는 이곳 이과수 폭포 장관까지…
그래서 이곳 브라질은 인간과 대자연의 능력과 힘을 번갈아가며 느낄 수 있었던 특별한 나라였다. 상파울로나 리오 데 자네이로처럼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로 몰려들어 살면서, 정상적인 상거래를 하는 사람들 이외에도 서로 살아남기 위해 남을 속이거나 남의 것을 훔치거나,총이나 칼을 들이대고 남의 물건을 강탈하거나 심지어는 마약밀매단처럼 조직적인 범죄집단을 만드는 등 인간사의 온갖 추악한 모습들을 보이기도 하고, 삼바축제를 통해 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복장과 장식을 한 차량을 만들어내 밤새도록 행렬을 벌임으로써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화려한 축제의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이따이푸 댐 같은 경우에는 인간 능력의 위대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댐 위에서 내려다 본 거대한 물줄기
반면, 빤따나오 같은 대평원 습지나 이과수 폭포 등의 대자연의 모습은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거나 인간의 위대함을 폄하하고 비웃기라도 하는 듯, 오로지 자연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곳처럼 보였다. 빤따나오 지역에선 인간이 주체가 아니라 동물과 식물들이 주인이었고, 인간은 철저히 국외자(局外者)였다. 이과수 폭포 앞에서 선 인간의 역할은 방관자였고 구경꾼일 뿐이었다. 또 우리가 이번에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남미를 떠나 쿠바로 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거대한 아마존 강 유역을 보더라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전세계의 인간사회가 만들고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맑은 공기로 정화하는 능력을 지녀 ‘지구의 허파’라 불리우는 아마존 정글의 능력과 원초적인 모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다.
브라질에 다시 입국할 땐 벌금을 내야한다고?
다음날, 아르헨티나로 넘어가기 위해 브라질 국경초소에서 약간의 해프닝이 벌어졌다. 우리 가족이 앞으로 브라질에 입국할 경우 브라질 돈으로 한사람당 165.55헤알(약5만8천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입국할 때 받았던 입국신고서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가 브라질에 입국할 때 썼던 입(출)국신고서를 다시 되돌려받은 기억이 없다.
재입국시 벌금을 내야 한다는 브라질 출입국사무소 문서와 여권
기억이 없을 뿐 아니라 내가 우리 가족의 여권을 한꺼번에 모아 보관하고 있는 벨트쌕에도 브라질의 입국신고 용지가 한장도 보관돼 있지 않다. 만약 이런 신고용지를 우리 가족 중에 한 명이라도 되돌려 받았다면 이곳에 보관돼 있을 텐데, 한장도 없는 것을 보면 약 한달전 입국신고서를 받았던 상파울로 국제공항의 직원이 착각을 해서 출국신고시 필요한 부분을 잘라서 우리한테 되돌려주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출국신고시 필요한 그런 중요한 서류라면 미리 이야기를 해서 우리가 분실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키거나, 아니면 미국처럼 입국신고를 하면 출국때 필요한 서류만 떼어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여권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조치를 할 일이지, 이제 출국하는 곳에서 내가 분명 분실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0여분간 분실사유서와 함께 서류를 작성하고 마치 우리가 무슨 범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우리가 가진 여권에다 “이 사람이 다시 브라질에 입국할 경우엔 165.55헤알을 내야 한다”고 커다란 스탬프를 찍고 기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우리의 여권에는 지난 2월 5일 브라질에 입국했다는 스탬프가 선명하게 찍혀 있는데도 그것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입국시 작성하고 출국때 필요한 그 서류를 분실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서류를 받았다면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고, 그 서류쪽지를 잃어버린 사람 모두가 재입국을 할 때 이런 벌금을 내고 입국해야 된다고 한다면 이 시스템이 분명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런 쪽지보다 (훨씬 잃어버릴 일이 없는) 여권에 선명하게 날짜까지 찍힌, 정상적인 브라질 입국도장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이것만 확인되면 출국도장만 여권에다 쾅! 찍어주면 될 일이지,입(출)국신고서 용지가 없다고 ‘재입국시’ 무슨 벌금을 내라고 하는 건 잘못된 게 아닌가?
아르헨티나쪽 이과수 폭포를 보니…
어찌됐든 브라질에서 출국하는 지금이 아니라(만약 지금 일인당 5만8천원씩,29만원의 벌금을 내고 나가라고 했다면 더 억울했을 테지만), 나중에 브라질에 다시 오게 될 날 그런 벌금을 내야 된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우리 가족은 여권에다 커다란 경고 스탬프를 하나씩 받고 한 시간이나 기다린 끝에 씁쓰레한 맘으로 브라질 국경을 넘었다.
우리가 이번 여행때 가 본 아르헨티나나 페루,칠레,멕시코 등 몇몇 남미 나라들과 함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이와 똑 같은 서류를 나누어 주었는데, 이것을 분실하면 어떻게 되는지 다시 실험해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만약 우리나라도 이런 시스템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면 이는 분명 바꿔야 할 시스템인것 같다.
남대문시장에서 산 성능 좋은(?) 비옷을 입고서도 물에 빠진 새앙쥐꼴인 나와 아이들
아르헨티나쪽의 이과수 폭포를 보기 위해 먼저 숙소를 잡고 짐을 풀어놓은 후, 내일 아침에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기 위해 장거리 버스표를 미리 구입한 뒤, 이과수 폭포로 달려갔다. 다시 입장권을 구입하고,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국립공원을 들어가니 아르헨티나쪽에서 가능한 투어상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미리 들은 대로 이곳에선 배를 타고 이과수 폭포 바로 아래까지 들어가보는 투어를 하기로 작정했던 터라 그것을 선택했다 (여기에 대한 내용은 아내와 아이들의 여행기를 참조하세요).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미의 브라질관광을 오시면 리오 데 자네이로를 보고 곧장 비행기로 이곳 포스 두 이과수로 와서 브라질쪽의 이과수 폭포만 보고 이과수 폭포를 다 보았다며 그냥 가신다고 한다. 이곳에 와서 며칠씩 머물며 아르헨티나 영사관에 가서 비자를 받은 다음,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쪽 폭포를 구경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사실 브라질에서 만난 어떤 한국분은 브라질에서만 이과수 폭포를 보면 됐지, 굳이 아르헨티나까지 가서 볼 것이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악마의 목구멍의 위용을 보여주는 전망대
1541년에 발견된 이과수 폭포는 브라질쪽의 4개 폭포와 아르헨티나쪽에 있는 275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지만, 우리는 어차피 버스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가기로 작정하고 이미 상 파울로 아르헨티나 대사관에 가서 한 사람당 101헤알(3만5천원)씩이나 주고, 비자를 받아놓은 터라 아르헨티나쪽 이과수 폭포를 보지 않고 그냥 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이쪽 이과수 폭포를 보았는데, 이곳을 보지 않고 갔더라면 엄청난 후회를 할 뻔했다.
아르헨티나쪽에서 보는 ‘악마의 목구멍’ 때문이었다. 브라질 쪽에서는 그저 약간 가까이 다가가 올려다 보았을 뿐이지만 아르헨티나쪽에서는 그 악마의 목구멍 가까이까지 직접 걸어가 전망대에서 발밑으로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를 내려다 볼 수 있게 돼있는데, 이 광경이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다. 큰 학교 운동장처럼 넓은, 엄청난 웅덩이 속으로 물이 그대로 빨려 들어가는 거대한 폭포의 무서운 모습과 우르렁거리며 내지르는 우렁찬 물소리, 그 물이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솟구쳐 올라오느라 폭포 저 바닥에서부터 불어오는 물보라와 바람 때문에 머리카락이 마냥 위로 치솟는다. 그 때문에 머리카락이 뻣뻣하게 일어서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런 모든 광경이 조합돼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이름이 꽤나 설득력있게 들린다.
나는 만약 어떤 분이 이과수 폭포를 볼 기회가 닿는다면, 이 ‘악마의 목구멍’을 아르헨티나쪽에서 꼭 한번 보고 가시기를 강력하게 권유한다. 이곳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동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과수 폭포가 세계제일의, 최대의 폭포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 이해가 갔다. 단지 브라질쪽에서만 폭포를 보았더라면 이런 말에 쉽게 수긍할 수 없었으리라.
폭포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로 말미암아 아름답게 피어난 무지개-발 아래 핀 무지개는 처음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