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출전 월드컵 관전기
1980년도부터 축구 경기를 관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보기는 했지만 관심을 갖고 시청하게 된 때는 중학교 시절인 1980 년도부터 입니다.
저와 같은 386 세대를 포함하여 Old fan들께서 잘 아시겠지만 그 당시에는 대표팀이 1진과 2 진으로 운영되었습니다. 1진이 화랑, 2진이 충무 였지요!
이때 혜성같이 등장한 선수가 최순호 입니다. 당시 화랑 멤버진을 살펴 보면 :
김강남 , 박상인 , 박성화 , 신현호 , 오석재 , 이강조 , 이영무 , 이태호 장외룡 , 정해원 , 조광래 , 조영증 , 최종덕 , 허정무 , 황석근 , 황재만
대부분 기억하시죠? 여기에 최순호가 신인으로 등장하고 얼마 안 있어 총알 변병주가 대표팀에 가세했습니다.
< 1982 SPAIN WORLD CUP >
오일 달러를 앞세운 쿠웨이트의 강력한 요청으로 1982 년 월드컵 예선 1라운드가 쿠웨이트에서 있었습니다
한국은 동남아 국가들을 연파했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홈팀 쿠웨이트에 패해 월드컵 진출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2차 Oil Shock로 원유 수급이 절실했던 한국이 쿠웨이트에게 의도적으로 져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만 당시 쿠웨이트의 전력이 한국 못지 않게 강한 수준이었고 특히 한국은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쿠웨이트에는 유난히 약한 징크스를 갖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월드컵 예선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국민들의 실망이 무척 컸었습니다.
< 1986 MEXICO WORLD CUP >
(1) 월드컵 지역 예선
1985년부터 월드컵 지역 예선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지역 예선을 애초부터 중동, 서남아 對 동남아, 극동으로 분할했기 때문에 한국은 중동 팀들과 대결하지 않게 되어 한국의 월드컵 진출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예선 1라운드에서 발목이 잡히고 말았습니다. 말레이지아 원정 경기에서 한국이 0:1 로 패하고 말았죠..
축구협회는 부랴부랴 문정식 감독을 퇴진시키고 김정남, 김호곤 지휘 체제를 성립시켜 멕시코 월드컵을 준비토록 했습니다.
당시 멤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삼수 , 김석원 , 김용세 , 김평석 , 박창선 , 박경훈 , 변병주 , 이태호 , 정용환 , 정종수 , 조광래 , 조민국 , 조병득 , 조영증 , 최순호 , 허정무 ,
여기에 83 청소년 대표 히어로 김종부와 무명 출신 김주성이 신인으로 가세했습니다.
한국은 말레이지아를 잠실로 불러 들여 격파하고 인도네시아와의 home & away 를 승리로 장식한 후 일본과 마지막 결전을 벌였습니다.
한국은 일본 원정 경기를 2:1로 승리한 후 잠실에서 일본 팀을 맞았습니다. 원정 경기에서 정용환의 벼락 같은 중거리 슛이 생생하네요..
한국이 적지에서 이겼기 때문에 잠실에서 비기기만 해도 32 년 만에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게 되는 경기였습니다.
휘슬과 함께 한국이 경기를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보다는 한국이 다소 느긋한 입장!
일본은 보다 적극적으로 나왔으나 한국이 중원을 장악 함으로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후반전에 한국에 기회가 왔습니다. 최순호의 중거리 슛이 골 포스트를 맞고 흘러 나오는 것을 허정무가 발을 톡 같다 댄 것이죠.. 이 골로 한국은 1:0으로 이겼습니다.
경기 후 선수들이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잠실 종합운동장 트랙을 돌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비로소 32년 만에 한국이 월드컵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2) 조 편성 및 1986 MEXICO월드컵 본선 전망
많은 사람들이 1라운드 통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습니다. 같은 조에 속한 불가리아는 해 볼 만하다고 치더라도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는 오르지 못할 태산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는 전 대회 우승팀, 그리고 아르헨티나는 그 전 대회 우승팀 이었으므로 상대하기가 벅찰 것 이라는 것이 일반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일반인들의 생각이 바로 한국 팀의 객관적인 전력인데 예상결과는 3패 혹은 불가리아와는 비겨 1무 2패
그러나 낙관론도 비등했습니다. 3년 전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이 4강 기적을 이룬 곳 이라는 점.. 그리고 한국은 미지의 팀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우리를 잘 모른다는 점.. 마지막으로 차범근이 뛴다는 점 등이 그 근거였습니다.
물 오른 마라도나가 있는 아르헨티나에는 한 수 접고 들어가더라도 우리와 전력이 비슷한 불가리아는 잡을 수 있으며 북한 징크스가 있는 이탈리아와도 해 볼 만 하다는 것 이었습니다.
(3) 월드컵 본선
◆ KOREA : ARGENTINA 1:3 멕시코 월드컵 1 라운드 (1986.06.02)
한국이 세계적 수준과의 격차를 실감한 한 판 이었습니다. Maradona에겐 골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Valdano 에게 골을 내리 허용해1:3으로 졌습니다. 박창선이 월드컵 1호 골을 넣었는데 포물선을 그리며 꽂히는 중거리 슛은 정말로 멋 있었습니다.
마지막 20 분은 한국이 아르헨티나를 몰아 부치는 형국이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마라도나를 봉쇄하기 위해 태권도 축구(?)를 구사했으며 이로 인해 “한국 축구는 매우 거칠다” 라는 인식을 남겼습니다.
◆ KOREA : BULGARIA 1:1 멕시코 월드컵 1 라운드 (1986.06.06)
아르헨티나와의 대전은 어차피 기대를 안 했었지만 불가리아가 개막전에서 이탈리아와 비기는 등 전력이 만만치 않음에 따라 한국 coaching staff 는 긴장하였습니다.
경기는 폭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오연교 골키퍼의 어설픈 펀칭으로 인해 한국은 전반에 실점하고 맙니다.
후반 들어 한국은 불가리아를 계속 몰아 부쳤고 마침내 김종부가 조광래의 긴 헤딩 패스를 가슴으로 트래핑하여 터닝 슛으로 동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득점은 없었습니다. 동점 골을 얻은 이후에도 한국의 강세는 계속되었지만 긴장하고 조급해서 그랬을까? 경험 많은 차범근은 상대방이 쳐 놓은 off side trap 에 번번히 걸리고 말았죠...
이 경기를 통해 한국은 월드컵에서 비김으로써 첫 승점 1을 획득합니다. 차범근의 위치 선정이 좋았다면 수중전에 편승하여 역전 승도 노려볼 만 했던 아쉬운 경기였습니다.
◆ KOREA : ITALY 2:3 멕시코 월드컵 1 라운드 (1986.06.11)
멕시코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의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아르헨티나 전과 마찬가지로 실력의 차이를 느꼈습니다. 한국의 어설픈 경기 운영으로 한국은 전반에 실점하게 되죠..
후반 들어 한국은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동점 골을 얻게 됩니다. 최순호의 그림 같은 터닝 슛!! 최순호의 동점 골은 역대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경기 골 중 가장 멋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은 이런 상승세를 지켜 나가지 못했습니다. 한국은 내리 2골을 더 허용하고 후반 막판에 허정무가 한 골을 만회하여 경기는 2:3 으로 종료하고 말았습니다.
(4) 평가
한국이 세계 대회에 본격적으로 출전하게 된 첫 대회였으며 세계 수준과의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한 의미 있는 대회였습니다.
이탈리아 전에서 보듯이 한국은 동점 골을 얻어내고도 상승세를 이어 나가지 못 했는데… 이는 한국이 강호들과의 경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오는 경기 운영 미숙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한국은 역대 월드컵 우승팀들을 맞아 대패하지는 않았으며 유럽의 어느 한 팀과도 비김으로서 아시아의 맹주 다운 면모를 보였습니다.
< 1990 ITALY WORLD CUP >
(1) 월드컵 지역 예선
월드컵 지역 예선이 1989년 5월에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한국 대표팀의 수장은 아시아의 표범 이회택 이었습니다.
이번에도 1라운드 상대에 복병 말레이지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잠실과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1라운드에서 말레이지아를 격파하고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 진출하게 됩니다.
당시 한국 멤버진을 살펴 보면
구상범 , 김용세 , 김주성 , 노수진 , 박경훈 , 변병주 , 윤덕여 , 이영진 , 이태호 , 정종수 , 정용환 , 조민국 , 최강희 , 최상국 , 최인영 , 황보관 ,
그리고 신인으로 황선홍, 홍명보, 이상윤 등이 등장했습니다.
최종 예선에 진출한 나라는 중동의 사우디,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그리고 극동의 한국, 북한, 중국이었습니다.
다행이라면 중동의 강호 중 한국에 강한 쿠웨이트, 이란 등이 월드컵 최종 예선에 올라오지 못 했다는 점!
최종 예선은 싱가포르에서 열렸습니다. 한국은 첫 경기를 카타르와 비긴 후 극동 2팀을 잡고 사우디 마저 2:0으로 제압함으로써 독주 체제를 갖추어 월드컵 티켓을 조기에 확보합니다.
마지막 UAE 와의 대결에서 1:1 로 비김으로써 한국의 무실점 행진도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2) 조 편성 및 1990 ITALY월드컵 본선 전망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1라운드 통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습니다
스폐인은 전통적인 유럽 강호이고 벨기에도 최근 전력이 급 상승했으며 우루과이의 저력도 역시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객관적인 전력으로 볼 때 한국은 3패를 하든지 아니면 우루과이와는 비겨 1무 2패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될 공산이 컸습니다.
(3) 월드컵 본선
◆ KOREA : BELGIUM 0:2 이탈리아 월드컵 1 라운드 (1990.06.13)
여독이 덜 풀려서 그랬을까? 거의 일방적으로 몰리다시피 하면서 한국은 0:2로 지게 됩니다.
최인영 골키퍼의 판단 착오로 첫 번째 골을 헌납하고 뒤이은 중거리 슛을 막지 못해 한국은 이렇다 할 공세도 못 취하고 경기를 마감하게 됩니다.
◆ KOREA : SPAIN 1:3 이탈리아 월드컵 1 라운드 (1990.06.18)
이탈리아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의 두 번째 경기였습니다 한국은 이 경기에서 스페인의 미첼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했죠..
한편 황보관의 동점골인 중거리 슛! 정말로 빨랐습니다.. 스폐인 골키퍼 주비자레타도 속수 무책이었죠..
아무튼 황보관의 대포알 슛으로 한국은 영패를 모면했습니다.
◆ KOREA : URUGUAY 0:1 이탈리아 월드컵 1 라운드 (1990.06.22)
우루과이는 경기 시작과 함께 맹공을 퍼부어 첫 5 분 동안 한국은 정신 없이 수세에 몰렸습니다.
경기 시작과 함께 루벤 소사의 현란한 개인기에 한국 수비진이 농락당했습니다. 경기 시작 1분도 채 안되어 공이 한국 골대를 맞추는 등 한국은 정신없이 당했죠..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맞대응해 경기가 균형을 이루었으나 윤덕여가 퇴장 당하면서 한국이 다시 수세로 몰렸습니다.
한국은 숫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후반 45분 경에 우루과이의 폰세카에게 헤딩 골을 허용했는데 이는 off side 였습니다.
비록 주부심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한국은 한 골을 헌납하고 말았습니다.
(4) 평가
한국은 너무 늦게 현지에 도착하는 바람에 시차 적응이 완전치 않은 상황에서 벨기에 전을 맞았고 마지막 경기에 와서야 제대로 된 시합을 하였습니다.
현지 적응에서부터 단추가 잘 못 궤어진 이탈리아 대회는 두고두고 한국에 아쉬운 대회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 1994 USA WORLD CUP >
(1) 월드컵 지역 예선
월드컵 지역 예선이 1993년 5월에 시작되었습니다. 대표팀 지휘권은 공간 축구를 선호하는 김호 감독이 쥐고 있었습니다.
바레인, 레바논, 싱가포르, 홍콩과 같은 조에 편성된 한국의 1라운드는 베이루트 (레바논) 와 잠실에서 열렸습니다.
당시 한국의 멤버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정운 , 구상범 , 김주성 , 김판근 , 박정배 , 서정원 , 신홍기 , 안익수 이영진 , 조진호 , 최문식 , 최영일 , 최인영 , 하석주 , 황선홍 , 홍명보
한국은 무난히 1라운드를 통과한 후 월드컵 최종 예선전을 맞게 됩니다. 방식은 4년 전과 같이 제 3국에 6개국이 모여 단판 승부를 벌이는 것..
차이가 있었다면 장소가 동남아 지역에서 중동으로 바뀌었다는 것! 4년 전 싱가포르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던 중동 국가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최종 예선이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게 되었던 것이죠
출전국은 중동의 사우디, 이란, 이라크, 극동의 한국, 북한, 일본.. 최종 예선에 즈음하여 월드컵에 한 번도 출전하지 못한 사우디와 일본이 미국 행 동반 티켓을 거머쥘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이는 아시아 대표로 한국이 연달아 월드컵에 출전하는 것에 대한 질시와 시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우디와 일본의 전력이 아시아 정상권 이었던 점도 크게 작용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에게는 도하의 기적 , 일본에게는 도하의 비극 이라는 최종 예선전 (1993.10.16~28) 을 아주 상세히 스케치해 보기로 하죠..
비록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한국에 극적이었던 대회는 없었으니까요..
한국은 첫 경기를 중동의 강호 이란과 가졌는데.. 첫 경기에 약한 징크스를 깨고 이란을 3:0으로 쉽게 이겨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죠
두 번째 경기는 이라크와의 한 판인데 2:2 로 비겼습니다. 경기 막판에 정종선이 헛발질만 안 했어도 2:1로 이길 수 있었던 경기 였죠
한국의 세 번째 경기는 사우디와의 일전이었습니다. 신홍기가 사각에서 그냥 날려 본 볼이 사우디 골키퍼 알다에가 알을 까면서 한국은 1:0으로 앞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후반 45분 경 상대방의 코너킥이 사우디 누군가의 헤딩으로 1:1 을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 보던 사우디 관중석 쪽에서 난리가 난 것은 당연지사.. 아무튼 이라크전과 마찬가지로 다 잡은 경기를 놓친 셈이죠..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지만 다 잡은 이라크, 사우디와의 일전을 무승부로 끝냄에 따라 선수단 사기가 곤두박질하게 되었고 이런 상환에서 일본과의 4번째 경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브라질 귀화 선수 라모스가 play maker 역할을 하고 있어 한국은 라모스만 제대로 잘 묶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미우라를 제대로 막지 못해 한 골을 허용, 0:1로 패배하였습니다.
한 골차 이상으로도 질 수 있었을 만큼 일본은 한국보다 우세한 경기를 했습니다.
마지막 경기를 남겨 놓은 상황에서 북한, 이라크를 제외한 4개국에 월드컵 티켓이 아직도 열려 있을 정도로 막판까지 서로 물고 물리는 공방전이 벌어졌던 것 입니다.
사우디, 일본, 한국, 이란 4개국 중 사우디와 일본의 본선 진출이 가장 유력해 보였습니다. 이곳에서 나돌던 사우디와 일본의 동반 진출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듯 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북한과의 마지막 경기를 남겨 놓은 상황에서 경우의 수를 따져 보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월드컵 본선 자력 진출은 불가능했습니다 정말로 비관적이었죠!
한국이 본선에 진출하기 위한 경우의 수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일본이 북한에 3골차로 이겼으므로 한국도 북한에 3골차 이상으로 승리 - 사우디가 이란에 이기지 않거나 혹은 일본이 이라크에 이기지 않음
자력 조건 충족 자체도 어려웠습니다. 비록 북한의 전력이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남북 대결은 실력 이외의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 그리고 한국과 북한의 경기는 언제나 무승부 아니면 1골차 승부라는 점
설령 자력 조건을 힘들게 충족시킨다고 하더라도 사우디가 이란에 이기지 않거나 혹은 일본이 이라크에 이기지 않아야 한국이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 이었습니다.
최근 국가대표팀 간 전적상 이란이 사우디에 우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다소 고무적이긴 했지만 월드컵 티켓을 놓친 이라크가 과연 일본과의 마지막 경기에 최선을 다해 지지 않는 경기를 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 관건이었습니다.
담합을 피하기 위해 3 경기가 동시에 kick off 되었습니다. 한국:북한 경기 이상으로 이란:사우디, 이라크:일본 전에 관심을 가졌죠
한국은 북한을 맞이하여 고정운의 골로 앞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이 북한을 제 아무리 큰 점수 차로 이겨도 사우디가 이란을 이기든지 아니면 일본이 이라크를 이기면 한국의 본선 진출은 물거품이었습니다.
TV 화면 우측 상단에 간간히 뜨는 이란:사우디, 이라크:일본 스코어 창에 국민들 모두 촉각을 곤두세웠죠
사우디가 이란에 앞서 나가고 일본이 이라크에 앞서 나간다는 스코어 창이 뜨기 시작했습니다.
아! 한국의 월드컵 3회 연속 진출은 물 건너 갔구나!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이어 뜬 스코어 창은 이란과 이라크가 모두 한 골을 만회하여 동점 상황
안도의 한 숨을 내 쉬는 순간 사우디와 일본이 또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는 스코어 창이 떴습니다.
일본에게 유리한 편파 판정에 기인한 이라크의 실점이었습니다. 이라크 선수가 쓰러져 있는데도 주심은 경기를 강행했고 이런 숫적 열세 속에서 이라크가 실점하게 된 것이죠..
같은 시간 일본의 해설진들은 “미국의 Golden Bridge (=금문교) 가 눈 앞에 보인다” 며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경기 막판에 즈음하여 한국은 자력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고정운, 하석주, 황선홍이 골을 넣어 북한을 3:0 으로 대파한 것이죠
문제는 제3국간의 경기.. 사우디가 이란에 2골 차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는 스코어 창이 뜨면서 국민들의 관심은 자연히 이라크: 일본 전으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란이 마지막에 한 골을 만회하여 사우디가 4:3 으로 이겼다는 자막이 흘러 나왔습니다. 뒤이어 한국도 북한을 3:0으로 이기고 경기 종료 반면 일본과 이라크의 스코어는 여전히 2:1로 경기 종료 임박!
북한에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김호 감독을 비롯한 한국 선수진들은 망연자실했고 한국 선수들이 고개를 숙인 채 침통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뜨려는 순간 스탠드에서 갑작스런 환호가 흘러 나왔습니다.
이라크가 다시 한 골을 넣어 2:2로 따라 붙었다는 것! 이라크의 자파르 올란이 후반 45분 18초에 헤딩으로 2:2 극적 동점 연출!!
한국 선수진들은 기적 같은 이런 상황에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이라크: 일본 전이 2:2로 종료 펄쩍 펄쩍 뛰며 좋아하는 고정운의 모습이 선 합니다.
그러면 이라크: 일본전이 열린 장소의 분위기를 보기로 하죠
주장 하시라타니를 비롯하여 미우라, 기타자와, 라모스 모두 그라운드에 철썩 주저 앉았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라고 반문하면서..
반 키프트 일본 감독이 그라운드로 가 눈물을 흘리며 침통해 하는 선수들을 일일이 일으켜 세워야 했습니다.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한국과 일본의 분위기도 극과 극이었습니다. 일본 열도가 초상집 분위기로 바뀐 반면 한국은 환호의 도가니였습니다.
이라크의 막판 투혼 덕택에 한국은 어부지리로 미국 행 월드컵 티켓을 거머쥐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Doha 기적 입니다. 일본에게는 생각도 하기 싫은 Doha의 비극
이제 월드컵 전망을 보기로 합시다.
(2) 조 편성 및 1994 USA월드컵 본선 전망
국민들은 극적인 월드컵 진출에는 열광했지만 일본에 밀리는 경기를 보여준 대표팀에게는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김호 감독 퇴진론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마땅한 대안도 없고 시간도 별로 없어 김호 감독 체제로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게 됩니다.
한국의 본선 상대는 독일, 스페인, 볼리비아로 정해졌습니다. 이번에도 한국에게 불리한 조 편성! 독일에는 한 수 접고 들어가더라도 스페인 역시 무시 못할 강팀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브라질을 이긴 바 있는 볼리비아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
이번에도 16강 진출은 힘들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희망 사항이라면 첫 경기 스페인과 비기고 그 다음 볼리비아를 잡은 후 독일에게는 근소한 차이로 져 조 2~3 위로 16강에 진출한다는 것!
그러나 객관적인 전력은 볼리비아와 비기고 유럽 2팀에는 져 1무 2패
(3) 월드컵 본선
◆ KOREA : SPAIN 2:2 미국 월드컵 1 라운드 (1994.06.18)
정확히 4년 전인 1990년 6월 18일에 스페인과 붙어 1:3으로 진 한국은 그 빚을 Dallas에서 갚기로 다짐했습니다.
그 어떤 팀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 스폐인이 전반 초부터 한국의 강력한 공세에 놀라 주춤하더니 급기야 스페인 수비수 Nadal이 고정운을 백 태클함으로써 퇴장 당해 한국의 승리까지 점쳐지던 상황이 도래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퇴장이 스페인 선수들을 똘똘 뭉치게 했을까? 한국은 연거푸 내리 2골을 허용하고 맙니다.
그리고 스페인의 완승이 무르익어가는 후반 종료.. 후반 5분을 남기고 홍명보, 서정원이 연속으로 골을 넣어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홍명보의 경기 운영이 좋았으며 서정원이 로스 타임 때 넣은 동점 골도 인상적이었습니다.
◆ KOREA : BOLIVIA 0:0 미국 월드컵 1 라운드 (1994.06.24)
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한국이 무승부를 이루자 한국팀의 사기는 올라가게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볼리비아 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꼭 이겨야 하는 상대라고 간주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한국은 긴장된 상황에서 경직적인 경기를 펼쳤습니다. 그것은 볼리비아도 마찬가지..
월드컵 역사상 연장전 없는 경기 중에서는 가장 긴 경기로 기록되고 있는데.. 전후반 합쳐 100 분 이상을 뛰었습니다. 하지만 골은 나오지 않았죠
후반 40분 이후에 하석주가 골키퍼와 1:1 천금 같은 상황을 놓친 것! 1960년대 말 임국찬의 페널트 킥 실축 사건 이상으로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만큼 아쉬운 상황이었습니다.
◆ KOREA : GERMANY 2:3 미국 월드컵 1 라운드 (1994.06.28)
비록 지기는 했지만 독일을 두들겨 준 한판! 축구 경기가 전반과 후반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를 보여 준 한판!
한국은 독일 이라는 단순한 이름 앞에 너무 위축되어 경기 초반부터 한국의 보통 실력마저도 보여주지 못했고 이는 독일에게 실점의 빌미를 제공해 한국이 3골을 연거푸 허용!
비록 상대방이긴 하지만 클린스만의 첫 골은 예술에 가까울 정도의 멋진 골! 그러나 한국이 허용한 세 번째 골은 최인영의 뼈 아픈 실수였습니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볼이었습니다.
후반전에는 약관 21세 이운재가 최인영을 대신해 골문을 지켰고 노장들로 구성된 독일이 체력이 고갈되면서 경기는 한국 쪽으로 기울게 되었습니다. 공은 한국 쪽으로 넘어 오지 못한 채 계속 독일 진영 쪽에서만 왔다 갔다 했죠...
이런 상황에서 황선홍, 홍명보가 골을 기록하여 2:3까지 따라 붙었으나 동점은 만들지 못했습니다.
최근 클린스만이 말했던 것처럼 경기가 5분만 더 지속되었더라면 무승부도 가능했던 경기였습니다.
최인영의 뼈 아픈 실수만 없었다면 2:2 동점도 가능했고 운이 따랐다면 3:2 대역전승도 가능했던 한국에게는 아주 아쉬웠던 한 판 이었습니다. 대어를 잡을 수 있었던 황금 같은 기회를 한국이 놓친 경기였습니다.
아무튼 이 경기를 통해 한국 팀의 체력은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4) 평가
비록 2무 1패로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역대 대회 중 가장 잘 싸웠던 대회였습니다.
한국은 아시아를 대표하여 “아시아 국가도 세계적 강호와 대등한 경기를 펼친다” 라는 강한 인상을 전 세계에 남겼으며 “체력 하면 한국” 이라는 것을 세계 널리 각인 시켰습니다.
낡고 녹슨 전차 군단 독일을 맞아 한국이 초반에 너무 위축된 경기를 펼쳤다는 점! 큰 경기 경험 부족에서 오는 결과였습니다.
< 1998 FRANCE WORLD CUP >
(1) 월드컵 지역 예선
구 소련이 와해되면서 중앙 아시아 신생 국가들이 아시아 권에 편입되어 치른 첫 월드컵 지역 예선이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이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한데서 알 수 있듯이 아시아 축구가 기존의 극동 - 중동 양각 구도에서 극동 – 중앙아 - 중동 3각 구도로 재편된 상황에서 맞은 첫 월드컵 지역 예선이었습니다
차범근이 대표팀 지휘권을 잡은 지 얼마 안된 1997년 3월에 프랑스 월드컵 지역 예선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은 1라운드에서 태국과 홍콩을 물리치고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 진출하게 됩니다.
최종 예선은 1990, 1994 방식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home & away 방식을 취한 거죠
A조는 KOREA , JAPAN , UZBEKISTAN , KAZAKSTAN , UAE
B조는 SAUDI , IRAN , KUWAIT , QATAR , CHINA
각 조 1위 팀은 월드컵 본선에 직행하고 조 2위 팀간 붙어 승자 역시 본선에 직행하며 여기서 진 팀은 오세아니아 승자와 붙어 본선 진출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한국은 쉽지 만은 아닐 것이라는 카자크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홈으로 불러 들여 이들을 차례로 격파하고 본선 티켓의 분수령이 될 일본 원정 경기를 갖게 됩니다.
첫 해외 원정 경기였는데 한국이 승리하면 프랑스 월드컵 티켓의 70%는 손에 쥐게 되는 상황이었지요..
비록 타이틀은 월드컵 본선이었지만 동아시아의 진정한 챔피언이 누구인지 자웅을 겨루어 보자는 성격도 강했던 시합이었습니다.
93년 카타르 도하에서 한국의 패배 이후 이때까지 양국의 전적은 1승 2무 1패
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8강에서 비쇼베츠 사단의 3:2 역전승 95년 홍콩 Dynasty Cup 1라운드에서 1:1 95년 홍콩 Dynasty Cup 결승전에서 2:2 무승부 이후 승부차기 패배 97 년 동경 평가전에서 1:1 무승부
참고로 95년 홍콩 Dynasty Cup 에 한국은 올림픽 대표를 출전 시켰고 일본은 성인 국가 대표팀이었음
일명 도쿄대첩이라고 불리는 이 경기를 잠깐 언급하도록 하죠.. 일본 관중들의 열광적인 성원에 힘 입어 선취 골은 일본이 얻었습니다.
김병지가 나온 틈을 일본 선수가 놓치지 않고 침착하게 로빙 슛을 한 것이죠
언론 플레이를 잘 하는 일본의 가모 슈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며 승리를 자신하는 듯 했습니다.
한국의 후반 공세로 일본이 밀리기 시작하였으며 최용수의 센터링을 서정원이 헤딩으로 동점 골을 뽑아 냅니다. 이 때 가모 슈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죠..
경기가 1:1로 끝나는가 싶었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민성이 중거리 슛을 작렬, 한국은 2:1로 역전승하게 됩니다.
자신만만 해하던 일본의 가모 슈 감독의 얼굴은 이내 일그러졌고 이 경기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가모 슈는 중도 퇴진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원정 경기 승리 이후 UAE를 홈으로 불러들여 3:0으로 격파.. 한국은 월드컵 진출 8부 능선을 통과하게 됩니다.
중앙아시아 원정 경기를 1승 1무로 마감하고 월드컵 진출을 사실상 확정 시킨 상황에서 일본을 홈으로 불러 들였습니다.
일본은 오카다 감독 체제로 바뀐 뒤 였습니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 진출을 사실상 확정 시켜 선수들이 안이한 자세를 가져서 그랬을까? 아니면 2002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일본과 함께 월드컵에 나가야 한다는 사전 밀약이라도 있어서 그랬을까?
한국 선수들은 무기력한 경기 끝에 홈에서 0:2로 지는 수모를 당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여 주었던 집중력과 기동력은 간데 없고..
아무튼 일본은 한국의 도움(?)으로 기사 회생하여 조2위로 본선 진출을 노릴 수 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UAE 는 이것이 담합 행위라고 맹비난했죠..
한국의 마지막 시합은 UAE 원정 게임.. 월드컵 탈락으로 전의를 상실한 UAE 를 몰아 부쳐 한국은 3:1로 경기를 승리하고 월드컵 지역 예선전을 마감합니다.
이때 뛰었던 멤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도근 , 김도훈 , 김병지 , 김태영 , 노정윤 , 서정원 , 유상철 , 이민성 , 이상윤 , 이임생 , 장형석 , 최성용 , 최영일 , 최용수 , 하석주 , 홍명보
그리고 고종수와 이동국이 신인으로 가세했습니다.
(2) 조 편성 및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 전망
한국의 본선 상대가 벨기에, 네덜란드 그리고 멕시코로 정해졌습니다. 이번엔 전에 비해 한국에게 좀 덜 불리한 조 편성!
네덜란드에게는 한 수 접고 들어 가더라도 벨기에나 멕시코는 해 볼 만한 상대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특히 멕시코에는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상으로 출전이 불가능해진 황선홍의 공백을 어떻게 보완하느냐 하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3) 월드컵 본선
◆ KOREA : MEXICO 1:3 프랑스 월드컵 1 라운드 (1998.06.13)
월드컵 출전사상 처음으로 선취 골 획득!
한국은 전반 하석주의 프리킥으로 앞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대 얼마 안 있어 선취 골로 흥분한 하석주가 무모한 back tackle을 함으로서 퇴장 당하고 한국은 대부분의 시간을 10 명으로 뛰어야만 했습니다.
한국은 이후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내리 세 골을 허용해 1:3으로 역전패 당하고 말았죠
하석주가 퇴장 당하지 않았으면 경기 내용이 다르게 전개되었을 정말로 아쉬움이 크게 남는 한 판이었습니다.
◆ KOREA : NETHERLANDS 0:5 프랑스 월드컵 1 라운드 (1998.06.20)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역전패 당한 한국의 두 번째 상대는 네덜란드! 역전패로 허탈해서 그랬을까? 한국은 시종일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끝에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합니다.
한국 수비진들은 네덜란드의 빠른 속공에 속수무책으로 뚫리며 어찌 할 바를 몰라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네덜란드의 히딩크 감독이 한국 팀을 철저히 분석했다고 하더군요!
이 경기로 차범근 감독이 월드컵 기간 중에 감독 직에서 해임되었으며 이로 인해 차범근과 정몽준의 관계가 나빠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 경기가 인연이 되어 당시 네덜란드 감독이었던 Guus Hiddink 가 지금의 한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습니다.
◆ KOREA : BELGIUM 1:1 프랑스 월드컵 1 라운드 (1998.06.25)
감독이 부재중인 상황에서 한국은 마지막 상대인 벨기에와 파리에서 마지막 일전을 가졌습니다. 한국을 이기기만 하면 벨기에는 16강에 진출하기 때문에 벨기에는 적극적으로 나왔고 그 결과 전반을 1:0으로 앞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후반전부터 한국의 저력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감독이 부재중인 상황에서 “전패하고 돌아갈 수는 없다” 라는 일념 때문인가?
한국은 막판 투혼을 발휘하며 유상철이 슬라이딩 슛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하마터면 역전승을 일구어 낼 정도로 한국은 마지막에 열심히 뛰었습니다. 머리에 붕대를 싸매고 경기에 임한 이임생의 모습이 선 합니다.
경기는 아쉽게도 1:1로 종료 홈팀이나 다름 없는 벨기에는 16 강에 탈락 함으로서 선수 대부분이 그라운드에 앉아 흐느껴 울었습니다.
Parc des Princes 경기장 관중석에 나부끼던 붉은 악마의 초대형 태극기와 유혈이 낭자한 이임생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16강 탈락 후 흐느껴 우는 벨기에 선수들의 서글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 합니다.
(4) 평가
한국은 첫 단추인 멕시코 전을 잘못 궤찬 이유로 네덜란드 전에서는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고 오기가 발동한 마지막 경기에서는 투혼을 발휘함으로써 1무 2패로 대회를 마감하였습니다.
문제는 역시 첫 경기! 한국과 같이 전력이 강하지 못하면서 Big match 중심의 국제 경험이 적은 팀은 domino effect의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여실히 증명된 우리에게는 불운한 대회였습니다.
< 1986~98 WORLD CUP 결산 >
1954 스위스 월드컵은 논외로 하고 1986년부터 1998년까지의 대회를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1986 World Cup : 1무 2패 1990 World Cup : 3패 1994 World Cup : 2무 1패 1998 World Cup : 1무 2패
4무 8패! 한국 축구 무엇이 문제이길래 아직까지 1승도 못 챙겼나?
우리와 전력이 비슷한 사우디도 94 미국 월드컵에 처녀 출전하여 우리가 두 번 싸워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벨기에에 승리하고 모로코마저 격파하여 2승1패로 16강에 진출한 적이 있고
비록 상대방이 축구 주변국인 미국이었지만 이란은 1998대회에서 1승을 올렸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언제나 죽음의 조의 희생양 이었습니까?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불가리아 (86) , 우루과이 (90), 볼리비아 (94), 멕시코(98) 모두 해 볼 만한 상대였고 이길 수 있는 상대였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대표팀의 문제점을 열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비중 있는 국제 경기 경험 부족
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 후 월드컵 때까지의 6~7 개월 기간 동안 한국이 치른 평가전 상대는 대부분 유럽과 남미의 프로 팀이거나 2진급 혹은 주전이 상당수 빠진 유럽 국가 대표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기량 미달의 팀들을 불러 들여 시차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상대를 이겨 한국 대표팀이 무엇을 얻어낼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팀들을 상대하다가 정작 본선에서 만난 팀들의 강력한 pressing에 한국팀은 위축되기 마련이고 이런 틈을 상대방은 그냥 놓치지 않기 마련이죠..
해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록 창피할 정도로 대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강호들과 대전해 한국 팀의 현 주소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또 이를 통해 문제점들을 하나 하나씩 개선하여 그 격차를 줄여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강호들과의 많은 연습으로 그 격차가 줄어지게 되면 선수들은 차츰 자신감을 갖게 됨과 동시에 게임을 읽는 안목도 높아지게 됩니다.
◆ Big Leager의 부재
잉글랜드나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1부 리그에서 실전 경험이 많은 선수가 없다는 점도 대표팀이 갖는 취약점입니다.
아프리카 팀이 근자에 강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프리카 축구가 최근 강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탁월한 신체 조건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그것보다는 유럽의 big league에서 몸 담으면서 선진 축구를 피부로 몸소 체득했기에 그것이 가능해진 것 입니다.
우리도 재능 있는 유망주를 유럽의 big league 로 진출 시켜야 합니다. 돈만 많이 주면서 몸 싸움 별로 없고 실력이 떨어지는 이른바 세계 유명 선수들의 은퇴 코스인 J League 로의 진출은 가급적 피해야 합니다.
◆ 전술을 포함한 지도력 문제
Coaching staff 의 자질론과 관련된 내용 입니다. 선진 축구 조류에 어두웠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때 352 전술에 의한 압박 축구가 유행했었는데 한국은 히딩크 부임 이전까지 근 10년 이상 계속 이 시스템을 고수해 왔고 지역 방어가 오늘날의 주류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대인 방어를 즐겨 사용해 왔습니다.
한국은 체격이나 기술에서는 강호를 대적할 수 없다고 인정하고 체력을 통한 기동력 축구를 구사하기 위해 조직력을 극대화하는데 역점을 두어 왔지만 이것 역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선진 기법이 뒷받침되지 못해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 2002 KOREA & JAPAN WORLD CUP >
(1) Guus Hiddink 감독 영입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차범근 감독이 중도 퇴진하고 얼마 안 있어 허정무 지도체제가 출범합니다.
브라질을 홈으로 불러 들여 승리를 거두고 (1999.03.28) 이란에서 있은 LG 컵 (2000.06) 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지만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있은 아시안 컵 (2000.10) 에서 부진한 경기력을 보였습니다.
비록 3위는 하였으나 8강전 때 이란에 시종일관 밀리는 경기를 보이다가 겨우 4강에 올랐고 반면 일본은 매끄러운 경기를 보여주며 아시안 컵을 거머 쥐었습니다.
특히 아시아 정상권의 하나인 이라크, 사우디를 대파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은 그 해답을 프랑스 Trussier 감독에서 찾았고 우리도 걸출한 외국인 지도자를 영입하여 경기력을 향상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죠..
2002 월드컵 공동 개최국 일본이 앞서 나가는데 대한 한국의 위기 의식이 외국인 지도자 영입으로 가시화되었고 한국은 98 월드컵 때 한국에게 치욕적인 스코어를 안겨준 네덜란드의 Guus Hiddink 를 감독으로 영입하게 됩니다.
(2) 월드컵 본선 준비
월드컵 유치국인 까닭에 한국은 지역 예선 없이 바로 평가전 체제로 들어 갑니다.
홍콩 CARLSBURG 컵 (2001.01) , 듀바이 UAE 컵 (2001.02) , 이집트 LG 컵 (2001.04) , 홈에서 열린 CONFEDERATION 컵 (2001.06)
그리고 월드컵 경기장 개장 기념으로 CAMEROON (5월) , NIGERIA (9월) , SENEGAL (11월) , CROATIA (11월) , USA (12월) 등과 경기를 가지면서 1년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1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대표팀은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특히 2002년 들어서 가진 미국 Gold Cup 대회 때의 부진은 국민들에게 큰 실망만 남겼습니다.
비록 홈팀인 미국에 10명으로 싸워 후반 종료 즈음에 한 골을 내줘 1:2로 진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축구 변방 쿠바와 0:0 , 대표 2진인 멕시코와는 득점 없이 비긴 점 그리고 코스타리카에 1:3으로 무너진 점!
언론에서는 히딩크의 자질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3월에 있은 유럽 원정서부터 대표팀은 차츰 안정된 전력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대표팀은 핀란드, 터어키 전 서부터 인상적인 경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뒤이어 코스타리카를 대구 홈으로 불러 들여 2:0으로 격파, Gold Cup 에서의 1:3 수모를 갚았습니다. 이 경기로 코스타리카와 월드컵 조별 예선을 치루는 중국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을 겁니다.
그 다음 인천 문학 경기장 개장 기념으로 중국 초청 평가전! 한국은 4년 전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경기를 했고 그 결과 경기 결과는 0:0
스코틀랜드와의 부산 평가전은 히딩크 사단 출범 이후 유럽 팀을 상대로 한국이 어떻게 경기를 풀어 나가야 하는가?를 보여준 한 판이었으며 잉글랜드와의 서귀포 평가전과 프랑스와의 수원 평가전은 한국이 이번 월드컵에서 돌풍의 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린 명승부였습니다.
(3) 조 편성 및 2002 KOREA & JAPAN 월드컵 본선 전망
역대 월드컵 본선 조 추첨이 한국에게 늘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할 상대방과 같은 조에 편성되는 불운을 겪게 됩니다.
비록 한국이 주최국 자격으로 시드 배정을 받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아르헨티나, 브라질을 피하기는 했으나 세계 4강권인 포르투갈과 한 조에 편성됨으로써 시드 배정이란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된 것 입니다.
1991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10 년간 손발을 마쳐 온 황금의 세대 포르투갈은 유럽의 전통 강호 네덜란드를 격침시키고 올라 온 강팀 이었기에 우리에겐 벅찬 상대로 여겨졌습니다.
스페인에 밀려 아깝게 시드 배정을 받지 못한 잉글랜드와 최근 들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포르투갈은 피하고 싶었는데 포르투갈이 걸려 든 것이죠..
그리고 나머지 두 나라는 폴란드와 미국
당시 12월 조 편성 당시의 분위기는 포르투갈은 힘들더라도 폴란드와는 충분히 해 볼 수 있으며 미국은 쉽게 제압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분위기는 2승 1패 혹은 1승 1무 1패 아무튼 미국은 무조건 제압한다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해외 언론이나 도박사들은 2무 1패 혹은 1무 2패로 내다 봤습니다.
한국이 비록 주최국 이긴 하지만 홈에서 최근 들어 아주 인상적인 경기를 보이지 못했고 미국은 몰라도 유럽의 전통 강호 폴란드도 한국에게는 벅차다는 시각이 압도했습니다.
월드컵이 임박하면서 한국은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그리고 프랑스를 상대로 빼어난 기량을 보여 주었고 그 결과 외국 언론이나 도박사들도 한국에 승운이 더 많은 전망을 내 놓아 2승 1패나 1승 1무 1패를 점쳐 16강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내 놓게 되었습니다.
저의 예상을 적어 보자면.. 폴란드와 미국을 차례로 격파하고 포르투갈과는 비기거나 아쉽게 패할 것 같은데..
만약 포르투갈이 첫 2 경기를 압승해 조기에 16강 진출을 확정한 상황에서 2진급을 한국전에 내보낼 경우 전승으로 16강 진출도 가능
제 예상이 너무 낙관적인가요?
저는 한국이 출전한 역대 월드컵 대회를 보면서 한국의 16강 진출을 기원했지만 16강 진출에 대해서는 사실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금년 들어서도 대표팀의 3월 유럽 원정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1승을 거둘 가능성은 있겠지만 월드컵 16강 진출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전을 보면서 그리고 잉글랜드, 프랑스 전을 보면서 비원의 1승 달성은 물론 16강 진출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한국이 16강에 진출하고 그 이상의 놀랄만한 성적을 거둔다면 그 이유는 아마 다음에서 찾아야 할 것 입니다.
1) Hiddink 명장의 탁월한 지도력
역대 월드컵 대표팀과 비교에 한국의 현 대표 멤버들은 name value 에 있어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말은 축구 팬들에게 낯 익은 엘리트 코스 출신 선수들은 적고 대신 생소한 신인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기술력이 정점에 오른 노장 선수들 보다는 기량이 일취월장해 가는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선수단을 구성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개개인의 능력은 역대 월드컵 대표팀 멤버에게는 뒤지지만 개개인이 뭉쳤을 때는 역대 최강이라고 평가 받을 정도로 대표팀이 성장했다는 것은 지도자의 탁월한 지도력과 조련이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 입니다.
2) 강한 자신감
비록 작년에 프랑스와 체코를 상대로 0:5 대패를 당하긴 했지만 이것이 한국 축구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게 해 그 해법을 찾아 주도록 했으며 최근 세 경기에서 보여 준 바와 같이 주전이 대부분 포함된 강호와의 대결에서 선취 골을 잃고도 무너지기는커녕 동점 골을 만회하는 저력을 보임으로써 한국 대표팀은 강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신감은 잉글랜드, 프랑스 보다는 한 두수 아래인 폴란드, 미국과의 대전에서 위력을 발휘하게 할 것이며 잉글랜드와 비슷한 전력의 포르투갈 과도 접전이 가능하도록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후반 종료 휘슬이 울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력을 발휘한다면 좋은 결과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3) 강한 체력
역대 대표팀들도 체력 하나만큼만은 강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표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체력이 강합니다. 특히 Physical trainer 를 영입하면서 체계적이면서 강도 높은 Power program을 소화해 낸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입니다.
수중전이 전개될 확률이 높은데 이 경우 체력전을 구사하는 한국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해집니다.
4) Home ground의 잇점
폴란드 엥겔 감독이 최근 “홈 팬들의 성원이 가장 신경 쓰인다”고 말 했듯이 한국은 홈그라운드 라는 잇점이 있습니다.
홈팀이 유리한 이유는 ㅡ 홈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ㅡ 그 성원으로 인해 심판진이 부지불식간에 홈팀에게 유리하게 판정 ㅡ 홈 팀 선수들은 경기 중 남성 호르몬을 더 발산해 덜 지친다는 점 ㅡ 익숙한 기후 조건
이를 원정 팀에게 대입을 하면 ㅡ 부담스러운 적지의 열성 팬 ㅡ 불리한 심판 판정 ㅡ 경기 중 원정 팀 선수들은 홈팀 선수들보다 더 쉽게 지친다. ㅡ 생소한 기후
이 외에도.. ㅡ 익숙하지 않은 잔디 상태 ㅡ 오래 있다 보면 고국에 대한 향수로 심신이 평안하지 못하다는 점
이렇기 때문에 홈팀보다 실력이 앞선 팀을 맞아 대등한 경기 끝에 비길 수 있는 것이고 홈팀과 비슷한 전력의 팀을 격파할 수 있는 것 입니다.
한국의 16강 진출 열쇠를 쥐고 있는 국민들의 성원이 절대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시점입니다.
관중석을 붉게 물 들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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