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수많은 규칙을 만난다. 그리고 그 많은 규칙을 지키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렇게 많은 규칙들을 모두 다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버스나 지하철은 사람이 내린 다음에 타야하고, 학교교실에서는 뛰지 말아야 하며, 수업시간에는 아무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면 안된다. 하지만, 누구도 모든 규칙을 다 지키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규칙을 지키면 손해를 본다는 사람들도 있다. 버스는 앞문으로 타고 뒷문으로 내리는 것이 규칙인데, 이것을 잘 지키다 보면 자리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다리가 고생을 많이 한다. 정말로 규칙을 지키면 손해가 되는 것 같다. 손해가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규칙이 왜 생겼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규칙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한 것이다. 나에게 손해가 된다고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면 내가 속한 공동체에 피해가 될 수밖에 없다. 너도 나도 공동체에 피해를 준다면, 그 공동체는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 속의 나 또한 편안하게 살 수가 없다. 규칙을 지키면 당장은 손해가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은 편안한 삶을 보장하므로 결코 손해 보는 일은 없다. 이를 증명하는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혼이와 미나는 엄마가 말씀하신 가족 규칙을 두고 다툰다. 엄마가 아빠와 외출하시면서 "집 안에 아무도 들어오게 하면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슬기와 고운이가 찾아온 것이다. 혼이는 아는 사람을 밖에 세워두라는 뜻은 아니라며 친구들을 들어오게 하려고 한다. 그때 미나는 아는 사람이라도 들어오게 하면 안된다고 한다. 혼이는 친구들과 재밌게 놀지 못하는 것이 무척 속상할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과 놀다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그거야말로 가족에게 피해가 된다. 다행히도 친구들이 그냥 돌아가서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가족규칙을 지켜서 혼이에게는 피해가 생겼지만, 가족들은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라는 책에서 노엘 선생님은 규칙을 지키지 않아 편안한 삶을 버리게 된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려고 조커라는 규칙을 만들어 사용하지만, 학교에는 교칙이 있었다. 교칙을 지키고 싶지 않을 때 쓸 수 있는 조커가 결국은 문제를 만들고 만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를 샤를르를 제외한 반 전체 학생 26명이 한꺼번에 사용하는 바람에, 노엘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께 "더 이상 무법자들을 만들어내지 말라"는 말씀을 듣는다. 교칙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허용하는 바람에 노엘 선생님은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던 교단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특히 보는 사람이 없을 때 규칙을 어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아무도 없을 때 지켜야 하는 규칙은 거추장스런 허물과도 같다. 한밤중에 길을 가다가 만나는 횡단보도가 바로 그렇다. 오가는 차도 없는데 내가 교통신호를 지킨다고 누가 알아줄 리가 만무하다. 빨간신호등은 빨리 건너라는 뜻이라는 말이 귀전에서 울린다. 하지만 자연스레 횡단보도로 내려서고 있는 발을 보다 깜짝 놀라곤 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처럼 운전자도 같은 생각을 한다면 안전운전을 할 리가 없다. 횡단보도에서 사람을 발견하더라도 사고를 막지 못할 것이다. 한 순간의 이익을 얻으려다 교통사고를 당한다면, 그동안의 편안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규칙은 눈앞의 이익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이익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 그런 규칙을 만들었는지 납득이 되지 않을 경우라도, 우선은 지키는 것이 옳다. 규칙은 얼마나 좋은 규칙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잘 지키는가가 더 중요하다. 규칙을 잘 지키면 지킬수록 그 규칙은 우리에게 좋은 규칙이 될 것이고, 삶의 가치를 높여주는 소중한 수단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