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신을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16회 이후 최수종이 토번의 단사 즉 붉은 모래를 구하러 가는 과정에서 토번의 태수라는 이야기가 빈번히 나옵니다.
저는 고고학은 잘 몰라서 토번에서 단사(주사,진사)가 얼마나 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이처럼 토번(티베트)을 중국 당(唐) 왕조의 한 부분으로서 취급하는 데는 그저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씨 당 왕조 당시의 토번은 엄연하게 당당한 독립국(사실 '제국'이라는 말이 맞습니다)이었고 당과는 실크로드를 놓고 100년 이상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던 나라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원전검색을 해본 결과 토번태수(吐藩太守)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하기는 중국 중심의 주자학이 만연했던 조선 중기 후반과 후기 조차 토번 '태수'라는 표현은 쓴 적이 없습니다.
불멸의 이순신이나 장희빈을 시청하셨던 혹은 시청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기득권 층인 서인, 특히 노론의 주요 인물이었던 서포 김만중 조차 그의 저서인(그것도 소설인)『구운몽』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지요.
“저는 토번국 찬보(贊普)의 명으로 상서의 머리를 베러 왔습니다.”
찬보는 토번의 국가 원수 명칭입니다. 고구려에는 태왕이 있고 북 아시아에는 선우와 가한이 있으며 중국에는 황제가 있다면 토번에는 찬보지요.
그런 토번의 찬보가 어찌 남의 나라 지방관인 태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인지?
중국 역사서에서도 그것도 중국 황제들의 기록에서조차(특히 강성했던 당 태종 및 당 고종의 시대 조차) 한결 같이 '토번 찬보'입니다. 태수 따위가 아니지요.
『구당서』권 삼「본기 제 삼/태종 하/정관 이십 이년」, p. 61.
"토번 찬보 격파 중천축국"
『구당서』권 사「본기 제 사/고종 이 치 상/영휘 원년」, p. 68.
"토번 찬보 사"
『구당서』권 오「본기 제 오/고종 하/의봉 사년 조로원년」, p. 104.
"토번 찬보 졸"
『구당서』권 오「본기 제 오/고종 하/의봉 사년 조로원년」, p. 105.
"회 찬보지장."
그리고 당이 시대 내내 번성하고 강한 나라라는 일반적 인식에 대해서도 짚어볼 여지가 있습니다.
당이 중국 역사상 아주 국제적인 왕조였던 것은 틀림이 없으나 결코 최강이었던 것도 영토가 가장 넓었던 것도 아닙니다.
당이 가장 강하고 넓었던 것은 750년대 전후였을 것입니다.
그것도 적지 않은 부분에서는 고구려 유민의 자손인 고선지에 힘입어서 말이지요.
하지만 751년 탈라스 강(지금의 카자흐스탄에 있다 합니다.) 전투에서 고선지가 아바스 왕조를 중심으로 한 아랍 및 투르크 연합군에 지면서 당은 실크로드에 대한 지배권을 잃었고 이후 급속히 몰락해 갔습니다.
뒤 이어 발생한 안록산의 군사 봉기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기는 커녕 당시 몽골 초원의 지배자로 떠오르던 위구르 오르콘 제국의 도움으로 겨우 극복하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것도 수도인 장안 전체를 위구르 오르콘 제국에게 상납하다시피 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겨우 안록산 - 사사명의 연나라 정권을 멸망시킬 수 있었지요.
장보고가 활약하던 8세기 말 9세기 초의 당은 북으로 위구르 제국으로부터(물론 위구르 제국은 당으로부터 많은 물자를 상납받고 호의적인 중립을 지키기는 했습니다만) 동으로는 '해신'에서 자미부인이 '번진 정권'이라고 깎아 내리는 고구려 유민 출신 왕국 제나라 왕 이사도의 위협에 전전긍긍하던 나라였습니다.
당의 입장에서는 하등 쓸모 없을 몽골초원의 조랑말을 1년에 수천필씩 그것도 한 필에 비단 40필이라는 시세의 40배 이상의 비싼 값에 사야했던 지경이었지요. (참고로 중국인들이 좋아했던 말은 한 무제 때도 그렇지만 당의 시성(시의 성인)이라 불린 두 보의 시에 등장하는 고선지 장군의 청총과 같은 서역의 페르가나 말입니다.)
더구나 '해신'에서 그토록 깎아내리는 서남의 티베트에게는 감숙 회랑 일테면 감숙 고속도로와 천산의 남쪽 및 북쪽 길까지 장악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굳이 "토번 태수"라고 하는 것은 무슨 저의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단순한 역사적 무지의 소치인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동북공정으로 소란스러운 지금 토번 역사 왜곡은 남의 나라 일이 결코 아닌 줄 압니다.
지금 중국은 자신들이 1950년에 무단 정복한 티베트를 옛부터 중국의 일부였던 것처럼 주장하기 위해 이른바 서남공정이란 것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굳히기'하려는 동북공정과 하나 다를 바가 없지요.
전형적인 중국의 역사왜곡 작업입니다.
그런데 왜 해신의 대본을 쓰시는 분은 여기에 '맞장구'를 치시는 것인지….
해신이 이러니 '태왕사신기'인들 왜곡이 없으리라 누가 감히 장담하겠습니까?
회원 적곡 마로가 썼습니다.
p.s. 참고로 해신 게시판에서 이영조(egyosu), 오정윤(aguta), 한영주(kuanggaeto), 정태중(asica) 같은 분들을 제외하면 드라마 작가분보다 그리 앞서는 시청자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p.p.s. 극본 : 정진옥, 황주하 / <상도>(정진옥), <대장금>(황주하)의 구성작가.
첫댓글 ......무슨 생각들을 하는 건지.......
대상을 우리나라로 바꾸어 보면 '신라태수'가 되겠군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