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는 '시간이 멈춘 풍경'이 많다. 붉은 벽돌의 건물, 옛 모습 오롯이 간직한 일본식 가옥, 노을 물드는 항구 등…. 부산하지 않은 이곳에는 세대를 초월한 풍경이 많다. 그중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식집 '빈해원'은 흑백사진 속에서나 봄직한 그 모습 그대를 간직하고 있다.
빈해원은 외관부터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굳이 식도락가가 아니더라도 옛날건축 관심이 많다면 카메라 셔터부터 누를 것이다. 입구에서부터 오랜 시간의 흐름을 느꼈는데, 일단 안으로 한발 들여놓으면 깜짝 놀라게 된다. 중국영화의 세트장에 잘못 들어왔나 할 정도다. 카메라 렌즈로 다 담기 힘들 정도로 넓고 긴 실내의 모습은 1, 2층으로 이뤄져 가히 웅장하다. 짙은 밤갈색 나무의 천장과 식탁, 외벽, 문 등은 그 옛날 어머니 손잡고 왔던 중국집처럼 정겹다. 작은 소품 하나에도 옛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시간이 멈춘 곳'이다.
눈이 추억을 찾았으면 이젠 입이 맛을 찾을 차례. 가지 수 세기도 힘든 메뉴판에 애꿎은 시간만 흐른다. 중국집 대표 메뉴인 짬뽕은 맵지 않고 각종 해물과 야채 정도가 가지런히 들어가 있다. 매콤하지만 자극적이지 않아 좋다. 간자장은 윤기 나게 볶아진 양파, 양배추가 얹어 나오는데 색은 진하지 않은 편이다. 맛깔나게 달걀지단채가 얹어져 있어 식욕을 돋운다. 색감이 독특한 탕수육은 고기의 육질과 소스가 어우러져 환상의 맛을 자아낸다. 후식으로 나온 야쿠르트는 달콤한 소화제 같다.
빈해원이 군산역사와 함께한지도 59년. 작년,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식집'으로 기네스에 등재된 이곳은 화교 출신 중식집으로 더 유명하다. 더욱이 주인장 소란정(57)씨가 2대째 가업을 이어가 그 명성이 자자하다.
"인천에 살던 저희 가족은 6·25전쟁을 피해 군산으로 왔습니다. 1952년 무렵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 지금의 중식집이었다고 하더군요. 1954년도에 제가 태어났기에 들은 내용이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일손을 도와줄 만큼 제가 컸을 때 이곳은 오전 11시만 되도 손님으로 꽉 찼습니다. 학교 끝나고 오면 매일같이 일을 거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중식요리를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주방에서만 10년을 생활하고 나서야 아버지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그 옛날 빈해원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던 이곳은 총 3번에 걸쳐 가게 확장이 있었다. 처음엔 작은 평수로 시작해 지금의 규모로 늘렸고, 그 뒤엔 2층으로 지어졌다. 방이 20여개에 이르고, 당시 고용인원이 20명 이상이었다고 하니 지금의 호텔급 레스토랑에 견줄 만 하겠다. 이제는 예전 명성만큼은 아니지만 시간이 갈수록 빈해원을 잊지 못해 찾는 이들이 많아 그 명성이 이어지고 있다.
"맛도 맛이지만 요즘은 그 옛날 향수가 그리워 찾는 발걸음이 많아졌습니다. 명절 되면 손님이 많아지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이 분들을 위해서라도 제가 빈해원의 역사와 전통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맛있게 식사하시고, 추억도 느낄 수 있도록 지금 그대로의 모습과 맛을 지켜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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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찍힌 연도를 알 수 없는 빈해원 내부. 당시는 1층이었다 |
ⓒ 박영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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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내·외관뿐만 아니라 외상값 적힌 메모 한 장, 50년 전 쓴 자장면 그릇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놨다는 소란정씨. 그는 내년 '개업 60주년'을 맞아 빈해원의 역사와 전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할까 한다. 세월의 흐름이 하늘의 뜻이라지만, 잠시 빈해원의 공간으로 들어서 시간의 흐름을 잊고 쉬었다 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