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신 : KBS 1라디오
생방송 오늘 피디리포트
담당작가 임현주 (019-616-3428 / bodo111@hanmail.net)
방송시간 : 2006년 12월 12일 화요일
오후 3시 40분부터 50분까지 10분간 (녹음)
오후 6시 40분부터 50분까지 10분간 (방송)
다시듣기 : http://www.kbs.co.kr/radio/1radio/1radiosch06.html 에서 해당 프로그램을 선택하십시오.
방송내용 :
1. 앞서 언급했듯이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김 훈 중위 사건에 대한 조사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기분이 어떠세요?
-김훈중위가 사망한지 벌써 8년이 지났습니다.그동안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 저희 유족은 큰고통을 겪어왔습니다. 그동안 많은분들의 노력으로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된것을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반드시 진실은 밝혀질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그동안 어떻게 지내오셨어요? (김훈 중위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들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세요..)
- 99년 4월14일 국방부 특조단은 국회 진상규명위원회가 반대했지만, 일방적으로 자살로 언론에 발표했습니다. 당시 재수사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사법부 재판을 통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지난 7년간 법정투쟁을 해왔습니다.
3. 떠올리기 좀 힘드시더라도.. 당시 김 훈 중위 사건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겠어요.. (당시.. 소식을 들었을 때의 상황)
8년전, 김 훈 중위 는 98.2.24일 낮 12시20분 판문점공동경비구역 지하 벙커에서 자기스스로 머리에 권총을 쏜 자살 사건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사건현장에 수사팀도 도착하기전에 국방부에서는 자살로 발표하였고, 부검결과는 3주후에 나오는데 부검당일 군의관은 자살란에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권총을 쏜 사람의 손에는 화약잔재가 남아있게 되어있는데 김훈중위가 방아쇠를 당겼다는 오른손에는 일체 화약잔재가 없었습니다.지문도 없었습니다. 유서도 없었습니다. 수사팀은 김훈중위가 근무했던 부대의 60여명에게 사람들에에 물어보았으나 김훈중위는 절대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사건당일발표가 이상하여 그때부터 유족은 증거수집을 나섰습니다. 권총사건이기 때문에 미국의 저명한 법의학자 노여수박사에게 증거를 보내고 확인요청한결과 타살되었다는 소견서를 보내왔습니다.노여수박사의 소견서를 제시해도.그러나 군수사팀들은 자살로 정해놓고 짜마추기식 수사만을 되풀히 하고 있었습니다.유족이 어렵게 구한 증거를제시해도 무시하거나 변명만 늘어놓았습니다. . 그러다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되면서 많은분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4. 군의 수사 결과를 믿지 않으셨는데, 어떤 근거가 있었던 건가요?
(유엔군 사령부 - 사건 직후 자살, 군검찰과 국방부- 98년 4월 29일 같은 해 11월 27일 각각 자살 결론 , 98년 12월 특별합동조사단 역시 자살 결론)/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는 화약흔이 검출되지 않고 왼손에서 검출된 점(방어흔적), 사망 현장의 크레모아스위치 박스가 부서져 나가 있었고 김중위 손목시계 유리가 깨져있었던 점( 격투흔적, 김중위 사체의 두정부에 혈종이 있었던 점(외부자 가격 흔적) 등)
크게 3 지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살징후및 동기 가 조작되었기때문입니다. (캄캄한 새벽에 진지투입훈련중에 소대장이 밖에나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데 소대장무전병진술은 소대장과무전병이 바쁘게 진지를 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그리고 소대장 영어실력부족과 업무보고가 부담되어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 훈 중위는 군사영어반 200여명중에 17등으로 JSA내에서 제일 좋은성적을 낸 소대장이었고,소대장업무보고는 단순해서 크게어려운점이 없는데도 이것이 부담이 되어 자살했다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미국의 저명한 전문가인 재미법의학자 노여수박사에게 분석을 의뢰한 결과 법의학적으로 타살에 관련된 증거가 나타났다고 소견서에 제시했습니다 .그중 2가지만 이야기한다면 김 훈 중위는 자기스스로 권총을 발사하지 않았다 는 증거입니다.
권총을 발사한 사람의 손에는 화약잔재가 나타나게 되어있는데, 김훈중위는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에 오른손에 화약잔재가 있어야 하나 없었고, 왼손에 화약반응이 있는데 이것은 왼손으로 방어동작을 취했을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신체구조상 자살자의 머릿속 탄도는 뒤로 상방향으로 형성되는 데 김 훈 중위는 타살시 나타나는 수평탄도였습니다. 그 외 여러 가지 과학적으로 증명한 증거들을 갖고 있습니다.
셋째는 사건현장벙커에는 다툼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즉, 가장 중요한 크레모아 스위치 박스가 파손되어 떨어져 있었고, 김 훈 중위시계가 파손되어있었으며, 김 훈 중위 머리정상부분에는 맞은흔적으로 보이는 6*8센티 정도의 큰 타박상 흔적이 있었습니다.
5. 그렇다면 김 훈 중위의 사망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신 건가요?
당시 판문점 경비중대 2소대는 군기강이 문란했습니다. 구타가 많았고, 특히 군사분계선은 절대 월경할수없는 지역임에도 , 당시 선임하사를 비롯 상당수의 병사들이 적과 접촉했고, 선임하사는 적초소까지 갔다오기도 하는등 도저히 군에서 있을수없는 행동들을 서슴치않고 한 소대인데, 이런군기강문란이 소대장 사망사건과 관련이 있을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6. 현재까지 군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혹, 사과의 발언 비슷한 것이라도 있었는지
수사관계자나 고위간부 누구도한번이라도 사과한적도 없고, 오히려 군의 위상을 저하시킨다고 비난을 많이 했습니다. 전역하신분들중에서 상당수의 인원들은 유족의 입장을 이해하고,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7. 과연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김 훈 중위 사건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진상규명위원회는 강력한 수사권을 갖고있지않고 조사권만을 갖고 있어 ,조사과정중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을것을 예상됩니다. 시간도 많이 흘러갔고, 현지부대나 군수사관계자들이 비협조적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사하시는분들이 강한의지와 소명의식을 갖고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면 진실을 밝힐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언론에서도 계속 관심을 갖고 성원해주어야 할것으로 생각합니다.
9.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김 훈 중위의 사건을 계기로 조직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군 의문사위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해주시죠..
항상 강한조사의지와 소명의식을 가지시고 객관적으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그리고 과학적으로 조사하시길 당부드리고 ,많은 장애물을 용감하게 극복해나가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수많은 유족들의 고통을 덜어줄수있는 길이고 망자에게 명예회복을 시켜줄수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앞으로 우리군에서 더 이상 의문사로 죽어가는 국민들의 아들들이 있어서는 안될것입니다.
또한, 군당국은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조사관들이 진상규명하는데 앞장서야 할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군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길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