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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고선
제11회 산행일지 : 경북 문경시 주흘산(정상가 외우기 숙제와 히치하이킹)
일시 : 2003년 7월 5(토)
날씨 : 비, 흐림 그리고 오후 늦게 갬
장마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일정을 다소 앞당겨 7월 정기산행을 약속한 날이다. 어제까지 비가 내렸으나 아침엔 잔뜩 찌뿌려 있고 오후에는 북쪽부터 개일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며칠간의 일기예보가 이리 신경 쓰이는 것은 정기산행을 시작하고 부터이다. 날씨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비단 나의 일만은 아니라 등고선 멤버 모두, 나아가 그 가족 모두의 일이 된 것 같다. 전날 회장이 정상가를 공부해오라는 숙제를 온라인으로 내었는데 아침 일찍 둘은 노랫말을 적어오기까지 숙제를 충실히 잘해왔다. 물론 나도 노래공부를 열심히 했고 혹시를 위해 노랫말을 두개씩이나 적어 두었었는데...아침 경주는 비가 매우 많이 내렸나 보다. 김생곤은 비가 오는데도 간다고 집사람으로부터 그리고 괜히 전화한 금도현으로부터도 되레 야단만 들었나보다.
지난 번 마찬가지로 구미, 상주, 문경월악산과을 거쳐 이화령 터널 입구에서 새재방향으로 나와 2,000원의 주차료를 지불하고 한가한 주차장 맨 앞자리에 차를 멈추었다. 일인당 1,900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1관문에 닿으니 10시 30분. 주흘산 산행은 1관문을 지나자마자 주흘산 3.8km, 여궁폭포 0.8km라는 이정표에서부터 우측으로 시작된다. 계곡으로 모퉁이를 돌면 서늘한 기운이 피부에 와닿고 새소리와 매미소리가 물소리와 함께 왁짜하게 계곡을 넘쳐난다. 10여분을 오르자 갈림길이 나타난다. 우측으로는 여궁폭포와 주흘산, 좌측으로는 혜국사와 주흘산 표시가 되어있다. 다소 갈등이 있었지만 여궁폭포로 방향을 잡았다. 다시 다소 힘든 10여분을 오르니 좌측으로 거대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장마로 인해 많아진 수량이 양쪽의 직벽이 깊은 골짜기로 맞닿은 30여미터 높이에서부터 우렁차게 쏟아져 내린다. 거대한 여궁폭포이다. 이 폭포 하나만으로도 오늘의 주흘산은 그 값을 다한 것 같은 느낌이다. 기념사진을 찍고는 폭포 아래의 다리를 건너 조금 가니 아까의 그 이정표에서 혜국사 방향이라던 좌측의 길과 합쳐진다. 이정표 아래는 여궁폭포 3분이라는 글이 아래에 표시되어 있다. 결국 같은 길인 셈이다. 등산로는 곧바로 급경사를 이룬다. 폭포를 이루는 직벽을 돌아서 올라가는 중인 것이다. 폭포에서 20여분을 오르면 혜국사가 나타난다. 주흘산 등산로는 혜국사 100여미터 아래의 우측 길로 올라야 하지만 혜국사를 보기로 했다. 통일신라시대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혜국사 아래 감로수라는 지하수를 식수로 준비하고 한잔씩 들이켰다. 그 위에 쏟은 아름드리 고사목 한그루가 지나간 세월들을 간직하고 있는 듯 하였다.
잔뜩 흐린 날씨는 비록 비를 뿌리진 않았으나 등산로와 주위의 나무들은 습기로 가득하다. 혜국사를 11시 20분에 출발하여 그리 가파르지도 않고 편안하지만 은근히 힘들게 하는 오르막을 20여분 오르니 주흘산 1.6km(1시간)이라는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을 지나쳐 좀더 진행하다가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오이를 하나씩 나누어 먹는다. 쉬는 시간은 왜 이리도 빨리 지나는지 앉으면 10분은 금방이다. 다시 20여분을 오르니 샘터가 나타난다. 대궐샘이다. 차디찬 샘물을 다시 한 잔씩 들이키고 마지막 힘을 모은다. 10여분 후 능선에 도착하여 가쁜 숨을 몰아쉰다. 이곳에서 정상은 0.5km이며 해발은 989m이다. 비교적 평이한 길을 5분여 지나고 마지막 5분여는 정상공격에 다소 땀을 더욱 흘려야 한다.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은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던 서울 아주머니 4명으로 된 팀이었다. 물론 남자도 한사람 있었지만 그는 기사쯤으로 보였다. 서울 인근에 있는 모든 산에 다가버려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 중 한사람은 대구출신으로 우리의 사투리를 금방 알아 듣고 번역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의 부친은 우리 등고선 모든 멤버의 출신학교인 대명초등학교에서도 근무하신 적이 있으시다고 했다. 서로 단체사진을 찍어주고 그들은 마패봉으로 간다며 먼저 자리를 떳다. 이곳 주흘산 정상은 엄밀히 말해 정상이 아니다. 이곳의 해발은 1,075m이고 여기서 40여분 거리에 있는 영봉은 1,106m이니까 영봉이 정상이되지만 안내 지도에는 이곳을 주흘산으로 표기하고 있고 정상에도 주흘산 정상 표지석이 있다. 구름에 가려 주변은 바로 앞도 구분하기가 힘들다. 단지 이곳이 바위로 된 정상이라는 사실과 우리가 구름바다 위에 떠있다는 느낌을 줄 뿐이다. 직벽 틈틈에는 키 낮은 노란 들꽃과 나비(그중 노란 호랑나비는 처음 보는 놈이었다)들만이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래, 오늘은 대로에서, 그것도 정상에서 내어놓고 식사를 해보는 것이다.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숙제로 준비해 온 정상가를 힘차게 두 번씩이나 불렀다. 기분이 썩 괜챦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아무도 알지 못한/ 그곳에 올라가 외치고 싶소/ 여기가 정상이라고/ 우리의 숨소리 거칠어질 때 / 아- 여기서 쉬어 갑시다/ 아무도 본적 없는 아무도 간적 없는/ 그곳에 올라가 외치고 싶소/ 여기가 정상이라고/ 우리의 발걸음 늦추어질 때/ 아- 여기서 쉬어 갑시다/
1시30분, 주흘산 주봉에서 영봉(정상에서는 부봉 방향으로 표시되어 있음)으로 가야하는데 착각하여 오던 길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가 부봉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종주를 원하시는 분들은 이곳에서 주의하여 길을 잡아야 한다. 이제 비교적 편안한 능선길이다. 조령 3관문으로 하산하는 꽤 긴 코스를 목표로 잡았기에 걸음을 당겼더니 능선에서도 힘이 든다. 40분 소요된다는 영봉까지의 길을 30분에 도착하였다. 영봉 바로 앞에는 3관문, 2관문, 주흘산 등의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다. 어디가 영봉인지 알아보는 것도 쉽지 않다. 가장 높은 위치인 것으로 보이는 곳에 오르니 잡목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잘라서 세워놓은 나무 그루터기 하나와 작은 화강암 표시석(물론 정상 표지석이 아님)이 있을 뿐이다. 이쯤에 이르면 왜 이 영봉을 주흘산 정상이라하지 않고 아까의 주봉을 주흘산으로 표기하는지를 이해할 만하다.
2시10분, 다시 길을 재촉한다. 이젠 하산길이어서 속도가 더욱 빠르다. 영봉에서 30분 정도의 갈림길에서 좌측의 백두대간을 타고 부봉을 거쳐 동화원으로 하산하는 것이 오늘의 계획이었으나 아뿔사 여기서 길을 놓치고 말았다. 지도에는 이곳 갈림길을 주의하라는 특별한 당부도 있었는데 우리가 급속 하산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이유로 이 갈림길을 지나치고 만 것이다. 김생곤의 강한 주장에 다들 별 의의없이 따랐던 두 사람의 무지와 불찰도 물론 책임의 일부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하산을 완료하고 난 이후의 일이었다. 부디 마패봉, 제3관문으로 가실 분들은 영봉에서 20여분 하산한 뒤 그 주변을 면밀히 살펴 좌측의 등산로가 발견되면 곧바로 그쪽으로 들어서야 할 것이다. 비록 좌측 길은 같은 백두대간이지만 시그널도 적고 좀더 좁은 길이라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미 길을 놓친 우리는 그래도 모른다며 월항재에서 좌측으로 거의 90도를 꺽었다. 등고선 상으로는 분명 능선하나를 넘어야 3관문으로 갈 수 있는데 능선을 넘는 길은 잘 보이지도 않았거니와 다시 오르막을 오르긴 모두가 그리 탐탁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이 길이 잘못된 길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지만...아뭏튼 우리는 쓰레기를 주우면서 깊은 계곡의 약초내 나는 생수를 들이키면서 호젓한 하산 길을 즐겼다. 때가 이르러 탁족도 하고 과일도 먹고. 월항재에서 한 시간여 하산하니 계곡의 물이 많아지고 점점 하류로 이어진다. 갑작스레 물막이 보가 나타나더니 집이 보인다. 더욱 당황스런 것은 아스팔트가 보이고 그 위를 차가 달린다는 것이다. 새재3관문에는 찻길이 없는데...참으로 당황스러웠다. 길 가까이에 있던 아저씨께 여기가 어디냐는 다소 황당스런 질문을 하였더니 아니나 다를까 내가 염려했던 충북 미륵리라고 한다. 지난 번 산행 때는 덕주공주를 덕주사와 마애불에서 만났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한 많은 마의태자가 우릴 이끌었나 보다. 네 시를 넘어서고 있다. 큰 길 가로 나오니 이곳은 지난 주 월악산 등반 때 지났던 수안보 입구에서 우회전하여 월악산으로 들기 전 그 길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김생곤이 다소 미안해하는 표정이었지만 평생 잊지 못할 오늘 등반의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우선 문경새재로 돌아가려면 수안보-문경읍-새재의 길을 거쳐야 했다.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점잖은 아저씨가 첫 번째 기사가 되었다. 새재를 넘어 제3관문으로 내려갈까 하고 월악산 국립공원 입장료를 징수하는 곳에서 김생곤이 길을 묻는 동안 우릴 태운 아저씨는 기다려 주었다. 그 길이 간단치 않음을 듣고 다시 차에 올라 수안보와 문경 방향으로 나누어지는 삼거리에 우린 내렸다. 두 번째 차량은 교회차로 보이는 승합차였다. 연풍 버스정류장에 내려 주시면서 여기서 버스타고 가면 된다고 친절히 가르쳐 주셨지만 우린 다시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이번엔 오늘 히치하이킹 아니 오늘 등반의 압권이라 할 수 있는 짐차를 얻어 탔다. 대구 차였으며 아저씨는 두말 않고 짐칸으로 오르라는 몸짓을 보였다. 텅빈 짐칸에 나란히 셋이서 앉았다. 날씨는 이미 깨끗하게 개여서 각도는 낮지만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고 비온 뒤여서 산과 들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맑고 선명하였다. 게다가 짐차는 속도를 높이고 있어서 신선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그 기분은 정말로 괜챦았다. 그러나 배를 쥐고 웃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우리를 따라오던 승용차 때문이었다. 우리와 마주보고 따라서 달려오는 탓에 오랜 시간 동안 눈길이 마주쳐야 했고 승용차에 탔던 젊은 부부도 우리가 신기하고 우스운지 입을 가리고 연신 웃어대고 눈길이 마주칠 때면 웃음을 참느라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물론 우리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화령 터널을 지나 그 승용차의 두 부부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우리를 앞질렀다. 요금소 앞에서 우리는 짐칸을 내렸다. 200여미터 전방에 검문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안동을 향하는 아주머니 차를 얻어 탓다. 2km 정도를 내려와 새재 입구에서 하차하여 다리를 지나 마지막 차인 세피아 승용차를 얻어 탔다. 주인은 좋은 차가 아니어서 미안하다는 겸손을 떨었다. 결국 다섯 번의 히치하이킹 끝에 우리의 차로 돌아왔다. 5시10분. 빨리 온 셈이다. 그리고 아주 쉽게 히치하이킹을 한 것이다. 아직 세상은 살만 한 곳인가 보다. 이리도 인심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길가에서 찰옥수수를 세 자루 구입하고는 문경종합온천에 들었다. 입장료 6,000원도 김생곤이 지불했다. 오늘은 김생곤 승진턱이다. 온천은 조용했으며 둘은 수영도 하면서 즐거워했다. 이리저리 식당을 찾다가 온천 뒤의 약돌돼지고기집으로 들었다. 2년동안 삭인 김치와 삼겹살을 함께 구워먹는 맛이 괜찮았고 그집 아주머니의 친절함과 김치찌개의 맛도 일품이었다. 오는 길은 예천, 안동을 거쳐 중앙고속도로로 대구에 닿았다. 9시30분. 정말 사연 많은 11회 정기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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