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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풍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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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후기 스크랩 천태산 나들이
poll 추천 0 조회 52 10.03.31 11:13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어진 친구를 가까이 하면

안개속을 걷는 것과 같아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옷이 젖듯 동화되고

쑥이 삼이나 대밭에서 자라면 붙들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진다.

法頂스님의 책에서 읽은 글이다.

 

70-80년대의 내 청춘.

그 청춘의 그림자를 바라 본다.

나이든 청춘의 흔적들이 서글프다. 

그 노래들이...

 

 

 

 

아침이 내리는 자리 

 

어제밤 제대로 자질 못했다.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도 소용없었다.

아니 아주 잠을 못잔것은 아닌지 모른다.

이른 아침 마당에 나서니 잠이 깨는 기분이 들었다.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는 밤을 보냈나보다.

몸이 무겁고 머리가 희미하다.

 

 

 

 

비밀의 화원 

 

 

 

 

 

 

 

 

 

 내 마음의 집은 깊은 산골에 있다.

 

겨울가고 봄이 오면 연두빛 어린 순이 세상에 가득하고

 

사립문 가리던 나무 그림자 짧아지니

 

새소리 길었다 깊어졌다

 

아침잠이 없어진다.

 

 

 

 

 

 

 

 

 

 

 

 

한 무리의 젊은 죽음을 앞에 두고

산다는것이 다시 잿빛으로 바랜다.

 

사람이 산다는게 무엇인가?

이 원초적 의문 앞에 다시 주춤거린다.

 

꽃과 청춘이라.

삶과 죽음의 지평.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것일까.

 

 

 

 

 

 

 

 

 

 

 

 

 

 

 

 

 

의젓하고 너그럽다고까지는 할수 없으나

거드름이나 신경질이 스며들 여지가 없는 소박한 풍경.

 

  진솔한 삶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길을 지나다

문득 그 묵은 모습에 끌린다. 

 

 

 

 

 

봄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직 지워지지 않는 겨울의 흔적들이 여기 저기 널려있다.

 

비록 미미해 하늘 한 모퉁이에 웅크린듯한 풍경이지만

구름 낀 하늘에 잭슨 폴락의 그림처럼

잎을 달지 않은 가지가 어지럽다.

 

검은 가지들이 묘한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선묘의 아름다움이 울증을 예고한다.

 

 

 

 

 

 

 

 

 

다수회 

 

한 십여년 전에 다대포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동호인들 끼리

친목회를 만들었다.

 

처음엔 회원들이 제법있었으나

다 빠져 나가고 지금은 십여명이 겨우 되는 작은 모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중에도 지금 수영을 하고 있는 이는  절반도 안된다.

그래도 지금까지 수영을 계속 하는 이들은 수영 경력 10년 이상되는 베테랑이다.

 

비록 적은 인원일 망정 그래도 다달이 모이고

일년에 한번씩 산행도 가고 하는것이 참 신통하다.

하기야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모임이니

모이고 헤어짐에 부담은 없다.

 

 

 

 

 

 나이를 먹으면 사진에 담기는 포즈부터가 어색하다.

 중년의 경직됨이 역력히 묻어난다.

상관 없다.

 어짜피 우리는 그렇게 살아 온 세대이니.

앞에 치고 뒤에 밀려

힘들게 살아 온 인생들이니.

 

 

 

 

 소풍은 언제나 즐겁다.

 

까불고 싶어지나 보다.

세상에 안과 밖이 있는것도 아닌데

해방을 얻은 느낌.

 

그 가벼운 기분에도 우리는 한없이 덜뜬다.

참 오랜만의 외출같아 보인다.

 

매주 산으로 가는 나는 어떨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치기어린 질문에

답을 거두어버린다.

 

나는 나고

저들은 또 저들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나와 상대의 관계가 더없이 명징해 진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들 어떠할까.

 

 

 

 

 

 

 

 

 

 

 

 삼신 할미 바위

 

퉁명한 할미 얼굴을 닮아서일까 

바위 이름이 엉뚱하다.

 

 

 

 

 

 

 

 

 

 

 

 

 

 

 

 

 

영국사의 인상

 

 

 어디서 부터 영국사인지

일주문 하나 없고

늙디 늙은 은행나무 한그루

인왕처럼 절집을 지키고 섰다.

 

고졸한 만세루

담도 없는 마당엔

봄기운이 때 만난듯 마음껏 넘나들고

절을 품은 천태산의 바위빛은

백옥처럼 눈부시다.

 

산이  법당이요

절집이 다 만산이다.

 

 

 

 

 

 

 

 

 

 

 

영국사 천년묵은 은행나무 

 

세월의 무게.

그 세월의 질량을 느끼게하는 노거수.

 

그 무게로 말미암아

서서히 땅속으로 가라앉는듯한 모습이다.

 

우리의 지친 삶도

세월에 파묻혀 꺼져가기는 매 한가지.

 

 

 

묵은 해니 새해니 가리지 말게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듯하지만

 

보라고,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살지.

 

-학명 스님-

 

 

 

 

 

 

 꿈속인듯

고졸한 영국사 만세루가

단청기 없는 모습으로 봄을 맞고 있다.

 

봄기운은 더할 수 없이 영롱한데

아직 절 마당에 꽃은 피지않았다.

 

삼월의 된추위를 맞고

 나무는 여태 입을 닫고있다.

 

 

 

 

 

 

 

 

 

 

 

 

 

 

 

 

 

- 미류 나무 앞을 지나며 -

 

사랑하되 서로 얽메이지 않는 삶이 중요하다.

바이올린의 각 현들이 서로 어울려 화성을 만들어내듯

개개인의 고유한 삶을 존중하는것이야 말로 

세상을 지탱하는  길이다.

 

가슴을 밝히는 진실의 불꽃처럼

미류나무 한그루 심지처럼 당당하다.

내 마음에 이미 있었던 그 어딘가의 나무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마음도

현재의 마음도 매어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얻을수도

찾을 수도 없는 마음은

차라리 텅텅 비워져야

제 소리를 낼 수 있는 법.

금강경의 지혜입니다. 

 

 

 

 

 

 

 

 

 

 

 

 

 

 

 

 

 

 

 

 

 

 

 

 

 

 

 

 

 

 

 삶이 무료하고 타성에 젖었을 때

그 획일적인 삶의 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새로운 탄력과 리듬을 불어넣는 일

등산만한 게 또 있을까?

 

하지 않아도 좋을 고생을 통해

스스로에게 근접해 들어가는 방식.

그 긴장감이 가져다 주는 솔솔한 재미가 발끝 손끝에 짜릿하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느긋한 산행을 한다.

일찍 산에 오르니

시간의 부담이 없어 홀가분하다.

 

산을 바삐 오르는 이에게

던질 말은 없다.

그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삶을 살듯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산을 오른다.

오늘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산을 숭배하는것은 아니지만

종교를 대하듯

늘 겸손한 마음가짐을 견지합니다.

 

그것은 산을 대하는 자의 자세이기에 앞서

산을 사랑하는 자의 최소한 예의이기도 합니다.

 

어젯밤의 음주 가무도 못마땅 하거니와

산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 또한 마음에 걸리는것도 사실입니다.

 

천태산에 와보니

가벼운 원족삼아 오를 산이 아닙니다.

 

산의 위용과 근엄함이

명산의 지위를 넘어

종교적이기까지 합니다.

 

한마음 한마음 가다듬고 음미해야할 산을

경망스레 오르는 모습을 보는것 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습니다.

 

 

 

 

 

 

 

 

 

 

 

 

 저마다의 業처럼

자신의 삶도 스스로 개선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에 삶은 늘 고단하고

생은 외롭다.

 

홀로 놓인 밧줄에

스스로를 의지한 채

험한 산을 오르는 모습 속에

삶이 지니는 원초적 고단함이 느껴진다.

 

 

 

 

 

멋진 암릉 구간

봄 햇살에 바위가 해맑게 웃는것 같다.

 

바위를 오르다

바위 사이에서 쉬는 사이

햇살을 듬뿍 받아 둔 바위로 부터

감사를 넘어선 따사로운 평화가 느껴진다.

위험한 곳에서 얻는 평화라 참 새롭다. 

 

 

 

 

 

 

 

 

 

 

 

 

 

 

 

 

 

 

 

 

 

 

 

 

 

 

 

 

 

 

 

 

 

 

 화마의 상처를 딛고 산은 치유 중이다.

나무가 타서 사라진 자리에

상흔처럼 외로움이 뚜렷하다.

 

헐벗은 화전처럼 궁색해진 산길의 모습이 애처롭다.

산도 인간사를 닮아 흥망의 아픔이 있는것인지

멀리 보이는 슬픔의 원경에도

어김없이 봄빛이 어린다.

 

 

 

 

 

 

 

 

 

 

 

 

 

 

 

 

하산길의 멋진 암릉구간

 

A코스의 다소 힘든길을 올라와 무난한  D코스 로 내려가는 것이 천태산을 타는 정석인 모양이다.

같은 산을 오르더라도

이렇게 다양한 방법이 있고

계절마다 오르는 맛 또한 다르니

참으로 오를 산은 많아지고

좋은 풍경을 앞에 둔 조바심만 더 해진다.

 

 

 

 

 

 

 

 

 

 

 

 

 

 

 

 

 

 

학창 시절 까뮈나 사르트르를 읽으면서

삶의 자주성에 대한 생각을 하게되었다.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단하며

자주적으로 이끌어가는것.

삶에 생기와 빛을 불어넣는 일.

 

나도 저 무거운 바위를 이겨내는 산처럼

스스로 만들어 낸 무기력과 권태를

이겨 낼수 있는 무한 역량을 가질 수는 없을까.

 

바위를 받치고 있는 프로메테우스의 자리에

내가 슬며시 대치되는 기분이다.

 

 

 

 

 

 

 

 

 

 

 

 

 

통일 신라 시대의 고졸한 삼층 석탑.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갖춘 아담한 석탑이다.

그 절의 품격은 법당 앞의 석탑이 결정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법당의 연표야 고작 조선이나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갈지 모르나

탑은 적어도 1000년 역사의 무게을 지닌다.

그래서 부숴지고 무너져 온전하지 못한 석탑일지언정

오래된 석물하나 법당 앞에 서 있으면

그 절집의 역사성도 아울러 깊어지는것이다. 

 

 

 

 

 

 

 

 

 

 

 

 

 

 

 

 

 

 

 

 

 

망탑봉의 상어를 닮은 바위 

 

 

 

 

 

 뒤에서는 고래 모양

 

 

 

 

 

 뭔가 현대 조형물을 연상케 하는 멋진 바위이다

 

 

 

 

 

 

천태산 하산길에 망탑봉을 들리지 않았다면

천태산 산행의 백미를 놓친 꼴이 될뻔했다.

 

망탑봉 나트막한 정상부에 이렇게 수려한 고려탑을 만날 줄이야.

마치 진귀한 야생화를 본것만큼 기뻤다.

 

시원한 상승감이 푸른하늘로 기분좋게 이어진다.

자연암을 기단석으로 한 파격도 예사롭지 않다.

 

고려 중엽의 탑으로 추정되며 백제탑의 영향을 많이 받은것 같기도 하다.

세월에 따라 모양을 달리한 두 탑을 감상하며

역시 손끝으로 쪼아 만든 석물이라야

탑이 가지는 깊은 예술성을 제대로 살릴 수있다는걸 깨닫게된다.

 

오늘날 절마당을 채운 저 허접한 대한민국식 탑들에 대해

후세는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까.

 

 

 

 

 

 

 

망탑봉 하산길에서 본 암벽 

 

 

 

 

 

 

 

 

 

 

 

 

바위 위의 내 그림자.

 

-후기-

 

내 삶의 무게는 바람처럼 가벼운 것인지

떨어지는 물처럼  가벼운것인지

가볍다 못해

의심스러운 것인지

내가 떠난 뒷자리를 보면 알리라

봄이 왔건만

덧없이 왔다.

 

 

 

 

 

 

 

 

 

 
(2010-03-29 오전 11:55:52)

 

 아렌스키 피아노 삼중주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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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3.31 11:52

    첫댓글 담겨진 글귀 하나하나가 많은 것을 생각 하게하네요 .사람들은 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사나봐요. 세월의 덧없음. 세상의 외로움.아쉬운 청춘.또 가야하는 길 등등... 모든 것들의 집합이 인생이듯 모든 것들을 적당히 하고 살다보면 내일은 항상 밝은 날이겠죠?

  • 10.03.31 15:55

    장편소설을 읽는듯^^

  • 10.03.31 16:31

    오늘따라 님의 후기를 보니 내 맘과 같이 구슬퍼집니다.

  • 10.03.31 19:25

    사춘기의 소녀마냥 섬세하고 가녀린, 한올한올 씨줄과 날줄이 극적으로 교차하듯....끈길듯 이어지는 한곡의 아름다운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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