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륜성왕(轉輪聖王) “아쇼까 대왕”
전륜성왕은 자신의 전차 바퀴를 어디로나
굴릴 수 있는, 즉 어디로 가거나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통치자를 뜻한다. 여래의 32상을 갖추고 칠보(七寶)를 가지고 있으며, 하늘로부터 금,은,동,철의 네 윤보를 얻어 굴리면서 사방을 위엄으로 굴복시킨다. 경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만약 붓다가 되지 않았다면 전륜성왕이 됐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전륜성왕은 설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인도 역사상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루고 불교를 아시아 전역에 퍼뜨린 호불(護佛 ) 황제, 10만 명을 학살한 정복자에서 타종교까지 품에 안은 관용의 화신.
그렇다.인도인들에게 그리고 불교를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역사상 유일한 전륜성왕으로 칭송받았던 인물, 바로 아쇼까왕이 있다.한자 문화권에서는 아육왕(阿育王)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진 아쇼까왕.
유교(儒敎)에 한 무제가 있고, 기독교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있다면 불교에는, 불교를 세계화한 고대인도의 아쇼까 대제가 있다. 그러나 아쇼까왕은 다른 종교의 황제들처럼 잘알려지지도, 또한 변변한 전기도 없다. 절대권력을 가졌으면서도 다른 종교를 차별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오르지 자비와 관용으로 광대한 제국을 다스린 철인왕. 아쇼까왕의 이야기는 분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3대 왕으로 태어난 아쇼까왕은 즉위 8년째 되던해에 깔링가국을 정복했다. 그러나 패전국의 백성이 격는 참담한 고통을 목격한 뒤 양심의 가책을 느껴 곧 무력 정복을 포기했다. 그 대신 비폭력과 사회 윤리에 기초를 둔 다르마
(올바른 삶의 원리)에 의한 다스림을 시작한다.
왕은 관용과 자비,비폭력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구두 포교뿐만 아니라 마애(磨崖 )와 석주(石柱)에 칙령을 새겨 적절한 잔소에 세웠으며, 이를 통해 정직,진실성,동정심,자비,자선,검약,불살생과 같은 불교 교리에 기반한 윤리적 다스림을 널리 홍포했다. 왕은 그러나 불교로의 개종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모든 종교·종파를 평등하게 대했으며 자신들의 신념과 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완전한 자유를 보장했다.
왕은 백성들을 위한 자비사업에도 몰두했다. 공공사업을 벌여 병원과 급식소를 세우고 의약품과 식량을 공급했으며, 곳곳에 가로수와 과수를 심고 우물을 파 분수와 휴게소를 세웠다. 심지어 가축병원을 세우고 동물학대를 금지하는 법령을 만들기도 했다.
특히 불교에 대한 왕의 공헌은 전무 후무한 것이었다. 불멸 후 8등분 되었던 불탑은 왕에 의해 나라 전역에 8만4.000개의 탑과 사원으로 거듭났으며, 붓다의 숨결이 머문 곳에는 어김없이 석주를 세워 붓다의 가르침을 기렸다. 특히 왕은 자신의 아들과 딸을 스리랑카에 포교사로 보냈을 정도로 해외포교에 열성적이었다.
교단에서 해외 포교사 파견을 결정하자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도 왕이었다. 기원전 6세기, 불교는 갠지스강 동북부의 신흥 종교 세력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는 남으로 스리랑카를 거쳐 동남아의 여러나라에 퍼졌고, 북으로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과 한국, 일본, 그리고 히말라야를 넘어 티베트에까지 전해지며 세계종교로 성장했다. 오로지 자비와 관용으로 제국을 다스렸던 아쇼까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쇼까 대왕은 인도 아대륙(亞大陸) 동북부의 지방·소수 종교이던 불교를 인도 아대륙 전역은 물론 세계적으로 전파시킨 왕이다. 부처님 사후(死後)200여 년이 지난 시점에 인도 통일왕조의 국왕으로 즉위한 그는 재위기간 동안 인도 전역에 8만4.000개의 스투파(탑塔)를 세우며 불교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전파했다.
그의 발걸음은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동산에서 열반지인 쿠시나가르까지 모든 성지에 이르렀고, 부처님의 유적지마다 석주를 세웠다. 지금도 세계의 불자들이 부처님의 유적지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를 남겨둔 셈이다.
5세기의 법현(法顯), 7세기의 현장(玄奘) 등 중국 스님들과 혜초(慧超)등 한국 스님들이 인도의 부처님 성지를 순례할 때에도 아쇼까 석주가 등대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는 불법의 수레바퀴를 굴린 “전륜성왕”으로 불리며, 지금도 인도를 상징하는 문장(紋章)에는 아쇼까 대왕이 세운 돌기둥에 새겨진 네 마리 사자상이 쓰이고 있다.
불교를 중심에 두고 있으며서도 힌두교·자이나교 등의 가르침을 포용하고 관용한 결과, 역설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국경을 넘어 세계화 시킬 수 있었던 아쇼까 대왕의 삶은 다종교사회인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도 뚜렷하다.
자료:부처님 마음 2009.5월 322호 노적사 사보. 옮긴이 진성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