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체험적 창작론을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작품을 다 쓰고 나면 어떻게 합니까? 그냥 발표합니까, 아니면 누구에게 읽어 보라고 부탁하며 조언을 구합니까? 지난 8월 무주에서 열린 계몽아동문학회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광주에서 온 동화작가 이성자 선생님에게서 좋은 이야기 하나를 들었습니다. 자기는 작품을 탈고하고 나면 남편(현직 교장 선생님)에게 꼭 읽어 보라고 한답니다. 남편이 재미있게 잘 읽으면 성공한 작품으로, 그렇지 못하고 잘 읽지도 않고 떨떠름해 하면 작품이 별로 좋지 않구나 하는 예감을 가진다는군요.
그렇습니다. 작품을 쓰고 나면 꼭 누군가에게 읽혀 보게 하는 것도 좋은 평가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고학년을 위한 소년 소설이든, 저/중 학년을 위한 동화든 아이들에게 먼저 한 번 읽혀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작품이 재미 있고 마음에 들면 금세 환한 얼굴로 읽어 내려갈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겠지요. 물론 재미하는 하나의 기준만을 가지고 작품의 완성도를 가늠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겠지만, 문학 작품의 수용 미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개연성이 있는 평가 방법 중의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남편이나 아내든, 아니면 동료 선생님이나 주위의 아는 분들에게 한 번 읽혀 보고 조언을 구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무엇보다도 동료 작가나 선/후배 작가에게 읽어 보게 하고 작품의 잘잘못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겠지요.
작품을 쓴 본인은 작품의 허술한 구석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숲속에 들어와서는 나무만 볼 뿐이지 숲 전체는 볼 수 없느니까요. 그렇지만 제3자는 냉철한 객관적 시각으로 작품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숲속에 들어와 있는 사람(작품의 창작자)이 아니기 때문에 숲 전체(작품의 완성도)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내 작품읋 보인다는 게 어쩌면 자신의 치부를 보인다는 느낌을 주어 쑥스러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살 먹은 아이한테서도 배울 점이 있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에게서 한 수 배운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동료 작가에게 작품을 읽어 보게 하고 조언을 구하는 게 가장 좋을 듯 합니다. 작품을 읽어 본 동료 작가가 작품의 허술한 부분을 지적할 경우에는 귀를 기울여 들어보고, 그 지적이 설득력이 있으면 수정 보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여 작품의 퇴고가 끝나면 발표를 하거나 어디 응모를 하겠지요. 응모를 했을 때 본심이나 최종심에서 거론되었다면 일단은 작품의 완성도에 큰 하자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몇 회에 걸쳐서 체험적 창작론을 소개했습니다, 주로 소년소설을 텍스트로 하여 설명했습니다만, 동화라고 무슨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 동화일 경우에는 서술형 종결 어미의 신중한 선택, 문장의 기술적인 문제, 현실의 리얼리티와 환상의 경계 구분과 그것들의 스며듦, 문장의 구조 등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할 줄로 알고 있습니다. 순수동화에서는 같은 상황의 반복, 원색적인 단어의사용과 감각적인 어휘 선택, 지리한 묘사의 자제는 필수적입니다. 순수동화 의 텍스트로는 안데르센의 모든 작품, 국내 작품으로는 시인 곽재구가 쓴 <아기 참새 찌꾸>(1,2) 등이 좋은 텍스트가 될 것 같습니다. 우선 많은 작품을 읽어봄으로써 창작 기술의 노하우를 습득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다음 통신부터는 아동문학의 일반론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볼까 합니다. 햇빛 맑고 바람 청량한 이 가을, 늘 건강하시고 나날의 삶에 크신 분의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길 빕니다.
첫댓글 선생님의 소년소설 창작론. 아주 유익한 공부가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